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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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 단편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현대문학 세계 단편선 <대프니 듀 모리에 - 지금 쳐다보지 마>와 똑같은 작품이 실려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차를 비교하면서 겹치는 작품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워낙 이 단편집을 흥미롭게 읽기도 했고, 듀 모리에의 다른 작품도 즐겁게 읽었던 터라, 아직 내가 읽지 않은 단편들 모음이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게다가 책 소개를 보니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에 걸쳐 쓴’ 초기 걸작 단편을 모아 낸 선집이라고 한다. 거장이 거장으로 자리 잡기 전, 얼마쯤은 어설프고 풋풋한 그런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런 내 생각은 책을 받아 읽는 순간 와장창 깨지고 만다. 아니, 이게 정말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에 쓴 작품이라고? 그렇다, 거장은 애초부터 거장인 것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는, 제목에 끌려 <집 고양이>부터 읽었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암고양이》처럼 왠지 ‘고양이’가 등장하는 그런 작품일 것 같았다. 느긋한 고양이가 등장하지만 그 고양이와 얽힌 기괴하고 짜릿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런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생각 또한 와장창 깨진다. 서스펜스의 왕이자(여왕이 아니다!!), 인간의 저 밑바닥 욕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듯 내려다 보고 있는 대프니 듀 모리에가 그렇게 평범한 이야기를 쓸 리가 없다. 비록 아무리 초기 작품이라 할지라도. 이 작품에는 단 한 번도 고양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고양이의 특성을 비롯하여, 얼마나 묘사를 잘했는지 온갖 고양이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어린 꼬마였던 ‘나’는 파리에서 숙녀 교육을 마치고 드디어 성숙한 어른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 같은 존 삼촌과 함께 사교계를 누빌 꿈에 부푼다. 그런데 그 기대는 기차역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순간 무너지고 만다. 처음으로 화장한 ‘나’의 얼굴을 본 어머니는 전에 없이 쌀쌀맞게 굴며 불쾌함을 감추지 못한다. 게다가 늘 졸린 얼굴이던 존 삼촌은 그날따라 기묘하게 눈을 빛내며 ‘나’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한다.

존 삼촌은 사실 혈연관계는 아니다. 모녀가 그를 처음 만난 건 ‘나’가 아주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프린턴 해변의 얕은 물에서 해수욕을 하던 때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존 삼촌은 집안 식솔로 여러 해를 함께 지내오면서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대신 처리한다. ‘티켓을 구입하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장사꾼을 상대하고, 청구서를 지불하고, 역에선 그들의 가방을 옮겨주고, 차를 마실 땐 빵과 버터를 건네주고, 전화를 받고, 약속을 기록하는 수첩을 정리하고, 기쁜 일이 있을 때면 양손을 문지르면서 아양을 떨며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그 오랜 세월,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어머니와 함께 한다. 어머니에게 여러모로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이제 마흔을 훨씬 넘긴 존 삼촌. ‘나’의 친구는 언젠가 그에 대해서 “저 사람이 너희 어머니가 키우시는 집고양이야?”하고 묻기도 한다. 나는 친구의 그 말에 크게 웃으면서도 어딘가 그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존 삼촌은 ‘구석에서 조용히 가르랑거리다가 절대 발톱을 드러내는 일 없이 평화롭게 후다닥 우유 접시로 달려가는 고양이’ 모습과 어쩐지 닮았기 때문이다.

