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은 다 읽어봤으리라. 나 또한 그렇다. 아주 오래 전 학교 숙제였나? 의무감처럼 <노인과
바다>를 읽고 대체 이게 뭐가 좋다는 걸까? 하고 갸우뚱한 기억이 난다. 물론 그와는 반대로 <무기여 잘
있거라>를 자발적으로 읽고 그들의 사랑이야기에 괜히 마음 아파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런 작품을 읽었던 건 모두 10대
때다. 지금 다시 헤밍웨이를 읽는다면 아마도 그때와는 무척 다를 것이다.
몇 해 전인가 헤밍웨이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되면서 출판사마다 헤밍웨이 작품을 번역해서 쏟아냈다. 그 덕분에 이제는
그의 얼굴이 인쇄된 책을 여러 버전으로 만나기가 쉬워졌다. 읽은 지도 꽤 오래되었겠다, 새롭게 곳곳에서 번역되어 나왔으니 그 옛날
해적판보다는 당연히 번역의 질도 좋아졌겠지 싶어 헤밍웨이를 다시 읽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읽은
헤밍웨이는 내게 그다지 큰 인상을 남기지는 않아서 그랬는지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다.
그러다 읽은 책이 시공사에서 나온 헤밍웨이 선집 시리즈 중 1권인 <우리들의 시대에 : In Our Time
(1924년)>이다(시공사 책을 또 사고 말았어!). 시공사라 꺼려졌는데도 결국 이 책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 안에
담긴 작품들은 일단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는 점, 게다가 '단편'이지 않은가! 잘 쓴 단편 하나가 열 장편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헤밍웨이의 단편에 대한 궁금증을 떨치기 어려웠다.
'나는 헤밍웨이를 분명 읽었는데, 헤밍웨이를
제대로 읽은 적은 없구나.'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딱 이렇다. <우리들의 시대에>에 실린 작품은 단편
하나하나로 봐도 탁월하지만 단편 여러 개가 모여 장편을 이룬 일종의 연작 소설로 보면 더 빼어나다. '닉'이라 불리는 한
어린아이가 이 세계의 폭력성을 마주하면서 성장해가고 그로 인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길 잃은' 세대가 되어 그렇게 점점 허무의
세계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는 과정을 헤밍웨이는 전혀 연관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모두 엮여있는 몇 개의 단편들로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들의 시대에>에 실린 단편들은 헤밍웨이 장편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전쟁과 같은 엄청난 폭력으로 불구가 되는 인간, 그로 인한 허무주의, (여자를 배제한) 남자들만의 연대 혹은 우정, 부자지간의
관계, 자연이나 낚시에 대한 사랑(그로 인한 치유 혹은 구원) 등등. 그의 장편에서 엿볼 수 있던 주제 혹은 관심사들이 스물다섯에
써낸 이 단편들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들의 시대에>는 건조하고 수식이 없는
헤밍웨이의 문장처럼 짧지만 강렬하다. 어떤 이야기들은 굉장히 허무한데 그 허무함이 오히려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여운도 오래 간다. (게다가 내게는) '단편은 이렇게 쓰는 거야!'하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빌려보지 않고 사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나저나 읽다가 빵 터진 부분....
아래 인용된 문장을 보자. 남자에게도 역시 결혼은 안 좋다고 주장하는 헤밍웨이...... ㅋㅋㅋ
"관계를 끝장내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 빌이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될 거야. 그건 문제 될 게 없어. 여자를 좋아하되, 네 인생을 망치지는 마."
"그래." 닉이 대답했다.
"결혼하면 여자 가족과도 한 가족이 되는 거야. 장인, 장모를 생각해봐."
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언제나 근처에 있고, 일요일 저녁이면 그들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거기서 장모가 마지에게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잔소리를 하는 걸 상상해봐."
닉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빠져나온
게 백번 잘한 거야." 빌이 말했다. "마지는 자기 부류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정착할 거야. 물과 기름은 절대 섞일 수 없어.
내가 아이다와 결혼해도 똑같은 처지가 되겠지. 그녀는 내가 그렇게 되는 걸 좋아하겠지만." ('사흘간의 폭풍' 중,
<우리들의 시대에>, 57쪽)
헤밍웨이 님하, 그래서 결혼을 무려 네 번!!!!!! 이나 하셨나효. ㅋㅋㅋ 이 모순쟁이!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