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다룬 책이 쏟아지고 있다. 알라딘의 [국내도서 > 사회과학 > 통일/북한관계] 분류하에만도 2020. 5. 22. 현재 2,106개의 상품이 등록되어 있고(90년대 이전 책 중에 등록되지 않은 상품도 많을 것이고, 다른 여러 카테고리에 흩어져 있는 책도 있다), 매월 단행본이 10권 꼴로는 꾸준히 등록되는 것 같다. 이전과 다른 것은, 이데올로기적 경쟁 대상 내지 당위적 실천의 지향으로서 북한과 통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실상 자체(인권 문제를 포함하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늘어났다는 점이다(경쟁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세력이야말로 북한 없이는 죽고 못 살고, 북한을 여전히 진지하게 경쟁상대로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이탈주민을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게 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통일부 집계에 따르면, 2000년대에는 연간 입국 인원이 2,000명~3,000명에 이르렀으나, 최근 들어서는 연 1,000명대로 줄어있다. 김정은 집권 후 국경통제가 늘어난 영향도 있을 테고,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개인의 경제활동과 재산 사유화를 어느 정도 용인하면서 살 만하게 된 사람들이 늘어서일 수도 있다. 이탈주민 다수가 중국에서 잠복기를 가진 뒤에 남한으로 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입국자는 더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2019년 말까지 북한이탈주민 3만 3천여 명이 남한에 와서 살고 있다. 인구가 늘면서 북한이탈주민 사이에 사기(詐欺), 동업 실패 등 분쟁도 늘고 있다. [통일부 > 주요 사업 > 북한이탈주민정책 > 현황 > 최근현황] https://www.unikorea.go.kr/unikorea/business/NKDefectorsPolicy/status/lately/

  


  최근 전 세계적으로 '난민 문제'가 이슈가 되다 보니,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남한에도 북한 주민이 3만 명 넘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며 난민 지위를 부여받는 것인지부터 묻는다. 우리 헌법상 북한도 대한민국 영토이고, 따라서 북한 주민도 특수한 지위를 인정받기 때문에, 법률(「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정원 조사를 거쳐 보호 여부를 결정한 뒤 하나원에서 사회적응교육을 받고, 직업훈련과 생계급여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해주면 무척 신기해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비하여 외국에서는 훨씬 더 남한과 북한을 아예 별개 나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남북이 각자 공식적으로는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대한민국 헌법 제4조, 통일부 존재 등). 하나원 도서관이 정서적(+ 사상적?) 연착륙을 돕기 위하여 책을 사려깊게 갖추어 두고 있다는 이야기나, 중국 어딘가에 숨어 살다가 입국하는 경우가 많아 글말은 몰라도 입말로서 중국어는 익숙해져 입국한 탈북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중국어, 중국 관련 전공을 많이 선택하고, 호기롭게 경제학, 경영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가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는다.[통일부 > 주요 사업 > 북한이탈주민정책 > 현황 > 입국 및 정착과정] https://www.unikorea.go.kr/unikorea/business/NKDefectorsPolicy/status/entry/; 위키피디아 하나원 페이지(영문) https://en.wikipedia.org/wiki/Hanawon 참조.


  분단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교류 단절 상태가 오래 지속될 줄 알았더니, 연결, 저장매체의 발달로 남북이 서로의 실상을 간접적으로나마 꽤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책 2장의 "한국 대중가요에 푹 빠진 평양 시민", "한국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평양 시민"에서 보는 것처럼, 상당히 많은 북한(평양) 주민들이 남한 컨텐츠를 소비하고 또 동경하는 것 같다(북한이탈주민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분도 지인 소개로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를 숨어서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유학 나가있는 당 간부 자제들은 웹하드, 토렌트 사이트에 가입하여 남한 영화, 드라마, 대중가요를 '불법 다운로드'하여 즐긴다(10년도 더 전에 들은 일이다). 유튜브에서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북한을 여행하고 업로드한 영상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심지어 북한 쪽에서 운영하는 계정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책이나 영상을 보면 적어도 평양만큼은 전혀 아무 것도 없는 상태까지는 아님을 알 수 있다(생각보다 준수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미국에서도,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더라도, 특히 트럼프의 카운터 파트너로서 '김정은'에 대한 관심이 늘어있다. 서점에서도 북한 관련서를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국제 학술대회를 가보면 북한의 '장마당'이나 웬만큼 자율권을 갖는 '회사'들에 관한 이야기가 오간다(책 1장 "시장경제의 펌프, 장마당" 등 참조).


