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금 100만 달러
너새네이얼 웨스트 지음, 장호연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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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책이 있다.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작품이 그렇다. <미스 론리 하트>가 그랬고 <메뚜기의 하루> 역시 그렇고, 얼마 전 읽기를 마친 <거금 100만 달러>는 말할 필요도 없다. 끔찍하다! 안그래도 팍팍해서 살기 힘든 사람들한테 이런 책까지 읽으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하단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선뜻 추천하기 뭐한 그런 책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몇 자 적는 이유는 뭘까? 세상엔 이런 책도 있다고 알리고 싶어서? 아니면 너새네이얼 웨스트 전집에 대해 모두 코멘트를 남겨야 속 시원할 거 같은 기분 때문에? 어쩐지 후자 같다. 

“죗값은 어떻게든 치러야 하는 법. 그나저나 돈이 얼마나 있나?”
“90달러 있습니다.”
렘이 솔직하게 말했다.
“너무 적군. 그냥 죄를 인정하는 게 낫겠어.”
(…)
“말했잖아요. 저는 죄가 없다고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걸 입증할 돈이 없지 않은가.” (126~127쪽)


이 구절은 <거금 100만 달러>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열일곱 소년인 레뮤얼 피트킨은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집도 구하고 어머니도 편하게 모실 생각으로 고향을 떠난다. 목적지는 뉴욕. 레뮤얼(렘)은 100만 달러를 모아서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커다란 꿈을 품었다. 보통의(?) 소설들은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어느 정도 자신의 꿈에 다다르거나 그 꿈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다른 가치를 발견한다든가 등등 어떤 희망적인 구석이 존재한다.

그런데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거금 100만 달러>에 그런 희망이란 없다. 고향을 떠난 렘의 인생은 비참함 그 자체다. 기차를 타자마자 소매치기, 사기꾼에 돈을 빼앗기고 설상가상으로 도둑질한 죄까지 뒤집어쓰면서 교도소에 가게 된다. 앞선 인용문에서 보듯 돈이 없기 때문에 그는 유죄다. 이 가난한 청년의 고생은 끝이 없다. 감옥에 가고 사기를 당하고, 폭행을 당하고 이용당하고. 그런 과정에서 신체를 훼손당하고 등등. 언제쯤 이 청년의 고난이 끝날까 한숨만 나온다. 렘이 어떤 소녀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그가 그래도 한줄기 ‘사랑’에 기대고 의지할 수 있으려나? 기대를 품어보기도 하지만, 그런 기대조차 무참히 부서진다. 

같은 고향 마을에서 알고 지냈던 이 소녀 또한 가진 게 없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다 보니 삶이 순탄하지 않다. 렘만큼이나 처절하게 인생의 온갖 고난을 겪는다. 이렇게 <거금 100만 달러>는 가진 것 없는 두 청춘 남녀가 어떻게 부서져 가는지 추적한다. 너새네이얼 웨스트는 이 눈물겨운 고행극에 중간 중간 연사가 스토리를 읊어주듯 개입한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청춘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꿈은 부서지라고 있는 것!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 그대로 드림일 뿐!”라고 외치는 듯하다.

고향을 떠난 렘에게 단 한순간이라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글쎄... 그에게 행복했던 순간은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리고 그는 결국 불행하게 삶을 마친다. 이런 힘겨운 스토리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아메리칸 드림의 허망함이 절로 느껴진다. 운 좋은 사람 중에는 정말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이도 있으리라. 그러나 대부분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큰 꿈을 꾸더라도 ‘거금 100만 달러’를 손에 쥐기란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도 세상은 당신도 가능하다며, 꿈을 꾸라고, 왜 당신에게는 꿈이 없느냐고 다그친다. 너새네이얼 웨스트는 그런 이들에게, 그런 사회에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썩어빠진 사회에서 꿈을 꾸라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람도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당신부터 꿈 깨라고!’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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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2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든 사람일수록 젊은 사람에게 ‘꿈‘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사서 고생하라는 말을 좀더 좋게 표현하기 위해서 ‘꿈‘이라는 단어로 포장해요.

잠자냥 2017-03-02 14:12   좋아요 0 | URL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때 바로 꼰대인증을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생을 사서라도 하라니 말도 안됩니다. ㅎㅎ
 
