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 사중주 : 저스틴 펭귄클래식 65
로렌스 더럴 지음, 권도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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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더럴의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는 국내 초역된 작품으로 ‘사중주’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총 4권으로 이루어진 연작 소설이다. 각각은 독립적인 한편의 소설로 읽을 수 있다는데, 아무래도 4권을 다 읽어야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연작 소설 중 첫 번째에 속하는 <알렉산드리아 사중주 : 저스틴 The Alexandria Quartet : Justine>을 읽고 먼저 리뷰를 남긴다.

이 책을 왜 읽게 되었더라? 그건 잘 모르겠다. 난 언젠가 사거나 빌려서 읽어 볼 생각인 책은 위시리스트에 넣어두고 그 리스트를 종종 들여다보는데, 어느 날 이 책이 위시리스트에 들어있는 걸 발견했다(최초에 이 책을 어떤 이유로 담았는지는 모르겠다;;). 온라인 서점 리뷰에선 ‘온다 리쿠’의 어떤 작품에 영감을 준 작품으로 언급되었다하고, 그런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듯한데, 난 오히려 이 책을 통해 온다 리쿠의 그런 작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고...

서점에서 서서 몇 장 읽다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사들고 왔는데,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문장이 상당히 시적이다! 나는 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꾸밈없는 문장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시적인 문장에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처음엔 좀 짜증났음;). 은유, 비유, 상징 등등 현란한 문장 때문에 슬렁슬렁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알렉산드리아 사중주 : 저스틴>은 주인공들이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되었다는 식의 전통적인 서사구조에서 살짝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저스틴>의 내용을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불륜의 사랑’ 이야기다. 이집트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를 배경으로 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불륜의 사랑. 아, 그 흔한 불륜의 사랑!? 그런데 이 작품은 굉장히 독특하다.

<알렉산드리아 사중주>는 <저스틴>, <발타자르>, <마운트올리브>, <클레어>로 구성되는데 이 4권의 연작 소설은 각각 같은 사건을 다른 시점에서 보여준다. <저스틴>은 화자인 ‘나’(달리)가 사랑했던 여자 ‘저스틴’을 어떻게 만나 사랑에 빠졌는지, 그녀와 겪은 일들, 그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달리에게는 동거녀인 ‘멜리사’가 있고, 저스틴 또한 이미 결혼한 몸으로 남편인 ‘네심’이 있다. <저스틴>은 이 네 명의 등장인물 위주로 흘러간다. 이들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나’의 독백을 통해 설명되기도 하지만, 갑자기 소설 속의 소설이 등장하기도 하고, 일기, 편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인물에 대한 정보가 처음부터 세세하게 설명되지도 않는다. 읽다 보면 달리, 멜리사, 저스틴, 네심, 발타자르, 클레어 등등 주요 인물들의 관계 및 그들의 직업, 현재 처한 상황 등을 서서히 알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런 불친절함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소설 속 인물에 대해 독자는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시작한다. 그러나 그렇기에 ‘역시 소설 속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책을 읽는 사람도 (등장인물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서서히 각 인물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앞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언급했으나 뒷부분에 가서 큰 역할을 하는 내용도 종종 있다. 때문에 더 집중해서 봐야한다(슬렁슬렁 읽었다가 앞으로 다시 돌아간 적이 몇 번이나 있다;). 

나오는 인물이 그리 많지 않지만 다양한 인종과 언어, 종교가 나온다. 때문에 생소한 단어도 많아 그럴 때마다 책 뒤에 붙어있는 주석을 찾아봐야하는 불편함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점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낯모르는 도시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다양한 계급과 인종, 성적 취향을 가진 이 인간 군상들이 한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나갈 ‘드라마’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저스틴>에서 ‘달리’는 그가 사랑한 여인 ‘저스틴’을 굉장히 매력적인 ‘팜므파탈’이자 ‘섹스중독자’로 묘사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건 ‘달리’만의 관점일지도 모르겠다. 가련한 동거녀를 뒤로 한 채 불륜에 빠진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2권인 <발타자르>를 펼쳐보니 초반인데 벌써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사람이 누군가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자기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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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19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주 가는 알라딘 매장에 가면 <사중주> 시리즈 중 한 두 권은 꼭 있어요. 네 권 모두 있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매장에 네 권 다 있으면 사서 읽어보고 싶어요. ^^

잠자냥 2016-08-19 17:0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자주 가는 알라딘 매장이 두 곳 있는데 두 곳 모두 갈 때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 책 한두 권은 꼭 있더라고요. 네 권 모두는 없고요. ㅋㅋ 전 이 책을 한꺼번에 샀던지라 중고 매장에 싸게 나온 걸 보면 좀 배가 아팠지요. ㅎㅎ
 
비 온 뒤
윌리엄 트레버 지음, 정영목 옮김 / 한겨레출판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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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들고 바스라들고 언젠가는 흩어져버릴 것들에 대한 따스하면서도 애잔한 시선. 윌리엄 트레버가 보는 방식으로 사람을 본다면 이 세상에 안쓰럽고 불쌍하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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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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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책을 읽으면 바로 리뷰를 쓰고는 했다. 요즘은 읽고 좀 지나서 리뷰를 쓰게 된다. 처음과 달리 시간이 지나서 더 생각이 나는 책이 있고, 처음에는 좀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냥 잊혀지는 책이 있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는 전자에 속한다.


