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 개역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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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행 관련 책 중 단연 최고라는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품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과 여행 중에 느끼는 인간의 심리를 이토록 세밀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글은 처음인 것 같다.

특히 공항에서, 비행기에서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감정의 묘사는 정말...

좋은 글은 자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것에 집중하는데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왜 보통, 보통하는지 알겠네.

"결국 내 몸과 마음은 나의 목적지를 평가한다는 임무를 앞에 두고 자기들의 기질에 따라서 공모를 하게 되었다. 몸은 잠을 이루기 힘들어했고, 더위, 파리, 소화가 잘 되지 않는 호텔 식사에 대해서 불평했다. 마음은 불안, 권태, 자유롭게 떠돌어다니는 슬픔, 경제적인 걱정에 몰두했다."(32)

"아름다운 대상이나 물질적 효용으로부터 행복을 끌어내려면, 그 전에 우선 좀더 중요한 감정적 또는 심리적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 요구들 중에는 이해에 대한 요구, 사랑, 표현, 존경에 대한 요구가 있다. 따라서 중요한 인간관계 속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몰이해와 원한이 갑자기 드러나면, 우리의 마음은 화려한 열대의 정원과 해변의 매혹적인 목조 오두막을 즐기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즐길 수가 없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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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 - 승정원일기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다
한국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번역팀 지음 / 한국고전번역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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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 보면, 내가 그 책의 첫 독자일 때가 종종 있다.

이 책 역시 첫장에 주름조차 없는(주름이 없다는 것은 아무도 펼쳐본 적이 없다는 것) 새 책이었다.


전에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편찬한 같은 시리즈의 책, <충무공전서 이야기>와 <최고의 소리를 찾아서>를 재밌게 읽었었기 때문에 이 책 역시 큰 기대를 갖고 읽게 됐다.

이 책 <후설>은 승정원과 <승정원 일기>를 다루고 있는데, 승정원 일기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방대할 뿐만 아니라 아직 연구가 진행중인 까닭 때문인지, 이 책을 읽었음에도 뭔가 2% 부족한 듯한 아쉬움이 좀 남는다.


승정원 일기는 조선시대 왕명출납을 담당하던 승정원에서 국정과 관련된 일을 일기형태로 기록한 책이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그리고 영조대와 고종대의 화재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지만 복구과정을 거쳐 현재 1623년부터 1910년까지 총 288년간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무려 3,245책, 2억 4,300만 자로 조선왕조실록의 5배 분량이며, 역대 중국역사를 기록한 이십오사(3,996만자), 명실록(1,600만자)과도 비교가 안 된다. 단일 서종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양이라니.. 실로 어머어마한 것 같다. 더 놀라운 것은 아직 번역 중에 있다는 사실과, 이 속도로 모두 번역하려면 10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한국고전번역원 한문교육과정을 이수해서 번역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면.. 좋겠지? 한문 공부 좀 꾸준히 해둘 걸ㅠ


이 책에는 영조 대의 기록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아마 정조 대는 아직 작업이 이뤄지지 못한듯.

신하들이 왕에게 말대꾸는 기본, 꾸짓기도 하고, 무안을 주기도 하는 대화 내용이 많이 있었다.

상상 속 왕의 이미지와 실제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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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 어느 노비 가계 2백년의 기록
권내현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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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이후 꼭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권내현 교수님의 책이다. 교수님의 '첫 단독 대중 교양서'라고 한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호적대장 일부를 바탕으로 양반이 되기를 꿈꿨던 노비 김수봉 가계의 이력을 기록한 책이다.

경상도 단성 지역의 양반 심정량의 사노비였던 김수봉. 그와 그의 자식, 손자, 증손자들의 호적을 추적하면서 호적에 나타난 역, 본관, 성씨 등의 변화를 통해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신분 상승을 실현해갔는지 보여주고 있다.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역사교육론에서 얘기하는 '역사가 되어 보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저자의 연구방법, 과정, 고민의 흔적들이 있는 그대로 담겨져 있다.

