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묵향 > '기술로서의 독서'를 다룬 참 좋은 지침서

이런 책을 읽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네...
아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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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묵향 > 변명이나 대꾸함 없이 단 한 번 부당한 취급받는 것이 백 명의 불쌍한 이를 배불리 먹여주는 자선보다 낫다

참 어려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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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9) 이병주, 소설·알렉산드리아, 범우사, 2008 (초판 1쇄는 1977. 5. 5. 발행, 내가 읽은 것은 2008. 6. 12. 나온 3판 3쇄)




리뷰 몇 개를 쓴 김에, 작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중 하나에 대한 독후감을 뒤늦게, 짧게나마 남긴다.


원래는 한길사에서 나온 '이병주 전집'의 28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집을 줄이느라 이사를 하면서 내 생각과 다르게 창고에 넣어버렸는지 책을 찾을 수가 없어 범우사 문고판을 하나 더 주문했다.


900원에 산 책을 배송받은 2024년 10월 29일은 화요일이었다. 저녁을 먹고 박스에서 막 꺼낸 책을 들고 산책하다가 마음이 일어 (보통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테이크아웃하여 바로 사무실로 돌아왔을 테지만) 카페에 앉아서 책을 펼쳤는데, 문장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나머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대담한 제목에 걸맞게 '소설'이란 것에 휘감겼달까. 범우사의 실수인지 작가의 의도인지 모르게 때때로 맞춤법에 어긋나게 비틀려 있는 것까지 해서 우리말 맛에 흠뻑 빠져 읽었다(오타처럼 보이는 곳도 많아 나중에 창고에서 짐을 꺼내면 한길사 판과 비교해 볼 생각이다. 예컨대 75쪽 "사실적 수법으론 에센스를 묘사할 수 없지 않아요? 사실 이상의 사실, 상상 이상의 상징, 게르니카를 비롯한 인간악적 사건 전체에 통하는 심오한 의미가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에서 "사실"이 모두 "事實"이 아니라 "寫實"로 쓰여 있다).


900원어치가 아니라 900일만큼의 몰입을 하고 나온 느낌이 잦아들면서 든 생각은, '욕이 나오고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소설이 매혹적'이라는 것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이 어렴풋이 느껴졌지만, 내게는 카라마조프보다 강렬했다. 김윤식 선생님께서 왜 '한국문학사에서 명멸했던 무수한 별들 중에 단 하나만 고르라면 이병주'라고 하셨는지(안경환, 이병주평전, 한길사, 33쪽), 국어를 가르치셨던 장모님은 왜 이 책더러 '한 번 잡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읽게 되는 책'이라고 하셨는지 알 것도 같았다. 많은 독자들의 기억에 이 소설을 읽어 내려갔던 순간이 남아 있을 것이다.


사전을 찾아가며 꼼꼼히 읽었더니 한자 공부가 많이 되었다. 내가 어느 정도는 낀 세대 같은 데도 '대규모 어휘 상실 시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운 좋게도 작가가 유품으로 남긴 오래 된 위스키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이후 이병주의 책은 되도록 다 읽어보려고 꾸준히 모으고 있다.



나는 우리 부모가 일찍 돌아가신 것을 다행으로 안다. 만약 오래 살아게셨더라면 부모들은 나의 형에 대해 커다란 실망을 맛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형의 학문은 부모가 기대하는 입신과 출세와는 너무나 먼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판사나 검사 또는 어떤 관리가 될 수 있는 그러한 학문이 아니었다. 의사나 교사나 기술자가 될 수 있는 그러한 학문도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그저 아무런 뚜렷한 방향도 없는 책읽기 같았다. 세속적인 눈으로서 보면 스스로의 묘혈(墓穴)을 파는 것 같은 학문, 스스로의 불행을 보다 민감하게, 보다 심각하게 느끼기 위해서 하는 것 같은 학문. 말하자면 자학(自虐)의 수단으로서밖엔 볼 수 없는 학문인 것 같았다. 나의 피리를 부는 업(業)은 세속에서 초탈하기 위한 자위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허나 형의 학문은 아무리 보아도 자학의 수단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자학을 통해서 자위를 구하는 수단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이러한 건 나의 이해력을 넘는다. - P34

