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중국 매체는 쥐 죽은 듯 조용할 뿐이다.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후속 보도를 하는 곳이 없고, 대중이 질문하는 문제에도 답을 주지 않는다. 정부 기관이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있어서 탐사 기자는 거의 사라졌고, 수많은 언론 종사자는 어쩔수 없이 직업을 바꾸고 있다. 비슷한 상황이 변호사, NGO 단체, 기업가 들에게도 벌어지고 있다. 힘들게 싹틔운 중국의 시민사회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 P130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어떤 이야기도 막힘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원자바오 총리가 기자간담회에서 문화대혁명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를 반성하고, 문화대혁명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우리도 이런 분위기를 타고 개혁개방을 계속해서 추진해나가야 한다는 내용의 논설을 기획했죠. 다만 수위가 좀 높았습니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당시의 그 분위기는사실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같아요. 할 수 있는 말을 다 해보자는 식의 몸부림이요. - P132

우리가 알던 수많은 유명 시장 지향적 매체는 모두 1996년 전후로 출현했습니다. 『남방도시보』는 1995년에 시범간행을 했고, 제가 있었던 서북 지역 최대 신문사였던 『화상보도1997년 7월 1일에 개편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여러 지역에서 당보와는 구별되는 시장 지향적 매체가 출현했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당보나 당보 조직에서 떨어져나온 것들이었지만, 점차 당보나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시장에 들어와서 자립해나갔어요. 한창 번성할 때는 거의 모든 성마다 하나쯤 주도적인 시장 지향적 매체가 있었고요.
(중략)
시장 지향적 매체가 생겨난 이후, 기존의 당보 조직은 스스로 자립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정부 측 지원금에만 의존한다면 자립할 방법은 없다고 봐야죠. 그래서 각 지역의 당보는 자신들 밑에 ‘자보‘(부속 신문)를 두었습니다. - P135

제가 1998년에 이 일을 시작하며 몸담았던 시장 지향적 매체에는 사전 검열이 없었고, 다만 노란 선이나 빨간 선을 넘으면 엄청한 후과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매체 스스로가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 <남방주말>의 신년 헌사 사건이 모두에게 저항해야 할 필요성을 상기시켰습니다. 정부가 규칙을 위배한 거예요. 정부는 줄곧 사후 검열을 유지해왔는데, 이때는 신년 헌사를 발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검열과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정부가 자신의 검열 규칙을 위반한 것입니다. - P137

오늘 우리가 ‘황금기‘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 ‘황금기‘가 있었나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가 상대적으로 조금 나았을 뿐입니다. 당시에도 날마다 고통스러웠어요. 허구한 날 보도 지침이 내려와서 이것도 못 하게 했고, 저것도 못 하게 했으니까요. 제 생각에 소위 ‘황금기‘의 중요한 지표는 비록 보도 지침이 내려왔더라도 모든 기자가 직업 공동체 의식과 언론 기자로서 책임감을 가졌는지입니다. 자신이 선전가가 아니라 탐사 보도와 사회 사건 보도를 하는 기자라는 걸 인식하는 거죠. - P138

맞아요. 보도 지침이 내려졌지만 언론인들에게는 지침을 어길 수 있는 여지와 용기가 있었죠. 물론 이건 징벌이 매체와 기자들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요. - P138

제 본업은 홍콩 매체 기자였고요. 당시 언론 종사자들이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할 때, 홍콩 매체들은 종종 ‘타산지석‘의 역할을 하곤 했습니다.
본토의 매체들이 홍콩을 대하는 태도는 2016년을 전후로 해서 뚜렷하게 달라집니다. 당시 법치, 민주, 지역 사회 보육, 청렴과 부패 등의 주제는 본토에서 보도될 때마다 제재받았고, 그럴 때면 홍콩에서 보도된 사례를 찾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와 관련해서 원고 청탁을 여러 번 받았고요. - P139

