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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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강추👍



나는 공선옥 작가님의 책을 왜 이제서야 처음 읽었을까.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말, 글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정겹게 쓸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생각해보니 거의 몇 년동안 박완서, 공선옥 작가님과 비슷한 연배의 작가가 쓴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책 띠지에 “1부까지만 읽고서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이 책이 ‘인생의 책’이 되리라는 것을.”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 ‘누군가’가 바로 나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젖은 솜처럼 책에 달라붙어서, 살짝만 눌러도 물이 흐르듯 울먹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하재영 작가님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었을 때도 그랬는데, ‘집’ 얘기에 왜 자꾸 슬퍼지는 걸까? 집이 대체 뭐기에?



집에 대한 기억은 나이테처럼 그 사람의 인생에 새겨지는 거 같다. 참 여러 개의 집(혹은 방)에서 살아보았는데 신기하게 하나하나 다 생각이 나고, 그때의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도 같이 떠오른다. 워낙 이사를 많이 다니고,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고시원, ‘방’에 많이 살아봐서 그런가, 결혼해서 제일 좋은 점은 집이 생겼다는 느낌, 이제 정착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 같은 거였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 집이 전세인 이상 주기적으로 전세금 상승과 월세로의 전환 압박에 시달리다 다시 떠돌게 될수도 있다는 걸 알고, 아니 직접 경험하고 좌절하기도 했었다.



집은 대체 뭔가. 인생이 애달파서인지 내가 살았던 모든 집이 애달프다.



작가님은,

“왠지 마음이 고적한 날이면, 어떤 그리움에 목이 메는 날이면 전라선을 탈 일이다. 그래서 하나도 특별할 것도 없고 하나도 별날 것 없는 곡성역이나 구례구역이나 괴목역에 내릴 일이다. 아무 목적도 없이 누구를 만날 일도 없이. 아무 일 없이 기차역으로 가서, 아무 일 없이 강물이 가까이 흐르는 기차역에 내리자. 그래서 강물이 헤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 일 없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리라.”(188쪽)이라고 했다.



이 책을 읽고나니 7~8년 전에 혼자 갔었던 구례구역에 다시 가고싶어졌다.



(발췌)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선생님이 무슨 마음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불쑥 책을 건네주었다. 그렇게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진짜 ‘책’을 만났다. 아궁이에 불을 때기 전에 물부터 퍼내야 하는 참담한 시간에 책을 봤던 것이 그때는 내게 무슨 영향을 주는 일일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아궁이 물을 푸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말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40



자신의 의지로건, 시대의 완력에 떠밀려서건, 시골에서 도시로, 그리고 서울로의 이주 행렬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떠나지 않고도, 제 난곳에서 살아도 만족스러운 삶을 세상이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그때 잘 알지 못했다. 48



적어도 집이란 게 그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집값 오르는 거 봐서 후딱 팔아치우고 떠나기 좋을 만큼의 짐만 가지고 사는 ‘임시 숙소’로서의 집이 아닌, 벽에 가만히 등을 기대고 앉으면 두툼한 시간의 더께가 내 등을 든든히 받쳐주는 집. 그것이 ‘집’이 아닌가? 116



나의 어머니는 마흔여섯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도 고향도 없어져버렸다. 내게 어머니 없는 집, 어머니 없는 고향, 어머니 없는 세상은 집도 고향도 세상도 아니었다. 이 세상 전부가 텅 빈 것 같았다. 어머니 없이 먹는 밥은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고 어머니 없는 세상에서 자는 잠은 아무리 자도 편한 잠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의 이 허기짐은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생긴 것일까. 딴은 그렇기도 한 것 같다. 왜냐하면 어머니 살아생전에 내가 먹은 밥은 언제나 그 출처가 명확한 것이었다. 쌀은 어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쌀이고 김치는 어머니가 직접 씨 뿌리고 가꾼 배추와 무로 만든 것이고 콩자반도 그렇고 고사리나물도 어머니가 우리 산 밭 등성이에서 따 와서 데쳐서 우리 집 마당 귀퉁이에서 말린 것이다. … 어머니도, 아버지도, 안 계신 지금 나는 또 어디 가서 명실상부한 ‘내 인생의 밥 한끼’를 먹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내 이 세상의 바람 맞아 허기진 영혼을 채울 수 있을까. 197



#북스타그램📚 #춥고더운우리집 #공선옥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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