호적을 직접 접하면서 호적에 담긴 의미와 거기에 반영된 인간의 의도, 의지 등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이책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인 것 같다. 그동안 조선 후기 양반의 증가와 노비의 감소를 말로만 열심히 설명하려고 했으니, 나나 배우는 학생들이나 얼마나 무미건조 재미가 없었을까.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단에는 김수봉 일가의 끈질기고 지난한 신분상승에의 노력이 오늘날 제2, 제3의 김수봉들에 의해 여전히 진행중되고 있는 사실을 안타까워 하는 저자의 마음이 잘 나타나있는 것 같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평등하다는 선언은 기회의 균등을 의미할뿐 출생과 동시에 획득된 조건의 불평등을 염두에 둔 말은 아니다. 수봉가가 여러 세대에 걸쳐 좁혀 나간 심정량가와의 간극은 근래 들어 기회의 균등에도 불구하고 다시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성장으로 가는 사다리에 밀려난 이들은 수봉가처럼 또다시 기회를 엿보며 장기간에 걸쳐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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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다이어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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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 부분에 가계도가 그려져 있다. 백년의 고독을 읽었을 때의 기억이 두려움으로 되살아났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떠올리는데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정작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다행히 스톤 다이어리는 백년의 고독만큼 복잡하지 않았다. 주인공 데이지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의 일대기를 약 10년 씩 단위로 그려나가고 있다.

데이지의 탄생 장면은 영화 향수의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로누이를 생각나게 했다. 축복받지 못한 외로운 탄생.

머시는 데이지를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머시를 데이지의 엄마라고 하지말고, 그녀의 이름으로 불러야만할 것 같다. 소설을 읽고나면 이 느낌을 알 것이다.) 뱃속에 있을 때조차 아무도 그녀가 세상에 나올 것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심지어 엄마인 머시조차도.

그래서인지 데이지의 인생은 외로움과 고독으로 점철돼 있다. 데이지를 둘러싼 그녀의 가족, 이웃의 삶도 크게 다르지가 않다. 어쩌면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살게 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몰스킨에 옮겨 적었던 몇몇 구절.


​" 시인은 시가 끝나는 때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 더는 더할 것도 없을 만큼 단정하게 호흡을 멈추는 순간이 오기 때문일까? 여자는 결혼생활이 끝장난 때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 삶이 어느날 갑자기 과거와 미래 두 조각으로 잘려나갈 때일까. 흔히 전쟁은 행복이나 휴전이나 협정으로 종결된다고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전쟁은 그 자체로 소진되고 더는 아무런 보상도 기대할 수 없는 때, 그리고 문득 천박한 것으로, 커다란 세계가 저지르는 무례한 짓으로 비치기 시작할 때 끝나는 것이다. 일은 시작되고 끝나게 마련이다. 어떤 고요한 장 속에 이르는 순간, 우리는 갑자기 육체가 매끄럽게 기능하는 예층 가능성과 파멸의 욕구 사이의 기록에 놓이게 된다. 그때 우리는 불합리하고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른다. 그렇지 않으면 상상도 못했던 어떤 적이 나타나 훼방을 놓게 될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매니토바의 시골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행상을 한 에이브 스쿠타리는 이튼 우편 판매에 의해 사업을 잃게 되고 말았다.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109)

"그럼에도 그는 그런 표현들을 중얼거리며 외워보려고 했다. 그래서 만에 하나 아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예전의 자리를 차지하기로 마음먹을 경우 써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만약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것이 이런 바보 같은 말들이라면 기꺼이 그 요구에 응해줄 터였다. 펌프에 마중물을 붓듯이, 부드럽고 다정한 표현들을 쏟아부을 터였다:"(146)

"이렇게 고의적으로 왜곡과 생략을 뒤섞어 얘기하면서 그녀가 마음이 편했을지 그렇지 않았을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그녀는 그 일에 익숙해 있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수많은 남녀가 매일 아침 각자의 침대에서 눈을 뜨면서 자신의 삶에서 어떤 실체를 갈망하지만, 결국은 매일매일 자신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에 그치고 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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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인문학 - 도시남녀의 괜찮은 삶을 위한 책 처방전
밥장 지음 / 앨리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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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밥장의 세번째 책.

저자의 단골 빠에서 사람들과 인문학을 주제로 나눈 대화들을 엮은 책으로, 수다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재밌게 읽었다. 내용이 좀더 풍부하고 깊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신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어떤 그림이 나올까, 무지 기대가 됐다. 어렸을 때 광수생각을 보는 그런 기분?
밥장의 글도 좋지만 그림, 스케치가 참 좋다.

"돈은 밀물과 썰물처럼 의지와 상관없이 들어왔다 나갑니다. 하지만 추억은 애써 모아두지 않으면 결코 들어오지 않습니다. 추억이야말로 인생을 견고하게 버티게 해주는 재산입니다. 부지런히 추억을 만드는 사람이 진짜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추억은 머리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부지런한 손, 무거운 엉덩이, 그리고 쉴틈없이 걷은 발이 만듭니다."(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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