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6/27 15:42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월드컵의 레드 신드롬에 대한 예찬이나 긍정적 평은 난무하지만 진지하게 비평하고자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죠.. 웬만하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찬반이 나누어 지고 사람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 붉은악마 열풍은 지식인들의 비평의 기능마저도 잠시 마비시키도록 만들었나 봅니다. 아니면.. 이 분위기에서 비판을 가한다면 매장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도.. 아님 좀 있다..월드컵 분위기가 식어진 다음에 그 때서야 화두를 내는 분위기가 조성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제가 뭔가 비판적 분위기를 이끌자는 의도는 아니고 저의 견해도 실은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 많습니다. 다만 비판꺼리를 찾아야 하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에 자료를 찾는다고 뒤지는데 서로 대비되어 분석할만한 꺼리가 전혀 없더란 말이지요.. 비판을 조금 하더라도 긍정적인 견지가 대부분인데 아주 미세하게 비평적 면을 가미했다거나 하는 글들은 많지만 확고한 주장으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의 글은 단 한편밖에 찾지를 못했습니다. 이건 인터넷의 경우니깐 아주 다양한 매체의 시사 잡지를 구독하시는 분들이 흥분하시지 많기를 바라면서..

제가 몇 개의 글들을 정리하면서 비판적으로 표현한 몇 개의 문구들만 끄젹여 놓을까 합니다. 글들을 모두 올리기엔 좀 그렇고 비평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표현하는 문구들을 읽으시면서 그냥 감만 함 잡아 보시고 퍼즐 맞추듯이 한번쯤 생각의 꺼리들을 마련해보았으면 합니다. 저도 생각중이라서 어떻다고 저의 주장을 말하기는 좀 그렇고 말이죠..소심한것 같기도 하지만..글쩍..

==================================================================== ..총 천연색의 다색인들은 실재하지 않는 존재..

..하나의 색깔로서 '전체화'한다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단색의 상상된 공동체인 '국민'으로 호명되고 있다.

..'타자'에 대한 '벽 쌓기'..

..우리의 배타적 아성이 견고하게 구축하는 동안,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세계와 더욱 긴밀한 관계의 망 속으로 얽혀 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축구라는 상품의 소비자로서 의지와 욕망까지 모두 잠식당한 존재가 되었다..

..월드컵이란 스펙터클은 바로 이러한 국가주의적 국민과 자본주의적 소비자로 우리를 호명한다..

..성찰 부재의 15년을 이렇게 '지연된 80년대'라는 독성 심한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왔다..

..민족주의다. 단순히 축구경기를 민족의 우수성을 증거하는 징표로 용도 전환하려는 웃기지도 않는 욕망, 혹은 민족주의의 인질로 삼으려는 불온성은 지금까지 계속돼 왔다..

..어떤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국민 총동원과 뻣뻣함의 이미지로 도배됐다..

..배타적 민족주의, 상업주의 등을 축출해야 한다..

..월드컵이 국가 경연장 역할을 어느정도 대리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있는 현실을 부인하는 것은 공소한 관념론자들의 업무 연장이다..

..다시 말해 일상에서 눌려왔던 무질서와 비이성을 분출하려는 욕망과 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발명품이다..

..인간과 놀이의 관계에 대한 고전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을 쓴 J.호이징가는 놀이를 일상의 시스템을 단절하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산물이라 본다.

..그들이 비록 축구와 민족주의를 연결하지 않으면 일본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되..

..태극기, 붉은 유니폼, 집단적 난무 등은 즐거운 축제의 기호들이지 그것이 '영광스러운 민족'의 기호는 아닌 것 같아서이다. 지식인들이 그것들을 민족주의와 연결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디지를 못하겠다고 덤벼든다..

..그 지식인들의 글에는 '우리 민족, 세계의 중심에 서다'에서부터 '전민족의 단결력' '긍지'...

