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런 시대에는 한 개인의 운명을 결코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정치 상황의 파도에 따라 흔들렸고 자기 앞길에 행운이 기다리고 있는지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 P124
문화대혁명 시기 나의 이런 글쓰기는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됐다. 그러다가 이느 날 갑자기 대자보 쓰기에 흥미가 싹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연극 대본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첫번째 문학작품일 것이다. 나는 거의 한 학기를 들여서야 4천여 자에 달하는 단막극 원고를 완성했고, 여러 차례 수정을 한 다음 진지하게 원고지에 옮길 수 있었다. 연극의 내용은 당시 유행하던 이야기로 어떤 지주가 전국이 해방된 뒤에 재산을 전부 잃고 가슴속 불만을 해소할 수 없어 농촌의 사회주의 건설을 파괴하려다가 결국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농민들에게 산 채로 붙잡힌다는 것이었다. - P129
이것이 바로 그 시대 글쓰기의 표준이었다. 노동자와 농민은 절대로 더러운 욕설을 입 밖에 내지 않고 지주와 우파, 반혁명분자들만 더러운 언어를 입에 담는다는 것이었다. - P130
나중에 젊은이들이 종종 내게 묻곤 했다. "어떻게 해서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나요?" 나의 대답은 하나이다. 바로 ‘글쓰기‘ 덕분이었다. 글쓰기는 경험과 같다.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 P137
저우옌루는 내게 소설의 결말 부분을 고쳐줄 것을 요구했다. 원래는 결말 부분이 좀 어두웠는데 밝게 고쳐달라는 것이 그녀의 요구였다. 나는 한 번도 자본주의를 본 적이 없는 그녀가 역시 한 번도 자본주의를 본 적이 없는 내게 했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회주의는 원래 밝은 거예요. 자본주의만 이렇게 어두운 거라고요." - P144
나는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문화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첫날 문화관으로 출근하면서 문화관 사람들이 하루 종일 대로를 돌아다니며 놀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일부러 두 시간 늦게 출근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내가 가장 먼저 출근한 사람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곳으로 오길 정말 잘했어." - P146
누구나 일생을 통틀어 표현하고 싶은 무수한 욕망과 감정을 품게 된다. 하지만 실제 현실과 개인의 이성과 지혜가 이를 억누르고 만다. 하지만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억압된 욕망과 감정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가 사람의 심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인생을 더욱더 완전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또는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두 갈래 인생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할 수도 있다. 하나는 현실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허구의 길이다. 이 두 가지 길은 건강과 질병의 관계와 같아서 하나가 강대해지면 다른 하나가 필연적으로 쇠약해진다. 내 현실에서의 삶의 길이 갈수록 평범해지는 것은 허구에서의 내 삶의 길이 갈수록 풍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 P147
아주 오랫동안 나는 한 가지 생각을 고집스럽게 믿어왔다. 한 사람이 성장해온 과정이 그의 일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그림이 바로 이때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새겨져 마치 복사기처럼 한 장또 한 장 개인의 성장에 계속 복사되는 것이다. 그가 자라 성인이 된 뒤 성공한 사람이 되었건 실패한 사람이 되었건, 위대한 사람이 되었건 평범한 사람이 되었건, 그가 행하는 모든 것들은 이 가장 기본적인 그림을 부분적으로 수정한 데 지나지 않는다. 당연히 그림 전체는 변하지 않는다. - P148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자문해보았다. 왜 항상 밤에 꿈속에서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쫓기는 것일까? 나는 내가 낮에 너무나 많은 피비린내와 살인에 관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이 인과응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닐 밤, 아마도 이른 새벽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차가운 땀으로 가득 찬 이불 속에서 나를 향해 경고했다. "앞으로는 더이상 피비린내와 폭력이 가득한 이야기를 써선 안 돼." - P156
우리 중국인들은 불과 40년의 세월 동안 같은 영토 안에서 판이하게 다른 두 세계를 경험했던 것이다. - P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