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에서 수시로 무작위로 골라 전화를 걸어서 질문할 수 있는데, 국장은 어디에 있든 항상 목소리를 낮춰서 이렇게 대답했다."잠시만요. 지금 회의중입니다."그런 다음 서둘러 5분 동안 외우고, 다시 전화를 걸어서 술술 대답했다. - P368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 땅강아지나 개미와 같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 바로 당신이 개미를 관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P381
그는 일 년 내내 ‘지적장애인의 노후‘라는 주제로 사진을 찍는데, 어떤 각도로 찍느냐 하는 것은 자기가 촬영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 장애인의 고통과 무력감은 엽기적인 구경거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삶의 비극적 관성이다. - P390
지금의 스다루에는 ‘문화 보호‘라는 분명한 슬로건이 있음에도 서점은 하나도 없다. 그분은 더는 길거리에서 책을 사지 않는다. SNS에서 인기 있는 서점들은 책상과 의자가 멋지고, 녹색 식물과 커피, 수공으로 제작한 천 공예가 있으며, 산뜻한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사진 찍을 배경을 찾는다. 하지만 책이 아주 높은 곳에 놓여 있어서 애초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고, 직원을 불러도 오지 않으니, 한번 가면 바로 낙심하게 된다. - P333
거리에서 산 책에는 당연히 거리의 각인이 찍혀 있어서, 어디에서 샀는지, 서점 주인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책 등과 표지를 보면 당시의 장면을 모두 머릿속에 다시 떠올릴 수 있다. 인터넷에서 산 책에는 이런 것들이 담겨 있지 않고 거리의 숨결에서 벗어나, 생명 없는 전자 페이지에서 자기 책장에 왔으므로 가끔 "이게 내가 산 책인가?" 하는 의혹이 생기기도 한다. - P334
그분처럼 문학을 연구한 사람은 자기가 연구하는 학과가 약간 ‘지나치게 발전‘해서 종종 곤혹에 빠지게 되므로, 반드시 전체 지식 역사의 운동과 변혁을 통해서 그것을 이해해야만 현대 지식 분과 체계에서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처지에 이르지 않게 된다고 했다. - P336
요즘 뭐 하시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분은 늘 번역하고 있는데, 이번 생을 다 바쳐도 이 책들을 다 번역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 P338
"번역의 비결은 무엇인가요?""천천히 하는 것이지. 그리고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느끼는부분은 틀림없이 잘못된 것이니, 절대로 대충대충 독자를 속여서는 안 되네." - P340
내 지도교수님의 서재가 생각난다... 그립다ㅠㅠ
그분 서재에는 몇 개의 유리 책장이 있는데 앞줄의 책이 뒷줄의 책을 가리고 있고, 바닥의 책은 캐비닛 문을 막고 있었다. 또 아직 개봉하지 않은 종이상자도 벽의 절반 높이까지 쌓여 있고, 다리 하나만 가까스로 들어갈 정도로 좁은 길만 나 있어서, 책을 한 권 찾으려면 겹겹의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 P333
공문을 읽는 것은 내 필수과목이다. 어쩌면 이 일은 너무 무겁고 지루하기 때문에 괴로울 것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다르다. 정말 괴로운 것은 문장의 군더더기다. 중복된 같은 의미들 속에서 진정한 취지를 추출하는 것은 마치 겹겹이 쌓인 지방 속에서 유한한 근육을 찾는 것과 같다. 원고를 쓴 사람은 쓸데없는 삽질에 힘을 쓰고, 읽는 사람은 다시 시간을 허비함으로써 하나의 비효율에 또다른 비효율이 겹치게 된다. - P287
어린아이의 창작은 이처럼 틀에 박히지 않고 질서를 초월하여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내기 쉬운데, 이런 무의식적인 창작을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할 줄 알았다가 자라면서 잃어버린다. - P260
현대 서예계의 미적 기준은 다른 하나의 사슬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건 바로 전시회와 심사 표창, 작품집 출간, 글씨 팔기 등이다. ‘미녀의 미용실‘과 어린아이의 글씨가 시스템 안에 포함된다면 그것은 재미 싸움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몇몇 사람들의 이익에 직접 도전하게 된다. - P262
어린아이든 학생이든 간에 그는 글씨를 쓸 때는 너무 목적의식을 가지지 않기를 바랐다. 굳이 서예가가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일상이 무료할 때, 또는 인생의 가장 암담한 시기에 붓글씨를 쓸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마음을 기대는 행위인 셈이다. - P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