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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김영수 지음 / 창해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글의 내용을 이렇게 적확하게 표현한 제목을 가진 책이 또 있을까? 책을 읽어보니 왜 ‘역사의 등불’ 사마천인지, ‘피로 쓴’ 사기인지 알 것 같다. 부록 포함 670 페이지나 되는 분량이 좀 부담스럽기는 했다.
사마천의 <사기>는 최근에서야 전세계가 주목하는 역사서가 되었지만, <사기>가 쓰여진 당대에서부터(전한시대) 청 왕조가 붕괴될때까지는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사마천이 어떤 황제로부터도 시호를 내려 받은 적이 없고, 그의 무덤과 사당 역시 황제가 내린 현판이나 어비 없이 쓸쓸하게 관리되어왔다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이 책의 1장은 사마천의 고향을 방문한 저자의 답사보고서 같은 형식을 띠고 있다. 사마천과 관련한 문화유적들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2장에서는 사마천의 생애, 특히 그가 궁형을 받게 된 배경을 다루고 있는데, <사기>의 성격을 규정지은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3장은 <사기>의 체제와 내용 및 특징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본기, 세가, 열전까지는 읽어볼 생각으로 3장은 좀 대강 읽었다..ㅋ
(세가는 제후나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인줄 알았는데, 여기에 ‘진승’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좀 놀라웠다. 위정자 입장에서 보자면 반역자일테지만, 그의 시대적 역할을 높이 평가한 사마천의 안목이랄까.. 관점 역시 놀라웠다.)
사마천은 3천년에 이르는 중국의 역사를 130권의 책으로 총정리하였지만, 정작 우리는 그의 생물연대 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알 수 조차 없다는 현실이 참 애잔한 마음을 갖게 했다. 그에겐 몇 글자만 더 보태 자신의 태어난 연도 정도 남겨두는 일이 아주 하찮은 일이었겠지.
사마천은 흉노에 투항한 이릉을 변호했다가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 역사 편찬을 마무리 짓기 위해 궁형을 자처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하였다. 이릉이 사마천의 절친 쯤 되는 줄 알았는데, 술 한번 같이 나눠마신 적 없는 사이였다니;;;
어쨌든 궁형을 받은 이후 사마천의 작업은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그 사건은 “사마천이 살아온 삶을 되짚어보게 했고,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게 했으며, 천명에 대해 의심하게 했다.”(312) 결국 <사기>의 내용과 성격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었다.
“이릉 사건은 사마천 개인에게는 비극이었지만 <사기>를 불후의 걸작으로 만든 동인이었다.”(장대가, 312)
당시 사마천에게 50만 전이 있었다면, 아님 50만 전을 빌려줄 친척,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궁형을 면할 수도 있었다. 사마천이 느꼈을 상실감과 배신감, 외로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다시 또 애잔함이...ㅠ
또 놀라웠던 사실 중 한 가지는 책 13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글이 당시에는 모두 죽간에 쓰여져 보관되었다는 사실이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니까 당연하기도 한건데, 그 규모를 상상하니 입이 떡 벌어진다. 안타까운 사실은 죽간에 쓴 내용을 베끼는 과정에서 오탈자가 생기기도 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사기>는 완전한 모습의 <사기>가 아니라고 한다. <사기>를 최초의 기전체 사서라고만 설명하는 엉터리 교사인 내가 그것의 온전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할 자격이나 있는건지... 열전, 세가, 본기 순으로 꼭 읽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