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이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엠마뉘엘 카레르의 신간 <러시아 소설>이 요즘 새로 출간되었다. 그 작품은 아직 읽지 않았는데, 아마 곧 읽을 듯하다. 카레르는 프랑스에서 수많은 컬트 팬을 거느린 작가이다. ‘컬트’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작품은 그로테스크하다. 딱히 무서운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읽고 있으면 왠지 으스스해지고 책을 덮고 나서도 그 무서운 분위기 때문에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러시아 소설>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전에 읽은 이 작품 <겨울 아이>도 만만치 않다.

<겨울 아이>는 늦은 밤에 읽기 시작했는데 책장을 몇 장 넘기지 않고 나서 괜히 밤에 읽기 시작했나 싶어졌다. 해가 떠 있는 낮에 다시 읽을까? 이런 후회가 잠깐 밀려왔지만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겨울 아이 Le Classe de Neige>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서 손에서 책을 놓기가 어렵다. 책의 분량이 200페이지 정도로 얇기 때문에 한 번에 다 읽어버려야지 하는 욕심이 나기도 했지만, 이 책을 집어든 모든 사람들마다 ‘궁금증’ 때문에 다음 날로 책 읽기를 미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말을 알면 읽는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에 자세히 줄거리를 적을 수는 없지만 주인공 소년 니꼴라가 겨울 스키 캠프에 참가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니꼴라는(이 친숙한 이름은 르네 고시니의 ‘꼬마 니꼴라’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보통 아이들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좀 허약해 보이는 외모와 때문인지 부모의 과보호를 받는다는 것 정도가 다를까? 

니꼴라는 과보호하는 아빠 때문에 스키 캠프에도 다른 아이들과 같이 전세 버스를 타고 가지 못하고 아빠가 직접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그 먼 거리를 이동해서 홀로 뒤늦게 스키 캠프에 참가하게 된다. 아빠는 깜빡하고 니꼴라의 가방을 챙겨주는 것을 잊고 캠프를 떠난다. 잠옷도 세면도구도 갈아입을 옷도 없는 니꼴라는 난감해지고, 아빠가 니꼴라의 짐을 내려놓지 않은 것을 빨리 깨닫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스키 캠프에서 니꼴라는 지도 교사의 도움으로 일단 다른 아이의 잠옷을 빌려 입으며 첫날을 보내게 된다. 오줌을 쌀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던 니꼴라는 이런저런 공상을 하게 된다. 자기가 들은 이야기, 책에서 읽은 이야기 등등을 토대로 공상의 세계를 펼쳐간다. 그런데 왠지 니꼴라는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무서운 이야기, 슬픈 이야기를 좋아하는 듯하다. 니꼴라는 스키 캠프에서 가장 힘 있는, 그래서 모든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오드칸이 자신을 괴롭힐까 전전긍긍 두렵고, 오드칸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혼자만의 공상을 토대로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니꼴라의 거짓말은….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전개된 중반 이후 대충 결말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작품의 분위기가 어딘지 어둡고 슬픈 느낌이라 니꼴라에게 왠지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길한 기분을 시종 일관 느끼게 된다. 정신없이 이야기를 쫓아가다가 마지막 문장을 읽고 책장을 덮을 즈음 마음 한편이 아프고 시리다.

엠마뉘엘 카레르는 이 짧은(?) 작품을 무려 8년간이나 구상했고 집필을 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한다. 씨줄과 날줄처럼 정교한 구성과 교묘한 배치 때문에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카레르가 공들인 시간이 그럴 만도 하다 싶다. 그의 다른 작품인 <적>과 <콧수염>도 <겨울 아이>와 비슷하게 치밀하고 정교하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작품을 더 읽을 수는 없을까 아쉬워하던 차에 <러시아 소설>이 출간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기대를 담아, 이제 그 책을 읽어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6-14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로테스크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소설이 그로테스크하다니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름만 들었지 그의 소설은 안 읽어봤어요.

