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하미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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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질병임을 확실히 알게 해준 책. 우울증에 관한 사회적, 의학적, 역사적 맥락들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저자와 많은 인터뷰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인터뷰이들이 하나같이 저자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미 나아지고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 걸 보면서 항우울제 처방이 최선의 치료인듯 접근하는 방식이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저자가 마지막에 언급한 문제가 너무 와닿았는데. 우리의 일상은 주변 사람은 커녕 자기 자신을 돌보기에도 너무 바쁘다!!! 지쳐있다!!! 항우울제 처방 말고도 사회가, 공동체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인 거 같다. 우울증이 개인적 질병이라니, 여성 호르몬 때문이라니. 말도 안 된다!!!🤬👿

(발췌)
여성의 우울, 그 원인을 에스트로겐으로 한정하는 설명은 우울을 경험하는 여성의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맥락을 지워버린다. 여성은 감정 관리를 못하는 취약한 존재가 되고 의학적 설명 외에 자신의 고통을 둘러싼 배경을 살피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과연 맥락 없는 고통이 있는가? 23

세상은 존재하는 수많은 고통 중 어떤 것만을 선별적으로 인식하고 아파해 왔다. 역사적으로 늘 조롱거리가 되거나 침묵을 강요당한 고통이 있다. 유독 엄살로 여겨지는 고통이 있다. 우리는 어떤 고통에 더 아파하는가? 어떤 고통을 더 의심하는가? 자신의 고통을 포함해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41

진료실 안에서는 고통의 맥락이 삭제됐다. 그곳에서 중요한 건 우울의 원인이 아니라 우울의 증상이었다.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 제거하는 것보다는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 치료의 목표였다. 그러나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우울은 완전히 사라지기 어렵다. 46

당사자에게 진단이란 나의 우울이 병이냐, 병이 아니냐 하는 문제라기보다 누군가 나의 고통을 알아주는가, 알아주지 않는가의 문제이다. 고통을 계속해서 호소하는데도 반응하지 않는 사회에서 오래 홀로 버티던 사람에게 누군가의 ‘알아줌’은, 그것이 설령 신자유주의 시대 감정 관리의 결과이며 다국적 제약 회사의 자본주의적 책략이라 할지라도 소중한 것이다. 78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 주변인들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묻자, 두 가지가 실은 같은 질문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감정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감정을 수용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140

나의 감정이 인정받는가, 인정받지 못하는가. 이것은 사람을 죽고 살게 만드는 문제이다. 141

주 양육자를 킥아웃하고 빈 공간을 만들어서 그곳을 스스로 채워나가는 과정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 149

고통을 이해하는 문화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이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것과 같다. 돌봄에 가장 방해가 되는 건 바로 바쁜 삶이다. 일에 치인 사람은 자기 돌봄을 비롯한 모든 돌봄에 소홀해진다. 한국은 효율과 쓸모를 중심으로 발전해 오면서 이에 방해가 되는 모든 일들을 제물로 바쳐왔다. 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며 그들도 언젠가 늙고 병든다. … 고통을 잊으라 하지 말고 고통에서 시작해야 한다.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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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노부토모 나오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시공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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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자가 치매에 걸린 80대 엄마와 노환으로 귀가 잘 안 들림에도 불구하고 지극정성으로 엄마를 보살피는 90대의 아버지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일본에서는 다큐멘터리로 방송되고, 영화로도 개봉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영상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책에 옮겼다고 했는데, 기회가 되면 영화도 보고싶다.

파스텔 톤의 표지와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실제로 저자의 어머니가 새해 인사로 했다는 말)라는 왠지 미소짓게 만드는 제목이 풍기는 귀엽고 발랄한 느낌과 달리 책의 내용은 굉장히 뭉클하고 묵직하고..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저자는 치매 환자를 둔 가족에 대해 희망 또는 절망 어느 한 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치매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려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할 수밖에 없는 괴롭고 절망적인 순간들에 대해서도 아주 진솔하게 들려준다.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저자의 어머니는 복이 많은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헌신적으로 보살펴주는 남편, 치매 환자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간병 서비스 기관의 직원들 그리고 저자와 같은 딸이 있었으니까.

