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2002/11/06 15:16

지난 금요일.. 11월 1일에 개교기념일을 맞이하야 나의 아리따운 깨정양과 함께 단 둘이 여행을 떠났답니다.
처음엔 목포를 간다느니..소쇄원을 간다느니..아웅다웅하다가 합의 끝에 등산을 원하는 깨정양의 바램과 한국적 건축물을 보지 않으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는 나의 바램이 합쳐져서 간 곳이 바로 영주였답니다.

소백산, 영주, 소수서원, 부석사
이렇게 말하면 답사 전문가이신 끌리오 친구들은 대강 알 듯 싶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부석사는 2000년 안동 답사때 다녀온 곳이었답니다. 그런데도 전 신경숙의 부석사를 예전에 읽었으니 거기에 가봐야 겠다고 했던 며칠 전을 생각해 보면..인간의 망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몇 십년 후에도 종종 이럴까봐 겁이 나는군요. 그래도 깨정양은 2000년에 답사를 가지 않았으니깐 같이 가는 길에 나도 간다고 생각하고 즐거운 맘으로 갔습니다.

p 서로가 잠이 많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지라 새벽에 일찍 일나서 가느니 차라리 1박2일로 잡고 가자는 것은 당연지사. 12시 다되어 잠에서 깨어나 즉석으로 시간 정하고 부산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기까지.. 모든 일들이 아무런 계획없이 어찌나 즉석해서 착착 진행되는지 놀라울 정도였죠. 답사 귀신이 붙은 듯 했답니다.

지도도 한번 안보고 영주까지 기차는 5시간 혹은 6시간 정도를 열심히 달리더군요. 경북에 영주가 있는 줄 알았지 영주가 어디 있는지는 알았겠습니까. 뒤늦게야 지도를 보니 가까이에 강원도가 있는줄을 알고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부산보다 서울이 더 가깝더래요.
도착하니 벌써 밤이 되고 안락한 밤을 보낼 24시간 풀 가동하는 목욕탕을 찾아..거기는 찜질방도 겸으로 하더군요. 암튼. 이런 얘기는 쓰지 않는게 좋을 듯 하여..

영주의 물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좋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닌 새로 태어난 듯. 가뿐하더군요.
깨정양이 그토록 원하던 등산을 위해 점심용 김밥을 싸들고 소백산 희방사 가는 길로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예전에 단체로 큰 버스를 타고 다니는 여행과는 정말 사뭇 다른 맛이었습니다. 소백산은 참 아담하면서도 한국적인 맛이 나는 산이었습니다. 푸근해 보이는 모습이 폭신폭신하게 보이기도 하고.. 하얀 쉬폰케잌 위에 초콜렛 파우더를 잔뜩 얹어놓은 듯한 느낌. 한국적이어야 하니깐 백설기에 팥고물 뿌린 느낌? --;; 단풍은 벌써 거의 지고 특히 그날 아침은 유독시리 춥더군요. 뉴스는 정확했습니다.

등산하는 사람이 정말 없어서 조용했습니다. 추운것이 외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할까요.. 사람들이 너무 없고 조용하니깐 자연을 감상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여건이었죠. 소백산은 정말 소백스런 느낌을 준다?는 건 좀 이상하고 작고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좋았죠. 무엇보다도 고요한 산 속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것이 최고였죠. 산이라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이 정말 느껴지더군요. 산과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이 친밀감이 들었습니다.
목적은 등산의 기분을 느껴보는 것이라서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거나 하진 못했습니다. 희방폭포를 지나 희방사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했으니깐요 일정도 있고 해서.

소백산 자락에서 풍기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풍기 인삼..이 유명하죠. 그냥 넘길 수 없어 풍기 인삼시장에서 추운 올 겨울의 보양식으로 삼아보고자 수삼을 좀 구입했죠. 길에서 동네 아주머니께 인삼 보는 법 좀 가르쳐 달라고 하니깐.. 아가씨들이 가면 속는다면서 직접 데리고 가셔서 골라주시기까지 했답니다. 동네 인심이 참말로 좋더군요. 농협 아가씨들도 정말 친절하고. 인삼집에서 끓여내어주는 인삼액? 한 잔에 몸이 정말 든든해지더군요. 홍삼 사탕까지 받아 왔었답니다.ㅋㅋ.

