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부분의 애호가들에게는 낚시란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체육활동이다. 체력의 소모량은 기본적으로 거의 없고, 운동의 주요 형식은 명상이며, 최종 목적은 몸과 마음을 닦고 수양을 쌓는 것이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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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선택적이고 모호하고 배타적이다. 게다가 장기적인 동면 상태에 빠져 있다. 글쓰기란 이런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이다. 기억의 미궁에서는 하나의 길이 또 다른 길을 인도하고, 하나의 문이 또 다른 문으로 열려 연결된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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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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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극단적으로 억압된 시대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반드시 극단적으로 방종하는 시대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네를 타는 것처럼 한쪽 끝이 높이 올라가면 반대쪽 끝도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 P194

우리는 강자를 두려워하고 약자를 능욕하면서 이를 커다란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매일 이 사회에 정의를 늘려가고 있다고생각했다. - P197

이리하여 중국은 정치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마오쩌둥의 흑백 시대에서 덩샤오핑의 경제지상주의 컬러 시대로 접어들었다. 문화대혁명시기에 우리는 항상 "사회주의의 풀을 뜯어 먹을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은 먹지 않겠다" 라고 말했다. 오늘날의 중국에서 우리는 이미 어떤 것이 사회주의이고 어떤 것이 자본주의인지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풀과 싹 둘 다 똑같은 식물일 뿐이다. - P203

2009년 2월, 내가 밴쿠버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UBC에서 강연을 하며 2006년 중국에서 연간 수입이 800 위안밖에 안 되는 빈민 인구가 1억명에 달한다고 얘기하자 한 중국 유학생이 빌떡 일어나 말했다. "돈은 행복을 가름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이 중국 유학생의 한마디를 듣자 나는 몸이 떨려왔다. 이는 한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오늘날 일부 중국인 집단이 내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날이 발전하는 중국의 이미지에 푹 빠져 아직도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가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나는 중국인의 진정한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빈곤과 기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빈곤과 기아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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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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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남몰래 속으로 노르웨이에서 ‘입센‘이라는 이름은 그저 불후의명작 몇 권을 써낸 작가의 이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단어, 즉 문학과 인물의 범주를 뛰어넘는 중요한 단어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이는 내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루쉰‘ 이라는 단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문화대혁명 시기의 ‘루쉰‘ 으로서, 그 시기의 루쉰은 더이상 한 작가의 이름이 아니라 모든 중국인이 다 아는 단어, 정치와 혁명의 의미를 내포한 중요한 단어였다. - P165

1949년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획득한 뒤로 신사회가 시작되었고, 동시에 이전의 구사회에 대한 무자비한 채찍질이 시작되었다. 사회 비판적 의미가 강했던 루쉰의 작품은 공산당의 손에서 마음대로 춤을 추는 채찍이 되었다. - P165

물론 루쉰의 작품에 대한 마오쩌둥의 감상과 해석이 가장 중요했다. 그 뒤로 전개된 신사회에서 루쉰의 명성을 최고 지위로 부상시키면서 위대한 문학가이자 위대한 사상가이며 위대한 혁명가라는 이른바 ‘세 위대함‘을 누리게 한 것이 바로 마오쩌둥이었다. 1936년에 세상을 떠난 이 작가는 그 영향력이 1966년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최고봉에 이르기 시작하여 마오쩌둥에 바로 뒤이어 거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를 누렸다. - P166

이것이 문화대혁명 시기의 특징이었다. 조반파 사이의 논쟁이건 홍위병 사이의 논쟁이건, 아니면 부녀자들 사이의 말다툼이건 간에 최종적인 승리는 마오쩌둥의 말을 들고 나오는 사람의 차지였다. 마오쩌둥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결론이 나고 쟁론과 말다툼도 즉시 끝이 났다. - P170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위대한 독자를 필요로 한다. 루쉰에게는 누구보다도 강대한 독자 마오쩌둥이 있었다. 이는 루쉰의 행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불행이기도 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루쉰‘이 한 작가의 이름에서 시대의 흐름을 타는 정치적 어휘로 변질된 뒤로 그의 깊이 있고 뛰어난 정취를 지닌 작품들마저 교조주의적 독서에 매몰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 P177

중국에서 ‘루쉰‘의 운명은 일개 작가의 운명에서 한 단어의 운명으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단어의 운명에서 작가의 운명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는 중국의 운명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뭇잎을 보면 가을이 온 것을 알 수 있듯이 중국 역사의 온갖 변천과 사회의 격동을 ‘루쉰‘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 P179

쿵이지를 다 읽고 나서 나는 곧장 그 영화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가 루쉰의 소설을 영화화하지 말기를 바랐다. 전화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루쉰을 망가뜨리지 맙시다. 루쉰은 정말 위대한 작가거든요." - P181

