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 - 앤드루 숀 그리어 장편소설
앤드루 숀 그리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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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본 미국드라마 <퀴어 애즈 포크 Queer As Folk>는 게이들의 일상을 다룬다. 그 드라마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대부분의 게이들이 그 무엇보다 젊음을 높이 사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젊은 육체와 절정기에 이른 아름다운 외모가 노화로 인해 사라질까봐 노심초사하는 장면들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 인물들은 대개 끊임없이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금씩 시들어가는 젊음, 불쑥불쑥 나타나는 노화의 증거들…. 이런 징후들을 그들은 대부분 두려워했다. 젊음이 사라지고 그래서 외모가 볼품없어지면 또 다른 파트너를 만날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어디 그 드라마 속 인물들만 그러할까. 현실의 이성애자는 물론 바이,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등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노화를,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기를 꺼려할 것이다. 그런데 유독 그 드라마 속 게이들이 젊음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는 어쩐지 안타까운, 연민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들은 이성애자들처럼 어떤 제도화된 체제, 즉 결혼이라는 틀로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파트너십을 만들기가 어려웠다(물론 나는 결혼이 꼭 안정을 보장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어떤 게이들에게는 그런 제도조차 부러울 수 있다). 그중에는 운이 좋아서, 또는 서로 매우 성실한 파트너를 만나 결혼이라는 체제 안에 이르게 되는 커플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그래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아 헤매야 하는 대다수 게이들에게 젊음은, 그리고 그 젊음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은 목숨을 걸고 붙잡아야만 하는 그 무엇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젊음은 곧 외로운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셈이다.

<레스>를 읽다가 문득 그 게이 드라마가 떠오른 이유는 바로 그런 점 때문이었다. ‘레스’는 더는 젊지 않다. 중년에 접어든 지 이미 오래이며 이제 곧 쉰을 바라본다. 눈부셨던 젊음은 이미 그 곁을 떠났다. ‘어머니들이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높은 데까지 나무를 오르’던 열 살 도 지났고, ‘침대에 잠들어 있는 연인을 놀라게 해주려고 기숙사를 기어오르’던 스무 살도 지났으며 ‘인어처럼 푸른 바다 속으로 뛰어’들던 서른 살도 지났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마흔 살도 훌쩍 넘었다. 마흔아홉, 이제 무엇을 위해 뛰어들어야 할지 모를 나이이다. 어디 젊음만 그러한가. 그의 곁을 오래도록 지키던 젊은 연인 ‘프레디’도 떠났다. 9년 동안 함께 지냈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청첩장을 들이민 것이다. 상대는 레스 그 자신이 아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젊음도, 젊은 연인도 모두 한꺼번에 레스를 떠난 것이다.

