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와 혼혈, 근대의 잔여들(허병식)
고아란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처음으로 상상했던 근대적 주체이기도 하지만, 가족로망스와 시민적 정상성을 상정하는 시민사회의 바깥에서 규제되고 관리되어야 할 존재로 발견되기도 했다.
혼혈인이란 경계 위에서 태어나 정체를 갖지 못한 자들이지만, 민족과 해방의 서사는 그들을 끊임없이 동일자의 자리로 기입시키려 한다.
그리하여 혼혈인이라는 주체는 국민국가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끊임없이 떠올리게 하는 존재가 된다.
...고아와 혼혈인은 이러한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그 배제의 영역 속에 머물러 있는 타자의 얼굴을 상연한다.
자기동일성의 우위 하에서 ‘존재론적으로‘ 간주된 동일자와 타자의 변증법은 실질적 사고 속에서 타자의 부재를 조직하고 타자에 대한 진정한 경험을 제거하며 타자성에 대한 윤리적 열림의 길을 봉쇄한다.(42)
...모든 분할 내에서 무한히 남겨지거나 저항하는 존재인 그 잔여들(고아와 혼혈인, 빈민, 이방인, 과부 등)은 진정한 정치적 주체로서 국민국가의 근대를 심문하고 있다.(43) - P4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