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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키핑
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타임> 선정 100대 영문 소설.
'뉴욕타임스' 선정 최근 25년간 미국에서 발간한 최고의 소설.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도리스 레싱이 극찬한 작품.
펜/헤밍웨이 문학상 수상작. 풀리처 상 노미네이트.
표지가 좀 어둡고 칙칙한 느낌을 풍겨서 그런 류의 소설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예상대로 그런 느낌이 났었다. 하지만 '하우스키핑'이라는 것의 뜻은 읽으면서도 내내 궁금해서 이내 네이버 사전검색으로 그 뜻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하우스키핑"이란 인공위성 탑재 기기가 그 환경에서 충분히 동작하도록 전원 상태, 온도 등을 정상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것. 일반적으로는 위성의 상태를 원격 측정하여 지구국으로 보내면, 지구국 측에서 판단한 다음 필요에 따라 지령을 위성으로 보내어 제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음...그렇다면 무언가가 제대로 돌아가는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겼었다.
이 책에서 화자는 루스다. 루스는 루실의 언니다. 그리고 루스는 자신의 어릴 때 뿐만 아니라 과거 외할머니 때부터 엄마의 존재까지도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후에 해설부분을 읽으며 알게 된 내용이었지만 루스는 성경속 인물 루스처럼 강인하고, 독립적이며, 자기 의지가 강한 여인을 표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루스와 루실은 실질적으로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어느날 예쁘게 단장을 하고 두 자매를 외할머니 집에 보낸 후에 호수로 자동차를 몰고 들어가 자살을 함으로 인해 외할머니의 손에 자라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외할머니 또한 돌아가시게 되고 루시와 루실은 외고모 할머니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녀들은 할머니들답게 자신들끼리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자신들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판단했다. 자신들의 생각으로만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살아가던 얼마쯤 후에 또 다시 막내이모인 실비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실비의 보살핌을 받던 루스와 루실은 방랑벽이 있는 그녀가 갑자기 사라지게 될까봐 걱정했으며 자신을 버리던 날 그녀들의 엄마가 했던 것처럼 예쁘게 단장하는 모습을 보고 실비 또한 떠나갈까봐 그녀를 무작정 따라 나서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결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심정을 세세하게 그리고 애잔하게 그리고 있다. 부모의..그리고 가정이라는 것의 소중함을 그리며 그들 하나 하나의 삶에 대한 성찰을 보며 요즘처럼 생활의 여유(?)가 넘치는 때에 너무 귀한 것을 많이 받은 나머지 귀한 줄 모르고 폐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며 이맛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여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살피지 않는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황폐해진채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루스와 루실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들의 사랑을 얻기 위한..그리고 버림받지 않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눈물을 흘릴 수 없게 하면서도 마음을 울린다.
어느날 루실의 역사시험 시간 커닝 사건으로 인해 둘은 무단 결석을 하게 되고 그에 대한 걱정을 했지만 실질적으로 오랫만에 학교를 간 그녀들은 사정이 특별하다는 이유로 결국 아무일 없이 넘어가게 된다.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느낌..그것은 아마도 이들에게는 안도감과 한편으로는 치욕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그리고 옷만드는 일로 찾았던 할아버지 사전에 있던 말린 꽃잎으로 인한 자매간의 싸움..그리고 점점 변해가는 그녀 루실..루실은 세상에서 인정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실비 이모를 인정하지 않게 되고 소위 세상사람들이 정상이라고 부르는 무리에 들어가 로이스 선생님의 양녀로 들어가게 된다. "그날 밤 이후 나는 더 동생이 없었다"라고 고백하는 루스를 보며 어떤 길이 옳은 것일까 하는 고민을 잠시나마 해보았다.
결국 루스와 실비 이모만 남아 둘은 자매처럼 살아갔으며 둘은 하나의 가족이었다. 하지만 실비 이모는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때 굿 하우스키핑을 하는 사람이 아닌 관계로 정상적인 하우스키핑을 하는 사람들의 무리로부터 둘을 강제적으로 떼어놓으려는 음모아닌 음모가 벌어지게 되고 둘은 함께하기 위해 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다. 도대체 정상과 비정상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많은 이들에게 둘은 호수에 빠져 죽은 사람으로 불리우게 되고 결국 루실이 그 집과 모든 재산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후에 자신들이 루실의 집 창가에서 그 안을 바라볼 것이라는 회상을 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우면서도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왜 루스와 루실은 다른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자연의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루스와 실비를 세상은 왜 용납이 안되는 것이었는지..책을 다 읽고 난 후 마지막에 해설과 옮긴이의 후기를 읽으며 이 책을 읽으며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 책은 한 번이 아닌 두 번째 읽어야 그 참 맛을 알 수 있다는 그 말에 시간을 내어 '하우스키핑'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더 읽어보리라 다짐을 했다. 이 소설에서 흥미진진함과 박진감을 기대하는 분들이라면 비추이다. 하지만 깊은 성찰과 곱씹는 맛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적극 추천을 해주고 싶다.
<책속의 말>
다시 말하면 할머니는 인생을 사람이 여행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셨다. 광활한 지역을 지나가는 비교적 쉬운 길로, 출발지로부터 일정 거리만큼 떨어진 지점에 여느 집처럼 평범한 불빛 아래 목적지가 기다리고 있는... 안으로 들어가면 점잖은 사람들이 여행자를 환영하면서, 그가 잃어버렸거나 한쪽으로 치워 두었던 모든 것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다리는 방으로 그를 안내하는 그런 집처럼 말이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사랑이란 소유했다고 해도 결코 누그러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갈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를 묘사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마치 밤에 불이 켜진 유리창 너머로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기억이란 본래 분해되고 고립되고 제멋대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다 허깨비일 뿐이니, 세상의 참모습 위에 떨어져 내린 얇은 막이었다. 신경과 뇌가 속임수에 넘어간 까닭에 사람들은 이 허개비가 우리 손을 놓고 멀어져 간다는 환상에 빠진다. 아울러 구부정한 등과 흩날리는 외투 자락이 너무 친근한 나머지, 그것이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세상에 그것만큼 쉽게 소멸하는 것도 없다.
가족을 해체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만일 그것을 이해한다면, 그 뒤에 벌어질 모든 일도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