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
일레인 스캐리 지음, 이성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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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좋은 책이 번역되었네요! The Body in Pain 도 번역해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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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 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 프리즘 총서 22
클로드 르포르 지음, 홍태영 옮김 / 그린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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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너무 읽고 싶은데, 그리고 번역본이 바로 손에 들려 있는데, 읽을 수가 없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책 내용이 더 더 궁금해지는, 그런 새해 아침입니다. 혹시 이 책을 읽으려고 시도하다 좌절하시는 분들이 자책에 빠져 다른 책 읽기마저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 자 남깁니다. 저는 불어를 모르기 때문에 영어 번역본을 들춰 보았는데, 영어 번역본은 그렇게 어려운 내용이 아니었어요. 서툰 번역이나마 비교를 위해 적어 봅니다. 


'Freedom', the simple word I have just used, is usually banished from scientific language or relegated to the vernacular, when, that is, it does not become a slogan for small groups of intellectuals who declare that they have taken sides and who are content with anti­communism. They can be ignored. no matter how much noise they make, as we have seen their kind before. I am more concerned with those intellectuals and philosophers who claim to belong to the left or the far left. Although they live in an era in which a new form of society has emerged under the banner of fascism on the one hand and under that of socialism on the other, they refuse to contemplate or even perceive that momentous event. In order to do so, they would of course have to give new meaning to the idea of freedom. And yet they abandon it to the vagaries of public opinion, apparently on the grounds that everyone defines it in accordance with their own wishes or interests. By doing so, they cut themselves off, not from public opinion, but from political philosophy, even though they claim to be in search of rigorous knowledge. 


'자유,' 내가 방금 사용한 이 단순한 단어는, 반공주의에 만족하며 자신의 진영을 정했다고 선언하는 적은 수의 지식인들을 위한 슬로건이 될 때가 아니면, 대개 과학적 언어에서 쫓겨나 구어에 방치되어 있다. 그런 지식인들은 무시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어느 정도의 소음을 내건 상관 없이, 우리는 그런 종류의 지식인은 예전부터 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좀 더 염려하는 것은 좌파나 극좌파에 속해 있다고 주장하는 지식인과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한 편으로는 파시즘의 깃발 아래에서,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사회주의의 깃발 아래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가 부상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념비적인 사건을 응시하거나 심지어 지각하기조차 거부한다.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자 한다면 그들은 물론 자유라는 이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그들은 자유라는 이상을 여론의 변덕 속에, 명백히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망이나 이익에 따라 자유의 의미를 마음대로 정의해버리는 상황에 방치해 버린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비록 자신이 엄격한 지식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자신들을 여론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치 철학으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이다.  


: 좌파 지식인들이 자유의 이상에 대해서는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


(홍태영님의 번역)

자유, 내가 방금 발음한 이 단순한 한 단어, 이것은 자신들의 진영을 선택했다고 선언하고 반공주의에 자족하는 일부 소수의 지식인들에게 표지로서 사용되지 않는 한에서, 통속적인 언어가 되어 지적 언어에 자주 침입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소란스럽더라도 이런 종류의 지식인들은 내버려 두자. 나에게는 좌파 혹은 극좌 진영에 개입하기를 요구하는 지식인, 철학자들이 더 중요하다. 한편으로 파시즘, 다른 한편으로 사회주의의 표식 아래에서 사회의 새로운 형태가 전개되는 시기에 살면서, 그들이 이 거대한 사건을 사유하고 인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을 위해 그들로 하여금 자유라는 이념에 이미를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신념과 이익에 부합하는 특징들을 부여하기 위해 그들에 의하여 여론의 파도 속에 던져진 것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엄격한 인식의 탐구 속에서 그들이 구실로 삼는 것은 여론이 아니라 바로 정치철학이다. (18-19)


: 언뜻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번역본만 읽어서는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다음 몇 페이지에도 비슷한 상황이 몇 가지 있는데, 인용은 생략합니다. 아 이렇게 쓰고보니 책 내용이 더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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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03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나쁜 번역이네요. 일부러 저렇게 썼나 싶을 정도로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느낌이에요. 초록비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초록비 2019-01-0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로 이 책 내용을 알고 싶거든요 ㅠㅠ 안타깝네요.
 
싯다르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3
헤르만 헤세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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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비정규직의 괴로움을 덜고자 비정상적으로 세계문학전집들을 탐독한 결과 알아낸 국내 최고 번역자, 탑 오브 탑, 번역자는 독문학의 권혁준, 불문학의 윤진, 노문학의 윤새라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전문 작가들보다 한국어를 더 잘 다루시는 분들이지요. 저만큼 시간이 없을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분들만 골라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남겨보는 TMI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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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2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자 기억해놓겠습니다 ^^감사드려요

초록비 2019-01-01 1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답글 감사합니다 :) 물론 주관적인 판단입니다만. 그래도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에 이렇게 정성을 들여놓은 이 분들이 저는 참 존경스럽더군요. 좀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맑스, 프로이드, 푸코, 사이드를 처음으로 읽었던 20대 시절에는 매일 가슴이 뛰었던 것 같다. 푸코를 처음 읽었던 날 느꼈던, 머리를 쾅 내리치는 것 같던 그 충격. 올해 상당히 많은 책을 첫장부터 끝장까지 읽었건만 기념할만한 책이 번쩍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보다 최근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우선 내가 책을 매우 아주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읽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어떤 책을 읽어도 예전보다 훨씬 쉽게 이해가 되고, 심지어 처음 읽는 책임에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독서의 한창 시절을 지난 것이 아닌가, 더불어 언제인지도 모르게 인생의 좋은 시절 또한 이미 한풀 꺾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느낀 또다른 변화 중 하나는 어린 시절 박스로 사다놓고 먹어도 늘 부족하다 여기던 귤을 더이상 먹고 싶어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며칠 전 하도 심심해서 그 이유를 네이버 지식인에서 찾아보았더니, 나이들면서 신 맛을 거부하게 되는 이유가 신 맛을 제외한 다른 미각의 노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60대가 되면 미각세포가 무려 1/3로 줄어든다고 한다. 최근 들어 얻은 가장 언짢은 지식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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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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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후, 2010년대를 기억할 한국소설을 딱 한 편만 뽑는다면, 그 작품은 황정은의 “d”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무언가 빼앗기고 억울하고 불안한 사람들, 그러니까 대부분의 한국인들 누구나, 황정은의 소설과 함께 잠시나마 자신의 아픔을 천천히 쓰다듬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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