풍기에서 1시간에 한 번오는 소수서원가는 버스를 타고 말로만 듣던 소수서원을 드디어 가게 되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정말 멋진 곳이더군요. 규모 면에서는 도산서원보다는 작은 듯하고 병산서원보다는 넓은 듯 하였고 무엇보다도 옆에 흘러가는 개울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더군요. 주세붕이 흰 글씨로 백운동이라 쓰고 아래에 이황이 敬이라고 쓴 붉은 글씨가 멀직이 보이는데 그런것들이 저를 감흥시키는 것들이었습니다.

풍기가 인삼이 유명해 진 이유는 주세붕이 풍기 지역에 할당된 산삼 공납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인삼을 인공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연유랍니다. 그래서 소수서원과 풍기인삼, 주세붕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소수서원이 위치한 곳은 풍기가 아니라 순흥인데 그 옆엔 또 순흥향교라는 곳이 있더군요. 거기는 뭔가 공사를 하고 있길래 구경은 못해봤습니다. 여전히 아쉬웠던 것은 전시실에 있는 고문서나 비문 같은 것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는 것. 누가 못 읽게 한 것도 아닌데.. 그 아쉬움이란..

소수서원까지 갔다가 마지막으로 부석사를 향할 때 쯤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죠. 토요일 오후즈음이라 부석사는 사람들이 정말 붐볐습니다. 여기저기 여러 단체들이 와서 정말 혼란스럽더군요.. 예전에 답사왔을 때의 좋았던 느낌이 잘 오질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으로 시작되는 책의 영향이 큰 것 같았습니다. 부석사는 또 태백산 자락에 있다고 하더라구요 하루만에 두 산을 오간건지..지도를 자세히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주 많이 다닌 듯한 기분.
부석사에서 최고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그 곳.. 까지 올라가서 탑 앞에서 사진 찍고 전망까지 본 후에는 정말 몸이 천근만근이 되었습니다. 여행에 있어 주변 환경과 컨디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더라구요 어디든지 여행을 가려면 평일에 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석사에서 영주 시내로 들어오니 저녘 6시
이미 부산가는 버스는 끊겼고 기차는 밤12시 56분차가 있더군요 그냥 기차에서 밤새도록 잘 것을 다짐하며 추운 초겨울 저녘을 때울 곳을 찾아 전전긍긍하다가. 온돌방이 따뜻한 전통 주점을 발견하고.. 동동주 한사발에 김치전을 안주삼아 장작 그 곳에서 5시간을 버티어 냈습니다. 그래도 술은 남았습니다. 넘 피곤하면 식욕도 떨어지는가 봅니다. 누군가 술배와 밥배는 따로라고 하는 이론을 내세우기도 했는데...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낯설은 도시에서 오랜벗과 해묵은 얘기들을 도란도란 나누는 그 맛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11시30분이 넘어서 드디어 영주역으로 갔죠.
영주역이 그렇게 깨끗하고 좋은 곳인지 몰랐답니다. 따뜻한 스팀도 나오고 푹신한 의자에 티비까지.. 잊을 수 없는 영주역이네요.

드디어 밤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아마 중간에 한 숨도 안 깨고 잔 것 같습니다. 새벽의 부산역은 언제나 늘 그렇듯이 여기저기 부산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언제 이런 여행 다시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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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2/04/26 12:23

통도사..
작년 가을인가 우리 까꿍(참..까꽁이었징..)이와 전 선배의 차를 타고 통도사를 갔습니다. 그 선배는 가끔..마음이 답답하면 혼자서 차를 몰고 통도사를 찾는다고 하더군요..그렇게 가서 불전마다 돌아다니며 절도하고.. 저는 범어사를 적극 추천했지만.. 아니야..통도사가 더 좋다면서 저의 범어사는 무시당했더랍니다.
그 전날 우리 까꽁이는 잠을 못자서 차 안에서 계속 자고.. 전 토이 베스트 앨범을 꽃아놓고 계속 들으면서 흥얼거렸죠

가을의 햇살을 쪼이면서 쉬엄쉬엄 걸어가는 통도사 가는 길..
그 길을 차를 타고 올라간다면 얼마나 바보같은 짓일까..란 생각을 했답니다. 절 코앞에까지 가지 않는 이유를 그 전에는 몰랐지만 그 선배는 우리에게 그 길을 일부러 걷게 하려고 했다는 걸 알게 됐죠..

