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어색하게 외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오래된 감정의 잔상이 쉽게 지워지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냉정하지 못한 나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나를 외면했으니 나의 유치함만을 탓할 필요는 없겠지.

한때는 그와 마주칠 법한 장소는 애써 피하려했다.
그가 있는 장소에 나타나는 것이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한다는 의미로 읽힐까봐,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을까봐 두려웠다.
그리고 그가 나와의 관계를 숨기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게 된 마당에 나의 등장으로 그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싫었다.

하지만 그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자존심이고, 여전히 버리지 못한 착한여자 컴플렉스였다.
이미 끝난 관계 때문에 나의 생활과 활동 반경을 축소할 필요는 없었고, 나의 문화 생활과 취향을 포기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누구를 위한 배려를 하려 한 것일까.  나는 그에게 배려받지 못했으면서 왜 끝까지 그를 배려하려고 했을까.

한 달동안 나를 치유하는 과정을 의식적으로 잘 거쳐왔다고 생각한다. 확신없는 관계를 끝맺을 때처럼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부딪힐 용기는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그래,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 한 것처럼 편하게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쿨하게 한 걸음' 내딛었다.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애쓰지 않고, 애써 반가움을 가장한 인사를 하지 않고, 서로 외면한 듯 그렇게 스쳐 지나가고, 그리고 그는 그의 일을 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갈 뿐.

성장은 다름이 아니다. 나의 선택, 나의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억지쓰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  나는 오늘 '쿨하게 한 걸음' 성장했다.

 2009.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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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1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21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칠드런, 루이 말 감독

09.01.07 씨네큐브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는 주로 나치의 만행 고발, 휴머니즘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는 영화들이었다. 물론  '굿바이 칠드런' 역시 '2008년 끝자락에 새겨질 영원한 감동!'이라는 광고 문구를 보며 그런 영화려니 했다. 그래서 씨네큐브에서 루이말 감독 특별전을 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를 놓칠 뻔 했다. 루이 말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며 상당히 파격적인 주제를 다루는 감독이라는 것, 또한 부조리한 사회 속에 살아가는 개인의 문제를 다루는 감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슈베르트의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를 붙잡기에 충분했다. 

  나치 점령기의 프랑스. 중산층 가정의 아들 줄리앙은 수도원 기숙학교에서 새로 들어온 보네를 만난다. 마르세이유에서 왔다지만 마르세이유 억양이 없는, 주말에도 찾아오는 가족이 없는, '보네'라는 성이 미심쩍은 이 아이에게 줄리앙은 호기심을 갖게 되고 그가 유태인이고 학교에 숨어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이스카웃 탐험을 하던 중 둘은 길을 잃고 이 사건 이후로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보네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진다. 그리고 어느 날, 게슈타포가 수업 중에 교실에 들어와 '장 키플스타인'을 찾는다.

  '굿바이 칠드런'에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이 흔히 보여주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어른과 대비되는 순수하고 이타적인 어린이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학교 식당에서 일하는 조셉을 통해 물건을 거래하기도 하고, 때론 그를 조롱하고 비웃기도 한다. 또  전쟁 시기의 영화가 보여주는 극적인 긴장감이나 드라마틱한 상황은 드러나지 않는다. 굳이 그런 긴장이 있다면 숲에서 길을 잃은 줄리앙과 장이 독일군을 만나자 장이 겁을 먹고 도망치는 장면, 게슈타포가 학교에 숨어 있는 유태인 학생들을 찾아내는 장면 등이 있을 뿐이다. 

  또, 영화를 보는 동안 참으로 의아했던 것은 영화 속 독일 병사들은 의외로 호의적이고 친절한 인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대부분 영화에서 독일군들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에 비하면 몹시 특이하다. 게다가 루이 말 감독은 프랑스 감독이 아닌가. 더군다나 그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영화 속에서 오히려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인물들은 '시민군'이라는 이름으로 나치에 협력하는 프랑스인들이었다. 식당에서 유태인에게 모욕을 주다 오히려 독일장교에게 쫓겨나는 시민군이 그랬고, 게슈타포에 학교에 숨어지내는 유태인이 있다는 것을 밀고하는 조셉이 그랬다. 오히려 그를 쫓아내는 '독일 장교'에게 줄리앙의 엄마는 호의적인 미소를 보내며, 숲에서 길을 잃은 줄리앙과 장을 데려 온 독일병사는 '독일 개'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도 대단히 예의바른 태도를 취한다. 
 

