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7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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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을때 마음이 묵직해지는 느낌. 주인공의 질곡 짙은 삶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소설을 만난 것에 대한 기쁨 때문이기도 하다. 김원일의 소설 <마당깊은 집>을 읽었었는데 그때의 배경보다 2~3년 앞선 해방 직후 정부수립 즈음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소설보다 더욱 치밀하고 진솔하고 생생한 느낌을 준다. 이 작가, 정말 지독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당깊은 집> 역시 1인칭 시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노을>은 주인공 갑수가 고향에 계신 삼촌의 부고 소식을 듣고 떠나온지 29년이 지난 고향을 되찾으며 지우고 싶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현재에 이르고, 다시 회상하고, 다시 현재에 이르는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소설은 갑수와 아들이 고향을 찾는 날부터 시작해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의 단 사나흘의 시간을 담고 있지만, 갑수의 기억에 따라 되짚어지는 지난 날의 일들은 정부 수립을 앞두고 있던 1948년을 시작으로 한다.

 

갑수에게 아버지 김삼조는 애증의 대상이다. 백정으로 짐승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엄마를 구박하고 때려 결국 엄마와 누이로 하여금 자신과 동생을 남겨두고 집을 나가게 만든 공포와 원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일자무식의 아버지는 진영 시골에까지 흘러들어온 이념에 물들어 남로당 봉기의 주역이 되고, 짐승을 도륙하듯 마을의 지주와 관리들을 죽였다. 아버지의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아차린 갑수는 오로지 엄마와 아버지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전전긍긍 아파하고 절망한다. 봉기가 실패로 끝나자 아버지는 산 속에 숨에 지내다 월북을 시도했지만 발각되어 진영 읍내에서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야산대가 된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지서에 끌려가 모진 문초를 당했고, 갑수는 이웃의 소개로 부산에 있는 서점에서 일을 하게 된다.

 

어엿한 성인이 된 갑수는 서울 유명 출판사에 일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이제 더이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던 백정의 자식도 아니고, 좌익 빨갱이의 자식, 부역자도 아니지만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과거의 기억은 2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향을 등지게 만들었다. 그가 모진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고향을 앗아간 과거가, 지난 삶이 모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결국 갑수는 과거와 화해한다. 벗어날 수 없음을, 그 스스로 놓여나기를 원하지 않음을 인정함으로써 소설은 끝이 난다. 핏빛으로 얼룩진 지옥보다 더 지옥같은 과거라 할지라도 그곳에 자신의 뿌리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주인공의 성장통은 끝이 난다. 성장통이라 얘기 하기엔 고통과 절망의 사이즈가 비교조차 되지 않지만.. 

 

" 아버지를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여기던 엄마가 왜 저렇게 흥분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도 나처럼 아버지만 떠올리면 미움과 사랑이 한데 섞갈려 때와 곳에 따라 한 가지씩만 나타나는지 알 수 없었다." (259)

 

어린 동생 갑득이가 엄마가 사준 흰고무신을 자랑할 생각에 들떠 신나있을때, 아버지가 좌익의 선봉에 서있음으로써 자기 가족에게 닥칠 위험에 두려워하던 갑수가 결국 처음으로 소리내 울던 장면..

 

"나는 우는 방법 외 다른 방법이 없다는 듯, 울고 울었다. 흐느낌이 흐느낌을 부르고, 눈물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쏟아졌다. 내 울음이 아버지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나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 울고나면, 더 나올 눈물도 말라버릴 때쯤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도와 지켜줄 것만 같았다."(263)

 