형의 불행은 사상을 가진 자의 불행이다. - P36

저의 형은 모르는 것이 없답니다. 그리고 아는 것도 없구요. - P76

고마운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이다.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생명의 흐름도 고갈하겠지만 그것도 좋다. 죽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이냐. 만약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간악한 인간들은 천년 만년의 징역을 만들어 볼 것이 아닌가. 어떤 의미로도 백 세 미만에 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구원이 아닐 수 없다. 피해자와 더불어 가해자도 죽어야 하니까. - P79

인간의 시간과 역사적 시간은 다르다. // 인간은 절대적인 삶을 절대적인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어떻게 해서 절대적 진리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역사의 눈을 빌려 모든 가치를 상대적으로 관찰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거기에도 있고 이곳에도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같은 시간에 그 길도 가고 이 길도 갈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까 짐을 지고 산을 기어오르는 사람의 자유를 나의 비자유 속에 흡수시키는 이념의 조작(操作, 인용자 주: 한자가 맞을까?)을 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의 자유는 나의 비자유를 흡수시키지 못한다. - P85

사람을 살리는 방법은 소매적(小賣的)인 것밖엔 발명되지 못했는데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도매적(都賣的)이라고. - P103

꽃 피는 아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엄마를 부르던 아이가 커서 옥중에 앉아 사형을 기다리고 있다. - P138

막연한 관념적 추리 위에 관념적 다수를 위해서 구체적이고 생명 있는 한 사람을 희생시키거나 부당하게 엄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 P155

―스스로의 힘에 겨운 뭔가를 시도하다가 파멸한 자를 나는 사랑하다―. 형이 즐겨쓰는 니체의 말이다. 그러나 이 비장한 말도 휘발유가 모자란 라이터가 겨우 불꽃을 튀겼다가 담배를 갖다 대기도 전에 꺼져 버리듯, 나의 가슴에 공동의 허전한 메아리만 남겨 놓고 꺼져 버린다. - P173

밤이 깔렸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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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세대 -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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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제대로 쓰려다 한 달째 못 쓰고 있는데, 메시지만큼은 최근 10여 년 동안 나온 책 가운데 가장 긴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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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9)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강병욱 옮김, 영성 지도, 새들녘, 2009




  절판된 책이다. 3PROTV의 "더 릴리전" 시리즈를 이따금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오늘 문득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책이 보여 얼른 읽었다.

  그러나 큰 감흥은 없었고, 아래 '밑줄긋기'에 인용한 1장의 몇 개 구절 정도로 감히 책 전체를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의존명사와 조사를 구별하지 못한 부분(조사로 쓰인 "보다"의 앞을 대부분 띄어 쓰신 것 등), "이에 대한 근심을 내려놓는 것이 더 낳을 것이다."(92쪽, "것"의 반복도 아쉽지만 "나을 것이다"로 써야 한다)처럼 교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보이는 부분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개신교 기반 저자들께서, 의고체(擬古體) 성경 번역에 익숙하셔서 그런지 틀렸다는 의식 없이 우리말 문장을 어문 규범에 어긋나게 쓰시는 경우가 있는데, 비문이나 맞춤법 오류까지 신성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독일 연수 기간에 책을 번역하셨다니 저자께나 독자에게나 뜻깊은 일이지만, 책이 매끄럽게 읽히지 않아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우리가 순종을 통해 자신의 자아 밖으로 나아가고 자신의 존재를 벗어나는 바로 그곳에 반드시 하느님이 들어오실 것이다. - P10

내가 나의 자아를 포기한 그 안에서 그분은 필연적으로 나를 위한 모든 것을 원하시는데, 이는 그가 자신을 위해 스스로도 원하시는 것이므로 결코 부족하지 않으며 도리어 넘치도록 풍요롭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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