  요컨대, 북한은 '자본주의'라고까지는 못해도 '시장경제'를, 어쩔 수 없이, 부분적으로라도 도입하고 있고, 2009년 화폐개혁 실패 후 시장에 대한 통제력은 더욱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대외교역 없이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다(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변화가 임박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 1년? 3년? 아무리 늦어도 10년 내에는 올 것이 오리라고 보고 있다. 그 때까지 저 체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독일, 베트남 등 모델이 거론되고 북한의 지하자원에 관하여 많은 기대를 거는 것 같지만, 이 책 328쪽 이하에 나오는 것처럼 과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통일로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늙고 있다[책에 인용된 KDI 보고서는 김두얼, 남재현, 김석진, 김영훈, 이상준, 송준혁, "남북한 경제통합 연구: 북한경제의 장기발전전략" https://www.kdi.re.kr/research/subjects_view.jsp?pub_no=13282인 것으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최근 김정은의 신변을 둘러싸고 벌어진 해프닝으로 주성하 기자가 그런대로 믿을 만한 정보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이었다. 다만, 이 책은 주로 기억에 의존하여 쓴 것인지 디테일에서 빈구석이 보이고(날짜가 궁금한데 책에서 찾을 수 없다거나), 책 특성상 일일이 출처를 들 수 없는 면이 있는 것도 같지만 위와 같은 문헌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그래도 지은이가 머리말에서 희망한 것처럼 "북한을 이해하는 데 대표적인 입문서"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발상을 전환하여 북한을 '에스토니아' 모델로 발전시키는 것은 어떨까. IT 기술이 격차를 빠르게 좁히는 묘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최근 미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년간 암호화폐 거래소 해킹 등으로 수십억 달러를 빼돌렸다고 한다. 정상적 경제활동이 막혀있다 보니 이런 식으로 외화를 버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모르긴 몰라도 상당한 기술자 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Danny Nelson, "미국 정부, '북한 암호화폐 범죄' 목록 공개", Coindesk Korea (2020. 4. 16.) https://www.coindesk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70735; Ian Allison, "북한, 암호화폐 이용한 거래로 경제 제재 회피" Coindesk Korea (2020. 4. 9.) https://www.coindesk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70685; Sebastian Sinclair, "North Korean Hackers Ramp Up Efforts to Steal Crypto Amid Coronavirus Pandemic," Coindesk (May 11, 2020)].


  빠른 사회 동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법문화의 통합이라고 생각한다. 책 전반에 나오는 것처럼 북한 사회는 현재 '뇌물의 연쇄'로 돌아가고 있고, 공동체를 위해 규범을 지킨다는 의식이나 공감대가 거의 없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위반자들을 아무리 사형시킨다 한들, 법이 먼저 공정하고 또 일관되게 집행되지 않는 한 규범력은 결코 높아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평양의 법률시장 개방이 임박했다는 소식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사회에 법치주의와 법문화부터 뿌리 내리게 해야 한다. 강한, "(단독) 북한, 사실상 법률시장 개방… 법적 인프라 구축 본격화", 법률신문 (2020. 5. 18.) https://m.lawtimes.co.kr/Content/Article?serial=161567; 강한, "(단독) 한국 로펌, 평양 진출 추진", 법률신문 (2020. 5. 18.) https://m.lawtimes.co.kr/Content/Article?serial=161551 등 참조.


  전 세계가 방역하느라 정신이 없는 시기이지만, 그런 때일수록 더 철저하게 대비하고 움직여야 한다. 어쩌면 많은 나라가 여력이 없는 지금이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국제적 협력, 특히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인심을 쌓아두어야 한다. 중국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시기가 위기이자 결정적 기회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채권에 외국인 투자자가 모이고 있는 것은 호재다. 결국 통일자금은 그렇게 마련해야 한다. 이미 많은 기관들이 나름의 분석과 행동전략을 마련해두고 있지만, 불현듯 닥칠 제재완화와 교류증대의 상황에 먼저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각자 처한 위치에서 만반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덧) 133쪽에서 137쪽까지에 나오는 '대동강맥주' 이야기, 특히 1번부터 7번까지 맥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정말 매혹적이다. 현지에서 먹는 맛이 궁금하다!