 홍콩은 본토에서 ‘우리가 더 좋아지려면‘ 혹은 ‘더욱 홍콩을 닮으려면‘과 같은 말들로 거론되던 참고 대상이었습니다.(중략)
이런 경험도 2017년 홍콩 주권 이양 20주년이 되었을 때 끝났습니다. 홍콩에 대한 선해가 절정에 달했던 건 2007년이고요. 그때만 해도 『남방도시보」나 「남방주말』 같은 매체들이 홍콩에 와서 ‘구석구석 홍콩을 배우자‘라며 초대형 특집 기사를 썼으니까요.(중략) 물론 저 역시 사회운동에 대한 글은 쓸 수 없었어요. 하지만 사회운동 같은 소재를 제외하면 쓸 수 있는 내용의 수위가 꽤 높았습니다. - P140

저는 그 당시 중국 본토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남방주말』의 투쟁이 갖는 의의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해외에 있는 사람들 눈에 중국의 언론 매체는 죄다 공산당 관리하에 있으니 다를 게 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완전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니, 어떠한 언론의 자유도 없다고 판단할 겁니다. 그래서 해외에 있는 중화권 사람들이나 영어권 사람들은 언론인들이 속박된 상황에서 어떻게 한계를 극복하는지, ‘무릎 꿇고 반란을 일으키다‘와 ‘서서 저항하다‘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 P142

사실 2008년, 특히 원자바오 총리가 정치 개혁을 처음 언급한 뒤로부터 중국의 자유 진영은 이미 온건파와 급진파로 분열되어 있던 거죠. 저는 2013년이 됐을 때 중국 언론의 황금기가 끝났을 뿐 아니라, 저항 세력도 급진파밖에 남지 않았고 그 세력 역시 미미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온건파의 목소리는2013년에서 2015년 사이에 철저하게 소멸했습니다. 온건파의 지식인이든 언론인이든, 저는 ‘남방주말 사건‘이 이 세력의 소멸을 상징한다고 생각해요. - P143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2015년 양쯔강 여객선 침몰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이 체제 안에서는 언론 매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과거에는 치욕을 참고 견디면 어떻게든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깟 치욕쯤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뭐 이런 거였죠. 정부가 정한 한계만 받아들이면, 저는 국민의 삶을 기사화할 수 있었고, 기자의 역할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5년에는 정말 안 되겠더라고요. 계속했다가는 제 인생을 낭비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 P144

점차 이 일은 일종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중대한 공공 사건에 대해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설령 갔대도 취재할 수 없었습니다. 간신히 취재해도 기사로 낼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벌어진 항공사고와 같은 재난 사건들도 모두 당사자들을 통제했는데, 당사자가 몇 명이든, 몇백, 몇천 명이든 인원수에 상관없이 모조리 다 통제했습니다.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결국 국내외 매체 할 것 없이 중국 본토에서 취재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연락한 내용은 쉽게 추적됐고, 당사자 역시 사후에 크게 처벌받았으니까요. 정말이지 엄청난 전환이었습니다. - P145

선전부는 재빨리 강력한 선전 시스템을 가동해서 재난을 선전의 기회로 삼고, 비극을 경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2020년 2월 4일에 『신문연보』에서 보도하길, 중앙선전부에서 300여 명의 기자를 소집해 우한과 후베이 지역을 취재 보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시진핑이 펜데믹을 다루는 선전 교육과 여론 선도 작업을 제대로 진행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죠. - P149

지방정부의 방해는 있었습니대 그들에게는 기자들의 정보를 모은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서, 기자가 지역에 가려고 표라도 사면 바로 지방정부에서 이를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기자가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감시를 시작하죠. - P151

