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2/09/05 11:5
님의 글을 읽으니 가자기 장 그리니에가 <섬>에서 말한 여행에 관한 대목이 생각이 났어요..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오히려 발길 가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분숫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편이 더 낮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그것은 불가능한 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데 성공하고 나면 바다 위로 배를 타고 여행할 때의 멀미 나던 여러 날과 기차 속에서의 불면 같은 것은 잊어버린다(자기 자신의 인식이라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초월한 다른 그 무엇의 인식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자기 인식 reconnaissance>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각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 엉뚱한 인식이야말로 모든 인식 중에서도 가장 참된 것이다. 즉 내가 나 자신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잊었던 친구를 만나서 깜짝 놀라듯이 어떤 낯선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지정한 모습이다.
몇 주 전에 거제도에 다녀왔었습니다. 적은 비용이었고..고생은 절대 하지 말자는 엠티의 성격을 지닌 여행이었죠. 그러나 부득이한 돌발상황이 발생했답니다. 제가 간 곳이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지 일요일엔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 그런 일이.. 그래서 시외 버스 터미널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한낮의 찌는 더위를 견디며 아스팔트 언덕을 꾹꾹 걸어가고 있었죠.. 지나가는 트럭 하나도 자비를 베풀지 않더군요. 하긴..사람들이 일곱명이나 되니..--;
그 아스팔트 언덕의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한 상황 속에서 찌는 더위와 시름하며 그래도 좋다고 농담따먹기며 사진찍기며..등을 하며 오르고 있었죠..
그 길을 오르는 시간이 참으로 기억에 남는 이유는 찌는 더위 때문에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시원했을 때는 너무 행복하다는 기분.. 그 맑은 공기 땜에 상쾌하다는 기분..그와 동시에 집에 어찌 가야할지..고민하며 아픈 다리..더위..속에서의 고통..
아스팔트 언덕의 꼭대기에 다다르자 저 멀리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의 바다가 보였습니다. 그 바다의 빛깔과 풍경에 대한 감탄 때문에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을 만끽했었는데요..그런데도 막막함에 대한 고통의 감정은 공존하고 있었죠..전 제가 미친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행복하고 힘들고 재미있고 웃기고..이런 감정들이 어떻게 한꺼번에 분출될 수 있을까.. 참으로 신비로운 경험이었죠..
그 찰나의 순간이 아주 오래도록 머리속에 박힌 까닭은 행과 불행은 항상 공존하는데 나는 왜 한쪽만을 보려고만 애쓰는가 하는 허무함이었습니다. 불행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참 어렵네요.. 그때의 기분을 표현한다는 것이..
둘은 항상 공존한다는 것을 나는 왜 인정하지 않고 사는가..하는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서 사는 스스로가 애처럽고도 불쌍하게까지 느껴졌으니깐요..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말이지만 직접 그런 순간을 느끼니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더라구요. 여행이란 것을 통해 직접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그때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친구가 편지하기를. 한달 동안의 즐거운 여행 끝에 시에나에 당도하여 오후 두시에 자신에게 배정된 방 안으로 들어갔을 대 열린 덧문 사이로 나무들, 하늘, 포돷, 성당 드이 소용돌이치는 저 거대한 공간이- 그렇게 높은 곳에 위치한 시에나 시가 굽어보이는 저 절묘한 들판이-보이자 그는 마치 어떤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그의 방은 하나의 깜깜한 점에 불과했다) 그만 눈물이 쏟아져 나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찬미의 눈물이 아니라<무력함의 눈물이었다. 그는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의 동요라기 보다는 정신의 동요였음이 분명하니까). 그는 자기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모든 것을, 하는 수 없이 감당하게 마련인 미천한 삶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는 일순간에 그의 여원들이..그의 사상의, 그의 마음의 무를 깨달은 것이다. 모든 것이 거기에 주어져 있었지만 그는 어느 것 하나 가질 수 없었다. 그 한계점에서 그는 지금까지는 그저 잠정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이별, 그러면서도 오직 그만이 원했던 그 이별이 결정적인 것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식했다고 말했다."
사람이 몸을 움직여서 행동하며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