  주성하 기자는 위 책 이후에도 책을 한 권 더 내셨다.




  북한의 경제와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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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2020-08-0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 글에서 통일부의 ˝북한이탈주민 입국인원 현황˝은 입국자만 집계한 것이어서, 실상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불과 며칠 전에 성범죄 수사 중 재입북한 탈북민에 관한 기사가 언론을 뒤덮기도 하였지만, 끝내 남한에 정착하지 않고(또는 못하고) 제3국으로 가는 인구도 함께 고려에 넣어야 할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주성하 기자의 다음 영상을 참조. https://youtu.be/vm2Qz8Zx7Uo

오늘 ˝좋아요˝가 달려서 보니 글에 잘못된 내용이 있음을 깨닫고, 원문을 수정하지는 않고 댓글로 남겨 둔다.
 



  알라딘 리뷰를 보고 중고서점에서 사고는 책장에 꽂아둔 채 잊고 있던 것을 아이가 찾아냈다.

  나온 지 10년도 더 지나 '첨단'기술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스타인웨이 피아노'라든가 '깁슨 전기 기타' 같이 꼭 최신일 필요는 없는 기계들을, 내부가 어떤 부품들로 이루어졌는지를 찬찬히 보이며 원리를 설명하고 있어서 대단히 유익하다. 『도구와 기계의 원리』에 비하면 첨단기술을 더 많이 다루었다고 볼 여지도 있고...

  아내는 처음에 아이가 이 책을 꺼내달라고 했을 때 '누드백과'라는 제목만 보고 짐짓 긴장하였다고 하는데, 아이와 함께 책을 보고 나서 '이런 좋은 책이 있었으면 왜 진작 보여주지 않았냐'고까지 하였다. 아이가 즐겁게 보고 있다.

  거듭 느끼지만 DK는 정말 좋은 출판사다. 다만, 한국 출판사인 을파소에서, 번역 제목을 굳이 저렇게 지을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제목이 달랐다면 책도 더 많이 팔리지 않았을까. 원제는 『Cool Stuff Exploded』이다. 글쓴이 Chris Woodford는 어린이 과학책을 여럿 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데이비드 맥컬레이 David Macaulay의 『도구와 기계의 원리』도 다시 나왔다. 역시 DK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한국 출판사는 달라도 DK 출판사에서 낸 유사한 책들이 여럿 있다. David Macaulay는 사실 더 많은 책을 냈는데, 모두 소개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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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미지를 실수로 지웠다가 다시 넣었더니 썸네일 이미지로 다른 책이 뜬다.)


  이상하고 '후진' 생각과 실천들에 대하여 그것이 왜 이상한지를 설명하여 납득시켜 주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동시에 그런 차별적 인식은 우리 안에 너무 깊이, 켜켜이 뿌리박혀 있어서 끝없이 성찰하고 정정해 나가지 않으면 어느새 차별과 권력을 실천하는 것이 된다. [예컨대, 어제 링크한  "조나단, 한현민, 라비 '흑형'이란 말에 상처 받는 이유", BBC News 코리아 (2019. 9. 4.) https://www.youtube.com/watch?v=QnTPdBMLzOo 영상을 보면, 한국에서 백인들에게는 "혹시 어디서 공부하시냐?"라고 묻지만, 흑인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한테는 "혹시 어디서 일해요? 어느 공장?"이라고 묻는다는 장면이 있다. 유쾌하고 발랄하게 우리 내면의 그릇된 코드를 성찰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영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위와 같은 장면은 은연중에 노동에 대한 비하와 혐오를 내포한 것일 수 있다. 예컨대, 같은 영상을 블루 칼라 노동자나 그 자식들에게 보여준다면 그 또한 상처를 주는 일이 되지 않을까?] 페미니즘은 차별과 권력의 코드를 파헤치고 드러내는 최일선에 있는 사유로서, 우리의 일상을 하나하나 바꿔 나가는 가장 실천적 투쟁이 된다.