잠자냥 2017-06-14 10:50   좋아요 0 | URL
사람마다 그로테스크의 기준이 좀 다르겠지만 ㅎㅎ 전 이 사람 소설 읽을 때마다 좀 으스스하더라고요. 새로 출간된 <러시아 소설>부터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
 
언니네 이발관 - 6집 홀로 있는 사람들 [일반반]
언니네 이발관 노래 / 블루보이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지막 앨범이라는데, 최고의 앨범은 아닌 것 같다. <보통의 존재>를 뛰어넘을 만한 감동이나 울림이 부족하다. 아이유 피쳐링도 어쩐지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다른 사람이, 그것도 시인이 바라보는 호퍼의 그림은 어떨까? 그 시인이 곁에서 조곤조곤 호퍼의 그림을 이야기해준다. 설득력도 있고 공감도 가고 감탄도 하게 된다. 호퍼의 그림을 좀더 풍요롭고 깊게 바라볼 시선이 생긴다. 꼭 소장하고 싶은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라마르 열린책들 세계문학 173
나기브 마푸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렉산드리아의 어느 펜션. 미모의 한 여성과 여러 남자들. 곧 일어나는 살인 사건. 무언가 엄청난 진실이 숨어 있을 듯했지만 의외로 싱거운, 게다가 살짝 공감도 어려운 살인 동기가 작품을 좀 맥빠지게 한다. 화자를 바꿔가며 이야기하는 설정인데 그 목소리가 한사람처럼 느껴지는 것도 좀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쓸쓸해서 머나먼 - 2010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372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집을 사기 위해, 시를 읽기 위해 서점을 찾은 일이 얼마 만인가.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 시대, 시집이 발간되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 같은 시대. 나조차도 시를 읽지 않는 이 시대. 최승자의 시집 발간 소식은 언제나 내겐 기적과도 같다. <쓸쓸해서 머나먼>에 이어 <빈 배처럼 텅 비어>까지...... 한때는 그녀의 시를 다시는 읽을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몇 년을 주기로 그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새벽에 비가 내렸고, 갑자기 센티멘탈해진 나는 최승자의 시집을 펼쳐들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시인이 되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고,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오는 시선 시리즈 전권을 사 모아 방 한편에 두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 시선 집에 눈길이 가는 일이 드물어졌고, 어느 북페스티벌에서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권당 천 원에 팔리는 기가 막힌 광경을 목격했어도 더는 시집을 사는 일이 없어졌다. 아주 가끔 드물게 시에 대한 허기증으로 시를 찾더라도 그것은 백석이나 정지용, 김소월, 윤동주처럼 그 옛날 시인들의 시였지, 현대시는 아니었다. 최승자도, 황지우도 기형도도 더는 읽지 않게 된 요즈음. 최승자의 <쓸쓸해서 머나먼>은 이런 나를 다시 현대시의 세계로 불러들였다. 아니, 어제 내린 비 때문이었을까.

이 시집은 언제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아주 늦은 밤, 또는 이렇게 비가 내리는 새벽, 노란 스탠드 불빛 하나에 의지해 시집을 읽는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삼십세’, <이 시대의 사랑>)’고 말하던 그녀가 이제 마흔, 쉰을 훌쩍 넘겨 돌아왔다. 그녀는 그동안 많이 아팠다고 한다. 그 아픔의 흔적과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쓸쓸해서 머나먼>에는 ‘세월’이나 ‘시간’ ‘세계’라는 단어가 무한 반복된다. 투병을 하며 창가에 서서 세상을 한없이 바라보며 써내려 간 기록으로 읽힌다. 아픔의 무게가 컸던지 죽음의 저편까지 넘나들다 살아 돌아온 사람의 관조랄까, 생에 대한 조금은 달라진 시선도 엿보인다.

예전 그녀의 시는 시니컬함, 냉소, 위악, 절망 그러면서도 뜨거움이었다. 여성적인 말랑함이라고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남성적인 목소리. 나는 그런 그녀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그런 거친 투박한 열정, 냉소에 젊음이 있었고 반항과 뜨거움이 있었다. 그런 그녀를 <쓸쓸해서 머나먼>을 통해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최승자 그녀도 늙는구나. 아프고 나니 삶에 대한 자세도 시선도 달라지는구나, 이런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런 세월의 흔적과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렇고 함께 나이를 먹어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때문일까?

