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교토는 한때 아름다웠으나 얼굴에 염산을 끼얹고 만 여인을 닮았다. 여전히 전성기의 아름다움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지만 그 완전한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우울한 감상을 동반한다.교토는 고도성장에 일본 전역의 자연환경과 역사적·문화적 유산에 저질러진 일들을 역력히 대변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던 국토의 상당 부분이 이 시기에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다. - P250
일본의 대중문화에서, 기성의 제도(회사나 학교 또는 경찰과 같은 관공서)는 본질적으로 자비로운 존재로 묘사되었다. 제도가 우를 범하는 것은 제도에 간혹 섞여 있는 ‘나쁜 개인들‘ 때문이었다. - P241
메이지 시절 종교가 겪었던 운명은 이후 일본이 걸었던 길을 여러 면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일본적이지 않다‘고 낙인찍어 기존 질서를 파괴했고, 사실상의 신흥 종교를 ‘순수하고‘ 자생적인 전통으로 포장하여 만들어냈으며, 한편으로는 서양 문물에 열광한 소수의 엘리트들이 그 제도적 유산을 오래도록 일본에 남기게 된다. 또 ‘일본적인 것‘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데 집착했던 메이지 일본은, 일본의 참모습을 이해하는 데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중국 대륙의 영향을 애써 지우고자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많은 서양 문화를 허겁지겁 받아들여 미숙하게 소화시켰다. 그 결과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서양에 대한 일종의 정신분열 상태에 빠졌고, 이러한 모순은 이후 비참한 정치적 결말을 가져온다. - P143
현대 중국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가장 먼저 권할 만한 입문서.위화는 이 이후에도 유사한 에세이집을 두어 권 더 냈지만 이 책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원래 원전을 설계했던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은 원전에 심각한 하자가 있으니 수리 작업을 해야 한다고 도쿄전력 측에 경고했으나 무시당했다. 그런 경고를 수용한다는 것은 곧 원전에 위험성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도쿄전력의 ‘원자력촌(원전 마피아)‘과 학계 · 정계 · 관계에서 그들을 옹호하는 세력들이 줄곧 선전해온, 원자력은 깨끗하고 안전한 기술이라는 메시지와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잘 작동 중이던 원전이 수리 작업에 들어간다거나, 원전의 보호를 위해 세운 방조제보다 더 높은 곳으로 비상 전원 설비를 옮겨서 쓰나미가 닿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취한다든가 하면, 애초에 위험 요소가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었다고 인정하는 꼴이 된다. 이런 것을 보면 대출이 상환되지 못할 위험에 대비한충당금을 쌓아놓지 않았던 일본 은행들이 떠오른다. 대출의 일정 비율이 회수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가정하는 일은 곧 대출 심사에 허점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 P407
일본의 조직들은 전략적 실수를 인정하고 발생한 문제를 직시하는 데 유난히 서둘다. 개인은 비난받을 수 있고 심지어 희생되기도 한다. 조직에서 명목상의 리더인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스캔들에 휘말린 뒤 형식적인 사죄를하고 사퇴하는 풍경은 매우 익숙하다. 이는 상당수가 쇼에 불과할 뿐이지만(그런 리더들은 뒤에서 따로 보상을 받고 잠잠해지면 되돌아온다), 실제로 수많은 일본의 개인은 실수나 혹은 더 큰 문제에 대해서도 기꺼이 책임지려는 훌륭한 태도를 보여준다. 문제를 일으키고도 나서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호사 뒤에 숨어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미국인 다수의 경멸스러운 행태는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조직으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딜라진다. 일본에서 실수를 인정할 줄 모르고 강제적인 상황에 몰리기 전까지는 급격한 변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앞 장에서 다뤘던 비즈니스의 사례들에만 국한된 생리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때 일본 황군이 보여준 행위에서 시작해, 어떠한 공공사업 프로젝트라도 한번 공식적으로 인가되면 철회가 거의 불가능해지는 현대 일본의 경향까지 모든 곳에서 드러난다. 공공사업 프로젝트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끔찍한 피해가 뒤따를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드러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좀비나 흡혈귀처럼 계속 부활하는데, 왜냐하면 인가를 내준 주체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부 부처이거나, 그 부처와 협력관계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철회한다는 것은 곧 해당 부처가 실수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 P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