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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좀 제대로 알고 보자는 취지에서 썼던 글이 예상했던(?) 논란에 휩싸였다. 엄청난 방문자수(평소의 200배)에 놀라서 들여다보니 댓글 또한 엄청나더라. 그런데 정말 답답한 것은 제대로 글을 읽지도 않고 제목만 보고 엄청 씹어대는 매너 없는 ‘놈’들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댓글로 반박하기도 손가락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여전히 지금 일주일째 장기화중인 철도파업으로 누구보다 시민들이 겪고 있는 불편이 크다는 점, 해결을 위한 협상이나 교섭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 여론은 악화일로에 있어서 어쩌면 화난 시민들이 노조를 들어 엎을 수도 있겠다는 상황을 배경으로 덧붙여 추가하고 싶은 정보가 있다.


뭐, 제대로 알고 쓴 다기 보다 정보와 상식을 조합하여 머리를 짜내면 뭔가 지금상황의 배경과 진행이 보인다는 것인데 글을 쓰는 내가 원하는 결말은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 뻔 하게 보이니 매우 답답한 심정이다.


그리고 이런 글을 올리면 철도공사노조의 뭐나 되는 것처럼 알고 적대감을 가지는 ‘열혈댓글러’들이 있는데 본인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철도공사의 직원은 물론 계약직, 일용직으로 발을 담갔던 사람조차 없는 평범한 촌부임을 밝혀둔다. 철도공사 뿐 아니라 운송에 관련된 어떤 노조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고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은 노조조차 없는(그래서 그만 나오라면 찍소리 못하고 그만둬야 하는)곳의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


먼저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보 조합해 심정으로 표현해본다.


일단 파업을 했고, 전철은 사람으로 미어지는데 간격은 시간이 길고 기다리기 추워서 짜증난다. 불법파업이란다. 씨~벌. 누군 파업하기 싫어서 안하나 주변에 피해 주기 싫어서 참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교섭도 대화도 하지 않는단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편이다. 하루도 참기 힘든데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불편을 매일 힘들게 돈 벌러 다니고 공부하러 다니는 시민들이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정도껏 해야지 지들 돈 더 받고 해고자 복직 시켜서 철밥통을 고수하려고 이런 짓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연봉이 평균 6000이란다. 나는 언제 그런 연봉 받아보나. 게다가 해고 걱정도 없는 공무원들이. 근로조건이 열악하다니 그럼 나 같은 놈은 열악해서 죽겠네? 작작해라. 정말 열불난다.


자, 알바하느라 수고 하시는 형제자매님들.

동의 하는가? 뭐 추가할 사항도 있겠지만 대체로 이정도 라고 본다. 이럴진대 단체행동보다는 차근차근 실무자협상을 통해서 해결하던지 연봉삭감과 해고를 받아들이던지 해야 하는 것이 철도노조로서는 옳은 선택이 될 것이다.


정부 측의 입장을 보자.

이명박님의 어느 모임에서의 이야기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평생직장을 보장받은 공기업 노조가 파업을 하는 것은 국민들이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해서도 안 될 것”,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돼”라는 말까지 했다.


맞다. 대부분의 실업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은 손뼉을 마주치며 동감하는 내용이다. 안정에 지쳐서 복에 겨워하는 짓거리들이지. 더불어서 ‘해서, 그냥 그만두면 될 거 아냐. 그럼 그런 더러운 조건에도 꾿꾿이 일할 사람들 널렸거든’이라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다.

이 ‘어린’ 친구들에게 묻는다.

“네가 들어가서 그런 조건에서 일 열심히 하고 보람을 느껴서 자아실현을 위한 행복을 느낄 것이냐?” 라고,

너무 거창하다면 “네 친구 삼촌 밥그릇 뺏어서 니배 불리고 싶냐?”


“돈도 많이 받으면서 이런 거 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


많이 받는 기준이 뭔데? 허준영이 이야기를 해줄게.