..붉은 악마들은 골 넣은 선수들을 헹가레 칠 뿐인데 지식인들은 선수보다 자신의 민족주의를 헹가래치기에 더 흥분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 지식인이 더 무섭고 걱정된다...

==================================================================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고 광분하신다면(우리 동기 모군의 표현방식ㅋㅋ..) 제가 사이트 명을 가르쳐 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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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27 15:59

정말 오랜만에 끌리오에 왔어요.
이제 셤도 끝나고 본격적인 방학입니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무척 빨리간 1년
1년전엔 무척 철이 없었던 것 같고 지금은 좀 더 나아진 것 같은데
그래도 변하지 않는 여전한 본연의 모습.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변하지 않는 본질이 정말 있긴 있나 봅니다. 그것이 한계인지 타고난 성질인지는 모르지만 할머니가 되어도 변하지 안는건 있을꺼라는 믿음이 때로는 굴레로 때로는 안정감으로 혹은 뿌듯함으로... "마음의 감기"도 감기 일뿐 그 이상은 아니군요. 4학년이 되어서 유독히 "마음의 감기"를 많이 앓는 친구들도 이제 그 시절이 지나갈 때쯤 되니 다들 의욕적이 되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힘찬 모습들. 모두에게 축복이 있기를.. 진실을 사랑하며 추구하는 사학인 모두에게 은총을..

요즘은 변하고 있는 모습들이 신선해서 참 좋습니다.
신문을 읽으면 정치면은 정말 읽기 싫은데 요즘은 정치면을 꼼꼼히 들여다 봅니다. 배울 것이 있어서요.
암흑 속을 걸어도 믿음이 있으면 언젠간 보이는가 봅니다. 그래도 긴장은 늦추어 지지 않네요..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항상 세상을 감시하는 자세.. 2002년도는 양면성이 돋보이는 해였습니다. 민족주의든 감시와 처벌이든 고정불변은 없다는 것 하나를 가장 깊이 깨닫게 되는 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과 악을 넘어서.. 존재하는 것들은 비판할 가치도 있으며 존중할 가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지향하게 되는 결정체는 선이 있는 진실이었으면 하는 바램. 조선일보든 한겨레든 어떤 것이든 존재를 증명하는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관심이 가장 무섭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끔 이렇게 횡설수설하고 싶을 때 끌리오에 글을 쓰게 되는데 이것도 병인가 봅니다. 큰 지병이지요..
이러다가 또 어느날 예전에 쓴 글을 읽고는 앗 내가 왜 이렇게 유치했지..하면서 지우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많은 글을 올렸어도 남는 건 별로 없더라구요. 그게 1년동안 반복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쓰고. 지우고..쓰고..지우고..
끌리오는 저에게 거울이 달린 벽과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지웠다고 해도 그 때 썼던 내 생각. 그 때의 내 존재 자체가 지워지는 건 아니더라구요. 그 때 나는 분명히 있었으니깐요. 그리고 내가 지워버리더라도 님들의 리플속에 남아 있어서 지우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고.. 끊임없이 변하는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신비체험인 것 같습니다.
생각은 사진처럼 흔적을 남기지 못하니깐 말이죠.
언어는 참 소중한 것 같아요.

끌리오라는 과자도 시중에 나와 있는 걸 봤어요.
과자 이름이 왜 끌리오여야 될까 생각하면 우습지만
꽤나 맛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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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12 12:23 그저께 서태지 콘서트를 티비에서 방송해 주더군요
전 90년대 중반을 10대로서 보내었고 그 때의 삶의 과정들이 현재의 제 모습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갑자기 서태지 얘기가 나온 것은..
중고등때 서태지가 신화적 존재로서 10대들의 우상으로 되었던 시기에 전 서태지에 참으로 무관심 했죠. 주위의 열광들에 오히려 냉소적이었으며.. 나 자신의 정체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과 서태지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실은 집에 서태지 관련 음반은 하나도 없구요.

