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 청아 예쁜 청아 푸른도서관 28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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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인 작가님!
  우리역사와 고전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고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내거나 고전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시는 분’ 

책표지에 적힌 작가 소개 글에 걸맞게 그 분은 어떤 고전이든지 탁월한 작품으로 새롭게 쓰시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계신듯하다.  그러기에 우리시대 청소년 역사동화를 쓰시는 몇 안되는 작가분 가운데 한분이신 그 분이 쓰신 책을 또 한 권 읽게 되어 정말 기쁘다.  마지막왕자,  아~ 호동왕자, 화랑바도루, 초원의 별 등에서 그러했지만 역시 그 분의 동화를 읽다보면,  우리가 익히 아는 고전인데도 너무 재미있고,  사건의 팽팽한 흐름이 한 번 잡은 손에서 끝까지 책을 놓치않게 만드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청아, 청아 예쁜 청아도 단숨에 읽게 되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평소에 그냥 쉽게, 또는 평범하게 생각했던 것이라도 어떤 사람이 "와, 정말 대단해! 너무 멋져! " 하고 특별하게 생각하며 높여주면 왠지 그 때 부터 ’정말 그렇게 대단했던가?’ 하고 슬그머니 시각을 바꾸게 된다. 

나에게 있어 심청이도 그랬다. 그저 옛이야기에 나오는 평범하고 착하고 가엾은 소녀,  눈먼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물에 몸을 던진 불쌍한 효녀 정도로....  그런데,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 평범한 시각을 바꾸게 한 것이 바로 심청을 사랑한 ’빛나로’ (사실은 바다 용왕의 아들) 라는  한 거북이에 의해서다.  

빛나로는 용왕의 아들로 태어났고, 아버지인 바다 용왕은 빛나로를 세상 누구보다도 지극히 사랑했다. 그러나 이 사랑하는 아들 빛나로가 몹쓸병에 걸렸기에, 아버지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하늘 상제님이 아끼시는 ’하늘 복숭아’를 따오는 엄청난 죄를 짓고 만다. 그 일로 용왕은 하늘의 벌을 받아 상제님의 선물인 여의주가 빛을 잃게 되던 날부터 바다왕궁은 무너져 내리고, 용왕은 하늘 감옥에 갇히게 되며, 빛나로와 용왕의 아내인 엄마는 거북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 벌을 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다시 하늘 복숭아가 열리는 날, 빛나로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부터 진실한 사랑의 고백을 들어야한다는 것이다. 

청아, 청아 예쁜청아의  내용은 참 신선하다. 우리가 잘 아는 심청이 이야기이다. 하지만 강숙인 작가님은 오랫동안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서 다녀왔다는 용궁이야기가 궁금했다고 한다. 그래서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여서 흔히 아는 고전인 심청전을 새롭게 써 나갔는데, 이건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신선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강숙인 작가님은  심청이 용궁에 빠졌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에 착안하여, 작가적 창의성과 호기심을 작동하여 쓴 내용이라지만,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어쩜 이런 신선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 아, 빛나로! 너를 살릴 수만 있다면, 하나뿐인 이 목숨도 내놓으련만.’  
빛나로의 아버지인 바다용왕의 고통은 정말 간절했다. 부모라면 그런 상황에서 누구나 한번쯤 바다 용왕과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자식을 아꼈으면, 감히 하늘상제가 아끼는 ’하늘복숭아’를 땄을까? 마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딴 것 같은 에덴동산이야기를 연상시키지만,  목숨을 걸고 딴 복숭아 즙으로 아들의 병을 고친 것이나, 그 죄로 여의주가 빛을 잃자 바다 용궁이 허물어져 버렸다는 이야기, 여의주를 통해서 무엇이든지 볼 수있기에 하늘 감옥에 갇힌 용왕을 너의 아버지라고 엄마가 빛나로에게 말해주는 내용이나,  여의주를 통해 아리따운 심청을 보게 된 내용 등이 정말 신선한 감동이다.

