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도감 - 캠핑과 야외생활의 모든 것 체험 도감 시리즈 2
사토우치 아이 지음, 김창원 옮김, 마츠오카 다츠히데 그림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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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영화속의 모험을 보면 나도 꼭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만으로 끝낼 수밖에 없는 상상이었다. 부모님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엔 승인이 나지 않아 불가능했고 내가 내 스스로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그것보다 신나고 재미있는 것들에 눈이 팔렸다.

자연 속에 나를 맡기고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움을 경험하는 일들은 안락하고 편안한 숙소에 누워 위성티비채널을 돌리며 와인을 마시는 것에 밀려 생각하기조차 귀찮은 일이 되어 버렸다.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족속들이 늘고 있다. 우리가 봐왔던 미국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야영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연해주는, 그래서 마치 내가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듯 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는 모두 장비의 수입과 개발의 덕택이다. 불을 피워서 달아매고 그 위에 딱 맞게 얹어지는 주전자나 냄비 등은 최소한의 행동으로 효율적인 야외조리를 가능하게 하고 100만원을 넘는 텐트는 마치 껍질이 얇은 호텔을 옮긴 느낌이다. 알맞게 잘라진 장작은 승용차에 넣어도 무리가 없고 잘 말라서 화력도 좋다. 자동차의 배터리와 연결해서 조명도 켜고 전자기기들을 연결에 유흥에 이용할 수도 있다.


유행에 맞지 않는 군인들이 훈련이나 야전에 사용할 만한 지식을 담은 책은 별로 실용적이지는 못하다. <모험도감>은 꿈을 키워주는 놀이터다. 모험을 꿈꾸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캠핑과 야외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먹고, 자고, 걷고, 만들고, 위험에 대처하기로 나뉜 챕터별로 발생 가능한 상황을 예견하고 이에 대한 지침을 내려준다. 책을 주의 깊게 읽은 이들이라면 야영지식이 전무한 이들이 당황스러워 할 일들을 차분하게 이끌 수 있는 배경지식은 갖추는 셈이다.


물론 실전(?)은 많이 다를 것이다. 그야 경험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적어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들에 대한 지식을 익힘으로서 ‘진짜 야영’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중요한 것 아닐까.

책을 읽고 나니 훌쩍 떠나 흙 위에 몸을 눕혀 별을 보며 잠이 들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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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 22년간의 도보여행, 17년간의 침묵여행
존 프란시스 지음, 안진이 옮김 / 살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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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얼마나 걷지? 수목원에서 매일 숲길을 돌아다니는 나의 경우도 만보계를 차고 확인해 보면 만보가 되지 않는 날이 많다. 사무를 위해 사무실에 박혀있는 날이면 오백보도 걷지 않게 된다.


걷는 것은 이제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특히 직장에 다니거나 개인사업을 하는 이는 물론이고 나이가 있는 모든 사람들은 대부분의 장거리를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걸어서 십리 길을 걸어 학교를 가거나 장에 가던 일은 설화처럼 전해져 오고 하루 삼십분을 걷는 이들도 드물어 특별히 운동을 하면서 제자리 뛰기를 하거나 등산을 하는 일이 아니라면 걷는 수고를 자처할 사람은 없다.


걷는 일은 수행이다. 차량이 움직이는 속도의 이동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느리게 걸을때 얻을 수 있는 온갖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길가에 풀들과 나무들, 그리고 지저귀는 새들과 우연히 마주치는 야생동물들. 그리고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와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등을 놓치고 사는 대신 좀 더 빠르게 이동해서 적은 시간에 많은 의사결정과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이다.


