잉칼 1 - 존 디풀의 모험, 그래픽 노블 01
뫼비우스 외 지음, 이세욱 옮김 / 교보문고(교재)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연재를 시작한 것이 1980년이라고 하니까 80-90년대의 그 많은 SF/환타지 물보다 한발 앞서 있는 것이 본작 [잉칼]이다. 그림을 담당한 뫼비우스가 만화가일 뿐 아니라 [에일리언], [제5원소]에도 참여했다는 점, 글을 담당한 조도로프스키가 만화 작가일 뿐 아니라 그 기기묘묘했던 영화 [성스러운 피]의 감독이기도 하다는 점은 흥미거리를 넘어 [잉칼]을 이해하는 주요열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그 둘이 힘을 합친 이 작품은 한 마디로 만화가 이루어낼 수 있는 성과의 한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내용적으로 보면 SF, 모험, 환타지의 모든 장점들을 끝까지 밀어올리다 못해 드디어 그 윗단계라고 할 종교, 신비, 초월의 세계에까지 도달해버렸다. [에반게리온]과 [매트릭스]를 통해 이제 익숙해진 광경이지만, 1980년이라는 연표를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당시는 물질문명 발달의 극한치에 근접한 서양사회가 서서히 동양이며 참선이며 정신세계 등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러한 '터닝 포인트'에 본작은 깃발을 꼽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환점을 돈 서양인들은 물론, 그들이 왜 우리를 향해 다시 뛰어오는지 영문도 모른 채 여전히 반환점이 종착점인 줄 착각하고 정신없이 내닫고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이 작품은 필독을 요한다.

형식적으로 보아도 [잉칼]은 완벽한 작품이다. 우선 감지되는 것은 놀라운 밀도이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걸어가는 걸 묘사하는 데에만 종종 한두 페이지를 소비해버리는 일본과 한국의 극화들에 비한다면 본작의 컷 전개는 몇 배의 밀도를 보유하고 있다.(두 권밖에 안된다는 사실은 이 점을 감안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것만으로도 매 컷마다의 복잡성과 완성도를 짐작할 수 있을 텐데, 더구나 올 컬러판이다. 페이지마다의 컷 구성도 천양지차여서 무슨 일련의 형식실험을 보는 것 같다. 상업적 연재만화의 그렇고 그런 관습들과 정반대로 치닫는 이러한 특징들은 복잡하고 심오한 스토리와 화학작용하며 고도의 완성도를 이루어내고 있다.

좋은 질의 종이에 잘 인쇄된 한국판의 외양도 마음을 놓게 해준다. 이세욱씨의 번역은 능수능란하여 노련미까지 느껴지고, 편집에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나우시카], [아키라], [공각기동대], [총몽], [에반게리온]들중 하나에라도 매혹을 느꼈다면, 혹은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 중 하나에라도 환호한 기억이 있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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