결코 짧지 않은 길이지만 수다떨면서..깔깔거리고 웃으면서 .. 뻥튀기를 바삭거리게 부수면서 걸어가는 그 길은 그야말로 여정이었습니다.
길 가로 큰 나무들이 울창하게 길 쪽으로 뻗어나오면서 그늘을 이루고 있었는데요 햇빛이 그 잎들을 투과하면서 우리에게 도달할 때 그 빛깔은 노란것도 아닌 것이 연두빛도 아닌것이.. 그 오묘한 은은함은 세상 전체를 푸르게 느끼도록 하는데 참 좋더라구요 그 맑고 시원한 바람이 압권이었습니다. 나를 씻어내어 준다..는 후련함.

그 길을 지나는 동안 벌써 속세에서 쌓여온 답답함들이 하나 둘씩 벗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전 통도사 자체보다는 그 길이 정말 인상깊었죠
통도사 절 자체는 규모가 작지는 않은 편인데 웬지 전 그다지 정이 가지는 않더라구요..그냥 개인적인 느낌.
저에겐 범어사가 너무도 강열하기 때문이죠. 통도사는 평지에 넓게 자리잡고 있는데 사람도 많고 정취를 느끼기에는 그냥 저에게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규모가 약간은 부담스러웠다고나 할까..

참..물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작년 여름 양산 터미널에서 양산 시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착각하고 반대로 가는 버스를 탔지 모에요..그래서 그 버스를 타고 계속 계속 어디론가 가게됐는데.. 혼자서 여기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 할지를 몰라 계속 차를 타고 갔죠.. 그러다가 종점가지 가게 돼었는데요..거기가 바로 물금이었답니다.
정말 멋진 동네였어요.. 넓은 논이 있고 주변에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는데 깨끗하고 시골느낌이 그대로 있어서 참 좋았답니다.
우연히 발견한 곳 치고는 성과가 컸습니다.

그리고..나의 범어사..
평지는 아니라서 오르기 힘든 길.. 통도사의 아류같은 느낌을 주는 약간 좁은 규모.. 조선 중기에 불타버리고 재건했기 때문에 처음 지어졌을때의 모습을 자꾸 궁금하게 만드는 곳.
내가 이십년을 넘게 몸담고 살아왔던 금정산. 제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언제부터인지 모르도록 오랫동안 나와 어머니와..우리 할머니와..그 위의 할머니들의 삶이 묻어 있는곳..

그리고 지금 너무나 그리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고이 잠들어 계신 곳.

다른 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범어사를 중심으로 금정산에는 숨어 있는 절들도 산속 깊숙이 많은데요..
그 분들의 살아왔던 옛날얘기를 전 어릴때 참 많이 들었는데 주 무대가 바로 범어사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죠.. 그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얘기 듣곤 했는데 대학와서 역사를 배우면서..다시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더라구요.. 내가 살고 있는 곳 자체가 역사의 무대였구나..라고 생각을 하니..

어떻게 보면 통도사와 범어사는 같은 가족과도 같은 절인데..
저에게도 통도사는 먼 친척같은 존재이며..범어사는 나의 집 같은 곳이죠.
지금 주변에는 엄마들 계할때 가는 고급 음식점이며 노래방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백악관 노래연습장..실내 골프장..압구정 갈비..아이비 레스토랑..분위기 있게 보이는 평사리 가는길..이라는 간판을 지닌 음식점도 있고 한자로 적혀진 나는 가 본적 없는 한정식 집들도 그렇고..이런것들도 같이 좋아해야..하나..하는 생각.
점점 나의 조상들의 흔적들은 없어져가고..사람들도 어딘가 흩어져 가고..
그런 생각하면 가끔 맘이 가끔 아파집니다.
세월이 흐르면 그에 따라 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서도..
이 오래된 과거에의 향수와 집착은 저에겐 벗어나야 할 숙제와도 같은 것이죠 저의 주변 친척들도 모두 그렇고. 나의 큰 모순이기도 합니다.
역사의 흐름에서 어쩌면..이러한 해체는 역사의 발전을 의미한다고..그렇게 호전적으로..긍정적으로 사람들은 말을 하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그 흔적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약간 마음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는 없는 부분이기도 하네요..제가 역사를 배우지 않았다면 차라리 아무런 생각이 없게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구요..
암튼..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아하..
그러고 보면 저 또한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군요..^^

