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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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진이 절반을 차지하는 여행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여행을 위한 책인지 책을 위한 여행인지 헷갈리게 한다. 그보다 나는 여행을 과시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자신을 위한 여행인지 타인을 위한 여행인지 헷갈리게 한다. 여행을 과시하는 사람은 진짜 가진게 없어서다. 그래서 나는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 기념품도 사지 않는다. 그건 여행에 방해만 될 뿐이다. 여행은 자유다.

우리의 삶 중 머리와 가슴이 가장 열려 있는 때는 여행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곤 한다. -13쪽

진정한 외로움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둘이 있어서 외로운 것이다.-62쪽

알고 보면 몸에서는 굉장히 많은 소리가 난다. 몸도 하나의 악기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고장난 그 악기는 불협화음을 낸다.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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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문 -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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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문-박민규

절대 믿어선 안 될 것은

삶을 부정하는 인간의 나 자살할 거야, 란 떠벌림이다. 그런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알콜릭 정도가 적당하다. 삶을 인정하지 않고선 실제로 자살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랄까, 결혼을 한 인간만이 이혼을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다. -17쪽

아침의 문 -박민규

아침이 해대는 기침처럼 한 움큼의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온다.-30쪽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 줬어요 -박민규

그리고 기나긴, 끝없는 내리막길을 휠체어를 타고 내려온 기분이다. 특히 지난 몇 년은 어디 남산 계단 같은 곳에서 누군가 휠체어를 떠민 느낌이었다. -45쪽

무종 -배수아

나중에 나는 한 친구에게 그때의 감정을 전달하면서, 나에게 운명이란 것이 있다면, 그곳은 그 운명조차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그런 예외의 섬이었다고 설명했다. 마치 꿈속에서 또다시 꿈을 꾸듯이, 여행지에서 다시 여행을 떠나온 마음. -102쪽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전성태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어머니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어머니는 매운 음식을 잘 드시지 못했는데 아버지가 드시려고 식탁에 올린 청양고추를 여러 번 베어 물었다가 물 들이켜기를 반복했다. -118쪽

이야기를 돌려 드리다 -전성태

조리뱅이. 메주콩 쑤는 날 솥에서 콩 주워 먹는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앞산 동굴에 산다는 조리뱅이-122쪽

통조림공장 -편혜영

왜 그러고 살았대?
누군가 깻잎에 흰 쌀밥을 말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물었다.
누군 안 그러고 사나?
밥을 씹으며 누군가 대꾸했다. 대답에서 비린 고등어 냄새가 풍겼다. -193쪽

투명인간 -손홍규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거실 안에 패총처럼 쌓였다.

-나는 내가 스스로 태어나지 못하고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원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아버지는 내 죄의 유일한 근원이었다. -227쪽

투명인간 -손홍규

일상이 부식되어 탁한 녹물로 흘러내리는 집에서 그와 나는 고치 속에 웅크린 유충처럼 안전하게 하루를 소화시켰다. -236쪽

그곳에 밤 여기의 노래 -김애란

바람은 자기 몸에서 나쁜 냄새가 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노인처럼 주춤거리며, 저도 모르게 물컹해져, 저도 모르는 봄 비린내를 풍기고 있다. 입춘까지는 보름이나 남았지만, 도시는 감기를 앓듯 간절을 앓느라 어렴풋한 미열에 달떠 있었다. -243쪽

그곳에 밤 여기의 노래

살림을 차린 후, 용대와 명화는 수중의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반지하 방에서 살만 섞었다. 열에 달뜬 청춘처럼 새삼스럽게. 늙은 추방자들처럼 절박하게 말이다. -259쪽

박민규 문학적 자서전

올해로 마흔두 살이 되었다. 지극히 간단한 생활을 하지 않고선 읽고, 쓰는 시간을 얻을래야 얻을 수 없다. 지난 몇 년은, 즉 아무 일 없이 읽고 쓰는 생활을... 그런 습관을 마련하려 애쓴 시간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나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워야만 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볼일을 만들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다.
겸손해진다(시간 외에도 많은 것을 절약해 준다.)
생깐다.(경조사들!)
그래요, 당신이 옳아요 라고 말한다.
양보한다.
손해를 본다.(정말 많은 것을 절약해 준다.)-317쪽

