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멘타 하인학교>는 ‘하인학교’라는 제목 때문에라도 꽤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하인을 양성하는 학교라? 그 발상부터가 무척
독특하다. 아니, 이 세상에 주인이 아닌 하인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어? 하는 생각. 게다가 주인공인 ‘야콥 폰 군텐’은 소위 명망 있는 귀족 집안 출신이다. 그런데, 자진해서 하인이 되고자 벤야멘타
하인학교에 들어간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미천한 존재, 가장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자 하인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정말 독특하다. ‘학교’에 들어간 소년의 이야기이니, 성장 소설인가 싶지만 성장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성장’이란
전혀 없다. 성장, 발전, 진보, 앞으로 나아감, 나아짐, 변화, 달라짐 이런 단어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저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야콥만 성장하지 않는 게 아니다. 작품 자체, 즉 이야기 자체의 어떤 변화도 전개도 없다. 스토리 자체가 멈춰있다.
때문에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게 뭐야?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음 장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 질 거야, 뭔가 색다른 변화가 있을 거야.’ 라고 믿고 넘겨보지만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깨진다.
야콥도 제자리, 이야기도 제자리. 야콥 주변인물,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아이들도 제자리다. 그래도 명색이 학교인데, 뭔가 배우지
않아?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 이 학교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을 배운다. 그저 인내하고 참는 법,
견디는 법을 배울 뿐이다(이것도 배움의 하나일까?).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의 반복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야만 하인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하인으로 취직되어
나갔을 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어떤 희망도 가져서는 안 되고, 상실감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하며, 세상에 대한
어떤 의문도 제기해서는 안 된다. 바라는 것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저 제한된 어떤 시스템 안에서 복종하고 머리를 숙이는 일,
견디는 일만이 허락될 뿐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살기 때문에 벤야멘타 학교의 아이들은 별다른 걱정과 근심거리가
없다. 밝고 천진난만하다. 단지 야콥, 야콥만이 계속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는데, 그 또한 이 제한된 시스템 안에서 점점 의문하는
능력은 사라지고 견디는 능력은 늘어나게 된다. 야콥은 그런 자신이 괴로워 의문하는 능력을 없애버리려 애를 쓰기까지 한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 그의 가장 커다란 목표이므로.
이런 성장 없는 인물, 변화 없는 인물, 전개가 없다시피 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성장’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그토록 닳고 닳도록 말하는 ‘발전’ ‘진보’ ‘변화’
‘혁신’ ‘미래’ ‘나아감’ 이런 것들이 대체 뭔가 싶어진다. 꼭 사람의 인생이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발전해야 하고,
성장해야만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라도 야콥처럼 제자리걸음만 하더라도 시스템 자체에 의문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뜨거움 정도만 간직하고 살 수 있다면 되지 않을까. 왜 세계는 끊임없이 발전,
진보, 성장을 외치는 것일까. 그래서 인생이, 세계가 과연 행복한가? 야콥이 마지막에 선택한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그 어떤 것도
자랄 수 없고 성장할 수 없는 불모의 상태가 어쩌면 가장 영원한 행복의 상태는 아닐는지.
이 작품은 여러 번 읽어 보고 싶고. 발저의 다른 작품도 읽어 보고 싶은데…. 현재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것은 이 작품 외에 청소년용 도서 <프리츠 콕의 작문시간>, 어린이용 도서 <정말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전부인 듯하다.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