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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두얼간이(김보영, 김재숙) 포함, 미라언니와 만난 자리에서 작가 박완서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나는 박완서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던지라 낄 수 없었던 게 좀 부끄러워서 다음날 학교에 출근하자마자 도서관에서
찾아 읽었다. 박완서의 책 중 아무거나 꺼내들었는데 그게 바로 이 책, <아주 오래된 농담>이다.
역사 교사인데도 공부가 짧아서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거의 의무적으로 역사 전문서, 역사 교양서, 심지어 역사 소설만 읽었더니 이런류의 책이 조금 낯설다.
제목의 '아주 오래된 농담'이란 주인공 영빈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같은 반 친구 현금이가 "난 훌륭하고 돈도 많이 버는 의사하고 결혼한 건데" 라며 장난처럼 던진 말이다. 영빈은 어쩌다보니 의사가 되어 있었고, 현금의 소식은 모른채 영빈은 영빈대로, 현금은 현금대로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갔다. 시간을 쪼개고 이어붙여 어떤 능동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도록 주어진 시간을 어쩌지 못하고 그저 살아내는, '사니까 살아지는 삶'을 살았다. 영빈은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생길때마다 현금을 배신하는 것 같은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그런 자신을 어처구니 없어 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현금을 만나게 된다. 잔잔하고 생기없던 영빈의 삶에 큰 물결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영빈은 몇십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현금이 살던 2층집에 피어있던 붉은 능소화, 현금이 농담으로 던진 '말 한마디'를 잊지 못했다. 기억해야지, 다짐에서 기억하게 된 것이 아니라 원래는 없었는데 생겨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까만 점처럼, 그렇게 영빈의 몸과 정신에 새겨진 존재였다. 어떤 찰나의 이미지, 인상 혹은 한마디의 말이 사람에게 그토록 오래 기억되기도 한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나에게도 그런 낡았지만, 강한 이미지가 있을까, 곰곰 생각해봤다...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크림슨색 니트..?
현금은 등장 인물들 중 유일하게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가장이라는 귀속지위, 의사라는 성취지위를 가진 자로서 자신의 지위에 주어진 의무만을 꾸역꾸역 해나가며 낙없이 살던 영빈에게, 현금은 일탈의 공간을 제공한다. 영빈은 그 일탈의 공간을 찾아갈때마다, '그 곳에 아직 현금이 있을까'라며 손에 닿지 않는 신기루를 쫓듯 불안해한다.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을 내 것으로 하려 할때 느끼는 불안이라고 해야할까.
소설은 제도가 허락한 삶과 허락하지 않은 삶을 영빈과 그의 아내, 그리고 영빈과 현금의 관계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지만 결국 제도가 허락한 범위내에서의 삶만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소설에 다른 또 하나의 대비되는 구조가 등장하는데,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의 삶과 그렇지 못하는 자의 삶이다. 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치킨 박'이라는 자, 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은 영묘의 남편 송경호이다. 영묘의 시댁은 재산이 수 조에 달하는 10대 재벌이다. 폐암에 걸린 아들에게 그 사실을 끝까지 숨기고 가문의 명성에 버금가는 장례의식을 치르기 위해 찬찬히 준비해간다. 결국 송경호는 자신이 낫고 있다고 믿다가 죽음을 준비하지도 못하고, 아내, 자식들과 마지막 이별조차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맞이한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당한 린치 한방에 돌연사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절망이 없기 때문이다."(P186) 라는 말처럼 송경호는 살기 위해 어떤 시도도 해보지 못한 채 죽었다. 두 눈을 부릅뜬 채.
반면 치킨박은 폐암 초기 선고를 받고, 병원 지하 기관실에서 자살했다. 초기에 발견되어 수술하면 완치될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음에도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모든 것을 가진 자가 코앞에 닥친 자신의 죽음 조차 인지하기 못하고 느닷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삶,
평생 치킨집을 운영해 모은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이제 막 삶의 여유를 갖게 된 자가 암 초기 진단을 받고 가족의 남은 인생을 걱정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삶.
인간은 타의에 의해 세상에 나지만 세상과 작별할 시점은 선택할 수 있다. 이걸 누릴 수 있는 삶이 행복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