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칠드런, 루이 말 감독

09.01.07 씨네큐브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는 주로 나치의 만행 고발, 휴머니즘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는 영화들이었다. 물론  '굿바이 칠드런' 역시 '2008년 끝자락에 새겨질 영원한 감동!'이라는 광고 문구를 보며 그런 영화려니 했다. 그래서 씨네큐브에서 루이말 감독 특별전을 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를 놓칠 뻔 했다. 루이 말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며 상당히 파격적인 주제를 다루는 감독이라는 것, 또한 부조리한 사회 속에 살아가는 개인의 문제를 다루는 감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슈베르트의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를 붙잡기에 충분했다. 

  나치 점령기의 프랑스. 중산층 가정의 아들 줄리앙은 수도원 기숙학교에서 새로 들어온 보네를 만난다. 마르세이유에서 왔다지만 마르세이유 억양이 없는, 주말에도 찾아오는 가족이 없는, '보네'라는 성이 미심쩍은 이 아이에게 줄리앙은 호기심을 갖게 되고 그가 유태인이고 학교에 숨어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이스카웃 탐험을 하던 중 둘은 길을 잃고 이 사건 이후로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보네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진다. 그리고 어느 날, 게슈타포가 수업 중에 교실에 들어와 '장 키플스타인'을 찾는다.

  '굿바이 칠드런'에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이 흔히 보여주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어른과 대비되는 순수하고 이타적인 어린이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학교 식당에서 일하는 조셉을 통해 물건을 거래하기도 하고, 때론 그를 조롱하고 비웃기도 한다. 또  전쟁 시기의 영화가 보여주는 극적인 긴장감이나 드라마틱한 상황은 드러나지 않는다. 굳이 그런 긴장이 있다면 숲에서 길을 잃은 줄리앙과 장이 독일군을 만나자 장이 겁을 먹고 도망치는 장면, 게슈타포가 학교에 숨어 있는 유태인 학생들을 찾아내는 장면 등이 있을 뿐이다. 

  또, 영화를 보는 동안 참으로 의아했던 것은 영화 속 독일 병사들은 의외로 호의적이고 친절한 인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대부분 영화에서 독일군들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에 비하면 몹시 특이하다. 게다가 루이 말 감독은 프랑스 감독이 아닌가. 더군다나 그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영화 속에서 오히려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인물들은 '시민군'이라는 이름으로 나치에 협력하는 프랑스인들이었다. 식당에서 유태인에게 모욕을 주다 오히려 독일장교에게 쫓겨나는 시민군이 그랬고, 게슈타포에 학교에 숨어지내는 유태인이 있다는 것을 밀고하는 조셉이 그랬다. 오히려 그를 쫓아내는 '독일 장교'에게 줄리앙의 엄마는 호의적인 미소를 보내며, 숲에서 길을 잃은 줄리앙과 장을 데려 온 독일병사는 '독일 개'라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도 대단히 예의바른 태도를 취한다. 
 

  그렇다면 루이 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는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 받는 대신 그들 땅에서 벌어지는 유태인에 대한 학살에 침묵함으로써 그것에 동조한 것과 같다는 감독의 비판 정신.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게슈타포가 '장 키플스타인'을 찾을 때 무의식 중에 장을 향해 돌아보던 줄리앙의 행동. 그들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변명하지만 누군가에게 가혹한 폭력이 되어 버리는 그 시대에 대한 반성. 아니,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르고 한 행동이기 때문에 그것이 더 큰 죄악이라는 감독의 반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듯 하다. 그 치욕과 반성을 드러냄으로써 루이 말 감독은 그 시대에 살아남은 죄의식을 씻고 싶었던 것일까.

  그 시대 양심적 지식인에 해당되는 신부님의 강론은 루이 말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같다. '부자가 잔치를 할 때 가난한 자는 분노한다.'는 강론. 그리고 그 강론에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서서 나가버리는 학부모의 모습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지배층,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지금 이 시대  '사회주의'라는 가면을 쓴 우파 부르주아 정권에 의해 점점 우경화 되고 신자유주의화 되어 가는 오늘날 프랑스 사회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 루이 말 감독의 다른 영화 찾아보기 
   68 혁명 배경 <밀루의 어떤 5월>, 부조리한 사회와 인간성 고찰 <라콤 루시앙>

 -  왜 한국판 제목이 <굿바이 칠드런>일까.
    영화관에서 알게 된 원작은 <Au Revoir Les Enfants> 
    불어를 굳이 우리말도 아니고 영어로 2중으로 변역하는 이유가 뭐냐.. 그래도 그나마 배운 불어로 읽을 수 있는 게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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