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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상륙 작전 1 - 해방과 혼란 ㅣ 인천 상륙 작전 1
윤태호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음악선생님과 같이 읽기로 한 <독재자의 노래>를 사서 광장서적에 갔다. 저녁에 딱히 할일이 없어서 서점에서 책을 산뒤 근처 카페에서 읽다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아쉽게도 서점에 책이 없었다. 카페에는 가야겠고, 해서 이 책을 사게 됐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를 읽고 난뒤 역사만화물이 가진 매력에 푹 빠졌던터라ㅋ
이 책, 조선왕조실록 이상으로, 100°C 만큼이나 재밌다. 앞으로 나올 시리즈가 정말 많이 기대된다.
페이지는 적지 않았지만 발췌한 몇부분.
"가만...그러고 보면 해방을 상상이나 했었는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무와 바위가 마땅하듯 일본인의 존재도 마땅했다. 가지 말아야 할 곳과 살지 말아야 할 곳과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말하지 말아야 할 것과 듣지 말아야 할 것이 자연스레 체득됐다. 그것이 사라진 지금 남은 것은 혼돈과 광기, 그리고 불확실성이다. 누구나 내일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내일에 대해 알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해방을 기뻐하기에 해방은 너무 짧았다. ... 모두가 시대를 말하고 인민을 말하고 새
세상을 말하지만 나는 그속에 속하지 않은 듯했다. ... 모두가 비겁했던 사회보다 모두가 정의로워진 사회가 훨씬 두렵다. ... 욕망하는 모두가 두려웠다."
"가족이 전부 일본놈 덕보고 살다니! 이게 뭔 꼴인고"하며 철구의 종아리를 때리던 엄마가 마지막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삼촌봐요. 얼마나 매사에 열심인지! ... 돈 되는 일이면 체면이고 뭐고 일단 하는 거 아뇨. 친일했네 뭐했네, 해방되고 며칠 개잡듯 잡다가 이젠 죄다 한통으로 섞이지 않아요?"
해방 이틀만에 일본이 행정권 이양을 거부하고 점령군 행세하며 주둔한 미군이 대화 상대로서 한국인보다는 일본인을 우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정신적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된다. 엄마의 의식의 흐름이 바뀌어 가는 모습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해방 훨씬 전부터 어떤 '주의자'가 아니었다면 누구나 처세의 달인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절이었다.
"나는 친일이고 자시고 없소이다. 나는
생존당이요.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신념이란 게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 단지 선택되어진, 언제든 쉽게 갈아입을 수 있는 외출복 같은 것이었을 거다. 그래서 우린 신념이라는 말을, 스스로 어떤 주의자라는 말을 가벼이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 말에 생존에 대한 절실함이 빠진 상태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에 영화 변호인에서 처럼, 어떤 주의자라는 이유로, 실체도 없는 사상을 이유로 수도 없이 많이 사람의 인생을 짓밟아 온 한국의 현대사는 얼마나 불우하고 참담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