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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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내용이 만화 같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미국 만화영화로 유명한 원작에서 영화화 된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등 영웅들의 이야기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은 바나나맨(?)이라는 신종 영웅을 만들어 내면서 코미디 같은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소설 속에는 미국에 대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입 받고 세뇌 당한 미국 영웅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느껴진다. 반어적인 표현 이랄까.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바나나맨은 미국을 추종하는 주변국들의 처절한 모습을 은유적으로 담아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슈퍼맨의 전능한 모습이나 바나나맨의 활약, 각 영웅들에 대한 묘사는 절묘하면서도 해학이 묻어 난다. 특히 ‘마운틴’이라는 행위에 대한 해석과 설명은 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성적인 의미도 있고, 약자의 강자에 대한 복종의 의미도 있고. 다양한 의미를 담아 만화 캐릭터에 연관되어 펼쳐지는 만화영웅들의 이야기는 블랙코미디를 연상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의 영웅만화들은 소설에서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이 2개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 등의 영웅을 그리고 있는 ‘DC 코믹스(DC Comics)’와 스파이더맨, X맨, 헐크 등을 그려낸 ‘마블(Marvel)’은 정작 창작 만화사의 이름 보다는 등장하는 주인공이 더 잘 알려진 내용이다. 이런 만화들은 영화화하여 또 다른 재미 거리를 만들고 있지만 이면에는 미국 영웅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만화 주인공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것 또한 과거 텔레비전 외화시리즈를 너무도 열심히 봐 왔던 결과이지 않나 생각된다.

     그런 영웅들의 모습 속에서 바나나맨의 창조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헛웃음이 난다. 자살을 기도하다가 슈퍼맨에 의해 목숨을 건지고 영웅의 반열(?)에 올라 바나나맨이라는 호칭을 받아 펼쳐지는 영웅이야기는 웃기다 못해 눈물이 난다. 주 임무가 원더우먼의 탐폰 구매담당이란다. 이런 영웅의 딱가리—바구니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한다, 뚜껑 혹은 덮개로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역할도 마감하고 돌아와(?) 어줍쟌은 영어 강사를 하면서 옛날을 회상하는 이야기는 미국 만화 주인공의 잔치이다.

     미국 만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보면 무척 친숙한 주인공들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어렸을 때 재미있게 봤었던 만화 주인공들도 생각난다. ‘요괴인간’이나 ‘마징가젯’, ‘009’ 등의 만화들은 일본 만화 이야기 인가? 정체불명의 만화영화들을 외화시리즈로 보면서 알게 모르게 주입된 미국 영웅주의는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주변국의 바나나맨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들이 비춰 보여지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마치 미국인이 한국인을 바라보는 모습이 이와 같은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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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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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 속에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내가 ‘자살안내자’ 또는 ‘자살청부업자’라는 신종 직업(?)으로 등장한다. 자살안내자를 직업으로 볼 것인가에는 의문이 가지만 뭔가 삶을 단절하고 싶어하는 고객들(?)의 요청에 의해 각종 자살 방법을 안내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선정적이다. 이 이야기에 같이 등장하는 명화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클림트의 「유디트 1」,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의 죽음」은 모두 자살이라고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선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소설의 내용과 상호 연관이 되어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고객(?)으로 2명이 등장된다. 한 사람으로 유디트라고 별칭이 붙은 술집의 접대부와 미미라는 행위예술가가 등장한다. 삶을 마감하고 싶어하는 여자들로 삶의 희망을 잃어 버린 사람으로 등장한다. 삶의 희망을 잃어 버렸기에 자살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녀들의 행적은 엽기적이기도 하다. 그 과정의 내용은 무척이나 선정적이기도 하고.

