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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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욕망에 의한 죄의식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자기반성과 참회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후, 장, 박중위, 차동연 등 여러인물이 등장한다. 후는 박중위와, 장은 차동연 등과 하나의 이야기속에 등장하지만 등장인물 전부가 서로의 삶 속에서 관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 각자의 욕망이 천산수도원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서로 만난다.

이러한 이 소설의 특징을 저자는 글속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차동연의 천상의 벽서에 대해 묻고 장은 한 인물의 삶과 운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차동연이 알고 싶은 것은 천산공동체의 벽서였다. 장이 말하고 싶어한 것은 한 개인의 특별한 삶 속에 얼룩진 역사였다. 혹은 역사속에 얼룩진 한 개인의 특별한 삶이었다. 그것들은 한 이야기속에 들어있는 다른 결들이었다."(210)

저자 이승우는 확실히 자기만의 문체를 가진 작가인 것 같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자세히 묘사된다.
그래서 읽는이는 등장인물들의 사고의 흐름을 마치 그흐름 속에 떠다니는 부유물이 된듯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가 있다. 물론 이승우의 책을 읽은 건 처음이지만 왠지 김훈의 책을 읽고 김훈스러움을 느낄 수 있듯이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도 이승우스러움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독특하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들이 자기 내면의 욕망을 직면하고 참회하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한 부분들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위치에 서있는 이승우이기에 가능한 것 같은 문장들 때문에, 주인공조차 알지 못하는 자기 내면을 혹은 알고있지만 회피하고 싶은 추악한 일면들을 세밀하게 들려준다. 친절하게, 친절해서 때로는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의 차분함으로.

자기의 추악했던 욕망을 마주한 주인공 후는 처절하게 무너진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들은 마지막에 자기 나름의 참회의 기회를 갖는다. 스스로 만든 기회들.

"그는 자기를 압살롱과 동일시했고, 애써 압살롱이고자 했지만 그러나 또한 압살롱이기 전에 암논이며, 압살롱보다 더욱 암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웠다. 그는 자기 몸이 더럽고 끔찍하게 여겨졌으므로 그렇게 하면 더럽고 끔찍한 자기 몸이 자기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할 것 처럼 끊임없이 자기 몸을 상하게 했다."(280)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부정되었지만, 그전에 세상은 그들에 의해 부정되었다. 세상은 그들을 버렸지만, 그전에 그들은 세상을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버려지는 것이 그들이 세상을 버리는 방법이었다. 세상은 더이상 그들의 마음과 소망을 간섭하지 않았다."(346)

인간이 욕망하는 존재인 한, 순수한 우연이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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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상륙 작전 1 - 해방과 혼란 인천 상륙 작전 1
윤태호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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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선생님과 같이 읽기로 한 <독재자의 노래>를 사서 광장서적에 갔다. 저녁에 딱히 할일이 없어서 서점에서 책을 산뒤 근처 카페에서 읽다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아쉽게도 서점에 책이 없었다. 카페에는 가야겠고, 해서 이 책을 사게 됐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를 읽고 난뒤 역사만화물이 가진 매력에 푹 빠졌던터라ㅋ
 
이 책, 조선왕조실록 이상으로, 100°C 만큼이나 재밌다. 앞으로 나올 시리즈가 정말 많이 기대된다.

페이지는 적지 않았지만 발췌한 몇부분.

"가만...그러고 보면 해방을 상상이나 했었는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무와 바위가 마땅하듯 일본인의 존재도 마땅했다. 가지 말아야 할 곳과 살지 말아야 할 곳과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말하지 말아야 할 것과 듣지 말아야 할 것이 자연스레 체득됐다. 그것이 사라진 지금 남은 것은 혼돈과 광기, 그리고 불확실성이다. 누구나 내일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내일에 대해 알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해방을 기뻐하기에 해방은 너무 짧았다. ... 모두가 시대를 말하고 인민을 말하고 새
세상을 말하지만 나는 그속에 속하지 않은 듯했다. ... 모두가 비겁했던 사회보다 모두가 정의로워진 사회가 훨씬 두렵다. ... 욕망하는 모두가 두려웠다."

"가족이 전부 일본놈 덕보고 살다니! 이게 뭔 꼴인고"하며 철구의 종아리를 때리던 엄마가 마지막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삼촌봐요. 얼마나 매사에 열심인지! ... 돈 되는 일이면 체면이고 뭐고 일단 하는 거 아뇨. 친일했네 뭐했네, 해방되고 며칠 개잡듯 잡다가 이젠 죄다 한통으로 섞이지 않아요?"

해방 이틀만에 일본이 행정권 이양을 거부하고 점령군 행세하며 주둔한 미군이 대화 상대로서 한국인보다는 일본인을 우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정신적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된다. 엄마의 의식의 흐름이 바뀌어 가는 모습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해방 훨씬 전부터 어떤 '주의자'가 아니었다면 누구나 처세의 달인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절이었다.