두 권이나 되는 만만치 않은 양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루했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두 번으로 끝나도 괜찮을 것 같은 사건이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하고, 주인공 ‘필립’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어영부영 세월이 그저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지겹기도 했다. 맨 마지막 장을 넘기며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제 끝났다.’하며.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필립의 인생이 우리가 사는 인생의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필립은 절름발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조금은 남과 다른 시선을 가질 수는 있었다. 육체적으로 연약했기 때문에 정신적인 일, 조용히 앉아서 사색하고 책을 읽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것이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독약이 되기도 했다.

예민한 감수성, 남다른 지각을 갖게 된 그는 타인을 관찰하기 시작하고, 타인의 삶을 섣불리 재단하기도 한다. 예술을 논하는 사람에게 열광적으로 매혹되기도 하지만, 어느 사이 그런 모습이 순전히 허영으로 보여 그를 멀리하기도 한다. 어릴 때는 종교에 탐닉하다, 종교의 모순을 깨닫고 그림이나 문학 등 예술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런 삶에서도 결국 만족을 못 느끼고 전도유망하다는 회계사를 하기도 하고, 의사에 도전을 하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

그 어느 것 하나 ‘내 것’이라고 부를만한 직업이나 열정적으로 매달릴만한 일을 찾지 못하고 이 직업 저 직업 끊임없이 옮겨 다닌다. 이건 생각보다 재능이 없어서, 이건 생각만큼 재미가 있지 않아서, 이건 알고 보니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전망이 없어서 등등 서른 가까이 되도록 자기만의 길을 찾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낸다. 심지어 잘 하지도 못하는 주식투자를 해서 물려받은 유산마저 다 날리고 거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기도 한다.

사랑에서도 그렇다. 분명히 이 여자와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는 걸 책을 읽는 사람도 알고, 필립 그 자신도 아는데 그렇지 못한 여자 ‘밀드레드’에게 계속 끌린다. 그냥 끌리는 것만이 아니라 필립을 이용하기만 하는 ‘밀드레드’에게 매혹되어 가산을 탕진하고, 삶을 낭비한다.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시 어느새 그녀를 찾아 그녀 곁에 머물게 된다. 삶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줄줄이 빠져 나간다.

이렇듯 <인간의 굴레에서>는 주인공 필립이 온전하게 자기 일을 찾고, 온전하게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기까지 고난의 삶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일’의 굴레, ‘돈’의 굴레, ‘사랑’의 굴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고 또 돈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조금 지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격적으로 훌륭하게 성숙하지도 않은 ‘필립’이라는 보통사람이 결국 ‘나’와 똑같음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그의 끝없는 ‘방황’에 심정적으로 동요하게 된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난 이 일에도 결국 맞지 않는군.’ ‘이 나이가 되도록 내 길을 찾지 못하다니 이렇게 한심할 수가.’ 이런 생각을 하는 필립에게서 ‘나’를 보게 되기에 결국 그가 ‘행복한 일’을 찾고, 함께 있어서 ‘행복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순간 그의 행복이 나의 행복으로, 그의 희망이 나의 희망으로 다가온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일, 사랑, 돈, 인간관계 등 ‘인간의 굴레’는 끝없이 계속 된다. 그것을 벗어날 수는 없다. 굴레만을 생각한다면 삶이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또 다른 굴레로 걸어 들어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또 다른 ‘굴레’가 다른 것과는 달리 특별히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굴레’라면 더 이상은 ‘굴레’가 아닐 것이다. 필립이 오랫동안 생각했던 꿈을 포기하고 한 여자와의 소박한 삶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아름답다.

인생의 행운아는 오히려 벌통 속의 벌처럼 자신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가장 크다. 다 같은 활동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다 같은 즐거움을 누린다는 점에서 그들은 행복하다. (p.82)

“세상에서 가장 굴욕스러운 일은 말이지. 먹고 사는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야. 난 돈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멸감 밖에 들지 않네. 그런 자들은 위선자가 아니면 바보야. 돈이란 제 육감과 같아. 그게 없이는 다른 오감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지. 적정한 수입이 없으면 인생의 가능성 가운데 절반은 막혀버리네. 딱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한 푼 벌면 한 푼 이상 쓰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예술가에겐 가난이 제일 좋은 채찍이라는 말들을 하잖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가난의 쓰라림을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그래.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천하게 만드는지 몰라. 사람을 끝없이 비굴하게 만드네. 사람의 날개를 꺾어버리고, 암처럼 사람의 영혼을 좀먹어 들어가지.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 방해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고, 너그럽고 솔직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 정도는 있어야지. 나는 말이야,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예술하는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을 자기 예술에만 의존한다면 그런 사람을 정말 가련하게 보네.” (p.41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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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09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권 이상의 책을 읽다가 멈췄거나 다 읽었는데 서평 작성을 오래 미루면, 서평 작성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다시 읽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