이상 역사의 현장속에서 저 "???"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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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2/06/18 13:32

전 해마다 지리산을 간답니다.
고모댁이 산청군 중산리에 있거든요
하지만 언저리만 돌았지 본격 지리산 등반은 함도 못해봤습니다.
하지만 대원사..라는 제가 좋아하는 절은 꼭 가죠.
성철스님이 한 때 수행했던 곳이기도 하더군요
절 모양새가 안정감있고 따뜻함이 베여 있는 것이 제 생각이지만 풍수지리적으로도 명당이지 않을까..하는 추측..

그리고
남명 조식 선생을 모신 서원이 근처에 있거든요
작년인가..제작년인가.. 500주년 기념행사를 크게 해서 구경도 갔답니다. 휴가를 갔던 그 주간이 공교롭게도 행사주간이었거든요
남명 조식 선생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는 성성자라는 방울을
사게 되었는데 소리가 맑고 은은한 것이 너무 마음에 들어 결코 싸지 않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구입했답니다. 남명 조식선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에서 해마다 편찬하는 논문집도 즉석해서 가장 최근판으로 구입은 했습니다만..아직 책장에 고이 모셔놓여져만 있네요..

참 그 성성자라는 방울은 남명 조식 선생이 생전에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그 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데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럴까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 소리가 어쩐지..무당 방울하고 소리가 비슷해서리..--;;
그리고 너무 고귀해 보여서 아까워서 가지고 다니질 못한답니다.

앤드..
또 참..그 주변에 신기한 곳을 많이 다녀왔었답니다.
단군을 모신 어떤 종교인데..대종교라던가 천도교라던가..
아주 큰 절 비슷한 곳이 있는데..좀 사이비틱한 느낌이 들었는데 갔다온지가 좀 오래되서 기억은 잘 안나요.
우리가 길거리에서 만나는 대순진리교는 절대 아니구..
암튼 께죄죄한 모습으로 도닦는 사람들이 많는 곳이었는데.. 규모가 상상을 초월해서 어떤 돈 많은 부자들이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은 가능했습니다. 퇴마록에나 나옴직한 장면들이 있어서 쬐금 께름직하기는 했죠..

그리고..그 근처를 돌다가 문익점이 젤 첨으로 목화씨를 씸었다는 그 곳..목면 시배지?..비슷한 이름의 장소도 다녀왔는데 전 박물관 내부 보다는 건물 모양이 예뻐서 반했던 기억이 납니다. 항상 지리산 근방은 여름에 가게 되어서 더웠던 기억들만 새록새록 나는군요..

또 있네요
한국 현대사의 격전지가 바로 지리산 아닙니까..
전쟁 기념관도 근처에 있는데 항상 따라만 다니다 보니 길을 잘 모르겠습니다.^^;; 울 아부지께서 항상 어딘가를 다니는 걸 좋아하셔서 부지런히 따라다니다 보니.. 이런 저런 곳을 많이 다니게 되었네요.. 어찌나 길을 잘 찾아다니시는지 정말 신기하더군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전쟁 기념관이라기 보다는 빨치산 소탕 작전 완수를 기념하는..비슷한 의미로 건립이 된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끔찍했던 한국 현대사임을 간접적으로나 보게 되었죠..빨치산들이 사용하던 오래된 구닥다리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발싸게..칼..총..등.. 그리고 숨을 때 파던 구덩이의 모습.. 그리고 소탕작전 경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입체적 지도로 구성해 놓았었는데.. 저희 고모댁도 만만치 않은 지역에 속했던 곳이더라구요.. 마치 소설 태백산맥 속에 들어와 앉은 듯한 기분이었답니다. 물론 그 쪽은 전라도지만 부근이 다 인접지역이거든요
거기를 다녀온 날에 아는 할머니가 계셔서 물었죠..당시에 어땠냐고..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더군요..동네 남자들이라고는 씨가 마를 정도였다고 하네요..빨치산이 아니라도 이리저리 다른 일로 엮여서 억울하게 죽기도 하고..아직도 모르지만..군데군데 ..구덩이를 파 보면 사람들 시체 꽤나 많이 나올 거라고 하십디다.. 아직까지 숨겨진 비화들이 많다는 증거겠죠..