     이런 자살의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나름의 안내인으로서의 ‘자살안내인’이라는 역할은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자문을 해 본다.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생명체는 오직 인간만이 가지는 능력(?)이라고들 하지만 과연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행위인 자살이 미화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종교도 자살은 용납되지 않는다. 굳이 종교적인 내용을 얘기하지 않아도 자살은 용인될 수 없는 내용일 것이다. 우리 내부에 내포되어 살아 움직이는 유전자는 생존을 위해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결코 자살을 인정하지 않듯이 자살은 어떤 상황에서도 미화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자살안내인의 이야기는 실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인청부업자와 같이 부정되어야 하고, 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삶의 희망을 잃었고, 죽지 못해서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삶을 끊는 것은 용인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척이나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

     최근 삶의 고달픔과 절망에 의해 삶을 단절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울증에 자살에 이르는 유명연예인에서 자신의 희망이 꺾이면서, 삶의 터전을 잃어 버려서, 등등 가지가지 이유와 상황으로 숫한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이야기는 그 이면에 이 소설의 주인공과 같이 자살안내인의 고객으로 자살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너무 심한 상상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소설 속의 이야기로 마치고 실재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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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굽는 시간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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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빵 굽는 시간』에는 냄새에 대한 느낌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빵 중에서 제일 기본이 되는 것이 식빵이라고 한다. 또한 제일 기존이라 만들기도 쉽지 않은 빵이라고도 하고. 이런 내용은 책의 처음에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런 빵을 제목을 하면서 보여주는 빵과 연관된 이야기 속에 빵 냄새를 느끼게 한다. 또한 중간중간 소설을 읽으면서 들려주는 냄새에 대한 독특한 표현들은 민감하게 냄새에 얼킨 느낌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제빵기술을 배우고 있는 딸과 암으로 투병하다가 죽은 엄마, 엄마의 병간호를 맡아 했던 이모, 건축업을 하던 아버지. 이런 가족의 모습 속에 소설 속의 내용은 뭔가 묘한 암시를 준다. 딸을 외면하는 엄마와 이모와 아버지의 관계도 묘한 느낌을 준다. 그런 속에 빵과 같이 들려주는 소설의 내용은 많은 것을 암시하면서도 “이것이다”라고 똑 부러지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없다. 엄마의 죽음과 이어지는 아버지의 자살, 그러면서 이모와의 결별. 그 과정에 제빵기술을 배우면서 들려주는 빵에 대한 느낌은 묘하게도 냄새라는 감각을 자극한다.

     건축업을 하는 아버지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엄마와 마치 이모와 아버지와의 특별한 관계를 엄마가 알게 되고, 그 관계 속에서 딸이 태어났고, 그 딸을 외면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죄의식에 암이 걸린 언니의 병간호를 도맡아서 하는 이모의 헌신은 또 다른 암시를 준다. 엄마의 죽음에 이은 아버지의 자살도 나름의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암시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이모의 딸에 대한 행동도 그런 내용을 암시 한다.

     이런 내용은 냄새와 결부된다. 냄새는 시각으로 보는 빛의 모습이나 소리로 듣는 음의 내용 보다는 보다 원초적이면서도 무엇이다라고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성격을 띄고 있다. 그렇지만 그 냄새에 얽힌 느낌들은 시각이나 청각과는 달리 뭔가 원초적인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냄새에 대한 느낌을 부각하기 위한 방법으로 빵에 이야기를 삽입한 것이 아닐까? 냄새는 우리의 오감 중에 가장 원초적인 위험 요소를 감지하는 감각기관이라는 내용의 책을 본 것 같다.

     『식빵 굽는 시간』은 우리들의 정서에 맞는 냄새를 연상하게 한다. 우리만의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냄새에 대한 표현 속에 엄마와 이모, 아버지와 엮어지는 관계를 냄새와 같이 풀어 내고 있다. 묘한 느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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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네즈 - 제2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전혜성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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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제목 『마요네즈』를 보면서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마요네즈는 고칼로리의 식품으로 보통 야채와 곁들여 먹는 소스로 고소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 내 개인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작가는 소설 속에서 마요네즈의 의미를 다르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고소함이라는 느낌 보다는 기름진 마요네즈가 어머니와 엮어져 싫지만 거부할 수 없고, 한편으로는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태생적으로 가지는 것들이 있다.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부여되는 많은 것들 중에 제일 큰 것은 혈육일 것이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의미는 분명 남다른 내용이다. 이런 선천적으로 부여 받는 내용이 나 자신에게 거부감이 이는 것에 대한 생각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내용 중에 하나일 것이다. 교육을 받고 성장하면서 이런 선천적인 나의 주변 환경에 대한 거부감은 나도 한때 느꼈던 내용 중에 하나일 것이다. 어릴 때는 판단능력이 없어 그냥 받아들여지다가 점차 학교교육을 받으면서 다른 아이들과 비교되면서 나의 주변이 경제적으로나 학력적으로 수준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소설에서처럼 어머니의 딸에 대한 과잉(?) 애정 표현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빨리 벗어나려는 것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나이가 되어 되돌아 보면서 어렸을 때 어미니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제야 조금 이해가 가든지 아니면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런 내용을 보고 부모님들이 늘 하는 말이 “너도 내 나이 되어 봐라”라는 말로 대변되나 보다.