금번 철도공사사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그는 2005년 참여정부 시절에도 언론에 크게 이름을 떨친 적이 있지. 한미 FTA반대 집회할 때 경찰청장이 바로 오늘의 허준영. 이때 과감한(?) 진압으로 2명의 농민사상자를 냈어. 청와대에서? 지금 같으면 힘을 실어 줬겠지. 더 열심히 하라면서, 큰일 할 사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면서. 그런데 그때는 청와대에서 그만두라는 압력을 넣었데. 물론 꿈쩍도 안했지. 이때 경찰독립이 어쩌구 하면서 목에 힘주고 다닐 때야. 물론 대외적으로 “정당한 공권력 행사보고 수장이 퇴진하면 공권력이 흔들린다.”고 했다지. 그런 그가 이번 파업 때는 꿈쩍도 않고 있다. ‘실무교섭 하면 되지 대표교섭이 왜 필요하냐'는 이유로. 지금이 제일 할 일 많은 때 아니야? 파업 놓고 뭐하고 다니는 거지 사장은? 7개월 된 이 분(뚝심의 준영씨)은 9500만원 연봉 받는 거 가지고 아무도 뭐라 안하는데 18년 동안 열차 손보고 표 끊고, 명절에 가족들도 못보고 일하고, 운전하고, 정비하고, 표검사하러 왔다 갔다 하고, 새벽이나 밤에 일 나가기도 하고 하는 일이 쉬운 건 아니지. 4500만원 받는다는데 어때? 정년퇴직 앞둔 사람들이나 돼야 6000~7000 받는단다. 많이 받지?


“그래도....불법파업은 안돼요.”


뭐가 불법인데. 합법파업은 어떻게 하는 거지? 일단 과정과 절차상에서 법절차는 어긴 적이 없어. 오히려 사측에서 파업을 조장한 면이 있지. 교섭 진행 중에 파업결정 이전에 단체협상을 해지해버렸다. 일방적으로. 4월에 15% 정원 축소하고 임금피크제, 연봉제 도입, 단체협약 개악 안을 내 놓고는 도망간 꼴이지. 그래놓고 파업하니까 불법이라고 외치고 다니면서 정작 아무것도 안하고 손 놓고 있는 꼴이지. 알바고용해서 게시판이나 토론장에 열심히 노조원들 까고 다니는 거 할지도 몰라. 말이 통하지 않는 악플러들이 판을 치는걸 보면.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지난 9월 임금 협상이 잘 안 되서 노조가 결렬 선언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허 사장이 '우리 마쳤으니 박수나 한 번 칩시다'고 하더라. 협상이 결렬됐는데 박수를 치자는 것이다.”-김기태 철도노조위원장

이거 수상하지 않아? 지금도 아무것도 안하는 거 보면 뭔가 사고 칠 준비를 해 놓고 함정에 빠뜨린 느낌, 냄새나는데. 경찰생활 해 봤으니 그런 거 잘 알지. 고압적인 태도로 노조를 대하는 거 하며, 자기 병력 있으면 진압도 진두지휘하고 신나 했을 텐데 말이지.


교섭 요구에는 전혀 반응도 없고 언론을 통해서 외려 '이번 기회에 노조 버릇을 고치겠다'고 얘기하고 있다는데 이게 상식적인 일이냐구.

결국 노조가 국민의 발을 볼모로 잡는 것이 아니라 철도공사가 국민의 발을 볼모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거지. 거기에 놀아나는 일부는 나중에 ‘아~ 내가 그때 잘못 줄을 섰구나.’할지 모를 일이야.

그리고 하나 더. 지금 공무원노조 이야기도 나오지. 마찬가지고 공기업 ‘선진화’의 기치아래 이명박님의 플랜에 밑에서 열심히 노래 부르는 거야. 그런데 ‘선진화’가 웃겨. 이거 여태 해서 별로 득도 보지 못하고 실패한 사례들을 들여서 하겠다는 거지.