""니만은 이 애비를 나뿐 사람이라고 생각지 말거래이." 나는 아버지 말에 울컥 눈물이 솟았다. 목이 메었다. 아버지 말이 거짓말이래도 좋았다. 어쩜 당신이 심심풀이로, 이유도 닿지 않는 줄 뻔히 알면서 해보는 희떠운 소리일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뒤, 아니 내일, 아니 먼 훗날, 그때 내가 당신을 욕하게 될지라도 지금은 아버지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리라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나는 다짐했다. 당신 외에 어느 누구도 나에게 아버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315)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아버지나 외삼촌은 스물아홉 해 전에 죽고, 그 무리의 이론자 지도자였던 배도수씨는 지금 펄펄 살아 대한민국 땅을 딛고 내 앞에 앉아 있는 현실을, 다 제가끔 타고난 팔자 소관으로 미루어버리기엔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 ...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니가 하며 낑중거렸던 아버지와 외삼촌이 거창한 사상 문제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비극 중의 희극이요, 희극이라기엔 너무 비극적인 종말이었다."(324)

 

"지금 노을진 차창 밖을 내다보는 현구 앞에 비친 아버지 고향도 반드시 어둠을 기다리는 상처 깊은 고향이기보다, 내일 아침을 예비하는 다시 오고 싶은 아버지 고향일 수 있으리라."(34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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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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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는 나폴레옹이 남겼다는 "중국인이들이 각성하면 세계가 달라질 것이다"는 말, 그리고 에피소드로는 마지막이 가장 인상적이다. 종합병원 의료납품 프로젝트를 독일에게 빼앗긴 이토 히데오의 회사. 눈 앞에서 거액의 프로젝트가 날아간 이유를 알고보니 그 중 하나가 '남경대학살' 때문이었다는 것. 1권은 이렇게 이토 히데오와 도요토미 아라키가 일본 정치인들을 원망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생각해보니 등장인물 일본인 두명의 이름이 공교롭게 철천지 원수 이토 히로부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앞부분이 같다. 작가의 의도된 설정인가?)

 

기대했던 만큼의 역작은 아닌 것 같다. 1권이라 여러가지 에피소드의 시작 부분만 나열 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왠지 산만하고, 숨이 가쁘고, 찜찜한 느낌이 든다. 산만하고 숨이 가쁜 건 이러저러 에피소드의 나열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설이 전체적으로 짧은 시간에 이뤄진 중국의 경제성장을 조명하고 있다보니 스토리와 구성 자체가 얽혀서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고 찜찜한 기분은.. 역시 돈이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속물 근성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과 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인맥, 중국말로 '꽌시' 뿐이다. 물론 꽌시 역시 궁극적으로 돈과 이익을 목적으로 한다.

 

소설이 결론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바가 무얼지, 그게 궁금해서라도 마저 읽긴 읽어야겠다. 중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왠지 한국인과 일본인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뭘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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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82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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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혁명 직전의 프랑스. 이제까지 세상에 없었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아무런 죄의식 없이 26명을 살해한 천재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 그루누이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로부터 생선 잔해 더미에 버려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는데, 어떠한 체취도 풍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삶, 그것이 그루누이로 하여금 모두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향수를 만들게 한 동력이 되었다. 결국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욕망이 사람을 살게 하기도, 죽게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소설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이 생각났다.

그루누이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향수보다 먼저 만들고자 했던 것은 '인간 냄새'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경멸하는 이유였던 무취의 존재라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만들려는 것은 바로 인간 냄새였다. 물론 지금 만드는 것은 임시 방편에 불과하겠지만 그는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인간의 냄새를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사실 <인간의 냄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얼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냄새가 달랐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냄새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그런 냄새가 있었다. .. 그들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기본적인 냄새. 사람들의 원시적 악취 속에 있을 때만 편안해 했고, 그 속에서만 안전하다고 느꼈다."(226)

이 대목에서 사람들 속에서 존재감을 인정받고자는 주인공의 절실함을 잘 느낄 수 있다.

또 주인공이 냄새에 집착하는 이유가 잘 나타나 있는 대목도 있었다.