부모님이, 남편이, 아니면 내가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읽었더니 의외로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오히려 슬펐을 거 같은데, 담담하고 냉철해져야 한다는 어떤 결기 같은 게 계속 생겨나서 울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도 일본같은 간병시스템이 작은 규모의 마을 단위로 잘 이뤄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발췌)
사실은 팬티 기저귀 따위 입고 싶지 않다는 엄마의 자존심. 하지만 옷에 실례를 해서 딸을 괴롭히는 건 더더욱 싫은 부모의 마음. 그러나 아버지 앞에서라면 조금 실례를 하고 응석을 부려도 괜찮다는 신뢰감. 그리고 그에 응해 바닥을 닦고 엄마의 속옷을 빨아주는 아버지의 애정. 어떤 상황이건 모두 받아들이는 아버지와 엄마의 유대. 딸인 나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강하고 깊은 유대다. 195

도쿄에 있어도 간병 전문가들이 아버지와 엄마를 정기적으로 지켜주고 있다는 안도감. 그것이 있고 없고에 따라 정신적으로 이토록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나는 몸소 체험했다. 그리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비로소 ‘가족 셋이서 틀어박혀 있을 때에는 나도 상당히 우울했었구나’하고 깨달았다. 조금씩 기분이 우울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여가기 때문에 그 한가운데 있을 때에는 의외로 깨닫지 못한다. 214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나는 지금의 엄마를 더는,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 못돼먹은 딸이다 싶겠지만 지금의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아했던 과거의 엄마에 대한 기억이 고장 나버린 지금의 엄마로 덧입혀지는 것이 싫어서 나는 엄마와 진지하게 마주하기를 피하며 적당히 받아넘기고 있는 것 같다. 231

아버지가 엄마에게 고함치는 장면을 돌려볼 때마다 과연 나는 이런 식으로 엄마를 대할 수 있을까 싶어 숙연한 마음이 든다. 나는 이렇게 전력을 다하지 못한다. 스스로도 참 치사하다고 여기는 부분인데, 꼭 에너지 절약을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이미 치매 환자니까 그렇게까지 화를 내봤자 나만 지칠 뿐이라며 체념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에게 상처 주지 않고 나 자신도 가능한 한 상처 받지 않으려 ‘치매 환자를 대하는’ 매뉴얼대로 ‘착한 딸’을 연기하며 얼버무리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매뉴얼과는 관계없니 자신의 신념으로 엄마와 정면 승부를 보았다. 그리고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엄마라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엄마를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247

“간병은 부모가 목숨 걸고 해주는 마지막 육아다.” 이보다 정확한 말이 있을까. 부모가 자신의 전부를 걸고서 자식이 인간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마지막 육아.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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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8
조지 손더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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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얘기가 행복카게 끈나기를 원한다면,
좀 차캐지려고 노력카새요."

친절하고 창의적이지만 이기적이고 잔인하기도 한 인간을 향한 여우의 일갈. 책장을 덮는 순간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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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시간을 위한 말들 - 슬픔을 껴안는 태도에 관하여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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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특히 나에게 절실했던 위로.

(발췌)
가장 위대한 일은 오늘을 살아낸 것, 그리고 자신이 되도록 노력한 것이다. 30

“아니 그런데, 어떻게 늘 그렇게 평온을 유지했던 거예요?”
“내게 이 문제가 없었다면 다른 문제가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해.” 32

이걸 나에게서 가져간 건 다른 걸 잡으라고 주는 기회일 것이다, 이 손이 비어야 다른 걸 잡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잊어요. 34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확신하게 된다.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견디게 하는 것은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라는 사실을. 그리운 이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와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이 내 삶이 되리라는 것을. 71

반복되는 실패의 언저리에서 길을 걸으며 우리는 늘 되짚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내가 무얼 더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꿋꿋하게 열심히 사는 이들은 아득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 뭘 더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런 우리에게 어쩌면 같은 길을 걸었을 배우(오정세)가 말해준 것이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돌아오지 않은 건 당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거라고. 그러니 너무 실망하거나 지치지 말라고. 그저 무엇을 하든 그 일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 하길 바란다고. 108

우리는 우리가 잃은 것들 때문에 때때로 슬픔에 겨워하겠지만, 슬픔이 다시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들로 다시 또 삶을 이어나갈 것이다. 187

우리를 견딜 수 없게 하는 건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아닐 때가 많다.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을 때 우리는 한없이 무너져 내렸으니까. 나는 여태 무엇을 위해 이토록 달려온 거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토록 참고 견딘 거지. 내가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지. 고단한 노동보다 우리를 더 괴롭히는 건 이런 질문이 아니었을까. 아무도 내가 애쓰고 있다는 걸, 노력하고 있다는 걸, 버겁다는 걸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견디기 힘든 게 아니었을까. 221

책을 많이 읽고 나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바쁘고 해서 책을 많이 못 읽는 시기에는 약간씩 사람이 희미해진달까, 뭔가 좋지 않아요. 나 자신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느끼게 돼요.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허기가 느껴져서 며칠 동안 몰아서 정신없이 읽을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다 충전됐다,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나 좀 강해졌어, 씩씩해졌어,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개인적인 필요, 허기, 갈망 때문에 읽게 되는 것 같고요. 책을 읽지 않고 살아갈 때는 부스러질 것 같고, 몇 줄을 읽더라도 읽어야 부스러지지 않고, 부스러졌더라도 다시 모아지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298(한강 작가가 강연에서 한 말)