책의 저자 존 프란시스는 걷는 것으로 ‘지구 지키기’를 기원한다. 자신이 걷는 것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지 그리고 주변에 파급되는 효과에 대해 본인도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가 선택해서 걷는 일이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걷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를 행동에 옮겼다. 먹고 사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학교에 다니거나 강연을 다닐 때에도 걸어서 가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 일중에 말하기는 가장 힘든 것임에 분명하다. 의사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대한 답답함은 둘째로 하고 상대방이 기대하는 대답을 듣지 못할 때의 우려가 고스란히 말을 하지 않는 나에게 억압과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묵언수행이라는 종교적 실천도 있지만 산속 고요한 절에서 행하는 것과 일상생활 속에서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 중에 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듯하다.


존 프란시스는 성자다. 침묵한 채 생활하거나 하루에 40킬로를 꼬박 며칠을 걷는 것은 수행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생활을 20여년 지속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보기 드문 행동은 주변의 방해와 오해를 낳았다. 특히 부모님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의 고충은 더욱 컸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과 친척들이 응원했고 박사학위에 기관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서야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의 자기자신과의 싸움.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좀 더 나아지고 깨끗해지고 살만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나는 행동한다. 일회용 컵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배설물을 퇴비로 활용하며 인쇄가 필요할 때엔 한 장에 4개 면을 인쇄해서 활용한다. 이러한 행위는 나도 신경을 써야할 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만든다. 결국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에 따라 주변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나는 부끄럽다. 환경과 지구를 생각하면서 하루에 10여 리터의 기름을 태우고 있다. 자동차로 6리터, 난방기름을 때며 나머지를 태워 소비한다. 게다가 줄일 방법도 찾지 못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그와 걷고 싶은 마음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차를 버리고 정기적으로 출퇴근 해야 하는 직장근처에 살거나 다니지 않게 될 것이다. 혹은 자전거로 다니는 방법도 있다. 고갯길이고 험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못할 일 또한 아니다. 난방에 대한 방법도 고려하여 나무를 때거나 집의 열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그가 변화시킨 것은 그의 운동에 동참하는 미국의 일부 시민들과 이 책을 읽은 세계의 독자들뿐만이 아니다. 그로 인해 변화된 이들에게 영감을 받고 영향을 받는 것은 나로 시작해서 나의 가족, 친지와 이웃들이 환경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끔 만든다. 비록 다 같이 행동하지 못하지만 ‘생각하기’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행동하는 이들을 후원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별 지구를 대대손손 아름답게 전해주는 일이 될 것이다.




   
 

책은 한 걸음씩 세상을 바꾸는 방법에 관한이야기다.

1971년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일어난 기름 유출사고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을 바꾸었다. 존 프란시스는 방제작업을 돕는 것을 만족하지 않고 위기에 처한 지구를 건강하게 만들 개인적 행동에 나섰다.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독특한 고행을 자처한 것인데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 일이었다.

기름으로 운행하는 모든 운송수단을 포기하고 어딜 가든 걸어가는 것. 그리고 몇 달 뒤엔 말하기를 끊는 수행을 시작했다. 22년 동안 걸어 다니며 17년간 말을 하지 않은 그는 걷는 여행 도중에 대학공부를 마치고,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말없이’ 취득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유엔환경계획의 세계 풀뿌리 공동체를 담당하는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환경분야의 권위있는 학자이자 교육자, 지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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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붕가붕가레코드 지음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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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개발이 지구의 위기를 낳고 탄소의 배출이 산소비율을 줄여서 대기권을 오염시켜 지구 온난화가 오늘날의 기후변화를 일으켜 더 이상 지구는 ‘살만한 곳’이 안 될지 모른다는 내용은 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인식하고 있다. 이에 ‘지속가능‘이란 단어가 오늘의 화두다.


