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문 -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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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문-박민규

절대 믿어선 안 될 것은

삶을 부정하는 인간의 나 자살할 거야, 란 떠벌림이다. 그런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알콜릭 정도가 적당하다. 삶을 인정하지 않고선 실제로 자살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랄까, 결혼을 한 인간만이 이혼을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다. -17쪽

아침의 문 -박민규

아침이 해대는 기침처럼 한 움큼의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온다.-30쪽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 줬어요 -박민규

그리고 기나긴, 끝없는 내리막길을 휠체어를 타고 내려온 기분이다. 특히 지난 몇 년은 어디 남산 계단 같은 곳에서 누군가 휠체어를 떠민 느낌이었다. -45쪽

무종 -배수아

나중에 나는 한 친구에게 그때의 감정을 전달하면서, 나에게 운명이란 것이 있다면, 그곳은 그 운명조차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그런 예외의 섬이었다고 설명했다. 마치 꿈속에서 또다시 꿈을 꾸듯이, 여행지에서 다시 여행을 떠나온 마음. -102쪽

이야기를 돌려드리다 -전성태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어머니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어머니는 매운 음식을 잘 드시지 못했는데 아버지가 드시려고 식탁에 올린 청양고추를 여러 번 베어 물었다가 물 들이켜기를 반복했다. -118쪽

이야기를 돌려 드리다 -전성태

조리뱅이. 메주콩 쑤는 날 솥에서 콩 주워 먹는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앞산 동굴에 산다는 조리뱅이-122쪽

통조림공장 -편혜영

왜 그러고 살았대?
누군가 깻잎에 흰 쌀밥을 말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물었다.
누군 안 그러고 사나?
밥을 씹으며 누군가 대꾸했다. 대답에서 비린 고등어 냄새가 풍겼다. -193쪽

투명인간 -손홍규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거실 안에 패총처럼 쌓였다.

-나는 내가 스스로 태어나지 못하고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원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아버지는 내 죄의 유일한 근원이었다. -227쪽

투명인간 -손홍규

일상이 부식되어 탁한 녹물로 흘러내리는 집에서 그와 나는 고치 속에 웅크린 유충처럼 안전하게 하루를 소화시켰다. -236쪽

그곳에 밤 여기의 노래 -김애란

바람은 자기 몸에서 나쁜 냄새가 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노인처럼 주춤거리며, 저도 모르게 물컹해져, 저도 모르는 봄 비린내를 풍기고 있다. 입춘까지는 보름이나 남았지만, 도시는 감기를 앓듯 간절을 앓느라 어렴풋한 미열에 달떠 있었다. -243쪽

그곳에 밤 여기의 노래

살림을 차린 후, 용대와 명화는 수중의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반지하 방에서 살만 섞었다. 열에 달뜬 청춘처럼 새삼스럽게. 늙은 추방자들처럼 절박하게 말이다. -259쪽

박민규 문학적 자서전

올해로 마흔두 살이 되었다. 지극히 간단한 생활을 하지 않고선 읽고, 쓰는 시간을 얻을래야 얻을 수 없다. 지난 몇 년은, 즉 아무 일 없이 읽고 쓰는 생활을... 그런 습관을 마련하려 애쓴 시간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나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워야만 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볼일을 만들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다.
겸손해진다(시간 외에도 많은 것을 절약해 준다.)
생깐다.(경조사들!)
그래요, 당신이 옳아요 라고 말한다.
양보한다.
손해를 본다.(정말 많은 것을 절약해 준다.)-317쪽

투명한 밤하늘만큼이나 명료하게 내가 아는 좋은 글은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1. 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
2.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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