공기업 민영화, 연봉제야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되어 왔던 거고. 임금피크제에 몸집 줄이기로 감원까지 들어가면 이거 공무원도 ‘철밥통’의 시대는 간거야. 그럼 뭐가 안 좋아 지느냐. 효율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경제이론이 가진 최대의 단점이 부각되면 돈 없는 서민들은 죽어나는 거지.

의료보험, 수돗물, 가스, 전기, 철도 다 민영화 되봐. 지금도 돈 많이 먹는 기업이라고 난리인데 당연히 요금이 오르겠지. (민영화 고속도로를 보면 알지. 그렇게 받아도 몇 십 년에 충당이 안 된다고 하지) 그럼 가장 기본적인 생활에 밀착되어 있는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거야. 그것도 단기간 안에.

이게 개혁이냐? 개악이지. 물론 있는 놈들은 훨씬 더 많은 부를 조물락거리겠지. 그리고 일시켜먹기도 훨씬 수월해지고(고분고분한 직원들. 잘릴까봐 파업도 못해요)

그런 무시무시한 목적을 가지고 나라를 움직이는 거야 이 윗대가리들은. 정말 무서워. 싸우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섭겠어. 저번에 쌍용차사람들 깨진 것 봐. 모르긴 해도 철도노조는 그나마 공기업이라 덜 깨지겠지. 그래도 길어지면 꼬투리 잡아서 무력진압 할껄? 여론에 힘입어서 구속 및 수감. 그리고 관련자들 다 내쫒고.


아, 내일도 아닌데 왜 이리 우울한 이야기냐구. 짜증난다. 이게다 모두 ‘알바’ 때문이다. 이글엔 알바들 댓글 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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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진안이라는 촌(村)으로 들어오게 된 이유는 ‘무엇’에 대한 거부감때문이었다. 회색 풍경의 답답함은 작은 것이고, 끝없는 경쟁에서 이기기가 싫고, 돈을 벌기위해서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나 내 물건을 과장해서 알리는 것도 극복하기 힘들었다. 거부감 해소를 위해 도시로부터 도망쳤다.




곧, 이곳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한 것이지만 밥 먹고 외부와 소통하고 옷 입고 집짓기 위해선 어떤 방법으로든 돈을 벌어야 한다. 산으로 그득한 이곳에서 농업은(채취, 사냥을 포함) 판로의 한정성 때문에 경쟁을 낳는다. 그 판에 끼어들어 토박이와 경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남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일을 해야만 한다. 좀 치사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잘난체하듯 ‘따라올 테면 따라와봐’ 인가.


뭔가 다르리라고 기대하고 왔던 지금이 결국 도시에서 삶의 지향점과 다르지 않다면 문제다. 중심이 흔들린다는 이야기다. 혼자면 상관없다. 스스로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한 책임만 지면된다. 가족의 가장이 되면 달라진다. 특히 아이가 있다는 것은 본인밖에 모르던 인간의 삶에 변화를 요구한다. 사는 곳과 생각하는 것은 달라도 지금 사회의 분위기로는 아이의 미래가 걱정스럽다는 점에서는 같다.


몇 년이 지나면 아이가 학교에 가야하는데 그게 제일 걱정이다. 공교육중에서도 가장 뒤처진 곳으로 자타(?)에 인정을 받고 있는 곳이 바로 시골의 초중등학교다. 학부모들은 학교와 소통하길 부담스러워한다. 선생들은 인사고과를 위해 한번 들러서 지나가는 곳 정도로 인지하고 지금 교육과정을 개혁할 의지가 없다. 당연히 학부모들은 학교를 신뢰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도시로 유학보낸다. 두셋만 남게 되고 선생도 학생도 힘이 나지 않는다.


학생없는 학교엔 지원도 되지 않아서 학교 운영은 더욱 힘들다. 게다가 등하교 거리는 너무 멀다. 매일 버스타고 삼십리거리를 통학해야 한다. 앞으로 잘못되어(인원이 더 줄면) 폐교와 통합으로 학교가 더 멀어질 수도 있다. 학원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이곳엔 없다. 다니려면 30킬로 길을 차로 왕복해야 한다. 지금 이곳의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기껏 방학 때 친척집에 보내서 그곳에서 ‘수학’하고 돌아오는 식이다. 그것도 여유 있는 집이나 가능한 일이다.