지속가능한 개발, 지속가능한 건축, 지속가능한 농업, 지속가능한 연애 등 가져다가 붙이기만 하면 뭔가 있어보이게 하는 이 단어의 정체는 신자유주의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부의 편중현상이 심해지면서 자원을 소모해서 권력을 유지하는 일부 가진 자들에게 은근한 시비의 의미도 가진다. 동시에 가지지 못한 자들이 그들의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개혁과 발전을 이루어보고자 하는 소망을 담는 단어이기도 하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은 무엇인가. 딴따라질은 음악, 공연을 뜻하는 말 일게고 고래로 음악이 없었던 적이 있던가. 생활과 음악의 융화가 오늘날 음악을 존재하게 했던 것 아닌가. 굳이 지속가능함을 제목으로 들이밀었던 이유는 무얼까. 험난한 음반시장에서 살아남기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면면을 시시덕거리며 적어 놓은 책을 통해서 그들의 생각과 과거, 가까운 미래를 가늠할 수 있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본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 쉬기가 쉽질 않다

수만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싸구려커피>의 가사다. 얼핏 보더라도 요즘 ‘대세’인 유행가들의 흐름과는 많이 벗어나있는 것이 사실이다. 삼류인생의 단면을 묘사하듯 펼쳐놓은 가사, 멜로디를 들어보면 이런 느낌은 더하다. 빠른 비트와 귀를 자극하는 음향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댄스풍의 가요계를 지구라고 하면 마치 외계에서 들려오는 듯 한 느리고 차분하며 단순한 음향으로 가슴을 울리는 사운드가 붕가붕가 레코드에 소속된 장기하의 음악이다.


특이한 옷매무새와 코믹한 코러스. 그리고 처음 보는듯한 군무로 이루어진 노래중반부에 댄스는 주류음악에 젖은 우리로서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퍼포먼스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인디음악계의 열악함이야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면 늘 들어왔던 이야기고 이런 환경 속에서 속칭 ‘떠서’ 공중파방송과 라디오에 얼굴을 넓혀가는 그들이야 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은 오늘의 스타, 장기하를 포함한 ‘동아리’, 붕가붕가 레코드의 비전이자 모토이다.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음악과 그 작업을 하는 모임. 대부분이 돈은 다른곳에서 벌어서 취미처럼, 아니 본업보다 더 열성으로 작업하는 이들이 소속된 곳이 ‘붕가붕가레코드’다.


음반을 내려면 돈이 드는 게 상식이다. 유명음반기획사야 억을 들여도 팔리는 음반을 내기가 힘든 것이 당연한 일이고 항상 투자금 회수에 깊게 생각하는 그들이 위험부담이 많은 신인들에게 선뜻 투자할리도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 땅의 수많은 헝그리 음악가들은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붕가붕가레코드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들의 시스템, ‘수공업 소형 음반’을 소개한 내용 중 한 꼭지. 갑자기 떠버린 장기하의 음반을 구매하려고 벌 떼처럼(그들 입장에서는) 몰려들던 때에 장기하와 얼굴들은 공연준비보다 음반을 복제하느라 더 고생했다고 한다. 7장씩 찍어내는(뉴스에나 등장하던 불법복제의 현장을 떠올리면 된다)기계를 구입하여 일일이 ‘레코딩’을 손수 작업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일일이 찍어 내고 주문한 종이 케이스에 넣고 스티커를 붙여서 핸디형비닐포장기로 포장해 놓고 핸드 드라이어로 열을 쐬어 케이스에 밀착시키는 작업까지 그야말로 ‘수공업’을 통한 음반이 그들이다.


회사이름에서 드러나듯이 뭔가 실소를 유발하게 하고 진중하지 못하다는 느낌의 회사는 구성원들 또한 완전히 회사소속이 아니라 대부분이 본업을 따로 가지고 주말에 모여서 회의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의 독특한 구조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나왔으니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말과는 별개로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다’라는 신조로 끊임없이 음반발매와 공연을 시도(?)해 왔던 그들의 즐거운 노력의 결실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지금은 장기하와 얼굴들에 많이 기대고 있지만 적잖은 기대주들을 키우고 있고 레이블의 성격을 확실하게 반영하는 밴드들의 포진은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이 될 거다.


