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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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어야 했다.

강신주씨 책 중에서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1, 2권 다음으로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최근 강신주씨에게 너무 푹 빠져있는 듯....ㅋ

 

철학이 매우 낯설기도 하고 어려워서 쏙쏙 이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일상 중 어느 순간 문득문득 강신주씨 책이 떠오를 때가 있다. 구체적 문구가 온전하게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순간에 떠올리고 싶었던 뭔가가 그 책에 있었는데..'하면서.. 그런걸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임에 분명한 것 같다.

 

강신주씨의 책 중 그나마 이해하기가 좀 수월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마르크스 철학을 제대로 공부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자본주의 체제를 마르크스의 입장을 통해 바라보거나 혹은 맹목적으로 마르크스의 견해를 따라 비판했던 게 전부였는데,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다른 철학자들의 입장을 접해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모던보이' 이상의 작품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보들레르, 라파르그, 벤야민, 니체, 고진 등등의 책을 직접 읽어보고 싶지만, 강신주씨와 같은 친절한 해설자 없이는 불가능할 것 같다;;

 

(93)짐멜은 "자유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특수성과 비교 불가능성이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표출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강조했.. (99)짐멜이 니체를 통해서 긍정하고자 했던 '질적 개인주의'는 인간이 새로운 역사로 나아갔다는 진보의 표시로 보기 어렵습니다. 겉으로는 자신의 개성과 욕망을 표현하는 자유가 실현된 듯 보이지만, 그것은 생산의 차원이 아니라 소비의 차원에만 국한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앞으로 자신의 개성과 욕망을 표현하는 자유가 생산의 차원을 포함한 인간 실존 전체의 문제로 확장된다면, 짐멜이 주장했던 질적 개인주의도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다루어지겠..

 

(174) 벤야민이 도박 문제에서 주목했던 부분도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의 종교성이란 테마였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게는 자본주의 자체가 또 다른 종류의 종교였을 뿐입니다. .. 사실 마르크스에게서 자본주의와 종교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사유되었지요. 마르크스는 종교를 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고통을 완화시키는 일종의 아편으로 생각했습니다. ..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가 현실이라면 종교란 현실과 무관한 공상입니다. 그러나 벤야민은 마르크스와 달리 자본주의 자체가 현실이고 동시에 공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벤야민은 대도시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행동이 돈이라는 신에게 바치는 기도라고 생각했습니다. ... 만약 돈이라는 신에 대한 철저한 복종, 그리고 신의 은총을 기다리는 소망과 기대 심리가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는 결코 기능할 수 없다고 보았..

 

(362) 우리와 우리 이웃들은 산업자본에 고용되어 수많은 상품을 만들어내지요. 그리고 노동의 대가로 얻은 임금을 자신과 이웃이 만들어낸 상품들을 구매하는 데 사용합니다. 산업자본의 소비 전략을 통해 결국 자신이 만든 상품을 스스로 구매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동시에 소비자라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물건을 자신의 임금 가치보다 춸씬 더 비싸게 소비한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가 멈추지 않고 작동하는 핵심 비밀이자 신비입니다. ... 자본주의하에서 돈은 분명히 자유라는 감정에 물질적 기초를 제공합니다. 호주머니에 돈이 두둑하면 자유의 감정, 두려움 없는 당당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원하는 상품을 마음대로 구매할 자유, 즉 이러한 소비의 자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을 적절히 생산할 수 있는 '생산의 자유'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생산의 자유'란 결국 자본가 자신이 독점하는 것..

 

(381) 소비 영역은 소비자가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산업자본의 음모, 나아가 소비자의 허영을 부추겨 소비를 촉진하려는 산업자본의 전략이 관철되는 매우 중요한 공간입니다. 소비 영역에서 전개되는 이 같은 산업자본의 음모와 전략을 폭로하는 것, 바로 이것이 보드리야르의 평생 숙원 사업이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이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한 '생산-소비 협동조합'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노동자가 노동자이기도 하면서 소비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자본가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부분이다. 일하지 않을 권리와 사지 않을 권리가 동시에 실천된다면..

 

www.fm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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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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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가진 혁명성> 부분에서.. 인성적이었던 내용.

"웃음이란 경직된 것과 기성적인 것, 그리고 기계적이고 무반성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들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저항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베르그송의 말대로 웃음은 기계와 같이 맹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말과 행동을 교정하려는 힘을 가지고 있다. ... 전체주의적 획일성과 관료주의적 경직성이 우리를 길들이려고 할 때, 우리는 웃음으로 저항할 수 있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호르세 수도사가 저지른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호르세 수도사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수도사들을 연쇄 살인했던 자이다. 호르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웃음의 가치를 알게 된 배신자들을 처단했던 것이다. 더 이상 신에게 불경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자신의 동료들의 아예 웃지 못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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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제전 1 - 개정판 김원일 소설전집 15
김원일 지음 / 강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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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까지의 장편 소설이다. 1950년 1월 부터 10월까지의 기록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1권은 1월과 2월의 이야기를 며칠 간격의 날짜별로 기록하고 있다.

