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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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 셰익스피어의 MacBeth를 읽었다. 그 책을 읽은 후의 느낌이 이 책을 읽은 후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인과 악인으로 갈리는 지점. 의도했건 안했건 예기치 못한 사건들은 내 심연 속에 있는 정체성, 드러내 놓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 바닥에 있는 가치들을 표면 위로 부상 시킨다. 특히나도 전쟁과도 같은 상황은 물리적으로 변화를 촉구 시키며, 닥쳐 오는 위험들은 내가 잡아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들 중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도록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것 또한 일종의 전쟁이다. 내 의식, 상식으로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폭풍과도 같은 큰 사건. 

맥베스는 자기도 인식하지 못했던 권력에 대한 욕망이 마녀들의 예언 아닌 예언으로 발동이 걸린다. 그 야망은 마음 속 전쟁과 실제 살인과 폭동을 일으키게 한다. 이때 맥베스가 한 말들이 인상 깊었다. 머뭇거리던 강을 넘어가면 그 후는 쉬워 진다고. 돌아서 나오기가 건너가 버리는 것 보다 더 어려워 졌노라고. 그렇게 강을 건너 갔지만, 그래서 폭군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그는 끊임 없이 불안과 위기 속에서 괴로워 하다가, 끝내 맥더프의 칼에 죽는다. 

전쟁과 욕망. 다시 말해 외부의 자극과 내부의 욕망. 자극이 욕망을 발동 시키기도, 욕망이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책에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난다. 전쟁은 누구에게도 끔찍한 순간이다. 생존을 건 스스로와의 싸움이다. 지니고 있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그러한 열악한 조건은 드러나지 않았던 개개인의 가치와 욕망을 모두 벌거벗기듯이 노출 시킨다. 그리고 시계의 전지가 있는 한 0초를 떠난 초침이 한바퀴 돌아 다시 0초로 돌아오듯 그러한 욕망들이 서로 얽히고 얽혀서 다른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기도, 상처를 주기도, 심지어 죽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후회의 장막 안에 가둬 버리기도 한다. 

아무런 갈등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의 모습. 그 현실에 폭탄 하나 떨어지면 모두가 어떻게 돌변할지 어떠한 유형의 인간으로 변신할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변하는 모습에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각자가 가진 가치가 다르고, 각자가 두려워 하는 것이 다르고, 모두 살아 남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인데. 

50년대 클레어의 이야기로 마무리 하는 단락이 참 멋있었다. 자신을 지탱해 주었던 가족, 체면 모두 무너져 버린 상황에서 그녀를 버티게 해준 것은 단순한 깨달음이었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거리로, 못 나간다고 단정지어버렸던 그 곳으로 나서기만 하면 된다는 것. 윌이 두려워서 끝내 트루디를 잡지 못했던 것, 그래서 후회 속에서 십여년을 갇혀 지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 발 내디디는 것. 그것은 악의 길로도 빠지게 하는 시발점이기도 하지만, 후회로 점철된 과거에서 희망의 미래로 자신을 옮기는 용기있는 행동이기도 한 것 같다. 

내가 결코 내딛어서는 안되는 한 발짝. 내가 꼭 내디뎌야만 하는 한 발짝.
나의 인생에서 지켜내야 하고, 깨버려야 할 것들이 각각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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