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살문고에서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이 나오고 있다. 선집 가운데는 이미 다른 곳에서 출간된 책으로 읽은 작품(<치인의 사랑>, <열쇠>, <소년>, <슌킨 이야기>)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작품(<금빛 죽음>, <요시노 구즈>, <미친 노인의 일기>)도 있다. 앞으로 더 출간될 예정인 듯한데,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아닐 수 없다. 좋아한다는 말에 물음표를 붙인 까닭은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즐겨 읽는다고 말하기에는 뭐랄까 좀 멋쩍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쑥스럽다고나 해야 할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주로 여체의 미학에 탐닉하는 이야기에, 사디즘과 마조히즘, 페티시즘, 관음증 등등 인간의 이상(異常) 성욕을 다룬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 이상(異常)이라는 말에도 물음표를 덧붙이고 싶기는 하다. 저런 기호들을 모두 정상을 벗어난 행태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정상과 비정상은 누가 결정하는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인간이라면 누구나 조금씩 타인과 다른 성적 기호나 욕망이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사디즘, 마조히즘, 페티시즘, 관음증 등등이 정상을 벗어났다고만 할 수는 없지 않나 싶어진다.

이런 소재를 곧잘 다루기에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은 잘 모르는 이가 보기에는 그걸 읽는 사람마저 ‘변태’로 오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전철에서 그의 작품 중 <치인의 사랑>이나 <열쇠>, <만(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와 같은 책의 어느 한 구절을 읽는다고 치자. 흘끔흘끔 옆 사람이 내가 읽는 책의 한 구절을 본다면 그는 나를 변태 같은 책을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번에 읽은 <미친 노인의 일기>도 공공장소에서 보기에는 어쩐지 멋쩍은 부류에 속한다. 이 작품에는 노환으로 고생하는 77세의 노인이 등장한다. ‘미친 노인’이란 바로 그를 말한다. 그는 무엇에 미쳤을까? 상당한 재력가이자, 노환으로 매일 같이 병상일지를 쓰는 그가 미친 대상은 다름 아닌 그의 며느리 ‘사쓰코’이다. 아내와도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고, 자식들하고도 대면대면하다. 가족 구성원이나 그 관계를 보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산소리>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이쪽이 훨씬 파격적이고 에로틱하다. 실제로 이 노인과 며느리는 서로 주고받는 말부터가 심상치 않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예사롭지 않게 반말을 하는데, 그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자신을 욕망하는 시아버지의 마음을 이용해서 태연자약하게 사치품을 뜯어낸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이 노인은 며느리의 젊고 아름다운 육체를 탐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발’을 욕망한다. 급기야 그는 자신이 죽고 난 뒤에 며느리의 발밑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고자 기이한 일을 벌이게 된다. 이 부분에 이르면 ‘허허허, 인간의 욕망이란! ’하고 쓴웃음을 짓게 된다. <미친 노인의 일기>는 육체적 쇠락과 성불능 상태에서도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 그중에서도 발에 대한 과도한 집착(페티시즘), 이런 에로티즘이 시들어가는 한 인간에게 어떤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친 노인의 일기>는 발 페티시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주 오래전에 읽은 ‘후미코의 발’이라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단편을 떠올리게 하며, 노인이 젊은 여성에게 집착한다는 점에서는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 작품은 여든에 가까운 노인이 20대의 아름다운 부인을 얻어 그녀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며 행복에 빠져 사는 이야기로, 아름다운 여자에 매혹당하고 그녀에게 집착하는 각양각색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한편, 일기 형식으로 쓰였다는 점에서는 <열쇠>가 생각나기도 한다. <열쇠>는 남편의 일기와 아내의 일기가 번갈아 등장하는데, 부부가 서로 일기를 훔쳐본다는 전제 아래 서로의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물론, <미친 노인의 일기>에도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엿보이는데, 팜므파탈이라고 할 수 있는 며느리 사쓰코와 그녀를 숭배하느라 얼빠진 짓도 서슴지 않는 노인의 관계가 바로 그렇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치인의 사랑>이나 <만(卍)>이 아닐까 싶다. <치인의 사랑>의 ‘조지’와 ‘나오미’가 그 전형인데,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이런 관계를 통해 타인에게 절대적인 숭배를 받고자하는 인간의 허영과 욕망은 물론 아름다운 대상을 숭배하며 굴종하는 노예근성을 폭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이런 변태적(?) 작품만 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세설>과 <그늘에 대하여>를 읽으면 그에게 이런 면모도 있구나, 그래서 ‘대문호’로 불리는구나 끄덕끄덕하게 된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생각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더라도 그의 문장은 아름답다. <세설>은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은 정말 별 것 아닌 이야기를 심심하게 다룬다. 오사카 몰락한 명문가 집안 네 자매의 일상생활이 잔잔하게 그려질 뿐이다. 그 안에서 그 시절 일본 문화라든지 생활상이 놀랄 만큼 세밀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죽 읽노라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연 묘사와 함께 그 자연물에 빗대어 인간의 마음을 절묘하게 표현하는데, 읽는 순간 아, 하는 감탄이 나온다. <세설>처럼 고전적이면서도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분위기에, 문장이 무척 아름다운 작품으로 앞서 언급했던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도 있다.

