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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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표지에서 풍기는 느낌도 그렇고, 장르도 그렇고 평소 좋아했던 스타일은 아니다. 요즘 마음이 심란해서 뭔가에 집중하고 싶어 책에 다시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학교 도서관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이 책을 집어들게 됐다. 읽기로 한 이유는 딱 두 가지. 어떤 책이든 읽어야 겠다는 마음, 그리고 저자가 <냉정과 열정사이>를 쓴 사람이라는 것. <냉정과 열정사이>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영화로는 본적이 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잔잔하고 애잔한 느낌의 멜로 영화였던 것 같다.

 

화려하고 번잡한 도심 속 홀로 우뚝 서있는 도쿄타워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그려지진 않지만 쓸쓸함, 외로움, 고독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사랑도 그렇다. 열렬히 누군가를 사랑하지만(토오루가 사후미를), 그리고 자신의 사랑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채 여러명의 여자와 만남을 지속하지만(코우지) 그 둘 역시 외롭고 고독해보인다. 사랑받는 사후미도, 코우지를 버린 키미코도, 유리도, 요시다도 모두 외롭고 고독해보인다.

 

열아홉 고등학생인 토오루와 코우지에겐 각자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공통점은 그 연인이 모두 연상의 여인이라는 점이다. 정서적으로 감정이입하기 좀 힘들었던 부분이기도 한데, 토오루의 연인 사후미는 엄마의 친구이고 코우지의 연인 키미코는 친구의 엄마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토오루의 엄마가 자신의 친구와 아들과의 관계를 알게 됐을때 두 사람의 교제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가 자연스러운가?

 

사후미는 토오루에게 있어 '스위치'와 같은 존재이다. 오로지 그녀로 인해 토오루의 삶은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한 빛의 세상이 되었다가 어둠과 절망으로 가득한 어둠의 세상이 되기도 한다. 얼마전에 끝난 내 짧았던 연애의 경험이 계속 떠올랐다. 토오루의 모습이 한때의 나 같다고 생각했다. 전화 연락이 오기 전, 후로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느낌.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곳에 내가 없었다. 내 기분과 감정이 온전히 내 의지대로 컨트롤 되지 않았다. 아직도 난 정작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상실감을 뒤늦게 깨닫게 된 덕분으로 이별이 준 허전함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좋게 추억하는 부분이 훨씬 많긴 하지만, 여러번 곱씹어 생각해도 그때의 내가 가련하고 애처롭다.

 

"기다린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사후미와 연결된 시간. 이곳에 사후미는 없지만, 자신이 사후미에게 감싸여 있다고 느낀다. 지배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115)

 

예전이라면 아무 감흥없었을 문장이 너무나 가슴깊이 와닿았다.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말. 더이상 기대하고 기다릴 것이 없는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재미없고 기운빠지는 일인지, 요즘은 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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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을 탐하다 - 우리시대 책벌레 29인의 조용하지만 열렬한 책 이야기
장영희.정호승.성석제 외 지음, 전미숙 사진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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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내 마음 속의 언 바다를 깨는 도끼와도 같다." - 프란츠 카프카

 

 

책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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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길이 되는 곳, 산티아고 - 비움과 채움의 순례 여정
아더 폴 보어스 지음, 유지훈 옮김 / 살림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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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달 전쯤 1/3쯤 읽다가 던져둔 책이다. 심지어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다는 것도, 내가 읽다 말았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서점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여행집과 에세이를 찾아보기도 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재미를 못 느껴서 던져두기까지 했던 책을 다시 찾아 읽게 된 이유는 바로 직전에 읽었던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 때문이다. 순례를 떠났던 경험이 파울로 코엘료에게 삶에 대한 통찰과 영감을 주었듯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너. 무. 나 그곳에 있고 싶었다. 가고 싶었다.

 

꼬박 한 달. 800km를 온전히 내 두 발과 다리에 의존해 걸어야 하는 길고 험난한 여정. 12세기 중세인들은 목숨 걸고 유럽의 절반을 맨발로 횡단하기도 했다. 천 년 전에 이미 그곳을 다녀갔을 수백 만 순례자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곳.