 

이야기는 경남 진영읍 지나리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소작농 차구열이 지주 서유하를 살해한 뒤 종적을 감췄고, 지서의 순경들은 행방이 묘연해진 차구열과 무리를 찾기 위해 고심한다.

당시가 농지개혁이 선포된 직후라는 점이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 이 책의 제목을 '농지개혁 선포, 그 후...' 정도로 바꿔도 좋을 것 같다. 책의 인기는 떨어졌겠지만;;

 

농지개혁이 시행된다는 게 기정사실화되자 미리 토지를 처분하려는 지주들과 평생 고대해왔던 자작농의 꿈을 실현할 기회라고 생각해 무리해서 토지를 구입해 독촉에 시달려야 했던 소작농, 빈농들의 처지가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어린시절에 경험한 것들을 기억해내 증언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막 보이는 것 같다.

 

이 책 한 권의 내용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한마디 말을 꼽자면...

 

"뭐가 농지개혁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반봉건적 토지 소유제도의 타파라? 허울 좋은 공염불이지. 숫제 농민을 빼버린 채 지주와 정상배가 합작한 '지주 토지 처분법'이라면 몰라도, 누구 농지를 누구에게 어떻게 배분한다는 거요?" ...

 

"해방되던 해부터 농지개혁을 한다고 떠들던 게 다섯 해가 지난 아직까지 이 꼴로 끌고 있으니 무슨 농지가 온전케 남았겠어요. 유상몰수 유상분배니, 유상몰수 무상분배니, 무상몰수 유상분배니, 도무지 갈피 잡을 수 없게 정치가와 지주가 의기투합해서 설왕설래하는 사이 소작농들은 지쳐 나자빠지고 지주들은 그새 팔아먹을 땅 다 팔아먹고... 작년 사월 이십이일 이후 매매된 땅은 등기하지 못하게 돼 있다지만 농지위원회와 읍청놈들이 작당해서 매매 일자를 소급하는 데야 누가 이를 따지겠으며, 법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꺼."(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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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김영수 지음 / 창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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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내용을 이렇게 적확하게 표현한 제목을 가진 책이 또 있을까? 책을 읽어보니 왜 ‘역사의 등불’ 사마천인지, ‘피로 쓴’ 사기인지 알 것 같다. 부록 포함 670 페이지나 되는 분량이 좀 부담스럽기는 했다.

 

사마천의 <사기>는 최근에서야 전세계가 주목하는 역사서가 되었지만, <사기>가 쓰여진 당대에서부터(전한시대) 청 왕조가 붕괴될때까지는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사마천이 어떤 황제로부터도 시호를 내려 받은 적이 없고, 그의 무덤과 사당 역시 황제가 내린 현판이나 어비 없이 쓸쓸하게 관리되어왔다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이 책의 1장은 사마천의 고향을 방문한 저자의 답사보고서 같은 형식을 띠고 있다. 사마천과 관련한 문화유적들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2장에서는 사마천의 생애, 특히 그가 궁형을 받게 된 배경을 다루고 있는데, <사기>의 성격을 규정지은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3장은 <사기>의 체제와  내용 및 특징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본기, 세가, 열전까지는 읽어볼 생각으로 3장은 좀 대강 읽었다..ㅋ

 

(세가는 제후나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인줄 알았는데, 여기에 ‘진승’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좀 놀라웠다. 위정자 입장에서 보자면 반역자일테지만, 그의 시대적 역할을 높이 평가한 사마천의 안목이랄까.. 관점 역시 놀라웠다.)

 

사마천은 3천년에 이르는 중국의 역사를 130권의 책으로 총정리하였지만, 정작 우리는 그의 생물연대 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알 수 조차 없다는 현실이 참 애잔한 마음을 갖게 했다. 그에겐 몇 글자만 더 보태 자신의 태어난 연도 정도 남겨두는 일이 아주 하찮은 일이었겠지.

 

사마천은 흉노에 투항한 이릉을 변호했다가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역사 편찬을 마무리 짓기 위해 궁형을 자처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하였다. 이릉이 사마천의 절친 쯤 되는 줄 알았는데, 술 한번 같이 나눠마신 적 없는 사이였다니;;;

어쨌든 궁형을 받은 이후 사마천의 작업은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그 사건은 “사마천이 살아온 삶을 되짚어보게 했고,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게 했으며, 천명에 대해 의심하게 했다.”(312) 결국 <사기>의 내용과 성격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었다.

