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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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독서모임, 두번째 도서로 선정된 책이다. 첫번째 책,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을 내가 추천했었던지라 다음 차 책 선정시 잠자코 있었는데, 국어쌤이 "분노의 포도 어때요?"라고 하셔서 말 떨어지기 무섭게 "좋아요!"라고 했다.

 

직전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는데, <위대한 개츠비>가 1920년대 미국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책이라면, 1930년대의 미국 사회를 잘 묘사하고 있는 책이 존 스타인벡의 <본노의 포도>라고 했었다. 그래서 꼭 읽어보리라, 수첩에 적어 놓았었는데, 국어쌤이 딱! 이 책을 불러준거다ㅋㅋ 1, 2권 합해서 900페이지 정도 되는데 엄청 재밌어서 이틀만에 다 읽었다.

 

미국의 경제대공황을 이야기 할때,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자동 연상하면서 마치 적어도 미국 내에서 만큼은 위기가 대수롭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단어로, 문장으로 표현되는 실제의 삶은 실로 얼마나 거대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책이다. 과거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이미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까지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소설이다.

 

심지어 로저샨이 마지막에 아이를 낳는다는 설정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싹튼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말은 예상을 뒤엎었다. 아, 이 책 정말 강렬하다. 책을 덮자마다 리뷰를 적으려니 흥분이 가시지 않아 감탄사만 연발. 가족공동체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본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권에는 대공황이 몰아닥친 미국의 농촌, 오클라마호에서 소작농으로 살아가던 톰 가족이 '트렉터'에 의해 집과 토지를 잃고 일자리를 찾아 반강제적으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게 되는 과정과 그들의 여정이 담겨져 있다.

 

2권은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톰 일가가 풍요로울 줄 알았던 그 땅이 오클라마호 이상의 지옥임을 깨달아 가면서 더 비참한 현실에 내몰리게 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트렉터가 농민들의 토지를 갈아엎는 장면을 "기어의 움직임에 따라 오르가슴을 느끼며 기계적으로 땅을 강간했다"라고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또,

 

"사람이 땅뙈기라도 조금 갖고 있으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일부고, 그 사람을 닮아가는 법인데. 사라이 자기 땅을 걸으면서 땅을 관리하고, 흉작이 들면 슬퍼하고, 비가 내리면 기뻐하고, 그러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 되는데. 그 땅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이 더 커지는 법인데. 농사가 잘 안 되더라도 땅이 있어서 사람이 크게 느껴지는 법인데. 원래 그런 건데."(78)

 

이 부분은 부모님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이었다.

 

"그놈들이 트랙터로 사람들을 쫓아내면서 우리한테서 뭘 빼앗아 갔는지 봐. 그놈들이 자기들 '이윤'을 지키려고 우리한테서 뭘 빼앗아 갔는지 보라고. 그놈들은 땅바닥에서 죽어 간 우리 아버지, 꽥꽥 소리를 질러가며 첫울음을 터뜨린 조, 밤에 덤불 속에서 숫염소처럼 날뛴 나를 빼앗아 버렸어. 그러고서 그놈들이 손에 넣은 게 뭐야? 여기 땅이 나쁘다는 건 하느님도 아셔. 몇 년 전부터 아무도 수확을 하지 못했다고. 그런데 그 개자식들이 책상에 앉아서 자기들 이윤을 지키겠다고 마을 사람들을 두 동강 내 버렸어."(107)

 

인상깊었던 구절을 옮겨 적으려니 끝이 없을 것 같다.

 

"산처럼 쌓은 오렌지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 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2권 255)

 

이 부분은 언젠가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그들 스스로 자기 땅의 주인으로 서는 날이 오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하지만, 이 소설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상황을 비극으로 몰고 간다.  