  그렇다면 루이 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는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 받는 대신 그들 땅에서 벌어지는 유태인에 대한 학살에 침묵함으로써 그것에 동조한 것과 같다는 감독의 비판 정신.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게슈타포가 '장 키플스타인'을 찾을 때 무의식 중에 장을 향해 돌아보던 줄리앙의 행동. 그들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변명하지만 누군가에게 가혹한 폭력이 되어 버리는 그 시대에 대한 반성. 아니,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르고 한 행동이기 때문에 그것이 더 큰 죄악이라는 감독의 반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듯 하다. 그 치욕과 반성을 드러냄으로써 루이 말 감독은 그 시대에 살아남은 죄의식을 씻고 싶었던 것일까.

  그 시대 양심적 지식인에 해당되는 신부님의 강론은 루이 말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같다. '부자가 잔치를 할 때 가난한 자는 분노한다.'는 강론. 그리고 그 강론에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서서 나가버리는 학부모의 모습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지배층,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지금 이 시대  '사회주의'라는 가면을 쓴 우파 부르주아 정권에 의해 점점 우경화 되고 신자유주의화 되어 가는 오늘날 프랑스 사회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 루이 말 감독의 다른 영화 찾아보기 
   68 혁명 배경 <밀루의 어떤 5월>, 부조리한 사회와 인간성 고찰 <라콤 루시앙>

 -  왜 한국판 제목이 <굿바이 칠드런>일까.
    영화관에서 알게 된 원작은 <Au Revoir Les Enfants> 
    불어를 굳이 우리말도 아니고 영어로 2중으로 변역하는 이유가 뭐냐.. 그래도 그나마 배운 불어로 읽을 수 있는 게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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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롭다. 그 외로움의 끝에 또다른 외로움을 만났다. 그리고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영화를 두 번 봤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다시 본 것은 아니지만, 두 번째 느낌은 사뭇 달랐다.
처음은 혼자 봤고, 두 번째는 누군가와 함께 보았지. 함께 봤지만 나도 사무치게 외로웠다. 오스칼처럼 이엘리처럼..

 영화 속 이엘리는 약하고 외로운 오스칼의 유일한 친구이면서 오스칼이 욕망하는 강인한 자아다. 동전의 양면 이론처럼 괴롭힘을 당하는 나약한 오스칼의 내면에는 엄청난 폭력성이 잠재되어 있다. 오스칼은 어딘지 모르게 강인함이 느껴지는 이엘리에게 그런 자신의 욕구를 투사하며 점점 가까워진다. 즉, 이엘리는 오스칼의 외로움을 채워주면서 오스칼의 억눌린 욕망을 투영하는 또다른 자아이기도 한 셈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엘리가 뱀파이어라는 느낌보다는 연약한 소녀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뱀파이어라는 것만 제외하면 그녀의 행색이나 생활은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된 소녀에 가깝다. 그녀의 집, 그녀의 옷차림, 참을 수 없는 굶주림은 기초생활수급자의 모습과 겹쳐지게 한다. 외롭고 추워 보였다.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엘리를 돌봐주던 남자의 죽음이었다. 남자는 어린 뱀파이어인 이엘리를 대신해 피를 구해준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이엘리가 직접 살인을 저지른 후 시체를 수습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하지만 너무나 어설프다. 그리고 그 역시 외로워보였다. 내가 주목한 것은 그와 이엘리의 관계였다. 그가 피를 구해오지 못하자 이엘리는 그에게 화를 낸다. 아버지 나이 뻘로 보이지만 그 둘의 관계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라고 하기엔 미심쩍다. 화를 내는 이엘리를 대하는 남자의 눈빛은 아버지로서 보내는 안쓰러움이나 안타까움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사랑이 식어버린 연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애절한 눈빛이었다. 그가 뱉은 말은 "미안하구나."였지만 그건 번역일 뿐 아마 실제 의미는 달랐으리라.

