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8 13. 하이든, 그 삶과 음약, 데이비드 비커스, 김병화 역, 포토넷, 2010
어쨌든 나에게 단 한 사람의 음악적 영웅은 베토벤이지만, 하이든에게도 그에 못지 않은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공부하려고 (아마도) 처음 산 비평판 총보도 H.C. Robbins Landon이 편집한 Philharmonia사의 것이고(선후가 헷갈리는데, Bärenreiter사의 베토벤 교향곡 1번과 비슷한 시기에 샀을 것이다), 어쩌다 글도 몇 개 썼다. 음악 이외의 공부를 할 때 노래 듣는 걸 그리 즐기지는 않지만, 그나마 듣는다면 가장 먼저 고려하는 곡이 하이든이고 현악 4중주이다. 기차나 카페에서 글을 읽고 있을 때 주위를 신경 쓰지 않는 분들이 근처에서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하시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하이든을 틀어 나만의 우주(cosmos)로 다시 몰입하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고전주의적 성향(바꾸어 말하면 '꼰대끼')이 굳어지는 것 같다.
죽고 나서 지인들에게 하이든과 비슷한 인상으로 기억된다면 썩 괜찮은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확실히, 베토벤보다는 여러모로 무난하고 나은 삶이다). 한편으로는 하이든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는지(아니면 일부 학자들의 평대로 진짜 돈이 많이 필요했던 때문인지), 특히 1779년 니콜라우스 1세와의 새 계약 체결 후 스스로를 무리와 과로로 몰아붙였던 것을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했다.
[하이든과 에스터하지 가문과의 계약서들은 Dénes Bartha, Joseph Haydn: Gesammelte Briefe und Aufzeichnungen, Kassel: Bärenreiter (1965) https://archive.org/details/JosephHaydnGesammelteBriefeUndAufzeichnungen 에서 볼 수 있다.]
일전에 다른 글에서 포노(PHONO)에서 나오는 여러 책들이 참 훌륭하다고 칭찬한 적이 있다.
https://blog.aladin.co.kr/SilentPaul/9997840
포노는 1999년 사진 전문 월간지로 시작해서 출판사가 된 '포토넷(PHOTONET)'의 음악 전문 브랜드이다. 포토넷은 『윤미네집』을 펴낸 곳이고, '걷는책'이라는 브랜드도 냈다. https://blog.naver.com/photonet00
『하이든, 그 삶과 음악』은 알라딘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샀는지 주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아마 2011년 연주를 위해 샀을 것이다. 그래서 포노가 포토넷에서 갈라져 나오기 전의 책이다(2010년 8월 26일 인쇄하고 9월 1일 발행한 1판 1쇄). 당시에 듬성듬성 읽고, 작년에 더 읽고, 이번에 마저 읽었다. 이제 하이든의 말년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사계」가 새롭게 들린다. 책은 특별히 감상을 보탤 필요도 없이 대단히 상세하고 믿을 만하며 유익하다. 뻔한 레퍼토리를 넘어 하이든을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들을 수 있게 도와준다. 느낌상 국내 연구자가 내기 쉽지 않은 종류의 책이라, 포노에서 이렇게 발굴하여 번역해 주시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다소 예외적인 출판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음악세계 '명곡해설 라이브러리'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출간된 하이든에 관한 전기적 서술로는 사실상 유일한 책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저자는 이 분이다. https://www.rncm.ac.uk/people/david-vickers/
Naxos에서 나온 이 책 외에도 몇몇 책의 편저자로 참여하셨다.
하이든을 다룬 참고문헌을 책에 나오는 것들을 포함하여 정리해 보았다. H. C. Robbins Landon의 대작, Haydn: Chronicle and Work은 다섯 권짜리인데, 알라딘에는 세 권만 등록되어 있고, 1권, 5권은 검색되지 않는다.
포노의 우직한 포트폴리오를 다시 점검한다. 한결같이 좋은 책을 내고 계시고, 작년 12월부터는 『에트빈 피셔의 마스터 클래스』를 시작으로 '마스터 클래스 시리즈'를 내시는 모양이다.
덧. 작년에 발견한 하이든의 이른바 '방귀교향곡'(교향곡 93번 중 2악장) https://youtu.be/U-zaGM39C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