투명한 밤하늘만큼이나 명료하게 내가 아는 좋은 글은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1. 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
2.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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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 왕국에서 온 아이
던 프린스-휴즈 지음, 윤상운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절판


나는 뒤로 물러섬으로써 앞으로 나아갔다. 내 속에 있는 가장 원시적이고 오래된 곳으로 물러섰다. 내 마음 속 깊고 고요한 곳, 진화의 숨결이 고대 인류와 함께 멈춘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의 최초이자 최고의 친구인 고대 왕국의 백성들, 사로잡힌 고릴라 가족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내 영혼이 세상의 일그러진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채 창살에 갇혀 힘겨워하며 의미있는 세상에서 벗어나 있을 때,ㅏ 우리에 갇힌 고릴라들이 거울처럼 내 영혼을 비춰 주었다. 너무도 예민한 고릴라들은 그들 자신, 모든 것의 의미와 배경, 세상, 그리고 나에 대한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12쪽

나는 서른여섯이 되어서야 아스퍼스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아동기에 그런 진단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서른여섯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한 채 소외되고 단절되고 상처받으며 긴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었는지,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까지 왜 그렇게 오랜 시가닝 걸렸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43쪽

나는 학교에서 히피로 알려졌다. 나의 틱 장애, 독백, 예민함, 비난에 대한 무감각과 권위에 대한 의심, 교제에 대한 경멸과 사회적 상호작용 회피, 나의 정치적 신념, 철학과 인류학에 몰두하는 것, 내 이상한 옷차림과 말하는 스타일 모두가 철저한 배척과 적극적인 공격의 대상이었다. -85쪽

분노를 억누르고 신체적 공격을 받으면서도 나를 방어할 권리를 포기했던 이 시절의 경험은 그 뒤 노숙자 생활을 버텨내는 데 버팀목이 되었다. -87쪽

뒷날 유리벽 안에서 살고 있는 고릴라와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우리의 삶이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시되는 동물과 댄서들은 악의에 찬 욕설과 왜곡된 시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109쪽

갇힌 자도 이름이 있고 그를 필요로 하는 가족이 있으며, 과거를 딛고 서서 미래를 꿈꾸는 개인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똑같은 과거를 갖고 있고 똑같은 미래를 꿈꾸기에 남들과 다른 꿈을 꾸고 다른 과거를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지 잊어버린다. 나는 감옥에 갇히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오른발은 언제나 감옥 안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왼발을 감옥 밖으로 내미는 느낌이다. 나는 하나의 사람이자 영장류로서, 자유로운 존재이자 갇힌 존재로서, 고릴라이자 고릴라를 배우고 싶어하는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알고 싶었다. 나는 고릴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132쪽

나는 말이 필요없이 대화하고 싶은 갈망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소음이 계속될 때 조용히 쉴 수 있는 나만의 장소와, 세상이 혼란스럽게 돌아갈 때 숨을 수 있는 은신처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았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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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구판절판


"반전反戰 책을 쓴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뭐라는지 아시오?"
"아니요, 뭐라고 하시는데요?"
"차라리 반빙하反憑河 책을 쓰지 그래요? 그럽니다."-13쪽

롯의 아내는 그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집이 있는 곳을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보았고, 나는 그 때문에 그녀가 마음에 든다. 얼마나 인간적인 행동인가.
그리하여 그녀는 소금기둥이 되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 -34쪽

이제 전쟁 소설은 끝마쳤다. 다음번 책은 즐거운 작품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은 실패작이며, 그럴 수밖에 없다. 소금기둥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들어보라.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짹짹?-35쪽

하느님, 저에게 허락하소서.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늘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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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
현기영 지음 / 창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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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좋은 것보다 새로운 나쁜 것이 좋다"고 하면서 앞을 향해 막무가내로 내달리기만 하는 변화였다. 과거란 이미 소비되어 버린 시간에 불과했고, 그래서 공동체의 과거인 역사도 폐기처분되고 있었다. -82쪽

난 젊어 보지도 못하고 벌써 늙어 버렸어. 회사가 날 그렇게 취급하고 있다고. -105쪽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은 규칙을 어기는 자들이 아니라, 규칙을 지키는 자들이 저지른다. -영국의 그라피티 작가 뱅크씨-133쪽

모든 이론은 잿빛이고 중요한 건 현실의 푸른 나무다. -괴테-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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