잠자냥 2016-08-09 18:0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얼마전 읽은 책 가운데 쓰고 싶은 책이 있었는데... 미루다 보니 그날의 감흥이 희미해졌어요.. ㅠㅠ ㅋ
 
고양이에 대하여 찰스 부코스키 테마 에세이 삼부작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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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존재 그 자체`라는 부코스키와 그의 집에 둥지를 틀게 된 떠돌이 고양이 9마리. 그들의 공통점은 `자유로운 영혼`이 아닐까. 속박된 삶이 아닌 자유를 누리는 존재들. 고양이 안고 흐뭇해하는 부코스키 사진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냥덕후 부코스키의 애정만땅 고양이 헌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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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6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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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소리도 더울 만큼 덥다. 이토록 무더운 여름날엔 오싹오싹 공포물도 좋지만, 나처럼 공포물을 즐길 수 없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에게는 추리물이 어떨까?


누구나 한번쯤 추리소설에 열광하는 때가 있을 듯하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를 마칠 그 무렵까지가 최고였다. 그때는 아마 날마다 추리소설(만) 미친 듯이 읽어댔다. 너무나도 유명한 코난 도일의 소설은 물론, 애거사 크리스티, 애드거 앨런 포, 앨러리 퀸, 모리스 르블랑…. 그들이 만들어낸 홈즈, 포와로, 뒤팽, 뤼팽 등의 ‘탐정’에 흠뻑 빠졌다.
 
추리소설에 대한 열광은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에 대한 열광으로까지 이어졌다. ‘추리형식’을 갖춘 영화라면 정신을 못 차리고 봤다. 물론 이런 기호는 훗날 내가 ‘필름 느와르’를 좋아하게 된 데에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필름 느와르’는 여전히 좋아하는 장르인데 언제부터인가 ‘추리소설’은 읽지 않게 되었다. 아마 그저 ‘재미’만을 추구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지도 모르고, 웬만한 유명한 ‘추리소설은 다 읽었다’라는 오만한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읽게 되면서 살짝 다시 ‘추리소설’에 애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존 르 카레의 작품은 장르적으로 추리소설, 미스터리 문학에 속하지만 읽다 보면 흔히 생각하는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공식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에 비해 그의 소설은 좀 지루하다 여겨질 정도인데 전통적인 추리소설이 ‘중요한 사건과 이야기’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비해 존 르 카레 소설에서는 중심 이야기와 크게 상관없을 듯한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문장의 흐름도 가파르지 않다. 그래서 전통적인 추리소설 읽기에 길들여진 이들에게는 ‘지루한 소설’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문체나 묘사, 작품 속 세계관 등에서 ‘문학적’으로 뛰어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 또한 그렇다. 장장 600여 페이지의 이야기 속에서 중심 사건과 탐정 ‘필립 말로’가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만 추려본다면 절반 이상은 잘라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잘라내도 될 것 같은' 그 절반이 이 책이 여타의 추리소설과 ‘다른 위치’를 점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본 사람이라면 레이먼드 챈들러나, 레이먼드 카버, 스콧 피츠제럴드 등의 이름을 종종 접했을 것이다. 하루키는 공공연히 이들 작가를 좋아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챈들러의 책을 읽고 나니 하루키가 레이먼드 챈들러를 왜 ‘그는 나의 영웅이다.’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간다.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챈들러의 ‘필립 말로’에서 뻗어나갔고, 고독한 분위기, 모든 사건이나 사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건조하면서도 한없이 쓸쓸하고 서정적인 문체 등등 챈들러의 소설이 없었다면 하루키의 소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 중 어떤 것을 먼저 읽을까 하다가 주저 없이 <기나긴 이별 : The Long Good Bye (1954)>을 선택했는데, 이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제목에서부터 쓸쓸하고 황량하지만 어딘지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런 정서가 이 책을 지배한다. 조금 마초 같기는 하지만 탐정 ‘필립 말로’도 대단히 매력적이다. 부패와 범죄가 난무하는 쓸쓸하고 냉소적인 대도시- 그곳에서 ‘정의’에 대한 열망을 겉으로는 ‘냉소주의’로 애써 감추고 묵묵히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필립 말로- 그가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 그가 사람과 사물, 도시를 보는 시선 하나하나에서 황량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특히나 지금까지 내가 알아온 ‘탐정’들이 불타는 사명감으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필립 말로는 ‘이 일을 때려치우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하고 있다.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은가.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챈들러는 자신의 글 쓰는 재능을 살리고 생활비도 벌 목적으로 싸구려 통속 소설인 펄프 픽션(pulp fiction)을 쓰기로 결심, 이런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챈들러의 시작은 ‘펄프 픽션’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의 챈들러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비극은 아름다운 것들이 젊어서 죽는다는 데 있지 않아요. 다만 아름다운 것들이 늙고 추잡해지는 데 있는 것이죠. (기나긴 이별, p.545)’ ‘이별을 말하는 것은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다. (기나긴 이별, p.601)’ 이런 문장을 쓰는 싸구려 통속소설 작가가 세상에 그리 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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