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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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의 단편집 제목을 왜 하필이면 <19호실로 가다>로 선택했는지는 이 책 맨 끝에 실린 단편 ‘19호실로 가다’를 읽고 나면 명확해진다. 이 단편집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여성으로 살아가는 녹록지 않은 삶을 그리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19호실로 가다’는 자유롭지 못한 여성의 삶을 단연코 압도적으로 묘사한다.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를 읽을 때만 하더라도, 철저히 자기중심적인데다가 찌질함까지 두루 갖춘 한 남자로 인해 24시간 가까이 괴롭힘 당하는 바버라의 모습을 보며 분개했다. 이 작품에서는 그래도 그 거머리 같은 남자가 여자에게 스쳐지나가는 인물일 뿐이기에 하루만 참으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게다가 어떤 면에서는 그 찌질이 ‘그레이엄’이 망신 아닌 망신을 톡톡히 당하면서 끝나는 설정이라 나름 통쾌하기도 했다. ‘옥상 위의 여자’나 ‘남자와 남자 사이’ 같은 단편도 남자들로 인해 인생이, 또는 삶의 한 순간이 일그러지는 여자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럼에도 그 작품들은 나름대로 여자가 남성들을 무시하거나(‘옥상 위의 여자’), 한 남자로 얽혀서 때로는 적이었을지도 모를 여성들이 서로 연대하면서 한 순간일지 몰라도 상처를 극복하는(‘남자와 남자 사이) 이야기가 펼쳐지기에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작품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작품인 ‘19호실로 가다’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19호실로 가다>는 첫 번째 작품에서부터 서서히, 이 지구에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온전하게, 인간으로 홀로서기가 얼마나 부단히도 어려운지를 이야기하다가 마침내 맨 마지막 작품에서 폭발하는 느낌이다. ‘19호실로 가다’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행복한 한 쌍이 등장한다. ‘수전과 매슈’ 그들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가운데 결혼한다. 둘 다 벌이가 좋은 직장을 가진 덕분에 금세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자식들마저 골고루(아들, 딸에 이어 아들딸 쌍둥이까지!) 낳을 정도로 정말로 흠잡을 데 없이 그들의 결혼 생활은 잘 굴러간다. 정원이 딸린 커다란 집과 네 아이. 파출부, 친구, 자동차, 사랑 등등 그야말로 행복한 가정이다. 


그런데 이조차도 어쩐지 미리 ‘예상한 그대로’였으며 어쩔 수 없이 단조로운 생활이 된다. 그런 가운데 수전은 차츰 자신의 인생이 사막이 된 것처럼 여겨진다.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고 아이들도 어쩐지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기분.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게 되면서 수전은 자신이 결혼하고 임신한 순간부터 말하자면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긴’ 인생을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결혼한 뒤로 12년 동안 단 한 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음을, 자기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음을 깨닫고, 드디어 다시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아이들도 모두 학교에 가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편 매슈를 뒷바라지 하는 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며 집안일 또한 파출부에게 맡기면 된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기만 하면 될 텐데 이상하게도 수전은 자기가 되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 한다. 사실, 결혼을 하지도 않았으며, 아이가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즐기는 나로서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그 시간’이 드디어 주어졌음에도 오히려 집안일을 끊임없이 찾아서 하고 있는 수전의 심리가 어떤 면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왜? 대체, 혼자 있을 때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 여자는 자기 혼자만의 시간에도 집안일을 하는 거지?’ 이런 심정이랄까. 


