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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성 아래로 강물이 흘러와 성은 세계에 닿아 있었고, 모든 봄들은 새로웠다.”
작가 김훈이 남한산성을 지으며 남긴 글이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려 했던 작품 속의 작가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난다.
남한산성에는 소설이 없다. 다만, 현실을 반영한 한편의 글이 담겨있다. 하지만 작가는 일러두기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
진짜 이 책은 소설일까?
청의 공격으로 남한산성으로 도망가듯 들어간 인조와 세자 그리고 조정 대신들. 47일간 그곳에서의 생활을 고스란히 담은 글에는 성 안과 밖의 어떠한 팽팽한 대립적 구도를 나타내지도 않는다. 다만, 상황을 보여줄 뿐이다. 장기판을 펼쳐두고 제 3자가 장기두는 두 사람을 각각 내다보며 상황을 지켜보듯 그렇게 김훈은 성 안과 밖을 지켜보기만 한다.
성 안으로 들어가지고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밖의 사람들 또한 잘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다만, 밖에서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왜 청나라는 성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는걸까? 과연 그들은 전쟁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움직임은 없었다. 그들은 지켜볼 뿐이다.
드디어 칸이 삼전도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성 안에 있는 사람들도 알게 되지만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또 기다린다.
하지만 성 안과 밖의 대치 속에서 긴장하고 힘들어 하는 존재는 따로 있다. 바로 백성. 성 안과 밖을 지켜보는 백성들은 이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들에게는 이 시간이 그들의 또 다른 보리고개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서날쇠, 나루, 정명수 등 소설의 전개상 중요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들은 천한 신분을 지녔다. 그리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라에 대한 충성이 아니다. 그들은 먹고 사는 것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을 꿈꾼다. 그들에게 지금의 이 상황은 단지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상황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는 그들에게 충성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다만 도움을 요청할 뿐이다.
그렇게 김상헌은 서날쇠를 시켜 임금의 서찰을 들고 구원병을 요청하러 성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서날쇠가 구원병을 요청하고 들어온 다음날 임금은 남한산성 서문을 지나 삼전도로 나아가 청나라 칸에서 절을 하고, 굴욕의 역사를 만든다. 그리고 청나라는 본국으로 귀환하게 된다. 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척화를 주장한 대신들과 여자들을 데리고…
결국 남한산성에는 어떠한 위협도 가해지지 않았다. 전쟁에서의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성 안을 지켜보던 자들은 인조 임금과 세자가 나오자 그들의 나라로 갔다. 성 안의 있던 자들은 성 밖으로 나오면서 다시 제자리도 돌아갔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다.
무엇일까?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참을 고민하다 글귀 하나가 생각이 났다.
“가자, 나는 인간이므로, 나는 살아 있으므로, 나는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삶 안에 죽음이 있듯, 죽음 안에 삶은 있다. 적들이 성을 둘러싸도 뚫고 들어갈 구멍은 있을 것이다. 가자, 남한산성으로 가자.”
김상헌이 울부짖든 던진 마음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인간이므로, 살아 있으므로 그렇게 살아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인조 임금의 처절한 한마디, 그렇게 그는 살았지만 조선은 죽어갔다. 꽉 막힌 성안에 갇혀 그는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작가는 처연하게 이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다. 그래서 인지 읽는 내내 한 폭의 그림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다소 지루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지만 작가가 지닌 독특한 문체는 풍경화를 바라보는 내내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결코 지루하지 않을 짧지만 강렬한 김훈만이 가진 문체는 글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흥미로웠다.
“버티는 힘이 다하는 날에 버티는 고통은 끝날 것이고, 버티는 고통이 끝나는 날에는 버티어야 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는데, 버티어야 할 것이 모두 소멸할 때까지 버티어야 하는 것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