간만에 토욜에 심야토론을 보았는데 국제 정치 전공자들과 한겨레 주석,전직 외교관이 나와서 북한의 핵문제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요즘 정치학과 수업을 듣고 있는지라 예전에 스쳐가게 보이던 문제들이 알게 모르게 의식화 되었던지 재미있더라구요.

심야토론이 끝나고 채널을 돌리다가 멈춘 곳이 서태지 공연이었고..
예사 공연 같지가 않아서 잠시 시선을 멈추었습니다. 음향 상태가 정말 Cool..했고 웅장한 규모의 Rock'n roll 이었습니다. 나중에 뮤지션들 명단이 올라가는데 전부 외국 사람들이더군요. 어쨌든 국내의 rock공연 음향과는 차이가 있긴 있었습니다..
이 얘기가 아닌데..--"

제가 주의깊게 보게 된 것은 관객들.
그들은 저의 거울들이었다는 점. 90년대에 10대를 보내었던 우리들의 모습 20대 중반을 즈음해 가는 그네들의 모습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저희 세대들의 집합체였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서태지를 잊지 않고 있었고 여전히 열광하고 있었으며 울고 있었고 서태지는 아직 추억속으로 사라진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죠. 전 놀라고 말았습니다. 서태지가 반짝 아이돌 스타가 아니였음이 증명되는 현장도 그렇지만 특히 관객의 모습들에서 그들의 표정은 예전의 10대들이 열광했던 콘서트에서 보여졌던 철없는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어른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서태지.. 제가 10대 때는 그랬죠. 서태지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부모님들이 많았고.. 우리들은 그때의 제 친구들은 그야말로 철없는 10대였기 때문이죠. 우리는 철이 들만큼의 나이가 들었고 ..감수성 또한 그때의 순수한 것임이 아닐 것임에도 불구하고 열광은 여전히 지속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에서.. 뭐라고 할까..
향수를 느꼈다고나 할까요. 서태지를 좋아하지 않는 저 조차도 순간 울컥 하더라구요.. 나도 너희들과 같은 시절을 보내었어..라고 맘속으로 외치면서요. 나이들었다는 증거라서 그런건지.. 그러면서 90년대 중반의 시절들이 머리속에 떠오르기도 했죠. 그 순간 동시대의 의식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걸 얼핏 느낀 것도 같았습니다.

아마도 그런 열광을 지속시키는 것은 관객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 서태지의 태도에서도 조금은 감동받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적으로 포기하지 않은 그 장인정신에서 말이죠. 90년대 세대들의 문화가 숙성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향수..
이제 지나온 세대..
기성 세대로 접어듦을 준비해야 하는 90년대 세대들의 정체성은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서태지를 위시한 주변 모습에서 단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민중, 혁명, 변혁이라는 기존 세대의 거대담론을 짊어지는 세대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런 것들에는 철저히 가려진 10대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철저히 개인적이며 어쩌면 개인적이라기 보다는 이기적이라는 말이 더 맞는지도. 이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현상인지 시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도 뭐라 말할 수 없네요.. 저만 그런건지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건지는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면 궁금증을 풀 수도 있겠다는 생각.