사실 독자는 존 삼촌의 정체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나의 ‘어머니’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 ‘어머니’에게 빌붙어 사는 기둥서방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게다가 성숙하게 자라서 젊음 그 자체로 빛나는 딸을 보고 기뻐하기보다는 질투와 시기를 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엄마가 딸을 경쟁상대로 느낀다는 것도 곧 알 수 있다. 그 두 모녀 사이에서 이 ‘집고양이’ 존 삼촌의 능글맞은 변화를 엿보는 일은 아주 흥미롭다. ‘나’가 기차역에 내렸을 때부터, 아니 ‘나’가 드레스를 사러 갔을 때 쳐다보던 그 음흉한 시선에서 이 존 삼촌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는 예상가능한데, 그런 변화를 고양이에 비유하고 있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매력적인 젊은 아가씨를 꾀어낼 궁리를 마친 존 삼촌은, 자기의 은밀한 연인인 ‘어머니’의 눈을 피해 딸을 만나기 위해 ‘나’의 귀에 속삭인다. “뭐든 원하는 게 있으면 나한테 오너라. 어머니는 걱정하지 말고. 그냥 나한테 찾아오면 돼.” 이렇게 말할 때 ‘나’는 ‘잠깐이지만 그의 모습이 정말로 잘 먹고 자라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나직이 가르랑거리며 등을 활처럼 굽히는 얼룩고양이처럼’ 보인다고 생각한다. 존 삼촌은 때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체셔고양이처럼 멍청해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어둡고 축축한 벽에 기대어 자신이 만든 그림자 속에 웅크리고 있는 교활하고 냄새나는 도둑고양이’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고양이에 빗댄 묘사와 그 상황이 너무나도 절묘해서 그저 감탄이 나온다.

다정함과 친절함으로 감춘 존 삼촌의 음흉한 속마음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쩐지 차가워진 어머니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집고양이, ‘작고 뺀질뺀질하고 땅딸한 남자’의 정체와 ‘미모가 사라져 겁을 집어먹고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자기 딸의 젊음을 시기해 질투에 사로잡힌 여인’인 ‘어머니’의 저열한 속내도 깨닫게 된다. 이 또한 성장이라면 성장이겠지만 참으로 그 대가는 쓰디쓰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대프니 듀 모리에를 경쟁상대로 느끼고 끊임없이 견재했던 듀 모리에의 친어머니와의 자전적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로 읽혀, 작품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왠지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복잡하고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친밀한 관계의 부도덕한 이면, 사랑스러움도 없고 로맨스도 없었다. 그녀도 자기 차례가 되면 이렇게나 어머니와 똑같은 가면을 쓴 채 거짓으로 점철된 가혹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집고양이’,  163쪽)