  재작년 말에 양성평등 강연을 준비하면서 참고할 목적으로 절반을 읽다가 이번에 마저 읽었다(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0557605). 최근 들었던 강연에서 참 인상 깊었던 대목 중 하나가, 한국 사람들 다수는 백주 대낮의 언론사 인터뷰나 설문조사에서 자신의 차별적 인식과 혐오 발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스란히 발화한다는 것이었다(자기 얼굴이 노출되는데도). [역시 어제도 링크한 세계가치조사 http://www.worldvaluessurvey.org/WVSContents.jsp를 보면, '다음 사람들을 이웃으로 맞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나라별로 집계하고 있다. 질문한 항목은 약물중독자(Drug addicts), 다른 인종의 사람(People of a different race), AIDS 환자(People who have AIDS), 이민자/이주노동자(Immigrants/foreign workers), 동성애자(Homosexuals), 종교가 다른 사람(People of a different religion), 폭음자(Heavy drinkers), 비혼 동거 커플(Unmarried couples living together),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People who speak a different language), 전투적 소수자(Militant minority), 전과자(People with a criminal record),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Emotionally unstable people), 무슬림(Muslims), 유대인(Jews), 전도사(Evangelists), 출신국에서 오지 않은 사람(People not from country of origin, 맥락을 정확히 모르겠다), 정치적 극단주의자(Political Extremists)이다(이들 범주 하나하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위와 같이 범주화하는 것이 적확한지, 심지어 정의할 수나 있는 것인지 대하여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대중 인식 지형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이므로 그러한 질문은 잠시 접어두자). 우리는 다른 인종과 이민자/이주노동자, 성적 소수자, AIDS 환자 등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 전반적으로 아주 높다(특히 AIDS 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이는 과학적이지도 않고 보건의료 관점에서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양에서 AIDS는 더 이상 치명적이거나 전파되는 질병이 아니게 되었음에도, 한국에서 AIDS 환자는 병이 아니라 자살로 죽는다는 서글픈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더 큰 문제는 우리가 흔히 인종차별, 소수자 차별이 우리보다 심하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에서도 그런 인식을 우리처럼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 나라들에서 그런 말을 공적인 자리에서 서슴없이 하면 질 떨어지는 수준 낮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친구를 잃게 된다. 나아가 직장을 잃을 수 있고 법적으로 처벌받는 일도 생긴다. 지금 미국에서 각종 총기로 무장하고 거리에 나와서 "COVID-19에 관한 언론 보도는 모조리 '가짜 뉴스'이고 트럼프 대통령을 낙선시키고 우리 경제활동과 자유를 억압하려는 민주당의 '음모'"라는 식의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적어도 낮에는)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보수든 리버럴이든, 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외국에서는 그 비슷한 취급을 받는 언행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좌파 정당은 좀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시류에 타협하는 모습이 보이고, 특히 남성 중에 차별적 태도를 곧잘 드러내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국뽕 마케팅'은 주의 깊게 자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당장 중국의 자화자찬이 엄청난 백래시를 맞고 있지 않은가. 트뤼도 총리가 여러 면에서 오락가락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음 연설은 우리가 곱새겨 볼 만하다. 캐나다 정부에서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차별 관행을 역사적, 공식적으로 사과한 연설이다. "Full Speech: Justin Trudeau offers formal apology to LGBTQ community for government discrimination," Global News (2017. 11. 29.) https://www.youtube.com/watch?v=xi23IL3b6cs]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 훈련의 차이, 술집에서 '이모'라는 호칭, 아침드라마의 사회학과 같이 평소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일상에 대한 지적이 흥미롭다. 아무튼 대한민국 남성들이여, 우리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요, 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직면하자("남성들이여, 우리가 악어임을 받아들이자"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10398432). 그래야 우리도 더 행복해진다.


  곧 『민원을 제기합니다!』라는 신간을 내실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 책들이 인용되어 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쓴 리베카 솔닛의 책이 상당히 많이 번역되어 나와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어둠 속의 희망』과 『걷기의 인문학』은 각각, 2006년 창비, 2003년 민음사에서 나왔다가, 2017년 창비와 반비에서 다시 나온 것이다.