 

무엇보다 강렬하고, 충격적이며 말 못할 여운을 남기는 부분은 마지막 장면이다. 로저샨이 사산아를 낳음으로써 톰 일가는 마지막 희망까지 잃어버린다. 이 이상 더 절망적일 수 있을까, 하는 순간 더 깊은 절망이 찾아온다는 게 이 소설의 특징이다.

 

"아직 파국은 오지 않았다. 두려움이 분노로 변할 수 있는 한, 파국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432) 고작 이 정도가 이 소설이 보여주는 절망에 대한 유일한 위안이다.

 

그래서, 이 책의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이라는 것은, 사산아를 낳은 로저샨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중년의 한 남성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이다. 사형수인 아버지에게 젖은 물리는 여성을 그린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이 떠올랐다. 

 

이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소설의 제목인 '분노의 포도'.

분노는 분노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소설은 농민들의 본노가 쌓여만 가는 모습을 보여준 채 끝을 맺는다. 답답하다. 그래서 이 마지막 장면이 계속 의문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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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시절 열린책들 세계문학 103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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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소설을 차례 차례 읽을 예정이다. 첫번째 소설 <버마시절>(1935)을 먼저 읽었고, 앞으로 <카탈로니아 찬가>((1938), <동물농장>(1945), <1984>(1949)를 차례대로 읽어 볼 생각이다.

 

<버마시절>은 1920년대,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를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조지오웰은 영국에서 대학을 마친 뒤 버마로 건너가 '인도 제국주의 경찰'이 되었는데 영국의 식민주의 정책에 환멸과 회의를 느껴 사직서를 제출하고 귀국했다고 한다. 본인이 버마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이 소설의 주인공 플로리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플로리는 버마에서 활동하는 영국인 관리인데 다른 영국인들과는 달리 버마인에게 온건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비난이 두려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해 갈등하는 인물이다. 버마에 머무는 영국인들이 조직한 '클럽'에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고독한 존재이다.(플로리의 얼굴 한쪽 뺨에 큰 모반이 있는데, 이러한 설정은 플로리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연인 엘리자베스에게 결국 자신의 모반을 온전히 보여주며 청혼할 즈음 클럽 내에서 플로리의 발언 역시 자신감을 얻어 간다.)

 

반면 엘리스, 래커스틴, 베럴, 엘리자베스는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 버마 원주민들을 멸시하고 그들만의 세계에 접근하지 못도록 철저히 경계한다.

 

"물론 우리가 약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검은 형제들을 계몽시키러 왔다는 거짓말이죠. 아주 자연스럽지요. 하지만 그 거짓말이 우리를 타락시키고 있소. 당신이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으로 말이오. 우리에게는 천성적으로 협잡꾼과 거짓말쟁이가 되어 밤낮으로 우리 스스로를 정당화하라며 끊임없이 충동질하고 괴롭히는 기질이 있소. 이것이 우리가 원주민들에게 가하는 야만적 행태의 원인 중 하나죠. 영국인들이 스스로를 도둑으로 선언하고 합법적으로 도적질하고 있다고 인정하기만 해도, 그럭저럭 참아 줄 수 있을 거요."(54)

 

플로리가 가깝게 지내는 원주민 의사 베라스와미에게 하는 말이다. 영국인은 反영국적인데 반해, 인도인은 親영국적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영국 정부는 저들의 식민통치를 포장하기 위해 클럽에 지위 높은 원주민을 한 명 이상 포함시키라는 결정을 내렸다. 클럽 내의 모든 영국인의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플로리는 내심 베라스와미를 클럽의 의원으로 선출하고 싶어 했다. 원주민에게 온건적인 플로리를 동성애자로 몰아 클럽에서 추방하려고 하는 엘리스의 음모와, 베라스와미가 클럽 의원으로 선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야심 많은 원주민 우 포 킨의 계략으로 플로리, 베라스와미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만약 그가 전적으로 의사의 편에 선다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편지를 못 받았다고 하는 편이 훨씬 좋은 방법이다. 의사는 좋은 친구였지만 백인 나리 계급의 분노를 사면서까지 그를 옹호한다는 것은... 오, 아니, 안되는 일이지! 자신의 영혼을 구원받는 대신 전 세계를 잃는다면 그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플로리는 편지를 가로로 한번 찢었다.'(108)

 

아직은 자신의 모반을 떳떳하게 드러내기 부끄러워하는, 백인의 반발이 두려워 원주민을 편들이 주저하는 플로리의 모습이 인간적이라 느껴졌다. 그렇지만 플로리가 원주민을 대하는 태도는 엘리자베스의 말에서 잘 나타난다.

