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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장아이링 지음, 김은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장아이링. 섬세하고 독특한 그녀의 글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
<색, 계>하면 왠지 야하다는 느낌에 선뜻 영화로도 접근하기가 힘들었고 책을 읽으면서도 내심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흥행한 영화의 원작소설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어느 누가 마다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달콤한 꿀항아리를 통째로 먹을 수 있는 기회인데 말이다. 랜덤하우스의 두꺼워도 가벼웠던 여타 다른 책과는 달리 종이의 재질이 살짝 두꺼워서 무거운 느낌이 들었지만 반짝반짝한 종이의 느낌이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연출했다.
솔직히 '영화화할 정도의 원작소설이니 두꺼운 것이 당연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하며 책을 펼쳤지만 60페이지 정도의 단편이었던 탓에 너무나도 놀랬다. 어떻게 이 짧은 단편을 영화화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장아이링의 소설을 읽어보면 그것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글은 그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을 담고 있었으며 감정들을 글로 응축시켜놓아 사이사이 그와 그녀의 감정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60페이지가 아닌 600페이지 이상의 소설을 읽는 듯한 긴 여운이 남았다.
<색, 계>는 소설 색계를 포함하여 못 잊어, 해후의 기쁨, 머나먼 여정, 재회, 연애는 전쟁처럼의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장아이링이 묘사하는 시대상황은 지극히 어지럽던 시기였던 탓에 그녀가 담은 이야기들도 조금은 어둡다. 사랑하지만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그 괴로움은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이란 이루지 못했기에 더욱 오랫동안 남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6편의 단편들이 각각의 구성과 내용을 담고 있어서 책의 장수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하나 하나의 이야기들이 영화를 봄직한 느낌을 자아냈으며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하나하나 시간과 공을 들여서 천천히 읽어봤으면 하는 작품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제목과 같은 내용으로 영화화된 <색, 계>였다.
대학생인 왕지아즈는 매국노인 이선생을 암살하기 위해 2년간의 공을 들였고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하지만 그를 암살하기 위한 장소였던 보석상으로 그를 이끌어왔지만 자신에게 선뜻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고자 하는 그의 눈빛을 바라보며 그의 사랑이 진심임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둘의 나이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지만 둘은 신분과 나이를 뛰어넘은 사랑을 하게 된 것이리라. 왕지아즈는 그를 살리기위해 그를 도망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하지만 그는 왕지아즈와 암살단을 모두 일망타진하여 죽이게 만들어버린다. 물론 왕지아즈를 살릴 수도..곁에 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평생동안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할 여인. 지기인 왕지아즈를 얻었으니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독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다?...그러면서 그녀를 죽인 자신의 행위를 옹호하고 싶었을까?... 그녀와 그의 사랑은 어긋났다. 너무 뒤늦게 알아버린 탓이리라. 자신들의 감정을 조금 더 빨리 느꼈으면 좋았을것을... 묘한 감정의 묘사가 자꾸만 눈길을 잡아끄는 작품이다.
<책속의 말>
그녀는 죽으며 자신을 분명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면 그녀 역시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기(知己)를 한 명 얻었으니 죽어도 여한은 없었다. 그는 그녀의 그림자가 평생 영원토록 자신의 곁에 머무르며 자신을 위로할 것임을 알았다. 그녀가 자신을 원망하고 미워한다고 해도 상관없었고, 마지막 순간 자신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얼마만큼 강렬했었는지도 상관없었다. 그냥 감정이 있었다는 것으로 족했다. 그들은 원시시대 사냥꾼과 먹잇감의 관계였고, 매국노와 매국노를 위해 결국 앞잡이가 된 관계였으며 가장 마지막에 서로를 점유한 관게였다. 그녀는 살아서는 그의 사람이었고 죽어서는 그의 귀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