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책이 있다.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작품이 그렇다. <미스 론리
하트>가 그랬고 <메뚜기의 하루> 역시 그렇고, 얼마 전 읽기를 마친 <거금 100만
달러>는 말할 필요도 없다. 끔찍하다! 안그래도 팍팍해서 살기 힘든 사람들한테 이런 책까지 읽으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하단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선뜻 추천하기 뭐한 그런 책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몇 자 적는 이유는 뭘까? 세상엔
이런 책도 있다고 알리고 싶어서? 아니면 너새네이얼 웨스트 전집에 대해 모두 코멘트를 남겨야 속 시원할 거 같은 기분 때문에?
어쩐지 후자 같다.
“죗값은 어떻게든 치러야 하는 법. 그나저나 돈이 얼마나 있나?”
“90달러 있습니다.”
렘이 솔직하게 말했다.
“너무 적군. 그냥 죄를 인정하는 게 낫겠어.”
(…)
“말했잖아요. 저는 죄가 없다고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걸 입증할 돈이 없지 않은가.” (126~127쪽)
이 구절은 <거금 100만 달러>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열일곱 소년인 레뮤얼 피트킨은 집이 남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집도 구하고 어머니도 편하게 모실 생각으로 고향을 떠난다. 목적지는 뉴욕. 레뮤얼(렘)은 100만 달러를
모아서 고향으로 돌아오겠다는 커다란 꿈을 품었다. 보통의(?) 소설들은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어느 정도 자신의 꿈에 다다르거나 그
꿈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다른 가치를 발견한다든가 등등 어떤 희망적인 구석이 존재한다.
그런데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거금 100만 달러>에 그런 희망이란 없다. 고향을 떠난 렘의 인생은 비참함 그 자체다. 기차를
타자마자 소매치기, 사기꾼에 돈을 빼앗기고 설상가상으로 도둑질한 죄까지 뒤집어쓰면서 교도소에 가게 된다. 앞선 인용문에서 보듯
돈이 없기 때문에 그는 유죄다. 이 가난한 청년의 고생은 끝이 없다. 감옥에 가고 사기를 당하고, 폭행을 당하고 이용당하고. 그런
과정에서 신체를 훼손당하고 등등. 언제쯤 이 청년의 고난이 끝날까 한숨만 나온다. 렘이 어떤 소녀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그가
그래도 한줄기 ‘사랑’에 기대고 의지할 수 있으려나? 기대를 품어보기도 하지만, 그런 기대조차 무참히 부서진다.
같은
고향 마을에서 알고 지냈던 이 소녀 또한 가진 게 없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다 보니 삶이 순탄하지 않다.
렘만큼이나 처절하게 인생의 온갖 고난을 겪는다. 이렇게 <거금 100만 달러>는 가진 것 없는 두 청춘 남녀가 어떻게
부서져 가는지 추적한다. 너새네이얼 웨스트는 이 눈물겨운 고행극에 중간 중간 연사가 스토리를 읊어주듯 개입한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청춘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꿈은 부서지라고 있는 것!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 그대로 드림일 뿐!”라고 외치는 듯하다.
고향을
떠난 렘에게 단 한순간이라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글쎄... 그에게 행복했던 순간은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리고 그는 결국
불행하게 삶을 마친다. 이런 힘겨운 스토리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아메리칸 드림의 허망함이 절로 느껴진다. 운 좋은 사람 중에는
정말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이도 있으리라. 그러나 대부분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큰 꿈을 꾸더라도 ‘거금 100만
달러’를 손에 쥐기란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도 세상은 당신도 가능하다며, 꿈을 꾸라고, 왜 당신에게는 꿈이 없느냐고 다그친다.
너새네이얼 웨스트는 그런 이들에게, 그런 사회에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썩어빠진 사회에서 꿈을 꾸라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람도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당신부터 꿈 깨라고!’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