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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시즌 1 (6disc)
리처드 J. 루이스 외 감독, 타라지 P. 헨슨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요즘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인 조너던 놀란이 각본을, 그리고 이름(혹은 악명)높은 미드 '로스트'의 연출가인 J.J.에이브람스가 연출을 맡은 이 드라마는 독특한 설정과 특유의 분위기, 그리고 개성있는 캐릭터 등 갖출 것은 전부 갖춘 아주 멋진 드라마다.
드라마의 설정은 이렇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테러리스트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의 제작을 여러 기업에 의뢰했다. 그리고 주인공 중 한 명인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해커이자..etc.) 헤럴드 핀치가 그 장치를 만들어낸다. 극중에서 그저 '기계'라고 지칭되는 이 장치는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감시 및 도청하여 범죄에 연루될 사람들을 색출해 내는데, 그 과정에서 이 기계는 정부가 관심을 가지는, 즉 대량학살을 목표로 하는 테러리스트뿐만 아니라 테러와 관계 없는 범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는 평범한 사람들 역시 색출하게 되었다.
본래는 이 '관계 없는' 사람들에 대한 데이터는 매일 밤 삭제되게 세팅되어 이 기계는 정부에 팔렸지만, 핀치는 테러와 관계 없는 이러한 일반인들을 도와 범죄에서 구출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런 구출을 실행에 옮겨 줄 파트너로 특수부대 출신이며 전직 CIA 요원인 또다른 주인공 존 리스를 섭외한다.
'기계'는 실시간 감시를 통하여 향후 24시간 에서 48시간 사이에 범죄에 노출될 인물의 사회보장번호(아마도 주민등록번호 비슷한 게 아닌가 싶음)를 제시하고, 그 번호를 실마리 삼아 두 주인공은 범죄를 막기 위해 움직인다.
이러한 설정은 자연스레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 영화에서 범죄에 관련된 인물을 색출하는 것은 인간이었으나 이 드라마에서는 기계이고, 영화에서 그러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공권력이지만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사법권과는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그들은 부패 경찰의 계획을 저지하기도 하고, 경찰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조작을 눈치채어 사람들을 범죄로부터 구해낸다. 사실 이 두 주인공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수많은 가명과 위장 신분을 사용하여 사건을 해결한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계가 제시하는 인물이 어떤 식으로 범죄에 관계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범죄를 계획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범죄의 피해자일 수도 있다. 기계는 그저 그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 알 뿐 그들의 역할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용의자suspect도, 피해자victim도 아닌 '요주의 인물(person of interest)'인 것이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주인공들은 종종 용의자를 피해자로 오해하거나 혹은 반대의 실수를 하고, 그런 설정이 이야기의 반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드라마의 각 화는 기본적으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각각 다른 인물에 대한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식으로 진행되지만, 그러는 사이사이 두 주인공의 어둡고 심각한 과거 얘기가 드러난다. 두 주인공은 꽤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하고 있지만 서로를 거의 알지 못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핀치는 리스의 과거를 상당 부분 알고 있겠지만-그가 모르는 것은 거의 없다-본인은 매우 비밀스러운 인물이라, 리스는 그의 과거는커녕 현재의 신분이나 거처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호시탐탐 그를 감시하고 그의 소재를 파악하려고 스토킹(..)을 하곤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파트너이고, 핀치가 모든 감시나 해킹 등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육체능력에 관한 한 먼치킨에 가까운-_- 리스가 현장 임무를 담당하는 형태로 완벽하게 분업이 이루어져 있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느 정도 서로를 믿고 있으며, 심지어 상대방에게 목숨을 맡기는 사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시종일관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데, 그나마 리스가 핀치를 '핀치 씨'가 아닌 '핀치', 혹은 '헤럴드'라고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핀치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항상 리스를 '리스 씨'라고 부른다. 정말로 위급하거나 걱정되는 상황에서 '존'이라고 부른 걸.. 23화 통틀어 딱 두 번 들어 본 것 같다.=_=
내용에 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무조건 보시라! 수사물 좋아하면 특히나 더!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다.), 캐릭터는 개성있고 또한 매력적이며, 영상미 역시 훌륭하다. '기계'의 감시 화면을 적절히 활용하고 그러한 화면으로 회상을 표현하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감시 화면이 아닌 실제 영상미 또한 뛰어나며 그것이 드라마의 차분한 분위기와 어울려 멋진 효과를 이끌어낸다. 두 사람이 사무실로 사용하는 곳은 예산 삭감으로 운영이 중단된 도서관 건물인데, 양장본이 빼곡히 꽂힌 서가가 즐비하게 늘어선 모습과 최신 기술로 무장된 기계의 공존은 역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음악마저 훌륭하다. 배경음악도 영상과 줄거리에 아주 잘 어울리지만, 중요 장면마다 적절한 삽입곡의 사용이 빛난다. 특히 두 주인공이 첫번째로 만나는 강적이라 할 수 있는 엘리아스가 등장하는 7화 마지막에 흐르던 'Sinner man'과 엘리아스와 관련된 또 다른 편인 19화에 삽입된 'Ne me quitte pas'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22화 중반에 잠시 나왔던 데이빗 보위의 'I'm afraid of Americans' 역시 아주 절묘했다.
매 화 다른 사건과 주인공들의 개인사 내지는 과거를 엮어넣는 솜씨도 훌륭하고, 진지하고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 와중에 개그까지는 아니어도 재치있는 대사와 장면도 종종 등장하고, 주인공이나 관련 인물이 적절하게 위기에 처하기도 하고, 여하튼 긴장감을 잃지 않고 끝까지 볼 수 있는 정말 재미있는 드라마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보시라고 누구에게든 권하고 싶다.
1시즌은 적절한 대사건과 절단신공으로(..) 마무리되고, 9월부터 2시즌이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다음 시즌은 어떻게 이야기가 이어질지, 두 주인공의 남은 과거 얘기는 또 어떤 것들인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