아이는 어리지만 고민이 갈등을 낳는다. 나 좋고 가족 좋자고 사는 촌에서 장점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자연과 더불어서 흙을 밟고 뛰어노는 아이. 다 좋다. 아토피 없고 스트레스 덜 받는 아이. 그래. 그런데 부모로서 나는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해 주어야 하지?


이곳에서 감히 경쟁도 되지 않는 도시의 문화와 교육시스템을 좆는다면 아이만 열패감에 잠기게 되는 것 아닐까. 집에서 기를까? 어차피 공교육은 죽었다고 하지 않는가. 처는 집에서 아이를 마냥 놀리는 것은 부모로서의 책임을 피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사회성을 잃게 할 가능성이 있고 부모밑에서 아이를 외롭게 만들 가능성도 크다는 판단이다. 그럼 방법은 별로 없다. 얼마 되지 않지만 동네의 또래 아이들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동네 안에 있는 폐교가 너무 아쉬웠다.


고민과 갈등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해답으로 향한 길은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얼마 전 직업 교육으로 숲해설가 소양교육과정에서 듣게 된 ‘숲유치원’이나를 흔들었다. 독일과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시작하여 미국과 일본으로 퍼진 취학 전 아동 교육시스템(좀 거창하게 말하면)의 하나이다.


한국은 초기단계이고 경기도, 인천, 강원도 일대 몇 곳에서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산림청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시의 아이들을 숲으로 데려와서 숲속에서 어울려 놀게 하는 것이다. 숲에서 아이를 놀리는 것. 독일과 스위스를 견학하고 돌아온 강사의 자료를 통해서 사진과 영상을 접했지만 그저 아이들을 모아서 ‘놀리는 것’외에 특별한 것을 볼 수 없었다.(물론 정교사와 보조교사가 옆에서 진행을 돕고 관찰한다.) 인터뷰하는 부모들은 모두 만족스러워 했고 아이들의 낙엽과 흙투성이가 된 옷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그곳 아이들은 자연과 어울려 놀면서 배운다. 나무를 오르고 내리면서 인간이 쓸 수 있는 근육과 균형감각을 배우고, 흙에서 뒹굴면서 흙에 사는 곤충과 나뭇잎, 풀들과 만난다. 쓰러진 나무줄기를 평균대삼아서 줄지어 걷는 모습이나 나무위에서 가지사이에 엉덩이를 끼고 앉아서 친구들을 향해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한국의 아이들이 불쌍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맞벌이 가족의 경우 놀이방에 보내는데 그곳에서도 자유롭게 노는 것이 아니라 언어, 수학, 외국어 교육을 받는 것이 일과에 있다. 4세부터 시작되는 선행학습은 6세가 되면 악기와 태권도, 스포츠로 확대되며 그 즈음엔 거의 어른과 거의 같은 시간의 일과를 소화해야 한다.(아동학대가 다른게 아니다) 결국 이런 흐름의 교육을 통해서 주어지는 데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이들이 미래를 이끌어가는 모습은 지금 우리를 이끄는 이들이 모인 곳(국회, 행정부, 대통령 등을 상상하면 된다)과 그리 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우리 미래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암울하기 짝이 없다.


얼마전 서울의 친구들과 모임에서 숲유치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서울에 사는, 영유아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은 관심을 보였다. 서울 근교라면 얼마든지 보낼 의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마을을 와 본적이 있던 한 친구는 주말을 이용한다면 지금 내가 사는 곳까지도 데려오겠다고 했다. 나는 올해 잘 궁리해서 모둠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내 자식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좀 서둘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숲유치원’은 자연과 인간은 떨어질 수 없다는 믿음이 기본이다. 영어, 수학을 미리 배우는 것 보다 놀이를 통해서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신체적, 정신적 수양을 하게 하려는 것이 우선한다. 오히려 공부를 시킨 아이들보다 학업성취도도 높다는 국내외 학계의 연구결과도 있다. 무엇보다도 애들은 놀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어른들의 간섭 없이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것이 아이를 가진 부모의 소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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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의견은 대체로 '분노'에 가깝다. 국민의 발을 볼모로 매년 주기적으로 파업 행사하는 노조를 분쇄해야 한다는 과격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안타깝다. 도대체 왜 지지받지 못하는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사실'을 오해하는 다수의 안티를 만들어 내는지가 말이다.