즉 기자들이 겪는 곤경은 이런 겁니다.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지침이 내려오죠. ‘기자랑 말하지 마. 사건이 보도되면 외세에 칼자루를 넘겨주는 꼴이 되는 거야.‘ 우리 외신 매체는 특히 나쁘게 낙인찍혀서, 당사자가 외신과 이야기 나누는 건 그야말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거나 마찬가지죠.
중국을 취재하고 보도하기란 갈수록 그 내막이 요원해지고, 도대체 지금 정확히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알아내기도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 P151

지금은 기자 개인에 대한, 특히 외신 기자 개인을 향한 신상 털기와 표적화가 엄청난 위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CNN이나 『뉴욕타임스』를 적대시하면서, 그들이 중국을 모독한다고 여겼죠. 하지만 지금은 표적이 구체적인 한 명의 개인으로 바뀌었어요. 누가 기사가 나올 수 있게 외신을 도왔는지, 중국인 누가 보도했는지 찾아내서 그들을 표적화하는 겁니다. 저는 이 일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계와 중국의 상호 이해를 엄청나게 해쳐 놓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전 세계와 이어진 메신저를 공격의 타깃으로 삼는 것과 똑같은 짓입니다.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마지막 다리까지 끊어질 수 있어요. - P153

취자린은 2016년에 홍콩중문대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면서 논문을 하나 썼고, 나중에 『20개 그림자 아래의 자유』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는데, 홍콩의 언론 검열을 다룬 책이었습니다. 어젯밤에 제가 취자린에게 이 책이출간되던 2017년과 지금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개정판을 낸다면 어떻게 바꾸겠냐고 물어봤어요.
그가 말하길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이 책에서 묘사한 홍콩 언론의 검열 상황이 이제 완전히 구식이 되어버렸으니 다 다시 써야 한다더라고요. 하물며 제목도 바꿔야 한대요. ‘20개 그림자‘가 아니라
‘20개 칼날‘로요. 이제 자유는 사라졌으니, 그림자가 한칼에 베어버리는 칼날이 되었다고요. 저는 이 묘사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202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이 그림자가 천천히 드리워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자가 2020년 이후 칼날로 변했죠. - P154

홍콩의 변화는 너무나 빨랐습니다. 보통,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를 넣고 온도를 점점 높이며 삶아버린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홍콩은 펄펄 끓는 물에 바로 개구리를 던져버린 거죠. - P155

독립된 목소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분명한 신호입니다. 민간에서건 정부 내부에서건 비평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다가 결국에 완전히 사라진다는 신호예요.
단지 민간에서뿐만 아니라 정부 내부에서도 분명히 그럴 거예요. 정책을 내놓으려면 단계별 토론을 거치고 마지막에 선별 작업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부와 복종만 남은 곳에서 수준 높은 정책 결정을 할 리 만무하고 점점 더 질이 형편없어질 겁니다. 저는 홍콩과 본토 모두에서 이러한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 P156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던 기자들이 다시 모였던 것도 기억할 거예요.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홍콩 사람들이 ‘모기 매체‘라고 부르는 모기처럼 아주 작은 매체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매체의 출현은 홍콩이 콘텐츠 생산자에게 고도의 통제를 가하는 와중에도 전체 콘텐츠 환경이 중국만큼 철저하게 파괴되지는 않은 덕분이었습니다. 방화벽도 철저하지 못해서, 얼마든지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 수 있었고요.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이 새롭게 모일 기회를 얻었고 작은 목소리로도 최소한 자기 주변의 커뮤니티를 결속시키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 P157

저는 세대별로 그들만의 반항하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항이라는 단어가 짐짓 너무 격렬하게 들린다면 자신만의 ‘대응‘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매체‘를 예로 들면, 우리 세대에 익숙한 ‘매체‘ 개념으로는 중국에서 ‘매체‘란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그들만의 언어와 전파 방식을 가지고 있고 우리와는 다르죠.(중략)
이렇게 이야기해볼 수 있겠네요. 저는 구조적으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대응 방식이 매우 흥미롭고 그들이 우리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 P158