이엘리를 보호하기 위해 연쇄살인범으로 붙잡히면서 얼굴에 염산을 끼얹은 그는 끝까지 이엘리를 위해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내어 준다. 이엘리가 그의 병실 창문을 두드릴 때 그는 창문을 열고 목을 내민다. 마지막 그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엘리의 텅 빈 눈빛. 그는 그렇게 될 것은 알고 있었을까. 그는 마지막까지 행복했을까.   

혼자 된 이엘리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은 오스칼이다. 그녀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알고 다소 혼란스럽긴 했지만 그는 곧 이엘리에게 돌아온다. 그녀에게도 그에게도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존재가 그들 뿐이라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으니까. 외로움과 절실함은 서로 통한다. 오스칼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가하는 처참한 복수 역시 실제 이엘리의 행위일 수도 있고, 오스칼의 억눌린 폭력성이 폭발한 것일 수도 있다. 환상일 수도 있고 실제일 수도 있다. 누가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둘이 간절히 원하던 것을 현실로 만든 첫 번째 단계라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오스칼은 기차를 타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큰 트렁크를 긁어 모스 부호를 보낸다. 그리고 트렁크 안에서 그에 화답하는 모스 부호가 돌아온다. 그들이 벽을 두고 신호를 보냈던 것처럼..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마지막 오스칼의 미소가 너무나 슬프게 느껴졌다. 잊혀지지 않았던 남자의 죽음이 오스칼과 겹쳐 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남자 역시 오스칼처럼 외롭고 움추린 아이였겠지. 짧은 장면이었지만 그가 레스토랑에서 말을 거는 이웃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것은 이엘리를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감춘 것일 수도 있지만 이미 익숙해진 외로움과 단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엘리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애초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레스토랑 따위는 오지 않았을테니.

나에겐 이엘리 뿐이고, 이엘리에겐 나뿐이라는 오스칼의 현재의 행복은 계속될까. 오스칼의 존재가 이엘리의 생존을 유지시키는 수단이 되고, 그도 늙은 남자처럼 어설퍼지면 그 때도 이엘리는 그를 처음처럼 사랑할까. 그래서일까. 나는 그 소년의 긴 여행이 슬픔의 서막인 듯 해서 안타까웠다.

하지만 두 번째 봤을 때는 '죽은 남자도, 오스칼도 행복하겠구나'라고 인정했다. 그들이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나의 관점일 뿐이었다. 어쩌면 늙은 남자 역시 마지막을 생각해 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엘리에게 기꺼이 그를 주었다. 오스칼 역시 기꺼이 그를 이엘리에게 줄 것이다. 이엘리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녀 역시 그녀를 포기한 순간이 있었으니까. 오스칼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사탕을 먹는다던가, 초대 받지 않고 오스칼의 집에 들어와 온 몸에서 피를 쏟는 것은 연인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는 사람의 모습과 같다.

그래,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 철저하게 고립되고 타인에게서는 배제되겠지만 그들 안에서는 행복할 것이다. 다만 변화를 인정하면 된다.

모든 것은 변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다만 오스칼과 늙은 남자가 믿은 건 그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이엘리라는 존재 자체의 불변성과 영원성일 뿐이다. 관계의 불변성과 영원성을 믿은 건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그들은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날 아이러니하게도 두 번째 렛미인을 본 그와 나의 관계도 정리가 되었다. 오스칼과 이엘리가 설렘 가득한 시작을 할 때 나는 그와의 불분명한 관계의 매듭을 지었다. 이엘리가 오스칼이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 대한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다. 모든 것은 변한다. 관계가 변하듯 마음도 변한다. 하지만 변하는 마음을 떠나서 과연 그에게 진정성이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여전히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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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것들이 많은 것도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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