게 가공선 창비세계문학 8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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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노라면, 지금 이 사회가 곧 ‘게 가공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직 자본을 위해서 인간성 말살은 물론 극악한 노동착취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세상. 이 폭압적인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노동자, 약자들‘의 연대만이 답이다. 그 답을 투박하지만 뜨겁고 생생하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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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새 구두를 사오실 때 창비세계문학 52
바진 지음, 박난영 옮김 / 창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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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 대한 따뜻하고 연민어린 시선, 불완전한 체재 안에서 억압받는 개인 삶에 대한 의문, 지식인들의 허위, 자유와 평등을 찾는 이들의 투쟁 등이 담긴 단편 모음. 단 지나치게 선명한 주제의식이 조금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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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친구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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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좋아하고 아주 잘 통하는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문학이야기를 한다면 그보다 즐거운 일이 있을까. 술은 꼭 샴페인인 아니더라도 좋을 것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즐거움과 짜릿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술을 찾게 될 것이다. 샴페인이든 와인이든 맥주든 소주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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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시대에 시공사 헤밍웨이 선집 시리즈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성곤 옮김 / 시공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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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은 다 읽어봤으리라. 나 또한 그렇다. 아주 오래 전 학교 숙제였나? 의무감처럼 <노인과 바다>를 읽고 대체 이게 뭐가 좋다는 걸까? 하고 갸우뚱한 기억이 난다. 물론 그와는 반대로 <무기여 잘 있거라>를 자발적으로 읽고 그들의 사랑이야기에 괜히 마음 아파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런 작품을 읽었던 건 모두 10대 때다. 지금 다시 헤밍웨이를 읽는다면 아마도 그때와는 무척 다를 것이다.

몇 해 전인가 헤밍웨이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되면서 출판사마다 헤밍웨이 작품을 번역해서 쏟아냈다. 그 덕분에 이제는 그의 얼굴이 인쇄된 책을 여러 버전으로 만나기가 쉬워졌다. 읽은 지도 꽤 오래되었겠다, 새롭게 곳곳에서 번역되어 나왔으니 그 옛날 해적판보다는 당연히 번역의 질도 좋아졌겠지 싶어 헤밍웨이를 다시 읽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읽은 헤밍웨이는 내게 그다지 큰 인상을 남기지는 않아서 그랬는지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다.

그러다 읽은 책이 시공사에서 나온 헤밍웨이 선집 시리즈 중 1권인 <우리들의 시대에 : In Our Time (1924년)>이다(시공사 책을 또 사고 말았어!). 시공사라 꺼려졌는데도 결국 이 책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 안에 담긴 작품들은 일단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는 점, 게다가 '단편'이지 않은가! 잘 쓴 단편 하나가 열 장편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헤밍웨이의 단편에 대한 궁금증을 떨치기 어려웠다. 

'나는 헤밍웨이를 분명 읽었는데, 헤밍웨이를 제대로 읽은 적은 없구나.'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딱 이렇다. <우리들의 시대에>에 실린 작품은 단편 하나하나로 봐도 탁월하지만 단편 여러 개가 모여 장편을 이룬 일종의 연작 소설로 보면 더 빼어나다. '닉'이라 불리는 한 어린아이가 이 세계의 폭력성을 마주하면서 성장해가고 그로 인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길 잃은' 세대가 되어 그렇게 점점 허무의 세계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는 과정을 헤밍웨이는 전혀 연관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모두 엮여있는 몇 개의 단편들로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들의 시대에>에 실린 단편들은 헤밍웨이 장편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전쟁과 같은 엄청난 폭력으로 불구가 되는 인간, 그로 인한 허무주의, (여자를 배제한) 남자들만의 연대 혹은 우정, 부자지간의 관계, 자연이나 낚시에 대한 사랑(그로 인한 치유 혹은 구원) 등등. 그의 장편에서 엿볼 수 있던 주제 혹은 관심사들이 스물다섯에 써낸 이 단편들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들의 시대에>는 건조하고 수식이 없는 헤밍웨이의 문장처럼 짧지만 강렬하다. 어떤 이야기들은 굉장히 허무한데 그 허무함이 오히려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여운도 오래 간다. (게다가 내게는) '단편은 이렇게 쓰는 거야!'하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빌려보지 않고 사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나저나 읽다가 빵 터진 부분....


아래 인용된 문장을 보자. 남자에게도 역시 결혼은 안 좋다고 주장하는 헤밍웨이...... ㅋㅋㅋ


 "관계를 끝장내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 빌이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될 거야. 그건 문제 될 게 없어. 여자를 좋아하되, 네 인생을 망치지는 마."
 "그래." 닉이 대답했다.
 "결혼하면 여자 가족과도 한 가족이 되는 거야. 장인, 장모를 생각해봐."
 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언제나 근처에 있고, 일요일 저녁이면 그들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거기서 장모가 마지에게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잔소리를 하는 걸 상상해봐."
 닉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빠져나온 게 백번 잘한 거야." 빌이 말했다. "마지는 자기 부류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정착할 거야. 물과 기름은 절대 섞일 수 없어. 내가 아이다와 결혼해도 똑같은 처지가 되겠지. 그녀는 내가 그렇게 되는 걸 좋아하겠지만." ('사흘간의 폭풍' 중, <우리들의 시대에>, 57쪽)



헤밍웨이 님하, 그래서 결혼을 무려 네 번!!!!!! 이나 하셨나효. ㅋㅋㅋ 이 모순쟁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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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2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다른 짝을 만나서 결혼할 수도 있습니다... ㅎㅎㅎ

잠자냥 2017-02-24 09:32   좋아요 0 | URL
ㅋㅋㅋ 네 그것도 그렇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