     이런 과정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느끼는 감정의 단계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단계의 이야기를 이 소설은 마요네즈와 연관하여 풀어낸 이야기 이겠다. 내 자식에 대한 특별한 감정은 어느 부모들 모두 가지는 생각이고 특히 어머니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정작 자식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 부담스러운 내용을 소설은 어머니와 딸 간의 살아온 과정을 그리면서 그 속에 어머니의 독특한 습성인 마요네즈를 머리 기름과 같이 바르는 모습은 어머니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담아내고 있다. 맏벌이를 해서라도 가정의 경제적 숨통을 틔우려는 딸의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어머니의 천방지축 움직이는 행동은 너무도 야속한 모습이고, 뭔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딸의 마음을 외면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어머니도 세월의 시간 속에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나보다. 딸에 대한 사랑과 애정의 각별함이 정작 딸에게는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세월 속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의 사랑은 딸에게 사랑을 느끼게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마요네즈에 얼킨 어머니에 대한 각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내용인가보다.

     이런 느낌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할머니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당신의 특별한(?) 애정의 표현이 당시에는 너무도 싫었던 느낌들이 그대로 느껴져 오고, 돌아 가신지 오랜 지금 할머니에 대한 느낌은 당시의 할머니의 특별한 애정이 지금도 좋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왠지 애잔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이런 느낌이 소설을 읽는 내내 느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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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거나 죽지않고 살 수 있겠니 - 제5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이지형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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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속의 시대 배경이 특이하다. 많은 소설들의 시대적 배경은 대부분 현재를 살아가는 현재형 이거나 아니면 역사 소설의 장소가 대부분인데, 이 소설은 역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해 보이고 그렇다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닌 일제 점령기의 시대적 배경을 하고 있다. 여느 소설과는 그 느낌이 다르다.

     이런 느낌은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나오는 추가적인 배경이 다르다. 문화구락부니 댄스홀이니 경성이니 하는 용어가 2, 30년대의 서울의 모습을 비춰 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등장하는 용어에는 현대를 묻어 내고 있다. 카페 ‘아틀란티스’나, 댄스 모임 ‘이십세기모던이미지댄스구락부’와 카페 ‘스타박스’ 등이 현재를 과거에 각색한 느낌이 든다. 이런 배경 위에 등장하는 인물 또한 재미있다. 조난실과 이해명의 모습도 그렇고 주인공 이해명이 총독부에서 맡고 있는 직업의 내용 또한 전대미문의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조난실 또한 양장점의 점원으로 일하면서 가공의 테러 박—테일러 박을 잘못 발음하여 항일독립투사 가공하여 만들어 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의 가상의 인물을 그려내는 내용은 코미디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첫 장을 넘기면서 여느 이수일과 심순애가 등장하는 무성영화를 옆에 있는 읽어주는 성우의 목소리를 듣는 느낌이 든다. 소설을 읽어 가면서 중반을 지나 거의 다 읽어갈 때까지 작가는 소설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독립운동사를 그린 내용도 아니고, 일제 강점기에 핍박 받았던 민족의 모습을 그리는 내용도 아니고, 당시 사람들의 애정행각을 그린 내용도 아니고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어찌 보면 주인공 이해명을 통해 남자가 여자에게 보이는 감정과 여자가 남자에게 보이는 느낌을 시대적 상황을 일제 강점기로 옮겨놓아 들려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쉽게 얘기해서 현재의 남녀에 대한 인식의 방법과 생각이 시대와는 관계 없이 동일한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제목도 『망하고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은 아닐까?

     작가의 의도가 어떤 내용이 되었든 소설의 내용은 특색이 있다. 다른 한편으론 난해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좀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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