 

'그가 말하는 내용이나 방식은 그녀에게 모호하지만 깊은 불쾌감을 자아냈다. 왜냐하면 그녀는 플로리가 <원주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하고, 또 버마의 관습과 버마인들의 특성을 끊임없이 찬양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는 원주민들을 영국인들과 비슷한 품격을 지닌 존재로 표현하기까지 했다. 바로 이것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플로리의 사랑은 결국 이뤄지지 못한다. 플로리와 버마에서의 영국의 식민통치 역시 화해하지 못한다. <버마시절>은 플로리의 자살로 끝을 맺는다. 제국주의는 지배하는 자, 지배받는 자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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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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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미제라블>이 개봉되었을 때, 한겨레 21 주간지에 관련 기사가 실렸었다. 레비제라블 처럼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앞으로 더 개봉될 예정이라며, <안나 카레리나>와 <위대한 개츠비>를 언급한 기사였다. 제목은 친숙하지만 읽지 않아 내용은 모르는, 그런 책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 기사를 보고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인 피츠제럴드의 작품으로, 1920년대 미국의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재즈와 자동차, 도박은 1920년대 미국을 상징하는 것들인데, 피츠제럴드의 '재즈 시대의 왕자'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피츠제럴드는 실제로 물질적 성공을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개츠비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개츠비에게 삶의 지향점이자 목표, 목적이었던 데이지 역시 작가의 실제 아내와 비슷하다고 한다.  

 

1차 대전 이후 미국은 유례없는 경제 성장을 이루지만,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허황된 꿈을 쫓도록 부추겼고, 도덕적 타락을 낳게 했다.

 

"그들 모두 증권이든 보험이든 자동차든 뭔가를 팔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은 적어도 눈 먼 돈이 가까이 있음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꿰뚫어 보고 말만 어떻게 하면 그 돈이 자신의 것이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64)

 

"1919년에 월드 시리즈가 조작된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일이라고, 불가피한 여러 상황이 얽힌 결과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한 인간이 오천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믿음을 갖고 놀 수 있으리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금고를 폭파시키는 강도처럼 집요하게 말이다."(106)

 

개츠비가 주말마다 벌이는 사치스러운 파티에 부나비떼 처럼 모여 들었던 사람들이 그의 몰락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부분은 부를 통해 얻은 명성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잘 느끼게 하는 것 같다. 톰이나 데이지 같은 인물이 반성, 성찰 없이 살아나는 '부나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개츠비 자신도 전화가 걸려 오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고 이미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그 옛날의 따뜻한 세계를 상실했다고, 단 하나의 꿈을 품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것에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느꼈던 것이 틀림없다. 그는 장미 꽃이 얼마나 기괴한 것인지, 또 거의 가꾸지 않은 잡초 위에 쏟아지는 햇볕이 얼마나 냉랭한 것인지 알았을 때,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나뭇잎 사이로 낯선 하늘을 올려다보며 몸서리를 쳤음에 틀림없다. 현실감이라고는 없는 세계, 가엾은 허깨비들이 공기처럼 꿈을 마시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새로운 세계... 형체도 없는 나무를 헤치고 그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그 잿빛 환영의 인물처럼."(227~228)

 