물론, 언론의 역할이 크다. 주로 사측과 신자유주의정책을 모시는 행정부의 논리와 각본대로 움직여주고 있다. '불법파업'이라는 단어로 그들의 파업이 당위성 없음을 선포하고 대통령은 뒤에서 '단호히 대처하라'는 주문으로 지원사격하는 형태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하며 철도노조에 원성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대략 '비난'은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되는데, 그들이 받는 봉급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인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 안정적인 직장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파업으로 그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집단인 점이 '서민'들로서는 가장 분노하게 하는 주제가 되겠다.


안타까운 점은 철도노조의 홍보력부족이다.(물론 그들이 그럴 능력이 있다면 했겠지만) 실재로 자신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는 나름 명백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성과성 연봉제, 정년연장없는 임금 피크제, 사측의 일방적인 단협해지, 구조조정 강행 등) 이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는점이다. 마치 무기도 없이 싸우는 전장의 병사들처럼, 그들은 힘든 싸움을 하다가 결국 지쳐서 무너질 위험에 처해 있다.


왜, 이렇게 무모한 싸움을 하는가. 적어도 이 파업이 가지는 의미는 자본을 쥐고 있는 일부세력에 '노동자'로서 휘둘리지 않겠다는, 그래서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받고 '사람답게' 일할 권리를 가져보겠다는 것인데 이러한 의미는 퇴색한 채 "평균연봉 3~4천씩 받는 것들이 파업씩이나 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라는 다소 동떨어진 주제의 공격을 받는 것은 매우 어색하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노조 투쟁사를 보면 분대단위의 돌격대의 싸움과 다름없다. 각 회사별 노조들의 싸움에서 어떠한 지원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산업별 노조가 구성되어 있는 일부의 싸움은 적어도 '홍보'만큼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기업노조들이 '투쟁'하는 방식을 보면 짠하기 짝이 없다.


인터넷 토론 사이트나 일부기사의 댓글들을 보면 정말 힘들고 어렵게 살지만 열심히 노력하는-그러면서도 자신의 불안정한 고용상태나 느닷없는 해고에 이렇다 할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사람들의 분노를 엿볼 수 있다. 왜 그들의 분노를 같은 '동지'가 받아야 하는가. 그들을 동지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매스컴과 우리가 받았던 교육의 시스템에서 길들여진 효과 덕분이다. 누군가를 끌어내려야 올라갈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게 만드는 것은 이 땅의 권력을 주무르는 분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자신들이 마음껏 '노동권'을 틀어쥐고 언제든 맘에 들지 않으면 해고하고 새롭게 채용해서 기력이 떨어지면 또 버리고 할 수 있다면 과거 태일이형이 외치던 평화시장 골목의 풍경이 되살아 날것이다. 12시간씩 일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작업환경은 열악하여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급여는 적어지고, 복리후생은 생략되는…….


왠지 대한민국은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다 강물을 거슬러 냇물로 올라가는 연어처럼 시대를 거슬러 70년대, 60년대의 찌질한 노동자들로 전락해버리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월급 받으면서 회사 다니는 행복함을 아직 누리지 못하는 미취업자들이여. 그대들 스스로를 자책하지 마라. 당신들이 능력이 없어서 취업을 하지 못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누구나가 다 안다. 개혁 정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건사업에 올인 하는 MB정권을 같이 규탄해야 할 것이 아닌가.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다만 먼저 취업했을 뿐인 선배들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는가. '더 적은 돈으로도 열심히 할 테니 뽑아 달라'는 글은 쓰지마라. 당신이야 그렇게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당신 때문에 적어진 급여로 고통 받을 수많은 가족들 보기 부끄럽지 않은가.


