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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 & 로크 : 국가를 계약하라 ㅣ 지식인마을 22
문지영 지음 / 김영사 / 2007년 9월
평점 :
홉스는 혁명을 목전에 둔 1588년에 영국에서 태어났다. 초기 왕당파였고 청교도혁명이 일어나자 위험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11동안 프랑스에 머물면서 <시민론>, <법의 정신>, <리바이어던> 등을 저술했다. 1651년에 출판된 <리바이어던>은 절대군주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당파로부터 냉대를 받았고 금서로 지정되었다. 의회파로부터의 배척은 충분 이해가 되지만 왕당파로부터의 냉대는 조금 의외였는데 바로 홉스의 종교에 대한 이단적인 견해 때문이었다. 주권자인 리바이어던이 종교까지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당대에 홉스를 인정한 세력은 무신론자 정도에 불과했다는 설명이 홉스로 하여금 좀 안타깝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홉스는 국가를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의했다.
"국가는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 창조한 하나의 인격으로서, 다수 사람들의 평화와 공동의 방어를 위해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그들의 힘과 수단을 끝까지 사용할 수 있다."(75, <리바이어던> 17장)
홉스가 이상적인 국가 형태로 선호한 것이 군주정이기는 하지만, 그때 '왕'이라는 개인적 인격체는 더 이상 국가 그 자체와 동일시되지 않으며, 계약의 결과 확립된 국가의 통치자일 뿐이라는 점에서 당시 영국의 왕당파들이 옹호한 군주정과는 성격이 달랐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최근에 봤던 영화 변호인이 떠올랐다. '왕'이라는 단어를 '대통령'으로 바꿔서 '대통령이라는 개인적 인격체는 더 이상 국가 그 자체와 동일시되지 않는다'로 바꿔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발췌한 부분-
"17세기 유럽 전역을 휩쓴 종교적 갈등과 특히 시민전쟁을 치렀던 영국의 정치적 혼란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정치사상을 구상했던 홉스가 논의의 실마리를 공포의 감정에서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특히 '폭력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는 출생과 함께 그를 지배한 감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대사상가답게 그는 그것을 연구의 주제로 삼고 성찰했다. 모든 개인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은 '자기 보호' 이며, 이를 위해 국가, 그것도 강력하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 국가가 필요하다고 본 홉스 정치사상의 골격은 이렇게 해서 형성되었다. 다시 말해,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 공포의 감정에 대한 분석과 반성을 토대로 정치사상사에 한 획을 긋는 업적을 이뤄낸 것이다."(40)
"비록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지 못한 까닭에 살아생전에 지지자보다 적대자가 많았고, 후대의 평가도 부정적이거나 인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정치철학사에서 홉스의 의의는 결코 적지 않다. 우선 그는 영어로 철학을 시도한 최초의 인물이다. ... 영어로 철학하기가 가능했던 것은 홉스가 전통적인 철학 언어인 라틴어와 새로운 언어인 프랑스어로 전개되던 당대의 논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49)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규정한 이래 오랫동안 받아들여져온 (인간의) 자연적 사회성이라는 관념 대신 자연상태, 곧 자연권을 지닌 독립된 개인들이 각자 삶을 영위하는 사회 이전의 상태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사회계약은 자연상태와의 전면적인 단절을 통해 인위적으로 사회상태 또는 국가를 구성하는 핵심 수단으로 제시된다. 더욱이 홉스에게 계약의 과정은 주권자에게 정당한 권위를 부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이전 사상가들의 논의와 달리 근대적 성격을 획득한 최초의 것으로 평가받는다."(52)
'자연상태'에 대한 홉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유명한 구절...
"자연은 그 신체와 정신의 능력 면에서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했다. ... 우리가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갓는 '희망의 평등'은 '능력의 평등'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두 사람이 같은 것을 소망하거나 그것을 두 사람 모두가 향유할 수 없다면 그들은 적이 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신의 보존이나, 때로는 쾌락이 되기도 하는 그들의 목적 달성 과정에서 서로를 파멸시키거나 굴복시키려고 노력한다. ... 이로써 다음과 같은 점이 분명해진다. 즉 인간은 모두를 두렵게 하는 '공통의 힘'이 없이 사는 동안에는 전쟁이라 불리는 상태에 있으며, 그러한 전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58, <리바이어던> 13장)
"위대한 역사적 실천이나 이론들이 단 한사람의 업적인 경우는 없다. 그러나 근대 자유민주주의를 로크의 유산으로 보는데는 대체적인 합의가 있으며,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는 무엇보다 그의 사상이, 국가가 국민의 복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국가의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원리를 표상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108)
"로크의 논의에서 소유권이 자연권을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고, ... 로크의 자연상태는 개인들 간에 권리가 상호 인정되는 명백한 사회라는 것이다."(117)
"만약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토록 자유롭다고 한다면, 만약 그가 자신의 인신과 소유물에 대한 절대적인 주인이고 가장 위대한 사람과도 평등하며 어느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대체 그는 왜 그러한 자유와 결별하는 것일까? 왜 그는 이 같은 지배권을 포기하고 자신을 타인의 권력의 지배와 통제하에 복종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는, 자연상태에서 그는 그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향유가 매우 불확실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끊임없이 침해당할 위험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와 마찬가지로 왕이고 모든 사람이 그와 평등하며 또 그들 대부분은 형평과 정의의 엄격한 준수자들이 아니므로 그가 이 상태에서 가지고 있는 재산의 향유는 매우 불안하고 매우 불확실하기 때문이다."(122, <통치론> 제9장 123절)
"로크의 사회계약은 절대주권의 확립보다는 천부인권의 강력한 보장을 위해 고안된 것이었고, 따라서 계약 이후 설립되는 국가의 권력 행사는 개인의 자기소유권 및 자기결정권이라는 원칙에 구속되는 것이 당연했다. 사회계약의 결과 발생하는 국가의 주권자는 전체 인민이었으며, 입법권이나 행정권을 담당하는 자는 1인이든 다수의 집단이든 간에 주권의 대리자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계약의 목적을 위반하거나 불성실하게 수행할 때 그들은 인민에 의해 탄핵될 수 있으며, 불응할 경우 인민의 저항은 당연한 권리로 인정된다."(173)
"기독교적 세계관이 설득력을 잃은 상황에서 절대주의 권력 구조가 상당한 정도로 붕괴되고 대신에 민주주의적인 정치질서가 정당성을 확보해가기 시작한 19세기 이래의 역사적 상황에서 로크의 주장은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이를테면, 국가가 아니라 빈곤이나 시장의 횡포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 된 상황에서 계속 국가에 야경과 순찰의 업무만 맡도록 하는 것은 로크적 자유주의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견해가 그것이다."(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