"위대한 것, 끔찍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도 눈을 감을 수는 있다. 달콤한 멜로디나 유혹의 말에도 귀를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냄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냄새는 호흡과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냄새가 자신의 형제와 함께 그들 사이에 나타날 때 그것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법이다. 그렇게 인간의 가슴 속에 들어간 냄새는 그곳에서 관심과 무시, 혐오와 애착, 사랑과 증오의 범주에 따라 분류된다. 냄새를 지배하는 자, 바로 그가 인간의 마음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236)

향수의 완성을 마무리지을 마지막 여성을 살해한 뒤 목격자의 증언으로 결국 그루누이는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그런데 사형이 집행되려던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루누이가 완성된 향수를 뿌리고 등장하자 그가 처형되는 걸 보기위해 모인 사람들이 증오를 벗고 사랑을 입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목격한 주인공의 감정변화가 역시 그도 상처받은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는 자신의 승리가 무서웠다. 왜냐하면 자신은 단 한순간도 그 승리를 즐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바로 이 순간에 그의 내면에서 인간에 대한 모든 역겨움이 되살아나 승리를 철저하게 무너뜨려 버렸다. .. 항상 갈망해 왔던 일,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일에 성공한 이 순간에 그 일이 참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359)

살해당한 여성의 아버지조차 자신을 향해 달려와 복수를 하기는 커녕 격렬하게 안기는 순간 그루누이는 형언할 수 없는 증오심에 휩싸이게 된다.

소설의 엔딩은 정말 최고였다. 그루누이가 다시 나타나자 사랑에 빠졌던 사람들이 그루누이를 만지고자 벌떼 처럼 모여들었다. 그의 일부분이라도 갖고자 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루누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설의 엔딩이다.

"그러다가 처음에는 은밀히, 잠시 후에는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상할 정도로 당당한 기분이었다. 그들이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379)

공허함과 쓸쓸함을 쓰나미처럼 몰고 오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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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 & 로크 : 국가를 계약하라 지식인마을 22
문지영 지음 / 김영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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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는 혁명을 목전에 둔 1588년에 영국에서 태어났다. 초기 왕당파였고 청교도혁명이 일어나자 위험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11동안 프랑스에 머물면서 <시민론>, <법의 정신>, <리바이어던> 등을 저술했다. 1651년에 출판된 <리바이어던>은 절대군주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당파로부터 냉대를 받았고 금서로 지정되었다. 의회파로부터의 배척은 충분 이해가 되지만 왕당파로부터의 냉대는 조금 의외였는데 바로 홉스의 종교에 대한 이단적인 견해 때문이었다. 주권자인 리바이어던이 종교까지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당대에 홉스를 인정한 세력은 무신론자 정도에 불과했다는 설명이 홉스로 하여금 좀 안타깝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홉스는 국가를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의했다.
 
"국가는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 창조한 하나의 인격으로서, 다수 사람들의 평화와 공동의 방어를 위해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그들의 힘과 수단을 끝까지 사용할 수 있다."(75, <리바이어던> 17장)
 
홉스가 이상적인 국가 형태로 선호한 것이 군주정이기는 하지만, 그때 '왕'이라는 개인적 인격체는 더 이상 국가 그 자체와 동일시되지 않으며, 계약의 결과 확립된 국가의 통치자일 뿐이라는 점에서 당시 영국의 왕당파들이 옹호한 군주정과는 성격이 달랐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최근에 봤던 영화 변호인이 떠올랐다. '왕'이라는 단어를 '대통령'으로 바꿔서 '대통령이라는 개인적 인격체는 더 이상 국가 그 자체와 동일시되지 않는다'로 바꿔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발췌한 부분-
 
"17세기 유럽 전역을 휩쓴 종교적 갈등과 특히 시민전쟁을 치렀던 영국의 정치적 혼란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정치사상을 구상했던 홉스가 논의의 실마리를 공포의 감정에서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특히 '폭력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는 출생과 함께 그를 지배한 감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대사상가답게 그는 그것을 연구의 주제로 삼고 성찰했다. 모든 개인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은 '자기 보호' 이며, 이를 위해 국가, 그것도 강력하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 국가가 필요하다고 본 홉스 정치사상의 골격은 이렇게 해서 형성되었다. 다시 말해,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 공포의 감정에 대한 분석과 반성을 토대로 정치사상사에 한 획을 긋는 업적을 이뤄낸 것이다."(40)
 