추가) 가톨릭 교회에서 여성 사제를 허용할 때까지 신도들이 미사 참여를 보이콧하는 건 어떨까... 지은이처럼 그 때문에 이미 떠난 이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미사 전례에서 가부장제적 어휘들이 불편하다. 여성 사제 불허 방침이 영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한상봉, "여성사제, 여전히 남은 숙제", 가톨릭 일꾼 (2018. 12. 3.) http://www.catholicworker.kr/news/articleView.html?idxno=2463; "여성의 역할 존중하지만 여성 사제는 허용 안 돼", 가톨릭평화신문 (2016. 11. 13.)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659584&path=201611; 조광태, "여성+기혼 사제의 등장?…가톨릭 전통, 천년의 빗장 열릴까", UPI 뉴스 (2019. 10. 2.) https://www.upinews.kr/newsView/upi201910020062; 이미령, "가톨릭 구하려면 여성 사제 허용하라", 한국일보 (2019. 10. 23.)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0231500342581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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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글들을 많이 담고 있다. 2002년에 나온 책으로, 인용된 문헌들은 훨씬 더 오래된 연구들이라, 이 책만 봐서는 최근 20~30년 사이에 눈부시게 발달한 방법론을 전혀 챙길 수 없다(책에 따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은데, 1995년에 정민사에서 같은 책이 나왔던 것으로도 보인다). 현실의 법제도 운용에 곧바로 젹용될 수 있는 실용적 연구들임에도, '실증자료에 입각한 과학적 정책 수립'과는 거리가 먼 우리 문화에서는 '법심리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제대로 크지 못한 채 딴 나라 이야기로 머물러 있다.


[어느 나라나 다소간 그런 경향을 가지고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정책 결정의 방향을 좌우하는 것은 '진영'이고, 그 진영에 의한 '프레임 선점'이다. 한 번 프레임과 방향이 서고나면 그와 배치되는 어떤 증거도, 전문가들의 우려와 이견도, 덮고 넘어가기 일쑤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http://likms.assembly.go.kr/bill/main.do에서 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들여다보면, 별다른 근거도 없이 당론에 따라 대충 감으로 만들어지는 법이 얼마나 많은지를 여실히 볼 수 있다. 우리가 깔보는 여러 선진국들은 법을 그 정도로까지 허술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아무리 트럼프 같은 대통령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더라도, 대중의 관심을 끄는 상징적, 이데올로기적 정책 일부를 제외하고는(오늘날 정치는 거대한 비즈니스이고, 정당도 이익집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와 같은 정책들은 국가의 예산과 자원, 인사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경쟁-선거-에서 대중을 낚기 위한 擬似쟁점(pseudo-issue)이고 미끼들이다), 효과와 부작용에 관한 경제학적 분석, 비용 편익 분석을 당연히 거치고, 다양한 입장과 각도에서 작성된 심도 깊은 논문·보고서가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제출되며(근거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는 게 아니라 정해진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근거를 만드는 경향이 최근 더 뚜렷해진 '정당 산하 연구소'들과는 다르다. 또한 국회의원들이 어떤 자료를 참고하여 법을 만드는지를 알기 어려운 우리와 달리, 입법자료가 온라인에 충분히 공개되어 여러 방식으로 검증받는다), 다른 입장에 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청회가 개최된다(누구라도 쉽게 온, 오프라인으로 볼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의원들은 입장을 열어둔 채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실질상 대다수 법들에서 대통령이나 정당은 문제되지 않는다. 어쩌면 분야별 전문가 풀을 최대한 활용·존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누가 되든 큰 틀에서 나라가 굴러가는 데는 대차가 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다만, 이번 팬데믹 국면에서 미국은,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이 여러 약점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대재앙을 초래하고 있다). 연방제 국가의 경우, 신기술이나 여타 새로운 사회적 현상과 관련한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복수의 주(state)가 저마다 일자리 유치 등 다양한 동기에서 다른 버전의 정책을 내놓고, 연방 차원에서는 이들의 정책실험 결과를 본 뒤에 최선의 것을 연방법으로 최종 낙점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미국은 이론상 50 개 이상의 법이 실험될 수 있다). 아무튼 우리 유권자들도 미디어로 보이는 이미지만 볼 것이 아니라 대표자들이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따져 그들의 '유인구조'에 건설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안목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의안정보시스템에 공개된 회의록(특히 소위원회)을 찬찬히 보면, 겉으로는 멀쩡하게 잘 포장되어 있는 정치인들마저 실제로는 얼마나 전문성이 떨어지고 책임 없이 아무 말이나 늘어놓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이들에게, 언론에 나갈 '한 방'에만 집중하면 되는 유인구조 이상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도 당내 정치, 이미지 관리나 신경쓰고 정쟁에 골몰할 뿐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료와 근거를 따지지 않는 이런 문화를 바꾸려면, '링크'를 허용하지 않는 포털의 기사 제공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하여야 한다. 우리 이상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에서 주요 언론이 자료를 인용할 때 그 근거를 링크로 달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독자는 기사를 직접 검증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스스로 더 조사할 수도 있다. 따라서 링크 여부는 민주적 언론 환경의 징표이다. 그런데 우리는 각 언론사가 아니라 포털의 큐레이팅을 통해 뉴스를 접해왔고(네이버는 다음카카오와 달리 기사 선별 정책을 바꾸었지만 여전히 독점적 플랫폼으로서 지위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 상황에서는 '클릭장사'에 가장 큰 유인이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굳이 더 노력해서 양질의 기사를 생산하려 하지 않는다(다른 나라들에 비해 기사 길이가 짧고 독보적 기자 몇 명을 제외하고는 수준도 얕다. 언론이 대중교육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이는 크게 우려스럽다). 시장이 작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자료를 꼼꼼히 링크로 달아 신뢰성 높고 차별화된 기사를 내는 언론들이, 더 많은 독자, 혹은 절대 독자 수로는 아니라도 기꺼이 구독료를 낼 수 있는 독자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안타깝게도 충분히 개선되지 못한 지금의 기사들마저 독자를 유튜브에 빼앗기고 있다).]