그러다가 나는 곧 깨달았다. 수전은 혼자 있었던 적이, 진실로 혼자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홀로 존재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더욱이, 아무리 집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주어져봤자, 그 집은 남편과 아이들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곳에서 결혼한 주부가 오롯이 혼자일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애당초 나 같은 사람은 수전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수전이 홀로 있고자 애쓰는 모습에서는 안타까움과 함께 연민을 넘어서 어느 순간 슬픔이 밀려온다. 수전처럼 일주일에 한 번 방을 빌릴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하는, 그러므로 자기만의 온전한 방 한 칸을, 철저하게 혼자만의 공간을 누릴 수 없는 수많은 여성들의 삶이 떠오른다. 수전의 ‘19호실’ 그 평온의 공간마저 결국은 침범당하고 마는 것에서 분노와 함께 쓸쓸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가 글을 쓰려면(온전한 자기만의 사유를 하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수전은 결혼과 함께 자기만의 방은커녕 그런 공간을 빌릴 돈조차 갖추지 못한 신세가 되고 만다. 결혼 전에는 광고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한 사람으로 당당히 존재했던 그녀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결혼을 하고, 정원 딸린 집에 살면서 파출부까지 두는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자기만의 ‘돈’도 ‘방’도 없는 것이다. 집 한곳에 수전의 방. 그러니까 ‘엄마의 방’을 만들어보기도 하지만 그건 수전의 아이들이 말하듯 ‘엄마의 방’이지 ‘수전의 방’은 아니다. 거기서 과연 그녀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그러다가 드디어 찾은 자기만의 방, 19호실- 그 허름한 공간에서 서서히 혼자가 되어가던 수전. 그러나 남편의 폭력적인 방법으로 그 공간마저 탄로 나고 더는 어디에서도 ‘철저히 혼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닫기에 좌절한 그녀가 내린 선택은 무척 마음 아프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 주변에서는 집에서 독립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어떻게 그게 ‘독립’이냐고 나는 말리는 편이다. 정말로 독립을 바란다면 혼자 있을 ‘공간'을 만들어 보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비혼 여성이 독립해서 살아가기란 그리 쉽지는 않다. 부모의 반대를 비롯하여,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될 수도 있으며, 막상 그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서(심리적, 정신적, 또는 실제로 혼자 사는 여자를 향한 온갖 위험에 대한 공포) 선뜻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독립’이라는 미명 아래 ‘결혼’이라는 전혀 독립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고야 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은 이 짧은 생에서 단 한순간도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한 채 살다 죽게 되는 삶속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부모의 우산 아래서 남편의 우산 아래로 편입될 뿐이다. 인간이 그렇게 평생 단 하루도 철저하게 자기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비극인가. 