차라리, 선배들을 응원해서 더 좋은 근로환경의 모델을 구축하고 모자라거나 미진한 기업체들이 그 모델로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당신이 취업했을 때 잘릴 걱정 안하고 마음껏 아이 낳아 기를 수 있고 퇴직이후의 삶에 대한 준비도 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끼리 깎아먹는 짓을 하고 있으면 결국 웃는 자는 '허준영'씨 같은 이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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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오랜만에 서울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부모님은 광주에 계시고 장모님은 서울에 계셔서 광주와 서울을 오가게 된다. 서울에 가면 가족이 몸이 좋지 않아져서 오래 머무는 일은 없다. 시간을 쪼개서 친구를 만나는 일은 즐거우나 요즘은 다들 일과 갓 낳은 아기를 보느라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멀리서 걸어오는 친구는 멋진 양복에 넥타이가 어울렸고 머리를 정성껏 매만져서 다듬어진 조각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모 투자증권사에 다니고 있다. 은행을 거쳐서 평균1.5년에 한 번씩 회사를 옮기며 경력을 관리(?)하고 그때 마다 조금씩 이력이 더해져서 직장생활 10년차, 차장이라는 직함과 그에 걸맞은 연봉을 받고 있다. 직장경력이 비슷한 그의 아내도 외국계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다. 여자아이 하나를 두고 있고 그의 부모님과 근방에 살고 있어서 오전에 유아원에 데려다주면 할머니가 데리고 왔다가 퇴근 무렵에 집으로 데리고 온다고 했다.

강남의 4호선 전철역 근방의 32평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고 2대의 자가용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파트 융자금을 갚고 있으며 분기별 휴가로 가족이 해외여행을 즐기는 여유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나를 만나자마자 던진다.

   
  “재미있냐”  
   

 

내가 대답대신 웃음으로 때우자 인상을 쓰며 오늘 자신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반가움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무얼 먹을지 서로에게 한참을 미루다가 근처 일식집으로 들어갔다.

증권관련 상담업무를 1년 정도하고 있는데 업무 스트레스가 많고 남의 돈을 관리해준다는 것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지겹다’라는 말과 함께 어떻게 이런 업종에서 10년을 넘게 회사생활 할 수 있는지 그런 선배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동의했다. ‘익숙함’이 가져오는 기계적인 행동과 말이 아마도 버티게 하는 힘이 아니겠냐며 덧붙였다.

그가 나에게 다시 물었다. 재미있냐고. 뭐가 재미있냐는 말인가. 사는 게? 재미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 활력이 넘치고 샘솟는 지적 육체적 에너지가 쓰이는 시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하루.

그냥 그렇지. 너는 어때 라고 되물으려다가 문득 떠올린 그의 ‘지겹다’를 떠올리고 입을 여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나는 가끔 그가 부럽다. 또래에게 인정받는 위치에서 그의 부모님이 자랑스럽게 내 놓을 만한 직장생활과 가끔의 여행의 여유를 실현하며 사는 그를 그의 블로그를 통해서 드러난 이미지와 글들을 보면서 내 자신이 위축되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살길 바라는가라는 스스로의 물음에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 젓는다. 뭐냐 그럼.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정치인들을 화제로 올리다가 자식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역시나 모든 도시인들이 시골에서 사는 젊은 가족에게 묻고 싶어 할 만한 질문이 이어졌다. 단도직입적으로 한 달에 얼마나 벌어? 한 달 생활비는 얼마나 들어? 등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모르는 사람이 물었다면 퉁이라도 줄만한 말이지만 친구에게는 별로 숨기거나 자존심상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상세히 이야기해 준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질문은 좀 가슴 아프다.