대표 곰사장을 비롯해서 디자이너 김기조와 엔지니어 나잠 수, 매니저 강명진, 커뮤니케이터 양준혁 으로 구성된 붕가붕가레코드는 아직 ‘미완성 합체 중’이다. 그들을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용기 내어 발을 딛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진창에 빠지기도 하고 절벽에 막혀 주저하기도 했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이 표상이 되었다면 그 뒤에 배경인 레이블은, 그가 가진 밴드들에 호기심을 가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치즈 스테레오와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불나방스타 쏘세지 클럽, 생각의 여름, 아침, 아마도 이자람밴드 등이 수공업소형음반을 보유하고 있고 반응이 좋으면 공장제음반으로 시장에 풀리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


누가 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한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들어오면 오는 대로 나가면 나가는 대로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이는 한 레코드사의 이야기가 그들의 음악만큼 재미있고 솜씨 있게 버무려져 있다. 시종일관 ‘재미’를 놓치지 않는 것도 책의 특성이고 보면 전체적으로 붕가붕가 레코드라는 것은 ‘붕가붕가’가 뜻하는 쾌락이거나 고통(유머사전에서 붕가붕가의 의미참조)의 의미를 함축한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용기가 있는 이들도 아니고 그저 평범하고 소심한 음악을 좋아하는 인간 군상들의 모임. 서울대학교 노래패 ‘메아리’를 주축으로 운영하던 동아리가 이제 좀 ‘제대로 된 박자’의 음악을 하면서 현실음반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내용으로 정리하면 될까. 비주류로서 인생을 사는 나로서는 대형기획사와 레이블 틈에서 그들의 도전에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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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빗 - 소비의 95%를 지배하는 행동 심리
닐 마틴 지음, 홍성태, 박지혜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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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빗/ 닐마틴지음, 홍성태·박지혜옮김/ 위즈덤하우스/ 15000원


습관.

매일 아침 일어나 세수를 하고, 화장실로 가서 배설을 하며, 그리고 아침을 먹는다. 짐을 챙겨서 회사로 향하는 차에서 라디오를 켜고 회사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길들을 거의 의식없이 핸들과 엑셀을 조작하며 운행한다. 회사에서 컴퓨터를 켜고 난로에 불을 붙이고 오늘 할 일들을 점검하고 오전에 할 일을 마치지 못하면 오후로 넘기며 점심을 먹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커피를 연하게 타서 한잔 마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 주파수를 바꾸며 어두운 길을 밝히기 위해 헤드라이트를 켜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신문을 읽으며 저녁을 먹는다. 뉴스나 드라마를 시청하고 이불을 깔기 전에 가볍게 청소기를 돌리고 누워서 잠이 든다.


몇줄되지 않는 분량으로 하루를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날들이 일년이면 8개월정도를 차지하며 나머지 쉬는 날도 여행하거나 나들이를 가지 않는한 다른유형으로 굳어진 패턴의 일상이 차지하게 된다.


책은 소비자의 소비행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점은 대중의 심리와 그들의 습관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놀랍지도 않다. 요즈음 사람들은 습관처럼 엠피쓰리를 귀에 꼽고 다니고 핸드폰을 통해서 방송을 시청하며 광고에 많이 등장하는 음료를 손에 들고 다니며, 접속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정해져있어서 순서와 할애하는 시간 등이 거의 정형화되어 있다. 물론 예외도 있을 수 있으나 95%의 소비자들은 이러한 일상적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이 선택하는 상품의 대부분도 습관에 의해 구매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소 복잡하지만 두뇌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이나 그 기능들을 소개하고 현재 잘 나가는 상품들이 어떻게 소비자들의 일상에 파고 들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그 분석이 무릎을 치게 할만큼 날카롭지는 않더라도 회사를 운영하는 임원들은 여러 변수와 요소들을 습득하고 있는 것이 나쁘지 않으므로 투자, 경영전략을 세울때 소비자의 행동심리를 연구함에 있어 ‘해빗’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는 있겠다.