그런데도, 많은 여성의 삶은 수전의 ‘19호실’ 같은 공간조차 얻지 못한 채 끝이 나고야 만다. ‘성인 두 사람이 단 1초도 서로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건 굴욕적’(‘한 남자와 두 여자’, 123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의 딸이었다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다시 또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남자와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여자라는 성(性)을 잃어버린’(‘남자와 남자 사이’, 227쪽) 채 ‘하루에 18시간씩 남자들의 포부를 지지해주면서 살아가게’(‘남자와 남자 사이’, 234쪽)된다. 그런 현실 속에서 ‘내가 있는 곳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완전히 혼자 있고 싶은’(‘19호실로 가다’. 305쪽) 공간은 요원하기만 하다. 사랑도, 결혼도, 가정도, 일도. 인간에게 혼자 있을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게 무슨 소용이 있을지 <19호실로 가다>는 쓸쓸하게 묻는다. 수전처럼 자기만의 ‘방’을 갖고자 안간힘을 쓰는 여성들의 고단한 삶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알기에, 그런데도 그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기에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는 책을 덮고도 씁쓸한 마음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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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담꾼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
M. C. 비턴 지음, 지여울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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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낯선 마을로 모여든 사람들. 곧 일어나는 살인 사건. 알고 보니 저마다 나름의 살인 동기는 있고... 일견 무능력해 보이는 주인공 맥베스 순경. 점점 밝혀지는 비밀 등등 추리 소설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간다. 쉽게 범인을 알아차릴 수 있는 싱거운 이야기지만 이 시리즈의 매력은 거기에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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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6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신인섭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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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간다는 것. 노년의 고독과 상실감, 쓸쓸함, 그러면서도 그 나름대로 여전히 존재하는 욕망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꿈과 현실, 죽음과 에로스 사이를 절묘하게 왔다갔다하는 한 편의 긴 서정시와도 같은 작품. 그 사이사이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인간 군상의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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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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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19호실로 가다‘를 읽고 마음 아프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기혼이든 비혼이든 모두가 공감할 이야기. 여자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내내 생각난다. 맨 처음 수록작 ‘최종 후보 명단에서 하나빼기‘와 맨 끝 작품 ‘19호실로 가다‘ 이 두 작품만으로도 별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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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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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된 책, 이른바 고전을 좋아한다. 내가 고전 작품을 좋아하는 까닭은 그 책들은 세월의 검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오랜 시간의 검증을 통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읽을 책이 매우 많고 내가 살다갈 날들은 그에 비하면 짧기만 하다. 그런 세상이니 어느 정도는 검증 받은 책들을 먼저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물론 그런 책들 중에도 딱히 크게 마음에 남는 게 없는 작품도 종종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늘, 고전만 읽겠는가. 요즘 쏟아지는 책에도 당연히 눈길이 간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읽은 사람들 평이 대체로 좋고 ‘호텔에 종신 연금된 백작의 우아한 생존기’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날이 몹시 더운 것도 이 책을 선택하는 데 한몫했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에는 어쩐지 흥미위주의, 가벼운 책을 읽고 싶어지지 않는가. 이 작품 또한 그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흥미진진하지만 묵직하게 남는 것은 그리 크지 않을, 그런 책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술술 읽힌다. 책장이 잘 넘어간다. 나는 세월의 검증을 받지 못한 책을 읽을 때면 좀 까탈스러운 태도로 책을 본다.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읽는 다고나 할까? 여기저기서 추천 받았고, 극찬을 받았다는데 어디 한 번 보자 하는 심정. <모스크바의 신사>는 로스토프 백작의 시(詩)로 시작한다. 이 시는 이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윽고 희곡 형식으로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에 대한 재판이 묘사된다. 나는 이런 다양한 시도들이 좋은 작품임을 나타내려고 지나치게 애를 쓴 것처럼 여겨졌다. 1920년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종신 연금형을 받는 백작과 혁명 등등의 설정도 어떻게 보면 역사적 무대를 배경 삼아, 단순히 가벼운 작품은 아니라고 역설하려는 듯한 일종의 트릭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럼 그렇지’하는 약간의 실망감을 안고 이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100쪽을 넘기고 200쪽을 넘기면서 서서히 나는, 나도 모르게 알렉산드로 로스토프 백작. 이 불쌍한, 그러나 어쩌면 그의 친구 미시카의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의 삶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응원하고 있었다. 그가 결심한 대로 마지막으로 추모 와인을 마시고 호텔 난간에서 몸을 던져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었다. 정말로 자살을 하려나? 그러면 안 되는데, 절대 안 돼! 이 사람아! 외치고 싶어졌다. 