프레디의 청첩장을 받은 레스는 고민한다. 둘이 오래도록 사귄 사이임을, 아니 동거한 사이라는 것을 결혼식장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알고 있을 터인데, 소심하기 짝이 없는 레스가 당당하게 결혼식에 참석할 리는 만무하다. 아니, 아무리 당당하고 쿨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토록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연인의 결혼식에 맨 정신으로 참석할 수 있을까? 술에 만취하더라도 그런 일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쿨하게 외면하지도 못하고 핑계를 찾던 레스는 서랍 속에서 보물을 발견한다. 이름 없는 작가인 그이지만 그래도 세계 곳곳에서 각종 섭외 편지(아니 그런데 이게 어떻게 무명작가란 말인가? )가 와 있던 것이다. 베를린에서는 계절학기로 학생을 가르쳐달라고 하고, 멕시코에서는 문학 컨퍼러스 초청장도 와 있다. 이탈리아의 문학상 시상식, 일본 요리 탐방 기사 요청까지! 그동안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초대장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그래 바로 이거야! 레스는 그 초대들에 응하기로 하고, 이를 핑계 삼아 프레디의 결혼식은 불참할 수밖에 없다면서 답장을 보낸다. 그러고는 드디어 이탈리아, 독일, 멕시코, 프랑스, 모로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났으니 즐거워야 할 텐데, 그는 그렇지 못하다. 전 연인 프레디의 그림자가 곳곳에서 떠오르고 설상가상으로 프레디를 만나기 이전에 15년 동안이나 함께 지낸 ‘로버트’의 그림자까지 드리워진다. 왜 아니겠는가, 멕시코 문학 컨퍼런스는 시인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레스의 오랜 연인이었던 로버트에 대한 심포지엄이다. 멕시코뿐만 아니라 어딜 가나 그의 옛 연인들, 그러니까 로버트 또는 프레디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당연하지 않은가? 15년, 또는 9년이나 함께, 그러니까 레스의 청춘, 그 젊음을 모두 함께 보낸 이들인데, 그 긴 세월이 여행지에서 쉽게 잊힐 수 있을까. 로버트와 함께 있었던 이탈리아의 호텔, 프레디와 함께 프랑스를 횡단했던 짧은 여행…. 이곳에서는 로버트와의 추억이 떠오르고 또 다른 곳에서는 프레디와의 일화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도 여행지이다 보니 간간이 새롭게 만나는 누군가와 썸을 탈 기회도 주어지는데, 그래도 이 남자, 레스의 머릿속은 로버트와 프레디 그 두 사람이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레스의 모습을 뒤쫓다보면, 그의 일생, 적어도 스무 살 무렵부터 마흔아홉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생 전반을 쫓아다니는 기분이 든다. 그는 젊고 아름다운 시절에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로버트를 만났고, 둘은 뜨겁게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그렇게 15년을 보낸 뒤, 로버트는 갑자기 레스를 떠난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젊다고 하기 어려운 레스가, 그토록 아끼던 파란 정장이 조금 어색해질 나이에 이르렀을 즈음, 새파랗게 젊은 청년 프레디와 사랑에 빠진다. 레스도, 로버트도 결국 사랑했던 것은 푸르고 싱그러운 젊은이. 젊음. 다시 오지 못할, 그래서 더 소중한 그 젊음이 아니었을까. 때문에 그토록 자기의 젊음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여행은 일정 기간이 끝나면 결국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하듯이, 인생 또한 줄곧 ‘현재’에 머무를 수는 없다. 다음,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시간의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가 그토록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쉰 살 생일도 코앞에 닥친다.

결혼식을 피하는 목적은 이루었지만 여행은 프레디의 기억을 잊게 하는 데 딱히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레스는 이 도피성 여행 중에 서서히 생각지도 못한 발견을 하게 된다. 그 깨달음. 아마 그래서 사람들도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일상을 벗어나서 잠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그간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 여행. 게다가 인간은 여행하듯이 이 사람, 저 사람의 마음속을 떠돌아다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사람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문득 어떤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으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그 사람과 이 사람, 그리고 또 저 사람 사이를 오가면서 웃고. 행복한 기분에 잠기고, 또 때로는 상처받고 헤매면서 젊음의 한 때를 지나 서른을 넘고 마흔을 넘어 중년에 접어들고 그렇게 늙어가는 게 인생은 아닐까.

여행 중에 레스는 자기에게는 본보기와도 같았던 루이스와 클라크 커플마저 파경을 맞이한 것을 알게 된다. 20년이나 함께 세월을 보낸 그들도 헤어진 것이다. 그때 루이스가 레스에게 한 말은 오래 곱씹어볼만하다.



“죽을 때까지 관계를 이어갈 수도 있다는 것도 사실은 사실이지. 사람들은 옛날부터 쓰던 식탁이 박살나고 있어도, 고치고 또 고쳤어도 계속 써. 그냥 할머니 것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야. 그렇게 마을은 유령이 되고 말아. 그렇게 집이 쓰레기 창고가 되는 거야. 그리고 내 생각엔, 사람들도 그렇게 늙는 거지.” (<레스>, 224쪽)