"비록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지 못한 까닭에 살아생전에 지지자보다 적대자가 많았고, 후대의 평가도 부정적이거나 인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정치철학사에서 홉스의 의의는 결코 적지 않다. 우선 그는 영어로 철학을 시도한 최초의 인물이다. ... 영어로 철학하기가 가능했던 것은 홉스가 전통적인 철학 언어인 라틴어와 새로운 언어인 프랑스어로 전개되던 당대의 논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49)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규정한 이래 오랫동안 받아들여져온 (인간의) 자연적 사회성이라는 관념 대신 자연상태, 곧 자연권을 지닌 독립된 개인들이 각자 삶을 영위하는 사회 이전의 상태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사회계약은 자연상태와의 전면적인 단절을 통해 인위적으로 사회상태 또는 국가를 구성하는 핵심 수단으로 제시된다. 더욱이 홉스에게 계약의 과정은 주권자에게 정당한 권위를 부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이전 사상가들의 논의와 달리 근대적 성격을 획득한 최초의 것으로 평가받는다."(52)
 
'자연상태'에 대한 홉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유명한 구절...
 
"자연은 그 신체와 정신의 능력 면에서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했다. ... 우리가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갓는 '희망의 평등'은 '능력의 평등'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두 사람이 같은 것을 소망하거나 그것을 두 사람 모두가 향유할 수 없다면 그들은 적이 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신의 보존이나, 때로는 쾌락이 되기도 하는 그들의 목적 달성 과정에서 서로를 파멸시키거나 굴복시키려고 노력한다. ... 이로써 다음과 같은 점이 분명해진다. 즉 인간은 모두를 두렵게 하는 '공통의 힘'이 없이 사는 동안에는 전쟁이라 불리는 상태에 있으며, 그러한 전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58, <리바이어던> 13장)
 
"위대한 역사적 실천이나 이론들이 단 한사람의 업적인 경우는 없다. 그러나 근대 자유민주주의를 로크의 유산으로 보는데는 대체적인 합의가 있으며,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는 무엇보다 그의 사상이, 국가가 국민의 복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국가의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원리를 표상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108)
 
"로크의 논의에서 소유권이 자연권을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고, ... 로크의 자연상태는 개인들 간에 권리가 상호 인정되는 명백한 사회라는 것이다."(117)
 
"만약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토록 자유롭다고 한다면, 만약 그가 자신의 인신과 소유물에 대한 절대적인 주인이고 가장 위대한 사람과도 평등하며 어느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대체 그는 왜 그러한 자유와 결별하는 것일까? 왜 그는 이 같은 지배권을 포기하고 자신을 타인의 권력의 지배와 통제하에 복종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는, 자연상태에서 그는 그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향유가 매우 불확실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끊임없이 침해당할 위험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와 마찬가지로 왕이고 모든 사람이 그와 평등하며 또 그들 대부분은 형평과 정의의 엄격한 준수자들이 아니므로 그가 이 상태에서 가지고 있는 재산의 향유는 매우 불안하고 매우 불확실하기 때문이다."(122, <통치론> 제9장 123절)
 
"로크의 사회계약은 절대주권의 확립보다는 천부인권의 강력한 보장을 위해 고안된 것이었고, 따라서 계약 이후 설립되는 국가의 권력 행사는 개인의 자기소유권 및 자기결정권이라는 원칙에 구속되는 것이 당연했다. 사회계약의 결과 발생하는 국가의 주권자는 전체 인민이었으며, 입법권이나 행정권을 담당하는 자는 1인이든 다수의 집단이든 간에 주권의 대리자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계약의 목적을 위반하거나 불성실하게 수행할 때 그들은 인민에 의해 탄핵될 수 있으며, 불응할 경우 인민의 저항은 당연한 권리로 인정된다."(173)
 