 

돈을 모아야겠고, 일단 영어를 좀 배워야 겠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3대 순례지로 꼽히는 이유는 성 야고보가 순교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 야고보는 순교한 최최의 사도이자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스페인 민족주의가 그를 악용하여 무어인으로부터 나라의 통치권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후대에는 십자군의 마스코트가 되었다고 한다. 독실한 신자들이 봤을땐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남들은 걱정하지 않을 법한 일에도 노심초사 할때가 많았고, 혹시 불행이 찾아올까봐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바닥날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추구하려고 발버둥쳐 왔다. 안위와 성공을 위해 지금껏 달려온 것이다. 그러나 카미노는 그런 직관과는 사뭇 다른 길로 나를 인도한다.

 

-카미노는 '마음에 드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라도 좋아하라'고 말한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느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 52장 7절)

(성경에서 '발'과 '걷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천국으로 향하는 모든 길이 천국이다."

 

-성지는 우리 주변의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새로운 안목으로 세상을 보다보면 일상의 삶 가운데서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순례란 어떤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다. 대사건이 벌어졌다하면 순례자는 목격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증거를 찾아 길을 떠난다. 그는 남들이 겪었던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자신도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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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 개정판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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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는 길 위에, 보편적인 삶 속에 모든 것의 의미와 가능성이 녹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책. 죽기 전에 꼭 한번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고 싶다. 꼭 그 길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신 역시 보편자였음을 알게 됨으로써 나도 적어도 내 자신에게 만큼은 위대하고 가치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말이 필요없다. 그냥 강추.

 

p23. 무슬림 전통에 의하면, 모든 신자는 적어도 생애에 한 번은 메카로 순례를 떠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탄생 이후 첫 천 년 동안 세 개의 신성한 순례길이 존재했다. 누구나 그곳 중 하나를 따라 걷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축복과 관용이 베풀어졌다. 첫번째 길은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의 무덤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상징은 십자가이고,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로마의 방랑자'라고 불렸다. 두번째 길을 예루살레의 예수의 성묘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수상가(palmist)라고 불렸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그를 맞아준 이들이 흔들었다는 종려나무 가지가 그 길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길은 이베리아 반도에 묻힌 사도 야고보의 성 유골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곳은 어느 날 밤 양치지가 들판 위에서 빛나는 별을 봤다는 장소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후 성 야고보와 성모마리아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복음서의 말씀을 가지고 그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그곳에는 콤포스텔라(별들의 들판)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오래지 않아 모든 기독교도 국가의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도시 세워지게 되었다. 이 신성한 세번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에게는 '순례자'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그들은 가리비껍데기를 상징으로 선택했다.

 

p77. 인간은 결코 꿈꾸기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육체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영혼은 꿈을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 살아가는 동안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실망하고, 충족되지 못한 욕망 때문에 좌절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지요. 하지만 그래도 꿈꾸기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이 죽어버리고, 아가페가 들어갈 자리가 없게 되니까요. ...

선한 싸움은 우리가 간직한 꿈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우리 내면에 간직한 꿈들이 힘차게 꿈틀댈 때면 우린 용기 백배하지만, 그땐 아직 싸우는 법을 알지 못했지요.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그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을 때는, 전장에 뛰어들 용기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적대시하게 되고, 결국엔 스스로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자신의 꿈은 유치하다거나, 실행하기 힘들다거나, 인생에 대해 몰랐을 때나 꾸는 꿈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말이죠. 선한 싸움을 이끌어갈 용기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죽여버리는 겁니다.

 

p322. 저는 저 자신과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 하지만 받아들이기가 너무도 어려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이 먼 길을 걸었습니다. 주님,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이 힘을 지닐 수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가슴의 통증, 저를 흐느끼게 하고 어린양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이 고통... 이것들은 인간이 존재한 이래 늘 우리와 함께해왔습니다. 승리의 무거운 짐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마침내 실현되려는 꿈을 그냥 놓아버립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복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선한 싸움'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것들에 갇혀 있는 포로들입니다. 무엇을 할지도 모른 채 검을 찾기만을 바랐던 저 자신처럼..." ㅣ

 

"비범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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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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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다른 책 <연금술사>와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어렵다. 페이지마다 가슴에 콕콕 박히는 말들이 있고 그래서 뭔가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푼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그걸 간명하게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감정 노출의 과잉이라고 해야 할까? 인생과 사랑에 대한 정의가 여기 저기 난무해서 오히려 그것에 대해 더 바보가 된 느낌.