건강하고 민주적이며 자유로운 사회가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참여의식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곳을 바꿀 힘이 있으며 결코 무력하지 않다는 걸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곳이 작은 커뮤니티이든 거대한 사건이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은 마땅히 참여해야 하고, 상황을 바꿀 능력도 있습니다. 이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당신은 힘을 보탤 수 있어요. 저는 우리 중국인들이 이제까지 이러한 가치를 습득할 기회가 없었고, 그래서 매우 이기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것이 세계 각지로 이민 간 중국인들이 그 사회에서 미움받는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중국인들은 참여하도록 열려 있는 사회의 일원이 되어도 어떻게 참여해서 자기 주변을 바꿔야 하는지 전혀 모르니까요. - P161

우리는 어디에 있든 변화에 참여할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만일 현실세계가 우리를 버렸대도 우리는 우리만의 새로운 작은 세계를 창조하면 돼요. 그로써 우리 스스로 그 세계에 투신하고, 세계를 바꾸며 새롭게 형성해내면 됩니다. 저는 이게 아주 근본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여하며 살지 않으면 사람들은 무력감을 느끼고, 그러면 끝장입니다. 살아갈 원동력이 없는데 왜 살아야겠어요? 저는 이것이 홍콩이 제게 가르쳐준 가치이고, 이것에 기대어 저널리즘에 대한 이상을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 P161

저널리즘의 이상에 대해 물어보셨죠? 저는 여전히 의의는 있다고 생각해요. 의의가 없는 삶에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내가 하는 일에 의의가 없다면, 하루하루 먹고 싸는 것뿐이겠죠. 우리가 처음 품었던 이상은 다들 똑같을 겁니다. 빙점』의 편집장이었던 리다퉁의 책 <뉴스로 오늘을 바꾸자>처럼 말이죠. 우리는이 일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바꾸길 희망하잖아요. - P163

제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자기가 한 일의 대가를 따졌을 때, 감옥에 가거나 죽임당하는 것까지 감당하지는 못하더라도, 돈을 좀 적게 벌게 된다든지, 화려한 삶을 살 수 없다든지, 그런 대가는 얼마든 감당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 P164

저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종종 매우 연약한 것이라고 말하곤 하는데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나무도 아주 작은 새싹에서 시작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 일도 의의가 있다고 믿어요. - P165

 제가 설립한 창작과 토론 플랫폼 ‘매터스‘에 "글쓰기는 가장 작은 단위의 자유다"라는 슬로건이걸려 있어요. 글쓰기는 단연코 제게 가장 중요한 최후의 보루가 될 겁니다. 제가 쓸 글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자기 역량의 확립은 매우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이죠. - P165

저는 반드시 우리가 개인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변혁의 시대도 중요하지만, 대변혁의 시대 속에서 자신의 삶에 갖는 감정도 매우 중요합니다. 뭘 하든 간에 본인 스스로 자기 삶이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은 독립된 개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유롭지 못한 세상에 살더라도 최선을 다해 자신을 자유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해요. - P166

우리의 저널리즘의 이상을 가지고 청년들에게 바람을 넣어선 안 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마주하게끔 해줘야 해요.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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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산당 대회는 예전과 비교해서 훨씬 더 불투명해졌고, 이는 중국 정치의 불투명성이 갈수록 더욱 증가하리라는 것을 예시합니다. - P106

시진핑은 리창에게 권력을 줬지만, 딩쉐샹과 허리펑의 견제를 통해 리창의 권력이 자신을 위협할 수준이 될까 걱정할 필요 없도록 손써뒀습니다. 시진핑의 제왕이 상당히 노련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계파들은 당연히 자연스럽게 성장하겠지만, 각 계파가 서로 견제함으로써 특정 계파가 커지는 것은 방지될 겁니다. - P110