  돌아와서, 책의 13장 중 12장이 직, 간접적으로 형사법 이슈를 다루는 논문인데, 우리는 실증에는 관심이 없고 규범만 따지느라 범죄학, 범죄심리학, 행형학과 같은 인접학문의 성과들이 법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한 채 따로 놀고 있어 씁쓸할 따름이다. 원자료(raw data)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다 보니, 사회과학자들도 우리 사회의 문제는 충분히 분석하지 못하고 나날이 격차를 벌리는 외국 연구만 부럽게 바라보며 손을 빨고 있어야 하는 형편이다.


  어쨌든 법심리학은 우리나라에서 불모의 상태로 남아있는데, 그나마 Wrightsman's Psychology and the Legal System 제8판이 감사하게도 올해 3월 번역되어 나왔다. 제8판은 2013년에 나온 것인데, 미국에서는 한글 번역본이 나오기 2년 전인 2018년 3월 이미 제9판이 나왔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 책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최신의 지식은 어쨌든 대개 영어로 생산되고, 영어로 직접 읽지 않는 한 최소한 5~10년씩 번번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연구자 풀이 두텁지 못하여 쏟아지는 최신 지식을 모두 소화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국내에서 유명한 대중 강연자 내지 지식소매상의 강연이나 대중서 몇 권을 접하고선 그것이 전부이고 최고라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너무 많다. COVID-19에 대한 상대적 성공만으로 자만하기에는 아직 우리가 이룬 것이 턱없이 적다. 겸손하게 내실을 다져야 한다.