 

줄거리는 간단하다.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 '나'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책장을 드문드문 넘겨 봐도 주인공의 이름은 없다.) 결혼해서 십년을 함께 살았던 아내 에스테르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미하일이라는 신원 미상의 남자와 함께, 떠난다는 내용의 메모만을 남겨둔채. 주인공은 그녀가 사라짐으로써 그에게 남게 된 여백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 전처럼 청탁받은 원고를 쓰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아내와 함께 했던 일상이 혼자 남게 된 그에게 똑같이 되풀이되었다.

 

그는 아내와의 결혼 생활을 회상하고 그들이 나눈 대화를 되짚어보며 에스테르가 자신의 곁을 떠난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녀가 떠나려고 한다는 징후는 그동안 반복적으로 쭉 있어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때도, 그녀가 떠난 지금도 그는 에스테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그들의 결혼생활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곧게 뻗은 철로 처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같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서로의 꿈을 실현하는데 있어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극히 정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해 왔다.

 

주인공은 어느날 자신의 출판 사인회에서 미하일이라는 청년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주인공은 그가 자신의 아내와 함께 떠난 청년, 미하일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미하일에게서 에스테르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이후 주인공은 미하일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계획하게 되고 그에게서 에스테르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 노력한다.

 

미하일을 만날수록 주인공은 그의 어떤 영적인 힘에 점점 이끌리게 되고 그의 이성과 논리가 미하일 앞에서 무장해제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녀는 결코 주인공의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녀의 여행은 되려 남편에 대한 사랑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녀를 만나고 싶다면 적당한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그 '때'를 기다리는 시간은 주인공이 에스테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깊이 숙고하는 시간이 되었다. 얼굴이 석탄 가루로 새까맣게 된 광부과 깨끗한 광부 중 서로의 얼굴을 마주본 뒤 세수를 하는 사람은 얼굴이 깨끗한 광부일 거라는 이야기 처럼 결혼 생활 동안 아내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자기 일에 쫓겨 아내의 얘기를 들어주지 못했고,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도 질투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 역시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내로 하여금 상실감, 외로움을 느끼게 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주인공이 에스테를 찾아내 둘이 재회하게 되면서 소설을 끝이 난다.

 

"가장 큰 잘못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가장 가까이 사람에게 그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랑을 지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 것 같다..

 p61. 더러는 행복해 보이지. 하지만 그건 그들이 아무 문제도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계획을 세워. 결혼을 해야지, 집을 사야지, 아이는 둘을 낳고, 시골에 별장을 사야지. 그 계획들에 몰두해 있는 동안, 그들을 마치 투우사를 노리는 황소 같아.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과녁이 어딘지도 모른 채 달려들지. 자동차를 사고, 살하면 페라리를 사게 되기도 해. 그들은 사람의 의미가 그런 것에 있다고 믿고, 결코 의심하지 않아. 하지만 결국 자신도 모르는 마음 속의 슬픔이 그들 눈동자에 드러나고 말지. 당신은 행복해?

 

p129. 사랑은 길들여지지 않는 힘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통제하려 할 때, 그것은 우리를 파괴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가두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사랑을 이해하려 할 때, 사랑은 우리를 방황과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p227. 언제 생의 한 시기가 끝에 이르렀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한 주기를 마감하고, 문을 닫고, 한 장을 끝마치는 것. 그걸 뭐라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완결된 사람의 순간들을 과거 속에 놓아두는 것이다. 뒷걸음질 할 수 없다는 걸, 어떤 것도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나는 서서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내게 끝없는 지옥과도 같았던 지난 이 년여 시간들의 진정한 의미를 마침내 나는 엿보기 시작했다.

 

p230. 불청객이 찾아오면 겁이 나겠지

하지만 웃으면서 말하기

즐거운 하루였다고, 이제 어둠이 내려도 좋다고.

객이 와보면 알겠지

밭은 갈아두었고, 식탁도 차려놨고,

청소도 끝냈다는 걸

모든 걸 정리해두었다는 걸.

 

(오늘이 내가 살 수 있는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낌없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말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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