지금부터 한동안은 어떠한 재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전체 관료 체계의 통제 능력은 강화되었지만 통치 능력은 약화했습니다. 통치 능력이 약해지면 윗선이 어떤 나쁜 정책을 만들든지 상관없이, 밑에 있는 관리들의 무능과 무지, 그리고 무지막지함 그 자체로 민중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여러 재난이 일어납니다. 앞으로의 중국은 아마 재난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국가가 될 겁니다. 매우 잔혹한 현실이죠. - P117

중국은 매 순간 종국에는 정치적 문제가 생깁니다.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마지막에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일반 민중이 뒷감당을 지게 되더라고요. - P124

저는 현재 일본에는 경제적 재앙이 발생하지 않았고, 경제가 고속 성장기를 지나 장기적인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뿐이라고생각합니다. 저는 이 단계가 경제가 고속 성장하는 단계보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인간의 생활을 놓고 보면 장기적 안정기가 더 이상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강한 욕망 없이 일상의 삶을 잘 영위할 때 마음이 평화로워진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이상적인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P125

 중국 성인의 말씀 중에, 잘 살아야 도덕 수준도 올라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 제대로 살지 못한 후과는 누가 책임질까요? 바로 중국 국민입니다. 그러면 왜 항상 국민이 책임지게 되는 걸까요? - P126

저는 사실 중국의 모든 사회 및 경제 현상의 근본 원인이 정치가 권력자만 보호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는 갈수록 나빠지고, 경제 전망 역시 갈수록 안 좋아지는 상황에서, 저는 우리가 일률적으로 경제 문제만 걱정하기보다 차라리 경제 뒤에 있는 이러한 권력 기제를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이 문제를 깨닫게 되면 경제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겁니다. - P127

만약 제가 누군가를 선동해서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이득을 취해야 한다면, 제가 가장 먼저 선동할 대상은 바로 이 체제의 권력과 부의 엘리트들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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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말 당시 중국의 지도자층에서는 정치 개혁을 하려는 성의, 최소한 정치개혁을 주관하는 자오쯔양의 성의만큼은 확실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이 조금도 추진되지 못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후로 정치 개혁 방면에서 그때의 조치들이 역공당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요. 저는 그때부터 중국공산당 정치 개혁에 어떤 환상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 P83

위안: 어떤 사람들은 현재 중국이 시진핑의 치세하에서 갈수록 전체주의 국가와 비슷해지고 있고, 최소한 전체주의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선생님은 어떤 관점이셨나요?
우: 중국은 전체주의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많은 부분에서 역사상 그래본 적 없는 지경까지 전체주의에 도달해 있습니다. - P85

그러나 시진핑이 정권을 잡은 이후, 그는 이데올로기 체계를 세우고자 힘썼습니다. 수많은 당 간부학교, 연구기관,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 및 중국 특색사회주의 수업을 하던 일반 대학 들이 지금은 적나라한 시진핑 사상 연구센터가 되었습니다. 이곳들은 정부를 대변하는 데 힘쓰고 있고, 당원과 체제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진핑의 사상을 신봉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P86

이건 가십이지만, 시진핑이 마오쩌둥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전체주의로 돌아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 P87

마오쩌둥은 최소한 그의 동지 중에서, 고위급 지도자들을 포함한 중국공산당의 당원 중에서 이른바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일반 민중에게도 다년간의 선전을 통해 그는 카리스마적인 사람으로 형상화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중국에서 시진핑에게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다섯 명이나 될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 공산당 간부 중에서는 시진핑에게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제 생각에 아마도 아주 소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령 여론조사를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지는 않을 테니 우리가 알 방법은 없을 테지만요. - P88

제가 10년 동안 관찰한 결과, 시진핑은 의심이 매우 많은 정치인입니다. 설령 자신이 발탁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시진핑은 그를 전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 P90