글고..또 얘기하자면 끝이 없겠네요..
압..레포트 쓰러왔다가..이렇게 간만에 긴 글 쓰게 되네요..
담에 또 기회가 되면 ..더 풀어놓던지 하겠습니다.
친구가 기다려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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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2/09/05 11:5

님의 글을 읽으니 가자기 장 그리니에가 <섬>에서 말한 여행에 관한 대목이 생각이 났어요..

사람들은 여행이란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 언제나 충만한 힘을 갖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아마도 일상적 생활 속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일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한 달 동안에, 일년 동안에 몇 가지의 희귀한 감각들을 체험해 보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우리들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질하는 그런 감각들 말이다. 그 감각이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오히려 발길 가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분숫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여인들과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편이 더 낮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그것은 불가능한 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데 성공하고 나면 바다 위로 배를 타고 여행할 때의 멀미 나던 여러 날과 기차 속에서의 불면 같은 것은 잊어버린다(자기 자신의 인식이라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초월한 다른 그 무엇의 인식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자기 인식 reconnaissance>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각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 엉뚱한 인식이야말로 모든 인식 중에서도 가장 참된 것이다. 즉 내가 나 자신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잊었던 친구를 만나서 깜짝 놀라듯이 어떤 낯선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지정한 모습이다.

몇 주 전에 거제도에 다녀왔었습니다. 적은 비용이었고..고생은 절대 하지 말자는 엠티의 성격을 지닌 여행이었죠. 그러나 부득이한 돌발상황이 발생했답니다. 제가 간 곳이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지 일요일엔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 그런 일이.. 그래서 시외 버스 터미널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한낮의 찌는 더위를 견디며 아스팔트 언덕을 꾹꾹 걸어가고 있었죠.. 지나가는 트럭 하나도 자비를 베풀지 않더군요. 하긴..사람들이 일곱명이나 되니..--;
그 아스팔트 언덕의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한 상황 속에서 찌는 더위와 시름하며 그래도 좋다고 농담따먹기며 사진찍기며..등을 하며 오르고 있었죠..

그 길을 오르는 시간이 참으로 기억에 남는 이유는 찌는 더위 때문에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시원했을 때는 너무 행복하다는 기분.. 그 맑은 공기 땜에 상쾌하다는 기분..그와 동시에 집에 어찌 가야할지..고민하며 아픈 다리..더위..속에서의 고통..

아스팔트 언덕의 꼭대기에 다다르자 저 멀리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의 바다가 보였습니다. 그 바다의 빛깔과 풍경에 대한 감탄 때문에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을 만끽했었는데요..그런데도 막막함에 대한 고통의 감정은 공존하고 있었죠..전 제가 미친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행복하고 힘들고 재미있고 웃기고..이런 감정들이 어떻게 한꺼번에 분출될 수 있을까.. 참으로 신비로운 경험이었죠..