 

“이릉 사건은 사마천 개인에게는 비극이었지만 <사기>를 불후의 걸작으로 만든 동인이었다.”(장대가, 312)

 

당시 사마천에게 50만 전이 있었다면, 아님 50만 전을 빌려줄 친척,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궁형을 면할 수도 있었다. 사마천이 느꼈을 상실감과 배신감, 외로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다시 또 애잔함이...ㅠ

 

또 놀라웠던 사실 중 한 가지는 책 13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글이 당시에는 모두 죽간에 쓰여져 보관되었다는 사실이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니까 당연하기도 한건데, 그 규모를 상상하니 입이 떡 벌어진다. 안타까운 사실은 죽간에 쓴 내용을 베끼는 과정에서 오탈자가 생기기도 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사기>는 완전한 모습의 <사기>가 아니라고 한다. <사기>를 최초의 기전체 사서라고만 설명하는 엉터리 교사인 내가 그것의 온전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할 자격이나 있는건지... 열전, 세가, 본기 순으로 꼭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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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21세기와 소통하다
안희진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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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어떤 가치가 내면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실현되는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거라면 참된 가치가 아니라고 보았다. 이런 의식은 개인에게 명분, 신념인 것들인데.. 이것들은 어떤 것이 우월한 가치라고 하는 판단의 결과이다. 우월하다고 여겨지면 열등하게 보이는 것을 멸시하게 마련이고..그 순간 대립하는 마음이 생겨난다는 거다.


그래서 장자는, `외부로부터 들어와 자리 잡은 외래적 관념을 깨버리라`(31)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그게 가능해지는건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인간이 설정한 어떤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참 진리에 이르는 전제 조건이다`라고 했는데.. 벗어버리고 나면 과연 무엇이 남는지.. 모르겠다.

또 장자는,
"소인은 재물에 죽고 살며 군자는 명분에 죽고 산다. 추구하는 것은 비록 다르지만 둘 다 자기 본래의 덕성을 망가뜨리는 일이다."라고 했다. 군자뿐만이 아니라 소인 역시 쓰임이 있는 사람으로 보았고 세속적 기준을 넘어서면서도 자연의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상태로의 쓰임을 추구했다.

 

그렇지만 답답하게도.. 세속적 기준을 초월하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고 있다. 단지 "자리잡은 생각을 없애라", "없애라"하는데..;; 그저 공염불 처럼 느껴질뿐..

또, 쓸모가 없어야 본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부분은, 헛웃음이 날 뿐, 이해가 잘 안된다. 이 부분이다.
"이 나무는 분명 재목감이 아니어서 이처럼 커다랗게 자란 것이야. 아! 성인도 이 나무 같이 쓸모없는 까닭에 성인이 되었구나"(188)

게다가 장자에 따르면, 남의 눈에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그가 무엇인가 훌륭한 모습을 연출했거나 겉으로 보이게끔 한 것이기 때문에 도를 벗어난 것이 된다. 으..참....

결국 머리와 마음 속의 '나라는 것'을 버림으로써 어떤 행위에서도 나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게 하라는 건데.. 어려워보인다.

유가, 법가 등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것 같다. 도가적 삶을 흉내내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그치만 왠지 그처럼 되고 싶다ㅠ 하늘 끝에 걸린 잡히지 않는 구름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자꾸 자꾸 보면 좋을 것 같은 몇 마디를 옮겨 적어놓는다.

"상대적인 위치에서 대립을 통해 세상을 보면 영원히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정의와 진리를 위한다고 타종교를 공격하거나 남을 죽이는 일은 지금도 이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그것이 탐욕을 머릿속에 채우고 악행을 저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금전과 재물은 물질적 이욕이지만 명분과 이상은 정신적 이욕이다."

 

"사물과 나를 잊으면 사물과 내가 하나가 된다. 그 하나가 된 세계를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떤 사람을 참사람이라 하는가! <장자> 대종사편은 참사람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의 모습을 묘사했다. 참사람은 사랑이니 정의니 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잘나고 못났다는 세속의 가치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 살기 때문에 세상의 원칙과 예의는 지킨다. 그 모두 마음 속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을 고요하게 가져 근심하는 일이 없이 검소하게 먹고 입는다. 사람들과는 겸손하고 화기 넘치게 지내지만 결코 무리를 짓지는 않는다. 언제나 남에게 너그럽고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다. 말없이 깊이있게 처신하면서 마음 속에 감추는 게 없다. .. 참사람은 '오묘한 어둠 속에서 홀로 밝은 빛을 보고 소리 없는 고요 속에서 홀로 조화의 소리를 듣는다.' 자기 내면의 참된 자아와 대화를 하며 그것에 충성하는 일이 진정한 참사람이다." (288)

 

"마음 속 기품이 태연하고 조용하게 된 사람은 자연 그대로의 빛을 발한다. 빛을 발하는 사람은 인간 본래의 참된 자아로 산다. 남과 하나가 되는 지혜를 갖춘 사람은 마음이 고요하며 남들고 그 마음에 들어와 함께 한다. 그리고 하늘도 그를 돕는다. 이처럼 남과 하나가 된 사람을 하늘의 사람이라고 하며 하늘이 돕는 사람을 하늘의 자식이라고 한다." <장자, 경상초>(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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