한편, <그늘에 대하여>는 ‘음예공간예찬’이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졌는데, 이 책에서 ‘그늘’이라고 옮긴 ‘음예’란 ‘그늘인 듯한데 그늘도 아니고, 그림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모습’으로 우리말로는 선뜻 풀이하기 쉽지 않은 듯하다. <그늘에 대하여>는 일본의 다다미나 건축문화에 스며있는 ‘그늘’, ‘그림자’ 이미지에 대한 예찬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딱히 건축문화로만 정의 내릴 수는 없는데, 전통 연극, 교토나 나라의 사원들의 변화, 서양 종이와 동양 종이의 효용성 등 서구 문물과 대비되는 동양(일본)의 정서적인 ‘그늘’에 대한 찬미, 일본의 전통에 대한 찬미로 볼 수 있다. <세설>이나 <그늘에 대하여>를 읽노라면 별것 아닌 소재에서 뛰어난 묘사와 관찰을 통해 그토록 세심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이런 작품들을 읽노라면 단순히 여체 숭배에 집착한 초기 작품에 비해 후기로 갈수록 일본의 고전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에로티시즘과 전통미를 탁월하게 결합했다는 세간의 평가에 동의하게 된다. 그의 작품을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은 아마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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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2019-06-13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니다키 준이치로가 쓴 작품을 좋아합니다. 하나씩 읽어나가고 있어요.

잠자냥 2019-06-13 13:31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좀 변태작가처럼 인식된 게 있어서 안타까웠는데 말이지요. ㅎㅎ

다락방 2020-06-01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인의 사랑>을 사려고 둘러보다 잠자냥 님의 과거 페이퍼를 보게 되네요. 저는 작가의 이름, ‘다니다키 준이치로‘를 외우고 있지 못했는데, 밑에 링크해두신 책들을 보니 어쩌나요, <미친사랑>과 <만, 시게코토 소장의 어머니>를 읽었고 <열쇠>를 가지고 있네요? 모르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번 접한 작가라니, 부끄럽기 짝이없습니다. 후훗. 치인의 사랑 땡투합니다, 잠자냥 님. 얼마전에 읽은 책에서 치인의 사랑을 욕했던 것 같아 궁금해졌거든요. 우에노 지즈코 였던가... 아무튼 땡투 받으세요!

잠자냥 2020-06-01 09:18   좋아요 0 | URL
<치인의 사랑> 사셨어요? 아니되옵니다. 그것은!!!! <미친 사랑> 읽으셨다고 하셨지요?
<미친 사랑>이 바로 <치인의 사랑>이에요. 원제 <癡人の愛 >!! 어서 취소하세요.ㅎㅎ
<미친 사랑> 읽으셨다면 아마 ‘나오미‘라는 어린 소녀 집으로 데리고 와서 지 취향에 맞는 여자로 키워서 잡아먹는 변태남 이야기 기억하실 텐데요.

잠자냥 2020-06-01 09:23   좋아요 0 | URL
우에노 지즈코가 아마 엄청 욕했을 거 같아요. 다니자키 준이치로 대부분의 작품이 여성들이 읽기에는 좀(?) 역겨운 면이 있지요. 그럼에도 저는 줄기차게 읽기는 합니다. ㅎㅎ
아마 최근에 읽으신 <롤리타>처럼 이 <미친 사랑/치인의 사랑>도 다락방 님이 읽으시면 분노하실 지점이 여러 부분 있을 거예요.
<치인의 사랑/미친 사랑>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소설이라는 <겐지 이야기>에서 좀 차용한 것 같기도 해요. <겐지 이야기>가 어린 소녀 데려다가 자기 취향에 맞는 여성으로 키워서 잡아먹는 -_- ‘겐지‘라는 인간 이야기이거든요.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일본 고어로 된 이 오래된 소설을 직접 현대 일본말로 옮겨서 풀어낸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