여기서 '가엾은 허깨비들이 공기처럼 꿈을 마시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새로운 세계'라고 하는 부분은 1920년대의 미국, 그 자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츠비는 결국 허망하게 죽지만, 그가 적어도 톰, 데이지와는 다르게, 꿈과 환상을 간직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온갖 희생을 감내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개츠비'라고 쓰여지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달이 점점 높이 떠오르면서 실체 없는 집들이 녹아 없어져버리자 나는 서서히 옛날 네덜란드 선원들의 눈에 한때 꽃처럼 찬란히 떠올랐던 이 옛 섬이 어떤 곳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바로 이 섬이야말로 신세계의 싱그러운 초록빛 가슴이었던 것이다. 이 섬에서 사라진 나무들, 개츠비의 저택에 길을 내준 나무들은 한때 인간의 모든 꿈 중 마지막이자 가장 컸던 꿈에 소곤거리며 유혹했던 것이다. 덧없이 흘러가 버리는 매혹적인 한 순간 인간은 이 대륙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음에 틀림없었다."(254)

 

이 부분은 개츠비가 품고 있던 꿈, 환상이 미국을 낳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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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거라 - 어니스트 헤밍웨이 장편소설 열린책들 세계문학 199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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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수업 준비하다가 인터넷에서 1차대전에 대한 글쓰기수업 자료를 찾았는데, 관련 도서들 중 읽지 않은 것이 많아서 적어 두었었다. 개선문, 서부 전선 이상 없다, 귀로, 동물농장, 생명의 불꽃, 리스본의 밤 등.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도 그 중 한권이다.

지난주 목요일, 시립도서관에서 하는 인문학강좌를 들으러 갔다가 처음 자료실 구경도 하고 대출증을 만들어 이 책을 대여했다.

소설의 배경은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던 1915년, 이탈리아다. 주인공 헨리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전선에 참전한 미국인 중령이다. 엠블런스 후송 작업을 총 지휘하는 일을 맡고 있다. 전쟁 중 부상을 입어 밀라노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던 중 간호사 캐서린과 사랑에 빠졌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헤밍웨이가 1차대전 중 미국 적십자사의 자원병 장교로 뽑혀 구급차 운전사로 활약했던 실제의 경험담과 일치한다고 한다.

헨리는 부상에서 회복되자 다시 전투에 투입되었다. 오스트리아군의 공격에 밀려 부하들을 이끌고 후퇴하던 중 위장한 독일군으로 몰려 아군에 의해 총살당할 위기에 처한다.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해 캐서린과 재회했지만, 탈영병 처지였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스위스로의 망명에 성공하게 되면서 그곳에서 행복한 생활을 만끽하며 지낸다. 책의 마지막 5부는 이 행복이 어느 순간 불행으로 돌변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계속 느끼게 했다. 전쟁 소설이 해피엔딩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그리고 지금 누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돌연 불행은 찾아오더라, 하는 어떤 경험들 때문에.

제왕절개 끝에 태어난 아기가 죽고 회복하던 중 캐서린 마저 죽음으로써 소설은 끝을 맺는다. "잠시 후 병실에서 나온 나는 병원을 벗어나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걸었다."하며 소설은 끝이 나는데, 이러한 결말은 주인공에 대해 어떤 연민도, 동정도 불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기대나 희망 없이 연민, 동정도 있을 수 없을테니.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제목은 세파에 지친 헨리가 세상에 고하는 작별인사 처럼 느껴진다.

아, 제목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 중간에 한번 더 있다. '나는 혼자가 되어 기뻤다. 신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읽지 않았다. 전쟁 기사를 보고 싶지 않았다. 전쟁을 잊고 싶었다. 나는 혼자서 평화 조약을 맺은 것이다.'

실제 헤밍웨이는 부상 중에 병원에서 사귀었던 간호사와 결혼하지 않았고, 그 이후 네 명의 여성과 네 번의 결혼을 했다. 결혼한 세 명의 부인이 헤밍웨이를 떠난 이유는 그의 마초 기질을 견뎌내지 못해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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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5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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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은 정말 읽기 힘들었다.