"나는 친일이고 자시고 없소이다. 나는
생존당이요.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신념이란 게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단지 선택되어진, 언제든 쉽게 갈아입을 수 있는 외출복 같은 것이었을 거다. 그래서 우린 신념이라는 말을, 스스로 어떤 주의자라는 말을 가벼이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말에 생존에 대한 절실함이 빠진 상태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영화 변호인에서 처럼, 어떤 주의자라는 이유로, 실체도 없는 사상을 이유로 수도 없이 많이 사람의 인생을 짓밟아 온 한국의 현대사는 얼마나 불우하고 참담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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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2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2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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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e 1권을 정말 재밌게 읽었던 기억 때문에 2권도 사서 읽게 되었다. 일본의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전 재산을 탕진한 노름꾼 행세를 했고 죽는 순간까지 밝히기를 거부했던 김용환의 일대기를 다룬 '파락호의 비밀'. 역사채널 영상으로 먼저 접했던 이야기인데, 글로 접했을 때의 감동 역시 덜하지 않았다. 잊혀진 자들의 역사 '6264'는 서대문형무소 한 켠 방 한가득 붙어있던 낯선 애국지사들의 얼굴을 떠오르게 했다.
 
'귀신폭탄'에서는 1380년의 진포해전이 화포가 장비된 전함에서 함포 공격이 이뤄진 세계 최초의 전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양에서 이런 전투가 등장한 것은 200여 년이 지난 1570년의 레판토해전 때였다.
 
다산 정약용이 헤르만헤세, 루소, 드뷔시와 함께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기념인물이라는 사실 역시 새롭게 알게 됐다.
 
다른 영상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조선은 없었다' 영상은 유튜브에서 다운 받아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미국 내부에서 조차 역사상 최악의 위선적 재판이라 일컬어진다는 도쿄 전범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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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깊은 집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5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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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혼자서 읽기'에 도전. 이번엔 김원일이다. <노을>, <바람과 강>, <겨울 골짜기>, <늘 푸른 소나무> 등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왠지 어느 특정 시기의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인 것 같아서 하나씩 읽어보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방황하다가 우연히 읽게 됐는데, 정말 우연하게도 바로 직전에 읽었던 박완서의 <나목>과 시대 배경이 같았다. 그런데 느낌은 전혀 다르다.

 

두 작품 모두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박완서의 <나목>이 쓸쓸하고 어두운 느낌, 그리고 주인공의 상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반해 이 책 <마당깊은 집>은 왠지 애잔하고 애처롭지만 따뜻한 느낌,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성장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주인공과 엄마의 갈등관계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데, <나목>에서는 끝내 화해하지 않지만, <마당깊은 집>에서는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205) 나는 일 환 한장 없이 비어 있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꽂고 약전골목 쪽이 아닌, 종로통 쪽 어두운 긴 골목길을 천천히 빠져나갔다. 이제부터 나는 부모와 형제가 없는 고아라고 나 자신을 마음으로 매질했다. 한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대신 나 혼자 살아가야 한다고 나를 격려했다. 이제 어머니, 누나, 아우들도 영원히 찾지 않으리라. 어금이 응덩 물고 결심을 새기자 어느 사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220) 아침 밥상을 받자, 콩나물과 대파건더기 사이에 쇠고기 기름이 동동 뜨는 고깃국이 내 밥그릇 옆에만 놓여 있음을 알았다. 그 뒤로도 그렇다, 그렇지 않다며 변덕이 죽 끓듯 했지만, 그 순간만은 내가 어머니 아들임을 마음 깊이 새겼다. 목이 메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고, 어머니는 여전히 아무 말씀이 없었다. 나는 가출에 대한 죄갚음이라도 하듯 이틑날 아침부터 이모댁 도끼와 징을 빌려와 부지런히 장작을 패었다. 더러운 세월과 가난에 따른 분풀이라도 하듯 땀을 흘리며 열심히 도끼를 휘둘렀다.

 

주인공이자 화자의 아이스러움이 잘 드러나는 부분인 것 같다.

 

(249) 중년이 된 그런 우리 형제를 길수는 아직도 추운 겨울 밤하늘의 천사로, 아니면 쓸쓸하고도 다스운 등불이 되어 내려다보고 있을까. 그 하늘나라는 추위가 없고 굶주림이 없는 곳인지 알 수 없지만, 길수는 지금도 이 반도 땅 골골 샅샅을 사팔눈으로 살피며 얼굴 모르고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아뿌지'를 부르며 찾고 있을까. 그 유현한 세계의 사정을 나는 알 수 없으므로 겨울 밤하늘의 별무리 중에 떨어져 제 혼자 숨듯 나타나듯 반짝이는, 유독 추워 보이는 별 하나를 따로 볼 때마다 나는 그 별이 마치 막내 아우이듯 어린 날의 길수를 그려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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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도둑맞은 가난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1
박완서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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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나는 그렇게 천천히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아주 상식적이고도 완만한 궤도로부터 과감히 탈선해서 지름길로 삶의 재미난 것을 재빠르게 핥으며 가야하는 것이다.

 

(96) 밤이 깊다. 밤은 텅빈, 무엇으로도 충족시킬 수 없는 텅빈 내일을 몰고 오리라. 차라리 내일이 없었음 좋겠다.

 

(170) "어울리는 사이라는 건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보다 몇배나 더 축복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해. ... 지금 나에겐 어울린다는 게 훨씬 부러워. 조화, 균형..."(옥희도의 말)

 

(304) 김장철 소스리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달프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발고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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