"기독교적 세계관이 설득력을 잃은 상황에서 절대주의 권력 구조가 상당한 정도로 붕괴되고 대신에 민주주의적인 정치질서가 정당성을 확보해가기 시작한 19세기 이래의 역사적 상황에서 로크의 주장은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이를테면, 국가가 아니라 빈곤이나 시장의 횡포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 된 상황에서 계속 국가에 야경과 순찰의 업무만 맡도록 하는 것은 로크적 자유주의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견해가 그것이다."(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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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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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서 5일 동안 기록문화재 연수를 받는 동안 저녁에 짬을 내어 읽었던 책이다. 인간이 느끼는 48가지의 감정들을 스피노자의 <에리카>와 문학 작품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일상적으로 느끼는 감정들이 어디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그 감정을 느꼈던 순간의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줬던 것 같다. 감정 하나 하나에 대한 설명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짧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결론, 사람은 누구나 관심받기를 그리고 사랑받기를 욕망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발췌한 부분들이다.

 

- 이성은 감각들의 증거를 날조하도록 만드는 원인이다. 감각들이 생성, 소멸, 변화를 보여줄 때, 그것들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프리드리히 니체)

 

-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금방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다. 내 자신이 충분히 소중하고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타인이 나를 사랑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겠는가.

 

- 항상 떠날 준비를 하라. 상대방에 대해 항상 자유러워라! 이것만큼 상대방이 나에게 무관심해지거나 심드렁해지지 않도록 만드는 확실한 방법도 없다. 떠날 수도 있고 머물 수도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의 곁에 머물 수가 있다.

 

- 약자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발생하는, 강자가 되었다는 자부심 혹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존재감, 이것이야말로 연만의 감정 뒤에 숨겨진 이면의 정체다. 그렇지만 강자의 자부심은 오직 약자가 약자로서 계속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까지만 유지되는 법. 이 점에서 연민의 주체는 연민의 대상 만큼이나 약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131) ... 애인과 친구의 가치를 알려면 사실 내가 고통에 빠져있을 때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히려 내가 가장 행복할 때에 진짜 애인인지 가짜 애인인지 혹은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가 당신의 행복을 함께 행복해하고 당신의 불행을 함께 불행해하는 사람이어야만이 자신에게 애인이나 친구가 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136)

 

- 비극은 우리의 나약함에 있다. 자신의 본질적인 욕망을 지킬 수도 없다는 비겁함과 나약함이 또한 인간의 특징 아닌가. 자연은 아무래도 사디스트인가 보다. 욕망을 주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데, 동시에 비겁함도 아울러 인간에게 부여했으니까. 그렇게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 충분히 집을 벗어나 어디론가 갈 수 있을 때, 동경은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 과거를 동경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절정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현재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의 삶과 직면할 때에만 우리는 새로운 삶의 절정에 이를 수 있다. ... 꽃은 한번만 피는 것이 아니다. 모든 꽃나무는 매년 기적처럼 새로운 꽃을, 작년과 유사해 보이지만 결코 같지 않은 신선한 꽃을 피우기 마련이다. (198)

 

- 사랑했던 사람이 어느날 객관적으로 보일때가 있다. 바로 이때부터 우리에게서 사랑은 슬프게도 점점 떠나가고 있는 것이다. (229)

 

- 에밀졸라는 '드레퓌스 사건'과 반유대 감정으로 프랑스 사회가 발칵 뒤집혔을 때 <나는 고발한다>를 통해 지식인들의 양심에 호소했으나, 매국노로 몰려 영국으로 도망을 갔다. 다시 몰래 파리로 돌어왔으나 집에서 두통과 호흡 곤란을 호소하다 죽었다. 작가를 매국노라고 여긴 한 굴똑 소제부가 그의 집 굴뚝을 틀어막았다고 한다.(287)

 

- 후회에는 모든 불운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정신적 태도, 다시 말해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는 의식을 전제한다. 그렇지만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했다고 믿는 것만큼 거대한 착각이 어디 있겠는가. 이보다 더 큰 오만이 또 있을까. 결국 후회는 강한 자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자주 찾아오는 감정이다.(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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