로스토프 그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으면 러시아의 어느 백작이 아니라, 한 인간,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존엄성을 오롯이 지닌, 세상에서 보기 드문 한 존재가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는, 안타까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 그는 나에게 그저 ‘러시아 최후의 신사’가 아니라 이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성숙한 인간미를 갖춘 ‘최후의 인간’과도 같았다. 때문에 그의 삶이 이대로 무너지지 않기를, 그를 그렇게 가둬버린 혁명 세력들이 원하듯이 그가 그렇게 무기력하고 허무하게, 덧없이 쓰러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렇다 하더라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의 집도 아닌,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감금된 채 지낸다는 것은 인간에게 더할 수 없이 무지막지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나라면 어땠을까? 로스토프 백작처럼 ‘환경에 굴복당하지 않고’ ‘환경을 지배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난 감옥 안에서도 책만 있다면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기는 하다만. 글쎄 정말 그럴까? 실제로 어느 한 장소에 감금된 채 이동의 자유를 빼앗긴다면,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희망조차 없이 살아야 한다면 삶이 견디기 쉬울까? 아마 나 또한 로스토프 백작이 그랬듯이 마지막 와인 한 잔을 마시고 호텔 난간에서 저 아래로 몸을 던지는 상상을 여러 차례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로스토프는 그러기를 거부한다. 어쩌면 그가 감금된 곳이 ‘집’이 아니라 ‘호텔’이라는 특수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호텔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 백작은 친구도 얻고, 연인도 생기며, 심지어 딸도 얻는다. 때때로 자신을 찾아오는 옛 친구를 만날 수도 있다.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삶을 놓고 싶을 때마다 버티고 견디게 해줄 다른 이의 존재가 ‘호텔’에서는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호텔을 오가는 사람들, 또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신뢰와 우정, 애정, 지지와 격려, 비록 갇힌 신세였지만 끝까지 존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럴 만한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성품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이 작품은 ‘신사’의 의미를 여러 번 생각해 보게 한다. 매너를 잘 갖춘, 귀족으로서의 예절이나 태도, 또는 그 계급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문화와 예술적 지식을 두루 갖춘 것이 과연 진정한 신사다움일까? 만일 로스토프가 그 모든 것을 갖추고도 따뜻하고 배려 깊은 성품,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약한 존재를 깔보지 않는 인격을 지니지 못했다면 그가 과연 ‘신사’로 느껴졌을까? 그래서 <모스크바 신사>의 ‘신사다움’이란 곧 ‘인간다움’이며, 이 책은 로스토프라는 진정한 신사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만 이 세상을 제대로 잘 살다가는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 작품을 읽다가 나는 여러 차례 울컥하고 실제로 몇 번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 장면 중 하나는 소피야 때문에 가슴을 졸이다가 로스토프가 다락방에 홀로 앉아 호로비츠가 연주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는 장면이다. 또 다른 부분은 미시카가 남긴 ‘빵과 소금’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는 장면에서였다. 러시아문학 황금기에 쓰인 작품 곳곳에서 ‘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인용구를 나열한 부분에서 나는 주책없게 눈물이 쏟아졌다. 그 어떤 부분보다 이 두 장면이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게 느껴졌다. 한없이 암담하고 우울한 상황에서도 음악을 들으며, 또는 문학 작품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며 자신이 지닌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인간……. 이 두 장면은 오래도록 잊기 힘들 것 같다.



안에든 와인이 무엇이든 간에 이웃한 와인과는 같지 않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같기는커녕 백작의 손에 들린 병 속의 내용물은 한 국가나 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독특하고 복잡한 역사의 산물이다. 와인의 색깔, 향, 맛은 분명 그 와인이 태어난 지역의 특유한 지형과 고유한 기후를 나타낼 것이다. 그뿐 아니라, 와인은 생산된 해, 생산된 지역의 모든 자연 현상을 드러낼 것이다. 한 모금만 마셔도 와인은 생산지의 그해 겨울 추위가 풀린 시기, 여름 강우량의 정도뿐 아니라 그해 바람의 특징이나 구름 낀 날이 어느 정도나 되었을지에 관한 것까지 머리에 떠오르게 할 것이다. 한 병의 와인은 시간과 공간의 최종 추출물이고, 개성 그 자체의 시적 표현이었다. (<모스크바의 신사>, 233쪽)


와인 목록이 존재하는 것은 혁명의 이상에 어긋나며, 그것은 귀족의 특권과 인텔리겐치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표지와도 같다며 모든 와인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으로만 구분하여 단일한 가격으로 판매하게 된 세상. 그런 상황 속에서도 로스토프는 끝까지 와인 하나하나만의 독특한 개성을 찾고자 애를 쓴다. 위 구절에서 ‘와인’은 ‘인간’으로도 읽힌다.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획일화된 사회 속에서도 자신이 지닌 개성과 우아함을 잃지 않았던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그를 와인에 비유하자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며 깊고 순수한 향을 지닌 그런 와인이 아닐까.


<모스크바의 신사>는 이렇듯 주어진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켜나간 한 남자의 삶의 궤적이 마지막까지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뻔한 스토리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 작품은 몇몇 장면에서 완전히 독자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결말 또한 그렇다. 그러니 누구라도 이 두꺼운 책을 한 번 집어 들면 흥미진진하게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의 검증을 받기에는 아직 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런 작품은 현대의 고전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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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08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나서 에이모 토울스의
데뷔작 우아한 연인을 읽고 있습니다.

작가의 고급진 취향은 역시나 대단하네요.
다만 너무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 상대적으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듭니다.

잠자냥 2018-08-08 09:2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그 책 나중에 읽어봐야겠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