   
  “자식 교육은 어떻게 하려고”  
   

 

직장 다닐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직장을 다니려면 서울에서 계속 살 일 이었다는 대답을 했고, 이어지는 나의 시골 살이 철학을 듣고 난 이후에야 이어진 질문. 사실 이런 질문엔 자신이 있었다. 많이 듣기도 했고 많이 생각해본 주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가 전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지 못한 시골 살이는 힘든가. 그렇지 않다. 자식을 키우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적 없다. 큰 병 없이 그냥 튼튼하게 잘 자라주는 아이에게 항상 고마울 뿐이었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남들이 걱정하는 만큼 어둡지 않다. 마치 맞닿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 같은 그 인식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자식을 제대로 뒷바라지 하지 못하는 부모만큼 무능력한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기본적인 소양과 지적능력향상을 위한 정보제공을 위한 교육에는 틀림없이 ‘비용’이 들 텐데 이렇게 벌어서야 어디 그런 돈을 들일 수 있겠냐는 말이다. 노래방도우미를 해서 자식학원비를 버는 엄마와 자식 학원비를 줄여서 술 마시고 노래방 도우미를 부르는 아빠의 이미지가 겹쳐서 머릿속을 어지럽게 뛰어다닌다.


현재 자신의 행복에 가치를 둔 삶이 시골을 선택하게 하였고 이를 동의한 처와 함께 살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 건 부부의 합의된 교육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세 살이 된 아이는 매일 방안을 구르고 뛰어다니가다(이런 버릇의 아들이 도시의 아파트에 사는 할아버지할머니댁에 가면 갑자기 뛰지 말라는 부모 때문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성이 안차면 밖으로 나가 개와 뛰어다니고 풀을 뽑아서 맛을 보거나 벌레를 잡아서 관찰하는 놀이가 일상화 되어 있다. 아이는 도시아이들이 모르고 자랄 흙을 딛고 사는 인간과 나무와 짐승들을 체험하는 생명교육의 현장에 있고 우리 산과 푸른 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동물을 먹고 자라게 해주는 식물의 중요성과 품종개량과 집약재배를 통해 효율을 높여 살림의 기본이 되는 농업의 의미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몸을 움직여 집고, 파고, 들고, 업고 할 수 있게 될 나이면 땀 흘리며 일을 하여 예부터 내려온 원조 ‘생산’의 의미(무형의 가치를 속여 파는 가짜 생산이 아니다)를 깨닫게 된다.

학원을 통해서 의자위에서 칠판을 바라보며 얻는 지식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창조적 사고를 통하는 놀이를 통해서 꿈을 꾸게 될 것이며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 교육은 그것에 도움을 주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인고의 노력 끝에 얻어지는 결과물들을 쌓는 성취가 되었든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든 자신이 선택한 삶에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제도권교육이 죽었다고 하면서 자식을 그 속에서 방치하는 것은 '아동학대'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선택권을 가진 어린 시기엔 아이에게 원하지 않는 틀에 속하게 놔두는 것도 죄가 된다는 생각이다. 연일 오르는 대학등록금을 생각하면 대학을 나오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물론 대학을 가지 않는다고 할 때는 입시학원이 되어버린 중고등학교 과정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과거의 나는 꿈이 없었다.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소년기의 목표였다면 대학의 전공을 통해서 취업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대학시절의 인생목표였다. 졸업 즈음의 아이엠에프경제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어느 설계사무소에서 도면을 그리는 일을 하고 있으며 마감에 쫒기고 상시야근에 피곤에 절어 주변사람들을 매일 원망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꿈을 꾸고 싶었다. 그리고 내 자식에게는 어려서부터 그런 기회를 주게 된 것을 축복이라 생각한다. 좋은 대학 나와서 ‘사’자가 들어간 직업군에 들어가는 것이나 세계적인 대기업에 입사해서 경쟁하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는 될 수 없다. 세상에는 그것 말고도 수많은 가치 있는 일들이 있으며 그 가치를 스스로 깨닫기 위한 일이 ‘공부’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돈 많이 버는 것을 위한 일이라는 비상식의 흐름에서 벗어나고 싶다. 학교와 집, 학원을 오가며 다른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세계를 넓게 보지 못하는 내 삶을 자식에게 까지 물려받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비겁하게도 도시에서 바로 옆집과 친구들과 회사동료들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난 피난처를 택했다. 그곳은 내가 생각하고 내가 계획하고 내가 실행하는 일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한 달 100만원을 못 벌어도 내 몸을 놀리면 굶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의미에서 나온 말이지만 “쫀쫀하게 살지 마라. 굶어 죽지 않는다.”를 인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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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용이 지나가는 때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새벽녘이 될 수도 있고, 식사시간을 제외한 모든 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아를 기르는 부모라면 알 것이다. 애 재우는 시간이 자신의 자유시간이라 하고싶은 일을 몰아두었다가 한다. 그런데 시끄러운 소음에 아이가 깨면 그녀의 자유시간도 완전히 날아가 버린다.