[해외체류 경험이 전반적으로 많아지면서 다행히 예전보다는 우리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 같고, 고생 중인 2030세대는 윗세대에 비하여 편협한 자기중심성이 덜한 것 같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이들 세대는 이전 세대가 누렸던 기회를 누릴 수 없을 것이고, 당분간 계속 힘들 것이다. 그러나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 불리는 이들 능력자들이 주역이 될 15~20년 후에는 지금 응축한 실력이 분명 빛을 볼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한편 또 그럴 수 있으려면, 타인과 소수자에 대한 배타성부터 뼈를 깎는 노력으로 고쳐야 한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 혐오와 차별적 인식은 '세계가치조사' 등 여러 조사에서 최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부끄럽고 '저질스러운' 모습이다. "조나단, 한현민, 라비 '흑형'이란 말에 상처 받는 이유", BBC News 코리아 (2019. 9. 4.) https://www.youtube.com/watch?v=QnTPdBMLzOo; 세계가치조사 http://www.worldvaluessurvey.org/WVSContents.jsp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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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국사회에서 있었던 여러 젠더 이슈들을 "인식"할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해 답답하던 차였는데, 생각의 도구들을 많이 충전할 수 있었다. 완벽한 답까지는 아니어도 무엇을, 어떻게 질문하여야 하는지, 또 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좋은 안내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재미도 있다.

  실린 글 다섯 개와, '들어가는 글' 모두 챙겨 둘 만한 생각꼭지를 담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는 제주지검장 사건을 '퀴어 범죄학(Queer Criminology)' 관점에서 다룬 루인 님의 글이 가장 흥미로웠다. 퀴어 범죄학은 생소한 분야였는데, 1990년대 중후반 등장하여 2010년대 들어서부터 활발해졌다고 한다. 찾아볼 필요를 느꼈다. 다만, 루인 님의 글에서, 잘 차려진 질문들 위에(이를테면, '공적 공간'과 '공공성' 내지 '공연성' 개념이 관찰자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우발적으로 구성되는 개념임과 동시에, 관찰자가 어떤 존재냐에 따라 달리 규정된다는 점에 대한 지적. 예컨대, "제주지검장의 행위를 목격한 사람이 '덩치 좋은' 성인 '남성'이었다면 어땠을까?" 책 83~86쪽), 결론부에 해당할 87쪽 이하 "'괴물'을 보호하라" 부분은 논지가 충분히 서술되지 않았다고 느꼈다("쾌락을 생산하는 음란 행위와 성행위를 범죄로 판결하는 현행법, 혹은 사회 규범이 정말로 보호하는 것은 성/폭력을 재생산하는 바로 그 자신 아닌가? 지배 규범의 윤리에 따라 괴물로 추방된 존재인 나는 나와 같은 괴물을 '보호'하기 위해 '괴물'을 보호하는 사회에 질문하고 싶다. 괴물을 보호하라. 그런데 누가 괴물이고 무엇을 보호하는가." 책 90쪽).




  정희진 님의 글은 책 제목을 이루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나도 전략적 차원에서 간혹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양성평등은 여성주의의 덫이다. 여성주의의 목적 중 하나는 사회 정의로서 성차별을 철폐(완화)하는 것이지, 남녀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역사도 역사지만, 집단과 집단이 평등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책 49쪽)]. 한국 사회의 근대성 지향에 기댄 양성평등 담론을 성찰하고 비판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였으나,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다음과 같이, 조금 허탈하게(?) 끝맺고 계신다. "현재 한국 사회가 여성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성차별이 극심한 사회에서 남성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모색을 제안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 정의의 문제이자, 남성 개인의 양심의 문제이다. 젠더 문제에 관한 한 남성에게는 '양심의 자유'보다 '양심의 의무'가 더 중요하다. 나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여성 문제에 대한 '외면의 정치'가 인간 본성으로 굳어질까 두렵다. 사회는 '여성 문제'를 부담이나 갈등으로만 여기지 말고, 여성주의에서 대안적 삶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책 56쪽). 이전에 쓰셨던 다른 글들과 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인용 표시가 충실하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 

  권김현영 님의 글은 '미성년자 의제강간죄'를 다루고 있다. 최근 의제강간 기준연령이 만 13세에서 만 16세로 상향되었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한 조치는 되지 못할 것이다. 여성 청소년과 남성 청소년이 달리 처하는 성별화된 조건과, 청소년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권리에 대한 분석과 논의가 함께 따라야 한다. 메갈리아 미러링과 한국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를 다룬 류진희, 한채윤 님의 글도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다뤘다. 다른 도란스 기획 총서들도 제목이 눈길을 끈다. 모두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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