5월 24일, 25일 광주 시내 외곽에서 벌어진 참상을 읽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관을 구하기 위해 화순으로 이동하던 시민군의 일부가 주남마을을 지나다 공수부대에 적발, 대규모의 총격을 받았다. 관을 구하러 가는 일에 합류하기 위해 동승했던 고등학생 박현숙과 고향에 가기 위해 버스를 얻어 탔던 일신방직 여성 노동자 고영자(22세), 김춘례(18세)를 포함 15명이 학살당했다. 3명의 부상자 중 남자 2명은 야산으로 끌려가 총살 당했고, 17살 홍금순만이 유일하게 생존했다.

 

송암동에 있는 저수지에서는 물놀이하던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두부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옆마을에서는 군인들이 신기해 쫓아가던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이 도로변에서 가슴에 총을 맞아 사망했다. 작은 몸뚱이의 어린 아이들이 아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했다.

 

계엄군끼리의 오인 사격으로 군인 5명이 사망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향이 광주인 명치. 시위대 속에서 형 무석과 동생 명기를 발견하고 가족을 향해 총구를 겨눠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부분이다.

 

"지금 이 순간, 저 눈앞의 도시 전체와 팔십만의 시민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 - 그들 모두가 그 거대한 그물 속에 한꺼번에 갇혀 있는 거였다. 그들 모두는 서로가 똑같이 포획당한 물고기일 뿐, 결코 적도 원수도 아니었다. 적은 정작 다른 곳에 있을 터였다. 병사들을 일순간에 맹목적인 증오와 폭력과 광기의 노리개로 만들어서 동족을 처참하게 살육하도록 만들고, 마침내는 형제와 친구끼리 서로 총구를 맞대도록 만들고 있는 자들. 저 거대한 그물을 한 손에 쥔 채 제멋대로 뒤흔들고 있는 자들. 이 추악한 범죄를 처음부터 음모하고, 조종하고, 관리하는 자들, 바로 그들이었다, 적은."(178)

 

자식들이 서로 대치하게 된 상황에 절망하고 있는 아버지 원구.

"원구는 비로소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시대의 어마어마하게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수레바퀴 밑에서 개개인의 삶과 운명이란 얼마나 미미하고 무력하기 그지없는 것인가를. 그 수레바퀴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누구든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린 채, 마침내는 폭포의 까마득한 낭떠러지까지 떠밀려가 저마다 무수히 짖기고 부서지고 바스라질 뿐이다." (314)

 

마지막은 도청 최후 항전 당시 무석의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이다. 희생당했거나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들의 대부분이 북한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간첩 집단이 아니라 한무석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인 것 같다.

 

"무석은 문득 자신이 어쩌다가 지금 여기에 서 있게 되었는지 어리둥절해지기까지 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일들이 꿈만 같았다. ... 자신의 눈으로 지켜보았던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참혹한 죽음... 그러자 무석은 두려움이 훨씬 가라앉는 듯했다. '두려워하지 말자. 만일 죽게 된다면, 그래, 촛불이 한 순간 깜박하고 꺼지듯이, 그냥 그렇게 죽고 마는 것이겠지. 후회 같은 것, 이젠 하지 말자...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총을 들게 되었을까. 칠수,봉배, 헌혈하고 나오다가 총에 맞아 죽은 그 여학생,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모두 이미 죽었거나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나 역시 잠시 후면 그들처럼 죽을 수도 있을테지. 그뿐이다.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민주주의니, 자유니, 정의니 하는 거창한 주제 따위를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어. 난 다만 이 추한 현실을 용서할 수 없었을 뿐이야. 인간이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는 것. 사람이 이렇게 개나 돼지처럼 처참하고 비루하게 죽임을 당할 수는 없다는 것.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말 어쩌다 보니까 총을 들게 되었을 뿐이지."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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