그런데, 이 동화의 신선함은 하나 더 있다.  바로 동화를 해피엔딩의 결말로 가볍게 처리하지 않은 점이다.  이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볼 수있는데, 만약 내가 ’청아, 청아 예쁜 청아’ 를 썼다면,  하늘 복숭아를 먹고 살아났지만 거북이 되고 만 불쌍한 빛나로가 하늘 상제님으로 부터 아버지의 죄를 용서받아 하늘 감옥에서 풀려나고, 다시 용궁이 예전으로 회복될 수 있는 길이 예쁜 청이를 만나 그 녀의 마음을 얻는 방법 밖에 없다면,  그냥 둘의 사랑이 맺어지게 해피엔딩으로 처리하여 거북이는 왕자로 되살아나고, 심청이는 용궁에 가서 둘이 결혼하여 용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강숙인 작가님께서는 다른 결말을 지으셨다.

뭍으로 심청을 보러갔다가 그물에 걸린 빛나로 거북을 심청이 구해 준 것을 인연으로 빛나로는 심청의 집에 가서 심청과 친해졌다. 친구처럼 종처럼 심청이가 가는 곳을 졸졸 따라다니다가 심청이 공양미 삼백섬에 팔려가게 되어 거북과 작별을 하자, 빛나로는 심청이 빠지게 되는 인당수에서 청이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미 마음 속에 우연히 만난 선비를 사모하고 있는 청이가 자신을 따라 용궁에서 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빛나로는 청이의 마음을 얻어야한다는 생각을 애써 떨치면서,  청이를 구하기 위해 하늘상제님이 한가지 소원을 들어주시겠다고 한 약속을 생각하여 마음으로 하늘 상제님께 소원을 아뢴다.

" 상제님, 청이를 구해주세요. 청이가 살아, 사랑을 이루고 꿈을 이루게 해 주세요." 

이것이 바로 빛나로식의 사랑이었다. 빛나로는 소유하지 않는 애달픈 사랑을 택했고, 하늘상제의 도움으로 여러거북이 몰려와 청이를 뭍으로 구해낸 후에, 청이는 자신을 구한 것이 평소 자신이 사모하던 그 선비인 줄로만 알고,  그 분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도, 빛나로는 완력으로 청이를 얻으려고 하거나 한가지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하늘상제께 청이와 자신이 맺어지기해달라는 그런 억지스럽고 자기 욕심에 가득찬 소원을 내 보이지 않았다.  청이가 알아주던 몰라주던 비록 자신이 아버지의 죄를 씻지 못해 지금 용궁을 회복하지 못하고, 지금 거북이 그대로 살게 될지언정, 사랑하는 청이가 행복해지는 사랑을 택하고 만 것이다.  이것이 빛나로식 사랑이며, 그 사랑은 너무 애절하고 슬프도록 아름답다.

역사의 행간 뒤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일이란 참 쉽지 않다고 본다. 더구나 그 숨은??킬 수 있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임이라. 그러나??생시키셨고, 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이야기가 내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현대의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절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찾아볼 수 있을까?  마치 성경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오래참고, 온유하며,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않는다는...... 그같은 사랑을 말이다. 

보이는 사랑, 만지고 느껴지는 사랑, 사랑이라는 이름을 부러기가 왠지 낯 뜨거운 사랑이 성행하는 오늘날에 작가는 어쩜 빛나로를 통해 다시 보이지 않는 사랑의 위대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아름다운 사랑을 노래하며 선비와의 사랑을 위해 자신을 떠나고 있는 심청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빛나로의 한마디가 아직도 내 귓가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오랜 세월을 다시 기다리는 일도,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도 이제 난 할 수가 없어, 내 마음 속에는 오직 너 뿐이니까, 어쩌면 상제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내 청을 들어주실지도 모르겠다. 그럼 난 영원히 거북인 채, 하는 뇌옥에 갇혀 있어야겠지. 바다보다 깊은 슬픔을 안고, 하지만 내 슬픔이 바다보다 깊어도, 네가 사랑을 이룬다면, 그래서 네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난 더 이상 슬프지 않을 것 같구나.’

빛나로식 사랑, 보이지 않아 더 아름다운 사랑!  빛나로 그 사랑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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