최승자 그녀도 자신의 이런 변화를 아는지 이렇게 노래한다. ‘내 시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이다 / 오랫동안 내 시밭은 황폐했었다 / 너무 짙은 어둠 (…중략…) 이젠 좀 느리고 하늘거리는 / 포오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내 시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 <쓸쓸해서 머나먼>)처럼 황폐했던 시밭에서 조금은 따뜻한, ‘포오란’ 집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녀 자신과 그녀 주변에서 머물던 시선이 좀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고, 어떤 면에서는 종교적인 면모도 만날 수 있다.

이런 관조적인 시선을 얻게 된 그녀는 시집의 말미에서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의 서두 시인의 말에서는 ‘이제 비로소 깨어나는 기분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아프고, 그 아픔의 시간을 통해 시를 쓰고, 비로소 깨어난 그녀. 나이를 먹어 세계를 바라보는 눈은 조금 달라지었을지언정 여전히 아이처럼 팔랑거리고, 소녀처럼 포르르 할 수 있는 그녀의 시를 만날 수 있어서 무척이나 반갑다.

그녀의 작품을 다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뜨겁게 감사한다. 비내리는 새벽 시집을 펼쳐 읽는, 잊고 지내던 기쁨을 다시 알게 해준 그녀, 최승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아직 읽지 않은 그녀의 또다른 시집 <빈 배 처럼 텅 비어>가 책상 위에서 살포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일찌기 나는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너를 모른다 나는 너를 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일찌기 나는’, <이 시대의 사랑>, 1981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 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오.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즐거운 일기>, 1984



 
참 우습다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病)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참 우습다’, <쓸쓸해서 머나먼>, 2010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6-10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0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2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문단은 여성 시인(‘여류 시인’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어서 이런 표현을 쓰면 안 되지만)의 평가에 야박합니다. 그리고 시인의 근황을 모를 정도로 너무 무관심합니다. 최근에 박서원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 ‘최측의농간’ 출판사에 재출간되었어요. 박서원 시인이 2012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4년이나 지나서야 시인의 부고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잠자냥 2017-06-13 09:46   좋아요 0 | URL
네 참 맞는 말씀입니다. 박서원 시인 소식은 저도 몰랐는데 함 안타깝군요....

Falstaff 2021-12-28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2017년, 햇수로 벌써 5년 전, 며칠 있으면 6년 전 페이퍼네요. 요새 최승자, 최승자 해서 검색했더니 이 글이.
전 <쓸쓸해서 머나먼>을 읽고 평을 좀 야박하게 했었군요.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최승자는 내게 시인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그녀에게 이별을 고한다. 안녕히 가시라. 그동안 오랜 세월 참 고마웠다. 당신을 찾는 일은 이제는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ㅋㅋ 제가 뭐가 잘났다고 이렇게 시건방지게 얘기했었을까요. 책 읽고 소감을 남기는 일이 가끔은 재미나네요.

잠자냥 2021-12-28 12:29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렇게 또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요즘 최승자 시인 산문선이 재출간되면서 그이의 이름이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라도 최 시인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뭐 그렇습니다.
저는 이 페이퍼에서 <빈 배 처럼 텅 비어>를 곧 읽겠다고 해놓고 여태 안 읽었네요. ㅎㅎㅎ

가끔 시건방 떤 페이퍼 다시 보면 재미나긴 해요. 저도 오늘 그레이엄 그린하고 종말을 고할까... 뭐 이런 페이퍼를 남기긴 했는데요. 나중에 보면 웃기겠죠. ㅋㅋㅋㅋㅋ (아, 오늘 제가 올린 그레이엄 그린 <사랑의 종말> 리뷰는 폴님은 읽지 마세요. 스포일러 만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