오늘은 한마디 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진숙은 오기만 해봐라 하며 이를 갈고 기다렸다. 소리만 났다하면 바로 달려 나갈 채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아이가 아직 깨기 전 이른 아침부터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는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방에서 들려왔다. 씨발. 낮게 읊조리며 진숙은 신던 신을 벗어버리고 방으로 달려갔다.


   
  응, 그래, 우리아가. 엄마가 간다. 엄마가. 울지 마.  
   

 


맹렬하게 짖는 개들을 더 놀리기라도 하는지 더 짖어대는 개들에게 아무리 조용하라고 소리 질러 봐야 소용이 없었다.

이미 포기하고 아이를 달래느라 젖을 내놓은 진숙은 아이가 다시 눈을 감자 살며시 이불위에 내려놓았다. 개 짖는 소리도 멈췄다. 이 인간이 꺼졌나. 함 나가서 한마디 해야 다음부터 조심이라도 하려나. 하긴, 바보가 말을 알아듣기나 하겠어? 이미 새벽부터 논에 물대러 나간 남편은 아침 먹으러 들어올 때가 되었는데 무소식이다. 진숙은 곧 남편이 올 것 같으니 국이라도 데우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불을 댕겼다.


다시 개들이 짖어댔다. 에이 씨팔. 불을 놔둔 채 방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아직 깨지 않았다. 미간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하게 옆에 있는 이불로 아이 머리 주변을 둘렀다. 그런다고 해서 덜 들릴 소음이 아니었다. 차라리 깨라. 방 한쪽에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영용이 닭의 모이를 주고 있었다.


   
  아저씨이잇  
   

 


큰 소리로 영용을 부르는 진숙. 하지만 영용은 대답이 없었고,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다시 교회 쪽으로 걸어 나갔다. 개들의 짖는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영용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두 개가 침묵했다. 마치 스위치를 넣으면 불이 켜지고 다시 누르면 꺼지고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숙은 잠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창을 닫고 뒤돌아보니 아이의 얼굴이 두꺼운 이불에 덮여 있었다. 진숙은 깜짝 놀라 이불을 걷어 내고 아이의 숨을 확인하고자 귀를 아이의 입쪽에 댔다. 긴장이 풀려서 눈을 감았다 뜬 진숙은 코를 벌렁거렸다. 무슨냄새지? 아...차. 하는 순간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가는 진숙. 된장찌개는 이미 바닥에서 노릇노릇 타들어가고 있다.


   
  아~씨. 이게 무슨냄새야.  
   

 


현관에서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그녀의 남편 해진이다. 머리가 덥수룩하고 수염도 제멋대로인 남편이 장화를 앉아서 벗으며 한마디 더하려다 찌푸린 진숙의 얼굴과 마주치자 머뭇거린다.

   
 


영용이 땜에

왜?

아씨, 몰라. 닭 모이 주러 왔나봐. 또.

근데?

애 깼잖아. 그래서 찌개 타버렸어.

뭔 소린지. 밥이나 먹게.

김치밖에 없는데

 
   




밥상 앞에 앉은 해진과 전기밥솥에서 밥을 고봉으로 퍼서 쟁반위에 얹는 진숙. 아이는 깼다가 잠든것같지 않게 쌔근거리며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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