오늘 행동하는 ‘나’의 곁에는 수많은 상품들이 함께 하고 있으며 이들의 대부분은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구매한다는 점은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성이 아닌 영역으로 항시 소비한다는 점은 매우 꺼림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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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오랜만에 서울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부모님은 광주에 계시고 장모님은 서울에 계셔서 광주와 서울을 오가게 된다. 서울에 가면 가족이 몸이 좋지 않아져서 오래 머무는 일은 없다. 시간을 쪼개서 친구를 만나는 일은 즐거우나 요즘은 다들 일과 갓 낳은 아기를 보느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멀리서 걸어오는 친구는 멋진 양복에 넥타이가 어울렸고 머리를 정성껏 매만져서 다듬어진 조각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모 투자증권사에 다니고 있다. 은행을 거쳐서 평균1.5년에 한 번씩 회사를 옮기며 경력을 관리(?)하고 그때 마다 조금씩 이력이 더해져서 직장생활 10년차, 차장이라는 직함과 그에 걸맞은 연봉을 받고 있다. 직장경력이 비슷한 그의 아내도 외국계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 여자아이 하나를 두고 있고 그의 부모님과 근방에 살고 있어서 오전에 유아원에 데려다주면 할머니가 데리고 왔다가 퇴근 무렵에 집으로 데리고 온다고 했다.

강남의 4호선 전철역 근방의 32평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고 2대의 자가용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파트 융자금을 갚고 있으며 분기별 휴가로 가족이 해외여행을 즐기는 여유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나를 만나자마자 던진다.

   
  “재미있냐”  
   

 

내가 대답대신 웃음으로 때우자 인상을 쓰며 오늘 자신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반가움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무얼 먹을지 서로에게 한참을 미루다가 근처 일식집으로 들어갔다.

증권관련 상담업무를 1년 정도하고 있는데 업무 스트레스가 많고 남의 돈을 관리해준다는 것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지겹다’라는 말과 함께 어떻게 이런 업종에서 10년을 넘게 회사생활 할 수 있는지 그런 선배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동의했다. ‘익숙함’이 가져오는 기계적인 행동과 말이 아마도 버티게 하는 힘이 아니겠냐며 덧붙였다.

그가 나에게 다시 물었다. 재미있냐고. 뭐가 재미있냐는 말인가. 사는 게? 재미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 활력이 넘치고 샘솟는 지적 육체적 에너지가 쓰이는 시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하루.

그냥 그렇지. 너는 어때 라고 되물으려다가 문득 떠올린 그의 ‘지겹다’를 떠올리고 입을 여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나는 가끔 그가 부럽다. 또래에게 인정받는 위치에서 그의 부모님이 자랑스럽게 내 놓을 만한 직장생활과 가끔의 여행의 여유를 실현하며 사는 그를 그의 블로그를 통해서 드러난 이미지와 글들을 보면서 내 자신이 위축되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살길 바라는가라는 스스로의 물음에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 젓는다. 뭐냐 그럼.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정치인들을 화제로 올리다가 자식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역시나 모든 도시인들이 시골에서 사는 젊은 가족에게 묻고 싶어 할 만한 질문이 이어졌다. 단도직입적으로 한 달에 얼마나 벌어?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들어? 등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모르는 사람이 물었다면 퉁이라도 줄만한 말이지만 친구에게는 별로 숨기거나 자존심상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상세히 이야기해 준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질문은 좀 가슴 아프다.

   
  “자식 교육은 어떻게 하려고”  
   

 

직장 다닐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직장을 다니려면 서울에서 계속 살 일 이었다는 대답을 했고, 이어지는 나의 시골 살이 철학을 듣고 난 이후에야 이어진 질문. 사실 이런 질문엔 자신이 있었다. 많이 듣기도 했고 많이 생각해본 주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가 전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지 못한 시골 살이는 힘든가. 그렇지 않다. 자식을 키우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적 없다. 큰 병 없이 그냥 튼튼하게 잘 자라주는 아이에게 항상 고마울 뿐이었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남들이 걱정하는 만큼 어둡지 않다. 마치 맞닿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 같은 그 인식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자식을 제대로 뒷바라지 하지 못하는 부모만큼 무능력한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기본적인 소양과 지적능력향상을 위한 정보제공을 위한 교육에는 틀림없이 ‘비용’이 들 텐데 이렇게 벌어서야 어디 그런 돈을 들일 수 있겠냐는 말이다. 노래방도우미를 해서 자식학원비를 버는 엄마와 자식 학원비를 줄여서 술 마시고 노래방 도우미를 부르는 아빠의 이미지가 겹쳐서 머릿속을 어지럽게 뛰어다닌다.