인생 내내 고통과 더불어 살게 될지라도 찰나의 행복을, 환희의 순간을 인간을 포기할 수 없다. 인간에게 어떤 순간은 전부이고 영원이기 때문이다.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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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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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강추👍



나는 공선옥 작가님의 책을 왜 이제서야 처음 읽었을까.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말, 글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정겹게 쓸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생각해보니 거의 몇 년동안 박완서, 공선옥 작가님과 비슷한 연배의 작가가 쓴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책 띠지에 “1부까지만 읽고서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 책이 ‘인생의 책’이 되리라는 것을.”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 ‘누군가’가 바로 나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젖은 솜처럼 책에 달라붙어서, 살짝만 눌러도 물이 흐르듯 울먹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하재영 작가님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었을 때도 그랬는데, ‘집’ 얘기에 왜 자꾸 슬퍼지는 걸까? 집이 대체 뭐기에?



집에 대한 기억은 나이테처럼 그 사람의 인생에 새겨지는 거 같다. 참 여러 개의 집(혹은 방)에서 살아보았는데 신기하게 하나하나 다 생각이 나고, 그때의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도 같이 떠오른다. 워낙 이사를 많이 다니고,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고시원, ‘방’에 많이 살아봐서 그런가, 결혼해서 제일 좋은 점은 집이 생겼다는 느낌, 이제 정착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 같은 거였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 집이 전세인 이상 주기적으로 전세금 상승과 월세로의 전환 압박에 시달리다 다시 떠돌게 될수도 있다는 걸 알고, 아니 직접 경험하고 좌절하기도 했었다.



집은 대체 뭔가. 인생이 애달파서인지 내가 살았던 모든 집이 애달프다.



작가님은,

“왠지 마음이 고적한 날이면, 어떤 그리움에 목이 메는 날이면 전라선을 탈 일이다. 그래서 하나도 특별할 것도 없고 하나도 별날 것 없는 곡성역이나 구례구역이나 괴목역에 내릴 일이다. 아무 목적도 없이 누구를 만날 일도 없이. 아무 일 없이 기차역으로 가서, 아무 일 없이 강물이 가까이 흐르는 기차역에 내리자. 그래서 강물이 헤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 일 없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리라.”(188쪽)이라고 했다.



이 책을 읽고나니 7~8년 전에 혼자 갔었던 구례구역에 다시 가고싶어졌다.



(발췌)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선생님이 무슨 마음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불쑥 책을 건네주었다. 그렇게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진짜 ‘책’을 만났다. 아궁이에 불을 때기 전에 물부터 퍼내야 하는 참담한 시간에 책을 봤던 것이 그때는 내게 무슨 영향을 주는 일일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아궁이 물을 푸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말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40



자신의 의지로건, 시대의 완력에 떠밀려서건, 시골에서 도시로, 그리고 서울로의 이주 행렬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떠나지 않고도, 제 난곳에서 살아도 만족스러운 삶을 세상이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그때 잘 알지 못했다. 48



적어도 집이란 게 그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집값 오르는 거 봐서 후딱 팔아치우고 떠나기 좋을 만큼의 짐만 가지고 사는 ‘임시 숙소’로서의 집이 아닌, 벽에 가만히 등을 기대고 앉으면 두툼한 시간의 더께가 내 등을 든든히 받쳐주는 집. 그것이 ‘집’이 아닌가? 116



나의 어머니는 마흔여섯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도 고향도 없어져버렸다. 내게 어머니 없는 집, 어머니 없는 고향, 어머니 없는 세상은 집도 고향도 세상도 아니었다. 이 세상 전부가 텅 빈 것 같았다. 어머니 없이 먹는 밥은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고 어머니 없는 세상에서 자는 잠은 아무리 자도 편한 잠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의 이 허기짐은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생긴 것일까. 딴은 그렇기도 한 것 같다. 왜냐하면 어머니 살아생전에 내가 먹은 밥은 언제나 그 출처가 명확한 것이었다. 쌀은 어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쌀이고 김치는 어머니가 직접 씨 뿌리고 가꾼 배추와 무로 만든 것이고 콩자반도 그렇고 고사리나물도 어머니가 우리 산 밭 등성이에서 따 와서 데쳐서 우리 집 마당 귀퉁이에서 말린 것이다. … 어머니도, 아버지도, 안 계신 지금 나는 또 어디 가서 명실상부한 ‘내 인생의 밥 한끼’를 먹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내 이 세상의 바람 맞아 허기진 영혼을 채울 수 있을까.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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