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우체국>처럼 ‘헨리 치나스키’가 주인공이고 <여자들>에서 그는 ‘우체국’을 때려치우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우체국>의 치나스키가 30대라면 <여자들>의 치나스키는 50을 훌쩍 넘었고, 작가로서 어느 정도 밥벌이를 하고 살 정도가 되었다. 아주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도 상당하고 시를 쓰는 치나스키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낭독회를 하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하고 그렇게 받은 돈으로 치나스키는 집세도 내고 좋아하는 술도 마음껏 사마시면서 살 수 있을 정도다.


이 책은 정말 야하다. 4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인데 매 페이지마다 ‘섹스’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이쯤 되니 ‘섹스’라는 단어나 여자 및 남자 성기를 일컫는 그 단어가 ‘안녕’이라는 단어보다 더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부코스키의 <여자들>을 읽노라니 이런 의문이 끊임없이 든다. 어떤 여자들은 정말 ‘작가’라면 환장을 못하는 것인가? <여자들>의 서문에 부코스키는 이 작품은 허구이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어떤 사람을 모델로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글쎄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냥 부코스키의 분신인 치나스키가 여자들을 만나고 그녀들과 끊임없이 사랑(???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섹스)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름도 헷갈릴 정도로 수많은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들은 모두 치나스키를 짧게는 하룻밤 길게는 몇 년 이상씩 거쳐 간다. 치나스키가 묘사하는 여자들은 조금씩 달라 보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똑같다. 바로 그녀들이 치나스키에게 다가오는 방식이다. 여자들은 모두 치나스키 작품을 좋아하고, 치나스키 글에 반했고, 그래서 치나스키에게 편지를 쓰거나 집으로 찾아오거나 낭독회에 왔다가 치나스키에게 번호를 주고 자기 집을 알려준다.

대부분 치나스키가 ‘작가’라는 사실에 별다른 저항 없이 자기를(정확히는 ‘몸을) 던진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당신의 글을 좋아한다.’ ‘당신 작품이 마음에 든다.’라더니 악수를 하듯 키스를 하고 포옹을 하듯 섹스를 하고 치나스키 곁에 머물다 떠나간다. 치나스키는 부코스키와 동일 인물로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렇게 치나스키(부코스키)를 거쳐 간 여자들 중에는 그와의 관계를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여자들도 있다.

어떤 여자들은 부코스키 책을 훔쳐가 경매에 올려놓기도 하고, 어떤 여자들은 부코스키와 주고받은 연애편지를 경매에 내놔 돈을 벌기도 했고, 어떤 여자는 부코스키 두상을 본떠서 여기저기 경매에 올려놔 돈을 벌기도 했고, 또 어떤 여자는 부코스키와의 관계를 글로 써 돈을 벌기도 했단다. 이런 걸 노리고(?) 접근한 여자들도 있을 테지만...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여자들은 그렇게 ‘작가’라는 직업에 약한 것일까? 부코스키 뿐만이 아니라 조르주 심농을 보라. 그는 뭐 만 명 이상의 여자와 잠을 잤다지 않나? 심농이 만약 작가가 아니었다고 하면 그렇게까지 많은 여자를 이른바 ‘낚을’ 수 있었을까? 굳이 ‘작가’가 아니더라도 여자들은 예술가에게 약한 것 같다. 록 스타에겐 여자들이 줄줄 따르지, 피카소 같은 화가에게도 여자가 많았지, 아! 홍상수 영화만 보더라도 ‘영화감독’이라니까 불나방처럼 몸을 던지는 여자들이 숱하게 나온다.

모든 여자가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여자들은 ‘예술가’가 좋은 걸까? 아니면 그 예술가가 만들어내는 작품의 한 부분이 되고 싶나?(실제로 부코스키 작품에 보면 몇몇 여자들은 ‘나중에 나와의 이런 이야기를 쓸 것이냐?’라거나 ‘써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한다. 뭐 물론 쓰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니면 그냥 ‘유명인’이 좋은 걸까? 명품을 좋아하는 심리처럼 사람도 일단 유명해야하고, 유명한 사람을 만나야 자기도 그런 사람이 된다고 느끼는 것일까?

진심으로 치나스키(부코스키)를 좋아한 여자들도 많았겠지만 처음에는 그의 글 때문에 치나스키(부코스키)에게 반한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글이 꼭 그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진실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거짓말로 꾸며댈 수 있는 것도 글이다(물론 부코스키의 글은 너무할 정도로 솔직하다). 글을 좋아할 수는 있지만 ‘글이 곧 사람’이 되고마는 그 사고의 과정이 여전히 궁금하다. 만일 부코스키가 계속 우체국에서 우편배달부'로만' 일했다면 이렇게까지 여자를 쉽게 얻을 수 있지는 않았을 텐데(물론 이 또한 나의 편견일 수 있다)…. 난 아무리 어떤 작가의 글을 좋아해도 그 글이 좋을 뿐이지, 글쓴 사람 자체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드물던데.... 부코스키의 '여자들'은 정말 신기하다.




언제나 이렇게 술을 마시면서 낭독회를 했다고...ㅋㅋㅋㅋ Henry Charles Bukow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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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1-17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퍼돌아이 작가 찰스 부카우스키,
정말 못 말리는 작가였네요.

열책에서는 어케 표지를 색깔만 바꾸어서리
세 권을 날로 잡숫는지 대단한 신공이었습니다.

호밀빵도 사두기만 하고 못 읽고 있네요.
빨랑 읽어야겠습니다.

잠자냥 2018-01-17 17:2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슈퍼돌아이‘에 웃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적절한 비유입니다. 호밀빵 재밌어요! ㅋㅋ 요즘 이책저책 읽느라 정신 없으신 것 같던데 ㅎㅎ 조만간 호밀빵도 추가요!!

Falstaff 2018-01-1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코스키, 구라일 확률 90%에 만원 겁니다.
ㅋㅋㅋㅋ 저렇게 술 마시고 그리 많은 여자와 밤을 지냈지요. 그냥 잠만 잔 거예요!!!
그리고 심농의 최하 만 명의 여자와? 흐흐흐... 1/10 정도도 믿지 않습니다. 남자새끼들 그런 방면에 구라 때리는 거, 못말려요. ㅎㅎㅎ 만 명의 여자들과 단 하루 씩 자더라도 하루도 쉬지 않고, 부모님 제사도 안 모시고 꼬박 27년이 넘게 걸리는데요, 그렇게 해대다가는 제 명에 못 죽습니다. ㅋㅋㅋ
˝작가˝라는 타이틀에 매혹을 느끼고 그게 사랑인줄 오해하는 거 아닐까 합니다.
잘 생긴 남자에 홀랑 넘어가는 거나, 돈 많은 놈한테 넘어가는 거나 뭐 비스무리...

잠자냥 2018-01-18 18:00   좋아요 0 | URL
아니 진짜 같은데 .... 그럼 역시 대단한 작가들이네요 ㅋㅋㅋㅋ 왕구라쟁이들 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