이런 현상들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그저 현상으로 바라보이며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죠. 이런 세대를 살아온 우리들이 미래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지는 정말로 더 살아봐야 되는 일이겠고.. 90년대에 10대를 보낸 우리들에게..기존 세대들이 말하는 혁명에의 뜨거움...그런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들의 정체성에서는 주변적 위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거대하고 숭고하다고 여겨져 온 것들을 체감할 수 없는 시대에 살았기 때문일까요..제가 태어난 후 2달후에 광주에서 일어났던 사실들을 느끼거나 혹은 그후 7년후의 사건들조차 너무 어릴 때 일어났기 때문이죠.. 그래도 소수의 우리 세대들중 일부는 적극적인 사람들이 아직은 많이 있죠.
다만 관심이 가져지는 것은 소외된 것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침체 속에서 혹은 배제당하는 또다른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그것이 기존의 문제의식들과 연결되어지는 지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그러한 애정 자체는 통시대적으로 고리로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민중, 혁명, 전쟁, 이런것들이 우리 세대들에게 직접 가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소외된 자들에 대한 애정과 그들을 대변하고 싶은 열망은 여전하니깐 말이죠. 혹은 내가 소외된 자일 가능성도 있으니깐..그건 체감할 수 있으니깐요..비단 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심야토론에서의 북핵문제와 서태지는 공존하고 있으며 그 둘은 성격이 전혀 다른 것 같지만도 동시대의 현상으로 포괄된다는 사실들.
90년대 10대를 보낸 우리들이 앞으로 짊어져야 할 것들은 과연 어떤 것들일까요..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표상지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궁금증들이 해결되려면 우린 더 살아봐야 하겠지요.

참 이런 얘기도 하고 싶었었답니다. 서구의 문화에 종속되었다면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정체성 또한 어떻게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는건지..
앞에서도 말했듯이 서태지의 뮤지션들은 거의 다..외국인이었다니깐요..
논리적 비약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그냥 다만..느낌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 당연 서태지가 90년대에 10대를 보낸 우리를 몰아서 설명할 수 있는 틀은 아니죠..단적인 하나의 현상이라는 점, 예시.
저 같은 냉소들도 꽤 많았을걸요..^^

상업주의에 이용당한 우리들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도식적 설명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우리들의 감정상태..가 있잖아요. 그런점들을 빼고 설명한다면 얼마나 건조합니까.. 우리들의 자아, 정체성은 그렇다면 어디에서 부여받을 수 있는건가요.. 이용만 당하는 우리들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인간은 감정과 이성이 공존하는 존재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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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1 10:59 어저께.. 정외과 야간수업에서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 관한 발표 수업이 있었습니다. 2명이서 2.3부를 나눠서 했는데 전 2부를 맡았죠. 저희과와 사회대 발표수업이 약간 다른점이 있어서 발표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이리 저리 머릴 굴리던 것과는 무관하게 실전에 돌입하니깐 본능적으로 사학과 발표 때의 숙달된 면모가 돌출되었답니다. 뭔가 비교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기 때문에 혹 제 말에 오해를 하지 마시기를..

일단 처음 주제를 고를 때 3개가 있었지요. 베링턴 무어, 푸코, 하버마스 셋 중 한 사람은 반드시 골라야 했고. 그래도 예전 끌리오 글들에서 푸코에 대해 안면이 있는지라 자진해서 푸코를 선택했죠.

저도 워낙 독서량은 그다지 많지 않은지라 원래 속도가 좀 느리긴 했지만..푸코는 정말 강적이더군요. 처음 책 전체를 읽을때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2부만 똑 떨어지게 발표를 하려니깐..또 가물가물..그래서 2부만 한 3번은 읽었던 것 같습니다. 박정현 이후로 만난 최대의 적수였습니다. 그 수업을 담당하시는 교수님께서 또 푸코 전문가이시라..긴장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도 교수님께서 푸코는 정말 쉬운 편이라고 하시더군요 하버마스가 좀 어려울 것이라면서..푸코가 쉽다니..ㅜㅜ. 앗..갑자기 고민이 됩니다. 끌리오에 이런 얘기들 해도 되는건지.. 너무 사생활적인가..?