현재 자신의 행복에 가치를 둔 삶이 시골을 선택하게 하였고 이를 동의한 처와 함께 살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 건 부부의 합의된 교육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세 살이 된 아이는 매일 방안을 구르고 뛰어다니가다(이런 버릇의 아들이 도시의 아파트에 사는 할아버지할머니댁에 가면 갑자기 뛰지 말라는 부모 때문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성이 안차면 밖으로 나가 개와 뛰어다니고 풀을 뽑아서 맛을 보거나 벌레를 잡아서 관찰하는 놀이가 일상화 되어 있다. 아이는 도시아이들이 모르고 자랄 흙을 딛고 사는 인간과 나무와 짐승들을 체험하는 생명교육의 현장에 있고 우리 산과 푸른 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동물을 먹고 자라게 해주는 식물의 중요성과 품종개량과 집약재배를 통해 효율을 높여 살림의 기본이 되는 농업의 의미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몸을 움직여 집고, 파고, 들고, 업고 할 수 있게 될 나이면 땀 흘리며 일을 하여 예부터 내려온 원조 ‘생산’의 의미(무형의 가치를 속여 파는 가짜 생산이 아니다)를 깨닫게 된다.

학원을 통해서 의자위에서 칠판을 바라보며 얻는 지식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창조적 사고를 통하는 놀이를 통해서 꿈을 꾸게 될 것이며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 교육은 그것에 도움을 주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인고의 노력 끝에 얻어지는 결과물들을 쌓는 성취가 되었든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든 자신이 선택한 삶에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제도권교육이 죽었다고 하면서 자식을 그 속에서 방치하는 것은 '아동학대'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선택권을 가진 어린 시기엔 아이에게 원하지 않는 틀에 속하게 놔두는 것도 죄가 된다는 생각이다. 연일 오르는 대학등록금을 생각하면 대학을 나오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물론 대학을 가지 않는다고 할 때는 입시학원이 되어버린 중고등학교 과정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과거의 나는 꿈이 없었다.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소년기의 목표였다면 대학의 전공을 통해서 취업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대학시절의 인생목표였다. 졸업 즈음의 아이엠에프경제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어느 설계사무소에서 도면을 그리는 일을 하고 있으며 마감에 쫒기고 상시야근에 피곤에 절어 주변사람들을 매일 원망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꿈을 꾸고 싶었다. 그리고 내 자식에게는 어려서부터 그런 기회를 주게 된 것을 축복이라 생각한다. 좋은 대학 나와서 ‘사’자가 들어간 직업군에 들어가는 것이나 세계적인 대기업에 입사해서 경쟁하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는 될 수 없다. 세상에는 그것 말고도 수많은 가치 있는 일들이 있으며 그 가치를 스스로 깨닫기 위한 일이 ‘공부’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돈 많이 버는 것을 위한 일이라는 비상식의 흐름에서 벗어나고 싶다. 학교와 집, 학원을 오가며 다른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세계를 넓게 보지 못하는 내 삶을 자식에게 까지 물려받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비겁하게도 도시에서 바로 옆집과 친구들과 회사동료들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난 피난처를 택했다. 그곳은 내가 생각하고 내가 계획하고 내가 실행하는 일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한 달 100만원을 못 벌어도 내 몸을 놀리면 굶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의미에서 나온 말이지만 “쫀쫀하게 살지 마라. 굶어 죽지 않는다.”를 인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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