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도서관에서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빌려왔다. 생각보다는 책 부피가 크지 않아서
금세 읽겠다 싶었다. 책을 빌려온 뒤 본격적으로 읽어볼까 싶어서 책장을 넘기다가 깜짝 놀랐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 가운데
발견하게 되는 그 '무엇'은 보통 불쾌한 것들이 많다. 밑줄이나 낙서, 흘린 음식물 흔적 등은 양반에 속한다. 물어뜯은 손톱이나
머리카락 등을 발견하곤 기겁할 때도 있다. 뭐 누구는 지폐가 들어 있기도 했다지만 나는 아직 그런 적은 없다.
암튼 그런 흔적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누군가 이 책을 먼저 빌려 간 사람이 남긴 포스트잇, 그리고 그 포스트잇에
적힌 내용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짧은 편지를 읽고 나서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뭐랄까 뭉클하기도 하고... 그 사람이 이 메모를 언제 붙여놨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포스트잇은 이 책을 빌려간 어느
누구도 떼어내지 않고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지난 주말에 책은 이미 다 읽었고, 나 또한 이 포스트잇을 붙인 채로 반납할
생각이다.
포스트잇 내용을 옮겨 본다.
막연하게
'페미니스트 -> 과격하고 화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30여년, 명예남성으로 살면서 눈감은 일도, 비난한 일도,
불쾌한 일도 있었지만, 작년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이후 머리가 띵해지며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이 나라의 많은
여성들이 명예남성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틀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배워야하는,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으로 맘을 조금만 가볍게 먹고, 페미니즘을 접하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페미니즘을 접하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괴로워하며
반성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세계관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집니다. 정확하고 정당하게 분노할 줄 아는 것은 매우 건강한
일입니다. 누구도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똑바로 볼 줄 알며 살아갑시다. 아래는 제가
읽었던 것 중 이 책과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들입니다. 당신도 조금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나쁜 페미니스트>
<악어 프로젝트>
이 책들도 읽어보시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