한 달전부터 감시와 처벌을 들고 다녔는데 중간에 그만 흔적도 없이 책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죠. 그래서 책을 또 사고 말았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책이 몇 권 있어도 늘 대출중인걸로 봐서는 그 책이 아주 대중적인 책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초점을 맞춘 부분은 17,18세기 사법개혁과 관련한 제 현상. 힘의 관계의 변화적 측면에서 근대화 지점에 권력이 어떻게 재편 되었는가. 이후 일상생활에서 권력이 어떠한 매커니즘으로 작용하여 우리를 속박하는 구조로 작동하는가. 결국 권력의 문제였습니다. 제가 결론으로 귀결지었던 것은 근대 권력의 재생산은 관념을 통한 신체의 예속화를 통해서 이다. 라고 맥락상 끝을 맺었는데요. 중간에 권력의 재생산에 언설의 힘이(discourse:보통 담론이라고도 하지요) 어떻게 작동하는가 대해 일상생활에서의 예시를 좀 들구요.
발표가 끝나서 해방감을 느끼긴 하지만.. 뭐라고 할까요.. 숙제가 더 많아진 기분?

생전에 푸코가 부르조아 사회의 지배체제 안에서 투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글쓰는 일이 재미있는 경우는 수단이나 전략, 정찰 등의 명분을 갖고 오직 투쟁의 현실과 결합되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나는 내 책이 메스나 폭약, 아니면 지뢰를 파묻는 갱도 같은 것이 되어서 조명탄의 불꽃처럼 한번 사용된 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Les Nouvelles Litteraires, le 17 mars 1975.

푸코는 자신의 책이 '생산자의 소유를 벗어나 누구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들고 다니면서 쓰여질 수 있는 연장통이 되어 투쟁하고 생각하고 말하는데 소용되기를 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Le Monde, le 27 juin 1984.

푸코는 자신의 철학적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파고든 사람이지 사조니 주의니 학파니 하는 것과는 거의 무관했다는 것이죠. 프랑스 철학 자체가 먼저 어떤 구체적인 문제들이 있고 그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접근하기 이전에 실증적인 접근을 해야하고 그후 철학적인 접근으로 나아가는 방향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철학에 대해 심취해 보질 않아서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나름대로 지식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혹은 나의 지점은 무엇인가.. 저야 범인이라서..최소한 해를 끼치는 존재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소극적 태도정도로 합리화 시키는 거죠. 양심적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양심이라는 것 자체도 간단하질 않으니 원..

참.며칠 전 히스토리 채널인가..푸코는 시위 현장에도 맨 앞에 앉아 투쟁을 벌이더군요. 동성연애자이고..에이즈로 죽었다고 해서 ..처음엔 좀 꺼리는 감도 들었지만.. 사회적 소외자가 언어와 지식을 무기로 파워를 발휘할 때 얼마나 어두움에 빛이 될 수 있는가..란 점에서 생각해 보면 참 감동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언어는 칼이다..란 생각이 듭니다.
잡고 있는 사람이 어떤 생각,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누구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니깐요. 그러한 위험은 언어를 잘 다루는 사람일 수록 폭발의 위험성은 큰 것 같구요. 저 같은 무지몽매한 경우라면 고이 칼집에 넣어두고 쓰지 않는 편이 도움이 될 터인데..이 근질근질한 손으로 항상 언어를 남발하고 있으니.. 철딱서니 없는 주체 불가능한 행위는 언제쯤 철이 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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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너무 좋았다. 순진하게 잠들어 어디론가 데려가지는 그레이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

참으로 놀라운 영화다.  그리고 다 이해하지도 못한 듯 싶다. 특히 마지막에 그레이스아 마피아 두

목인 아버지와 격론을 벌이는 장면. . 얘기들이 부분적인 면에서 나에게 비수를 꽂는 듯 했는데

침묵하고 참는 것은 반항하는 것보다 더 고도의 잔인함일 수 있다는 것 정도? 그리고 그것은 더

이기적이고 오만하다는 것을... 영화 한편이 두꺼운 철학서 한권 읽은 것 보다 더 생생한 가치가 있

음을.. 정말로 현대는 수난의 시대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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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Y 2005-02-10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도그빌, 올드보이, 등등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인간 내면의 잔인성은 참으로 실제적이면서도 거부하고 싶은 것들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