표제작인 <인형>은 여러 의미로 충격적이다. 이 작품은 액자식으로, 바닷가에서 발견된 한 권의 수첩 속 이야기를 스트롱맨 박사라는 이가 옮겨 적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박사는 ‘본문에 실린 글은 베이의 어느 바위 틈새에 깊이 감추어져 있던 바닷물에 젖어 상당 부분 색이 바랜 너덜너덜한 수첩에서 발견된 내용’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수첩의 주인은 결국 찾아내지 못했으며, 아무리 부지런히 탐문을 해보아도, 주인공의 정체를 밝히는 데 실패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아마도 수첩 주인은 수첩을 숨긴 지점 근처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시신마저 바닷속으로 사라졌거나 자신의 비극과 자기 자신을 잊으려고 노력하며 세상을 떠돌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수첩은 ‘인간은 스스로 제정신이 아니란 걸 알아차릴 수 있는지 알고 싶다. 너무도 끔찍한 공포와 너무도 크나큰 절망으로 가득차, 두뇌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때가 간혹 있다.’ 이렇게 시작함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아주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내용일 것임을 예고하는데, 실상 초반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리 심란하지는 않아서 조금 뜻밖이었다. 수첩의 주인인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부다페스트 출신 ‘리베카’라는 이름의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나’는 그녀에게 뜨거운 애정을 고백하지만, 그녀는 왠지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가까워져도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가까워진 듯하면 멀어지고, 멀어진 것 같으면 또 금세 가까워지고, 리베카는 ‘나’를 쥐락펴락하는 데 선수 같다. 리베카는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왠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런 그에게 리베카는 말한다. “나는 애정을 품을 만한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고, 사랑에 빠져본 적도 없어요. 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낀다기보다는 언제나 사람들을 싫어했어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리베카 곁을 떠나지 못한 채 그녀와 가학/피학적인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다가 마침내 맞닥뜨린 그녀의 비밀은 당시로서는 그리고 이처럼 심약한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 또한 리베카의 ‘비밀’이랄까, 그 비밀의 베일이 벗겨지는 광경을 맞닥뜨렸을 때는 헐 정말? 진짜? 하는 생각이 들어 좀처럼 믿기 힘들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텐데, 이 작품을 읽을 이들을 위해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인형>은 사디즘, 마조히즘, 관음증을 비롯해 문제의 그 장면에서까지 정말 여러 의미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아무튼 이 작품이 대프니 듀 모리에 20대에 쓰인 것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여년 전 작품일 텐데 이런 생각을, 게다가 리베카라는 여성이 ‘그런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는 대프니 듀 모리에의 상상력이 시대를 앞서도 한참 앞서고 있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사랑에 빠진 남녀의 심리를 절묘하게 포착한 단편이 많다. <점점 차가워지는 그의 편지>는 서간체 형식으로 오직 사랑에 빠진 남자의 관점으로 쓰였는데, 처음에는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갖 예의와 조심성을 갖추더니, 뜨거운 열정의 시기를 거쳐 여인의 마음을 얻은 뒤 조금씩 편해가는 모습이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성격 차이>나 <주말 >같은 단편에서도 사랑하는 남녀의 겉모습과 그 속마음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인생의 훼방꾼>이라는 단편은 ‘믿을 수 없는 화자’, 자기 자신이 늘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타인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데 탁월한, 소름끼칠 만큼 진저리나는 캐릭터를 창조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 단편집에서 대프니 듀 모리가 창조한 캐릭터 가운데 완벽하게 선한 인물은 없다. 겉으로는 제아무리 선함을 가장하고 있다하더라도 사실 그들은 무엇보다 자기 욕망에 충실하고, 그 욕망이 이루어지면 기뻐하고, 좌절되면 분노한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인간이다. 대프니 듀 모리에는 그런 인간의 속성을 차디차게 비웃는다. “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낀다기보다는 언제나 사람들을 싫어했어요.”라는 저 리베카의 말은 듀 모리에 그 자신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인간을 잘 관찰했기에 그런 저열한 속성까지 낱낱이 알고 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것도 무려 20대에 말이다. 서스펜스의 왕 대프니 듀 모리에. 그이의 국내 번역 작품은 이제 <희생양> 하나 남겨두고 다 읽었다. 안타깝다! 또 다른 책이 얼른 번역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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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4-02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이 리뷰 다 읽기도 전에 읽어야겠다고 아주 강하게 마음 먹게 됐어요. 사두고 안읽은 나의 사촌 레이첼도 읽고 싶어졌고요. 아 초조하네요 얼른 사고 싶어서.

20대에 이런 소설을 쓰는 사람은 천재일까요?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소설을 못쓰고 있는데 말예요. 언젠가는 근사하게 한 편 쓸거야...라고 생각하지만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없어요 ㅠ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타고나는 재능이란 생각이 듭니다.

잠자냥 2020-04-02 16:21   좋아요 0 | URL
대프니 듀 모리에는 천재 같아요. 이야기도 잘 만들어 내고 그 묘사하며... 휴... <나의 사촌 레이첼>도 정말 재미있어요!

다락방 2020-04-02 16:38   좋아요 1 | URL
저 레베카 엄청 재미있게 읽고 나의 사촌 레이첼도 부랴부랴 사두었거든요. 그런데 다른 많은 책들이 그런것처럼 저쪽에 치워져있어요...오늘 집에 가면 어디있나 찾아봐야겠어요. 인생... ㅠㅠ

단발머리 2020-04-06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름만 아는 작가인데 잠자냥님 리뷰 읽고 나니 당장! 읽고 싶네요. 얼른 서둘러야겠어요.
잠자냥님은 이제 <희생양> 하나 남으셨다고 하시니, 레베카, 나의 사촌 레이첼, 인형이 남아있는 제가 부러우시겠어요 호호

잠자냥 2020-04-06 10:3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ㅎㅎㅎ 레베카, 나의 사촌 레이철, 인형 등등 다 너무 재미있어요. 현대문학에서 나온 대프니 듀 모리에 다른 단편집도 그렇고요. 부럽습니다~!! ㅎㅎ

2020-05-07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07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