레스가 여행 중에 만났던 ‘조라’의 말처럼 사람들 모두에게 평생의 사랑 같은 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랑은 ‘다른 사람이 편히 잘 수 있도록 개를 산책시키는’ 것이며 ‘세금을 내는 거고 악감정 없이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다. ‘삶에 동맹을 두는’ 것이다. 사랑은 불도 아니고 벼락도 아니며 누군가와 나 자신이 늘 해왔던 그런 거라는 평범한 깨달음. 로버트도, 프레디도 레스를 결국 떠났지만, 그게 옳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영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붙잡고 있는 것들 때문에 유령 마을이 되고, 집은 쓰레기 창고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15년과 9년, 그 기간 동안 레스는 로버트, 프레디와 삶에 동맹을 두고 후회 없이 사랑했다. 그렇기에 레스의 마흔아홉 살까지의 인생은, 비록 소소한 슬픔이 있을지언정 그 전반부 모두는 ‘희극’이리라. 그가 아무리 ‘모든 순간을 갈팡질팡 넘어가며 바보’가 되고 ‘오해하고 말실수 하고 우연히 마주치는 그야말로 모든 것에, 모든 사람에 걸려 넘어지고도’ 레스는 자기 삶에서 이긴 것이다. 그 자신은 자기 삶이 얼마나 행복으로 이어졌는지 깨닫지 못하더라도.

레스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의 소설 <칼립소>처럼 오디세이를 뚝심 있게 기다려준 페넬로페는 없을지라도 뜻밖의 선물이 그를 기다린다. 때문에 레스의 쉰 이후의 삶도 전체적으로는 희극이지 않을까. 로버트가 레스에게 이야기했듯이, 지금 만나는 사람들은 절대 젊은 레스를 상상할 수 없을지 모른다. 절대로 레스는 쉰 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전부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젠 사람들이 항상 레스를 어른으로 생각할 테니까. 그를 진지하게 생각할 테니까. 많은 이들이 인생에서 젊음이 사라지고 나면 그 뒤의 삶은 그저 쓸모없이 덧붙여진 빛바랜 별책부록이 아닐까 회의감에 빠지곤 한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레스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한없이 비극 같은 인생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희비극은 인생에 적절히 뒤섞여 오면서 삶 전체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터덜터덜 지친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간 레스에게 뜻밖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듯이, 아무것도 기대할 것 없을 것만 같은 인생 후반기에 놀랄 만한 선물 하나쯤은 누구에게나 다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그 선물은 그래서 더 값어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레스>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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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5-28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휴...저 이 책 7일만에 된밥 먹듯이 꾸역꾸역 다 읽었네요.ㅎ 몇 번을 포기하려다 억지로 읽어 내려온게 아까워서요ㅎ 잠자냥님의 리뷰는 이렇게 재밌는데, 저는 이 작품이 어렵고 지루해서 혼났네요.ㅠ 우리의 레스, 마지막 장면은 이런 저에게도 선물같았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19-05-28 13:13   좋아요 1 | URL
하하하 ‘된밥 먹듯이‘라는 비유에 빵 터졌어요. ㅋㅋㅋㅋㅋ 그래도 마지막 장면은 괜찮았죠? ㅎㅎㅎ 책보다 재미난 리뷰라니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 책 찾아보니 번역문장 때문에 잘 안 읽힌다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coolcat329 2019-05-28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힘들게 읽었지만 레스는 미워할 수 없네요^^

다락방 2019-05-28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는 읽기전에 리뷰 제목부터 너무 좋았어요. 완전 훅- 들어오는 제목입니다.

그나저나 이 책도 읽어야지.. 생각한 책인데 또 벌써 읽고 리뷰를.
잠자냥 님.. 오늘도 정말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제가 잠자냥 님 리뷰 읽으려고 알라딘 계속 하는 것 같아요. 감사해요 ㅠㅠ

잠자냥 2019-05-28 14:27   좋아요 0 | URL
저를 비롯해서 젊음이 사라져가고 있는 분들에게는 더 위로가 될 책 같아요. ㅎㅎ
다락방 님이 알라딘 서재 메인이나 다름 없는 분이신데! 멈추지 말고 쭉~ 하셔야죠!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