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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4차 독서모임, 두번째 도서로 선정된 책이다. 첫번째 책,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을 내가 추천했었던지라 다음 차 책 선정시 잠자코 있었는데, 국어쌤이 "분노의 포도 어때요?"라고 하셔서 말 떨어지기 무섭게 "좋아요!"라고 했다.
직전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는데, <위대한 개츠비>가 1920년대 미국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책이라면, 1930년대의 미국 사회를 잘 묘사하고 있는 책이 존 스타인벡의 <본노의 포도>라고 했었다. 그래서 꼭 읽어보리라, 수첩에 적어 놓았었는데, 국어쌤이 딱! 이 책을 불러준거다ㅋㅋ 1, 2권 합해서 900페이지 정도 되는데 엄청 재밌어서 이틀만에 다 읽었다.
미국의 경제대공황을 이야기 할때,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자동 연상하면서 마치 적어도 미국 내에서 만큼은 위기가 대수롭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단어로, 문장으로 표현되는 실제의 삶은 실로 얼마나 거대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책이다. 과거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이미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까지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소설이다.
심지어 로저샨이 마지막에 아이를 낳는다는 설정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싹튼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말은 예상을 뒤엎었다. 아, 이 책 정말 강렬하다. 책을 덮자마다 리뷰를 적으려니 흥분이 가시지 않아 감탄사만 연발. 가족공동체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본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권에는 대공황이 몰아닥친 미국의 농촌, 오클라마호에서 소작농으로 살아가던 톰 가족이 '트렉터'에 의해 집과 토지를 잃고 일자리를 찾아 반강제적으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게 되는 과정과 그들의 여정이 담겨져 있다.
2권은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톰 일가가 풍요로울 줄 알았던 그 땅이 오클라마호 이상의 지옥임을 깨달아 가면서 더 비참한 현실에 내몰리게 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트렉터가 농민들의 토지를 갈아엎는 장면을 "기어의 움직임에 따라 오르가슴을 느끼며 기계적으로 땅을 강간했다"라고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또,
"사람이 땅뙈기라도 조금 갖고 있으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일부고, 그 사람을 닮아가는 법인데. 사라이 자기 땅을 걸으면서 땅을 관리하고, 흉작이 들면 슬퍼하고, 비가 내리면 기뻐하고, 그러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 되는데. 그 땅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이 더 커지는 법인데. 농사가 잘 안 되더라도 땅이 있어서 사람이 크게 느껴지는 법인데. 원래 그런 건데."(78)
이 부분은 부모님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이었다.
"그놈들이 트랙터로 사람들을 쫓아내면서 우리한테서 뭘 빼앗아 갔는지 봐. 그놈들이 자기들 '이윤'을 지키려고 우리한테서 뭘 빼앗아 갔는지 보라고. 그놈들은 땅바닥에서 죽어 간 우리 아버지, 꽥꽥 소리를 질러가며 첫울음을 터뜨린 조, 밤에 덤불 속에서 숫염소처럼 날뛴 나를 빼앗아 버렸어. 그러고서 그놈들이 손에 넣은 게 뭐야? 여기 땅이 나쁘다는 건 하느님도 아셔. 몇 년 전부터 아무도 수확을 하지 못했다고. 그런데 그 개자식들이 책상에 앉아서 자기들 이윤을 지키겠다고 마을 사람들을 두 동강 내 버렸어."(107)
인상깊었던 구절을 옮겨 적으려니 끝이 없을 것 같다.
"산처럼 쌓은 오렌지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 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2권 255)
이 부분은 언젠가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그들 스스로 자기 땅의 주인으로 서는 날이 오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하지만, 이 소설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상황을 비극으로 몰고 간다.
무엇보다 강렬하고, 충격적이며 말 못할 여운을 남기는 부분은 마지막 장면이다. 로저샨이 사산아를 낳음으로써 톰 일가는 마지막 희망까지 잃어버린다. 이 이상 더 절망적일 수 있을까, 하는 순간 더 깊은 절망이 찾아온다는 게 이 소설의 특징이다.
"아직 파국은 오지 않았다. 두려움이 분노로 변할 수 있는 한, 파국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432) 고작 이 정도가 이 소설이 보여주는 절망에 대한 유일한 위안이다.
그래서, 이 책의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이라는 것은, 사산아를 낳은 로저샨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중년의 한 남성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이다. 사형수인 아버지에게 젖은 물리는 여성을 그린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이 떠올랐다.
이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소설의 제목인 '분노의 포도'.
분노는 분노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소설은 농민들의 본노가 쌓여만 가는 모습을 보여준 채 끝을 맺는다. 답답하다. 그래서 이 마지막 장면이 계속 의문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