서른여섯 살이 되던 해믜 그날 저녁 나에게 루쉰은 마침내 하나의 단어에서 하나의 작가로 돌아왔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그 긴 세월 동안 억지로 루쉰의 작품을 읽어야 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루쉰이 아이들의 작가가 아니라 성숙하고 민감한 독자들의 작가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때때로 한 독자와 한 작가의진정한 만남에는 어떤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략)
나는 노르웨이의 청중에게 한 작가가 하나의 단어가 된다는 것은 사실 그 작가 본인에게 커다란 손해라고 말했다.
나의 강연이 끝나자 오슬로 대학 역사학과의 하랄 뵈크만 교수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위화 선생이 어렸을 때 루쉰을 싫어했던 것이 내가 어렸을 때 입센을 싫어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군요."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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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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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시대에는 한 개인의 운명을 결코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정치 상황의 파도에 따라 흔들렸고 자기 앞길에 행운이 기다리고 있는지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 P124

문화대혁명 시기 나의 이런 글쓰기는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됐다. 그러다가 이느 날 갑자기 대자보 쓰기에 흥미가 싹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연극 대본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첫번째 문학작품일 것이다. 나는 거의 한 학기를 들여서야 4천여 자에 달하는 단막극 원고를 완성했고, 여러 차례 수정을 한 다음 진지하게 원고지에 옮길 수 있었다. 연극의 내용은 당시 유행하던 이야기로 어떤 지주가 전국이 해방된 뒤에 재산을 전부 잃고 가슴속 불만을 해소할 수 없어 농촌의 사회주의 건설을 파괴하려다가 결국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농민들에게 산 채로 붙잡힌다는 것이었다. - P129

이것이 바로 그 시대 글쓰기의 표준이었다. 노동자와 농민은 절대로 더러운 욕설을 입 밖에 내지 않고 지주와 우파, 반혁명분자들만 더러운 언어를 입에 담는다는 것이었다. - P130

나중에 젊은이들이 종종 내게 묻곤 했다. "어떻게 해서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나요?"
나의 대답은 하나이다. 바로 ‘글쓰기‘ 덕분이었다. 글쓰기는 경험과 같다.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 P137

저우옌루는 내게 소설의 결말 부분을 고쳐줄 것을 요구했다. 원래는 결말 부분이 좀 어두웠는데 밝게 고쳐달라는 것이 그녀의 요구였다. 나는 한 번도 자본주의를 본 적이 없는 그녀가 역시 한 번도 자본주의를 본 적이 없는 내게 했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회주의는 원래 밝은 거예요. 자본주의만 이렇게 어두운 거라고요." - P144

나는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문화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첫날 문화관으로 출근하면서 문화관 사람들이 하루 종일 대로를 돌아다니며 놀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일부러 두 시간 늦게 출근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내가 가장 먼저 출근한 사람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곳으로 오길 정말 잘했어." - P146

누구나 일생을 통틀어 표현하고 싶은 무수한 욕망과 감정을 품게 된다. 하지만 실제 현실과 개인의 이성과 지혜가 이를 억누르고 만다. 하지만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억압된 욕망과 감정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가 사람의 심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인생을 더욱더 완전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또는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두 갈래 인생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할 수도 있다. 하나는 현실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허구의 길이다. 이 두 가지 길은 건강과 질병의 관계와 같아서 하나가 강대해지면 다른 하나가 필연적으로 쇠약해진다. 내 현실에서의 삶의 길이 갈수록 평범해지는 것은 허구에서의 내 삶의 길이 갈수록 풍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P147

아주 오랫동안 나는 한 가지 생각을 고집스럽게 믿어왔다. 한 사람이 성장해온 과정이 그의 일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그림이 바로 이때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새겨져 마치 복사기처럼 한 장또 한 장 개인의 성장에 계속 복사되는 것이다. 그가 자라 성인이 된 뒤 성공한 사람이 되었건 실패한 사람이 되었건, 위대한 사람이 되었건 평범한 사람이 되었건, 그가 행하는 모든 것들은 이 가장 기본적인 그림을 부분적으로 수정한 데 지나지 않는다. 당연히 그림 전체는 변하지 않는다. - P148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자문해보았다. 왜 항상 밤에 꿈속에서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쫓기는 것일까? 나는 내가 낮에 너무나 많은 피비린내와 살인에 관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이 인과응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닐 밤, 아마도 이른 새벽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차가운 땀으로 가득 찬 이불 속에서 나를 향해 경고했다.
"앞으로는 더이상 피비린내와 폭력이 가득한 이야기를 써선 안 돼." - P156

우리 중국인들은 불과 40년의 세월 동안 같은 영토 안에서 판이하게 다른 두 세계를 경험했던 것이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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