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21 10:59
어저께..
정외과 야간수업에서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 관한 발표 수업이 있었습니다. 2명이서 2.3부를 나눠서 했는데 전 2부를 맡았죠. 저희과와 사회대 발표수업이 약간 다른점이 있어서 발표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이리 저리 머릴 굴리던 것과는 무관하게 실전에 돌입하니깐 본능적으로 사학과 발표 때의 숙달된 면모가 돌출되었답니다. 뭔가 비교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기 때문에 혹 제 말에 오해를 하지 마시기를..
일단 처음 주제를 고를 때 3개가 있었지요. 베링턴 무어, 푸코, 하버마스 셋 중 한 사람은 반드시 골라야 했고. 그래도 예전 끌리오 글들에서 푸코에 대해 안면이 있는지라 자진해서 푸코를 선택했죠.
저도 워낙 독서량은 그다지 많지 않은지라 원래 속도가 좀 느리긴 했지만..푸코는 정말 강적이더군요. 처음 책 전체를 읽을때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2부만 똑 떨어지게 발표를 하려니깐..또 가물가물..그래서 2부만 한 3번은 읽었던 것 같습니다. 박정현 이후로 만난 최대의 적수였습니다. 그 수업을 담당하시는 교수님께서 또 푸코 전문가이시라..긴장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도 교수님께서 푸코는 정말 쉬운 편이라고 하시더군요 하버마스가 좀 어려울 것이라면서..푸코가 쉽다니..ㅜㅜ.
앗..갑자기 고민이 됩니다. 끌리오에 이런 얘기들 해도 되는건지.. 너무 사생활적인가..?
한 달전부터 감시와 처벌을 들고 다녔는데 중간에 그만 흔적도 없이 책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죠. 그래서 책을 또 사고 말았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책이 몇 권 있어도 늘 대출중인걸로 봐서는 그 책이 아주 대중적인 책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초점을 맞춘 부분은 17,18세기 사법개혁과 관련한 제 현상. 힘의 관계의 변화적 측면에서 근대화 지점에 권력이 어떻게 재편 되었는가. 이후 일상생활에서 권력이 어떠한 매커니즘으로 작용하여 우리를 속박하는 구조로 작동하는가. 결국 권력의 문제였습니다. 제가 결론으로 귀결지었던 것은 근대 권력의 재생산은 관념을 통한 신체의 예속화를 통해서 이다. 라고 맥락상 끝을 맺었는데요. 중간에 권력의 재생산에 언설의 힘이(discourse:보통 담론이라고도 하지요) 어떻게 작동하는가 대해 일상생활에서의 예시를 좀 들구요.
발표가 끝나서 해방감을 느끼긴 하지만.. 뭐라고 할까요.. 숙제가 더 많아진 기분?
생전에 푸코가 부르조아 사회의 지배체제 안에서 투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글쓰는 일이 재미있는 경우는 수단이나 전략, 정찰 등의 명분을 갖고 오직 투쟁의 현실과 결합되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나는 내 책이 메스나 폭약, 아니면 지뢰를 파묻는 갱도 같은 것이 되어서 조명탄의 불꽃처럼 한번 사용된 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Les Nouvelles Litteraires, le 17 mars 1975.
푸코는 자신의 책이 '생산자의 소유를 벗어나 누구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들고 다니면서 쓰여질 수 있는 연장통이 되어 투쟁하고 생각하고 말하는데 소용되기를 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Le Monde, le 27 juin 1984.
푸코는 자신의 철학적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파고든 사람이지 사조니 주의니 학파니 하는 것과는 거의 무관했다는 것이죠. 프랑스 철학 자체가 먼저 어떤 구체적인 문제들이 있고 그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접근하기 이전에 실증적인 접근을 해야하고 그후 철학적인 접근으로 나아가는 방향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철학에 대해 심취해 보질 않아서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나름대로 지식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혹은 나의 지점은 무엇인가..
저야 범인이라서..최소한 해를 끼치는 존재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소극적 태도정도로 합리화 시키는 거죠. 양심적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양심이라는 것 자체도 간단하질 않으니 원..
참.며칠 전 히스토리 채널인가..푸코는 시위 현장에도 맨 앞에 앉아 투쟁을 벌이더군요. 동성연애자이고..에이즈로 죽었다고 해서 ..처음엔 좀 꺼리는 감도 들었지만.. 사회적 소외자가 언어와 지식을 무기로 파워를 발휘할 때 얼마나 어두움에 빛이 될 수 있는가..란 점에서 생각해 보면 참 감동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언어는 칼이다..란 생각이 듭니다.
잡고 있는 사람이 어떤 생각,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누구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니깐요. 그러한 위험은 언어를 잘 다루는 사람일 수록 폭발의 위험성은 큰 것 같구요. 저 같은 무지몽매한 경우라면 고이 칼집에 넣어두고 쓰지 않는 편이 도움이 될 터인데..이 근질근질한 손으로 항상 언어를 남발하고 있으니.. 철딱서니 없는 주체 불가능한 행위는 언제쯤 철이 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