그 찰나의 순간이 아주 오래도록 머리속에 박힌 까닭은 행과 불행은 항상 공존하는데 나는 왜 한쪽만을 보려고만 애쓰는가 하는 허무함이었습니다. 불행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참 어렵네요.. 그때의 기분을 표현한다는 것이..
둘은 항상 공존한다는 것을 나는 왜 인정하지 않고 사는가..하는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서 사는 스스로가 애처럽고도 불쌍하게까지 느껴졌으니깐요..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말이지만 직접 그런 순간을 느끼니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더라구요. 여행이란 것을 통해 직접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그때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친구가 편지하기를. 한달 동안의 즐거운 여행 끝에 시에나에 당도하여 오후 두시에 자신에게 배정된 방 안으로 들어갔을 대 열린 덧문 사이로 나무들, 하늘, 포돷, 성당 드이 소용돌이치는 저 거대한 공간이- 그렇게 높은 곳에 위치한 시에나 시가 굽어보이는 저 절묘한 들판이-보이자 그는 마치 어떤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그의 방은 하나의 깜깜한 점에 불과했다) 그만 눈물이 쏟아져 나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찬미의 눈물이 아니라<무력함의 눈물이었다. 그는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의 동요라기 보다는 정신의 동요였음이 분명하니까). 그는 자기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모든 것을, 하는 수 없이 감당하게 마련인 미천한 삶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는 일순간에 그의 여원들이..그의 사상의, 그의 마음의 무를 깨달은 것이다. 모든 것이 거기에 주어져 있었지만 그는 어느 것 하나 가질 수 없었다. 그 한계점에서 그는 지금까지는 그저 잠정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이별, 그러면서도 오직 그만이 원했던 그 이별이 결정적인 것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의식했다고 말했다."

사람이 몸을 움직여서 행동하며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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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2002/09/30 11:16
부산시내와 접한 곳에 '철마'라는 시골마을이 있습니다.
부산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가 보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안락로타리를 지나 금사동 방향으로 가는 길도 있고..노포동에서 넘어가는 길도 있는데..암튼 그 쯔음으로 연결된 길이 있는 걸로 압니다.

어른들은 고기먹으러 '철마'에 가시더군요. 거기서 직접 잡기 때문에 양질의 고기를 맛볼 순 있지만 그만큼 가격도 만만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끌리오 같은 신성한 곳에 먹는 얘기 하려니 좀 민망하기도 하지만..--;; (에잇 어차피 읽어보는 사람도 없는데 맘대로 쓰렵니다.) 잘 찾아보면.. 오래전부터 살던 마당 넓은 단층 한옥집에서 음식점을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낮에 가면 마당도 넓고 운치도 있고..집 바로 밖에는 논이 넓직하게 있어서 가끔 도심을 벗어나서 트인 기분 느끼기에 참으로 적절한 곳입니다. 음식점 이름까지 말하기엔..너무 광고성이 짙은것 같고..--

그 '철마'라는 곳의 지형이 참으로 독특하답니다. 지리학에 일각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산으로 구석구석 둘러쳐져 있는데 절벽이 깎인 곳이 꽤 다른 주변의 산들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줍니다..(혼자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앗..이 얘기 하려던 것이 아닌데.

암튼.. 그 동네를 구석구석 한바퀴 돌다 보면 참 멋진 마을이란 생각이 듭니다. 날씨 좋은 날..특히 요즘은 벼가 누렇게 익어서 그 색깔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밭에 가꿔놓은 농작물들이 정말 싱싱하게 보이더군요.. 아마 약간 고지대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유독 그 동네 공기만 참 시원하고 맑거든요.. 산의 숲도 울창한 것이 눈의 피로도 싹..풀리고

노포동 넘어서의 시골 비스무리한 곳들은 많이 가봤는데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 지역이 유난히 농사가 잘 된다는 게 눈에 보인답니다. 동네 자체가 볕이 잘 들고 바람이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 동네 소들이 맛있는데는 그런 이유도 있겠지요..

. 아주 잘 익어가는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보고 있으니 마음 가득..넉넉하고 뿌듯해지더라구요 꼭 내가 거기에 일조한 것 같이..
가을이 되니깐 푸른 산에 노랗고 붉은 점(그 붉음에도 단계가 각가지더라구요 약간 오렌지빛이 든 것도 있고 좀더 진해진 색깔들까지)들이 곳곳에 찍혀 있어서 눈이 그다지 심심하지 않구요..인상파의 점들이 유난히 많은..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하고.. 가을로 가는 과도기의 장면이었다고나 할까.

근데 왜 동네 이름이 '철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좀 더 토속적이고 정겨운 이름이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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