권력이 집중되는 체계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바로 하의상달의 정보 경로 문제입니다. 윗선의 권력이 강력한 상황에서 아랫사람은 윗선이 싫어할지도 모르는 정보나 실정을 함부로 보고하지 못합니다. 이는 고위층의 정책 결정력 저하를 초래합니다.(중략)
둘째는 바로 상명하달된 정책의 관철입니다. 윗선에서 압박해야만 아랫사람이 겨우 움직인다면 이는 아랫사람이 능동적이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능동적으로 움직였다가 실수라도 하면 벌을받을 게 뻔하겠죠. 정책 결정력도 저하되고 정책의 관철 능력도 형편없으면, 권력이 아무리 큰들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못하죠. 그리고 중국에는 두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하나는 관료들의 복지부동이고, 다른 하나는 윗선에 잘 보이려고 실제보다 목표를 높게 잡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다수의 정책 결정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습니다. - P91

이제 조금 전에 말했던 전체주의로 돌아가보죠. 전체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군대와 무기를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2018년 제가 왜 이미 전체주의로 돌아왔다고 느꼈을까요? 그건 당시 식칼을 사는 것조차도 증명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마오쩌둥 시대에도 없던 일입니다. 식칼조차도 무기라고 여기는 무기에 대한 통제가 가정 주방에까지 미친 것입니다. 물론 이는 당국에서 민중의 엄청난 불만을 눈치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당국은 다양한 방식의 통제를 강화해서 혁명의 싹을 초장에 자르려고 했던 겁니다. - P95

그러니까 저는 시진핑의 사고방식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오쩌둥 시대‘가 너희를 수천만 명씩 굶겨 죽였지만, 아무도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고, 공산당은 끄떡없었고, 너희는 오히려 마오쩌둥을 부모님보다 더 사랑했지. 그런데 지금은 너희한테 집도 주고 차도 주고 끼니 걱정도 안 하게 해줬으니 내가 너희를 10년 더 괴롭혀도, 20년을 괴롭혀도 괜찮을 거야. 처음에는 예전보다 힘들어졌다고 싫어할 수도 있지만, 20년쯤 괴롭히면 익숙해질 거고, 30년쯤 지나면 만세를 외치겠지. 왜냐하면 그때 서른 살에 접어든 사람은 온전히 시진핑 시대를 산 사람일 테고, 그들이 받은 교육은 시진핑 일색일 테니까. 그렇게 30년이 지나면 사람들은 시진핑을 그야말로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하겠지." - P98

제 생각에 지금 중국의 문제는 가짜 희망이 판친다는 겁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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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현대 기술에 의한 감시 시스템이 활개를 친 건 과거 10년의 일입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출현하기 전에도 중국공산당의 민중 감시 능력은 매우 뛰어났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산당의 감시 능력과 현대 기술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공산당은 예전부터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현대 기술이 이 능력을 더 향상해준 것이지요. - P61

우리가 또 살펴봐야 할 것은 사람들이 왜 자원해서 중국 경찰들을 도와 이런 부도덕한 일을 하는가입니다. 사정은 꽤 복잡합니다. 우선 경찰을 위해 이런 일을 한다면 기본적으로 경찰에게 약점을 잡혀서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해서 어떤 일을 했다고 가정해보죠. 그들이 당신을 붙잡은 뒤제일 먼저 하는 일은 당신을 자기네 스파이로 삼으려는 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그들은 당신을 통해 많은 정보를 캐낼 수 있죠.
다른 하나는 중국공산당 정권이 레닌주의 정권이다 보니 엄청난 경제적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국영기업에서 근무한다고 해보죠. 사장이 당신을 불러서 안정 유지를 위한 정보원이 되어달라고 하면, 감히 싫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싫다고 하면 밥그릇을 잃을 텐데요. 아니면 당신이 작은 노점을 하나 운영한다고 해보죠. 정기적으로 허가증을 연장받아야 하는데, 정부 관점에서 이건 당신의 중요한 약점을 잡은 거나 다름없죠.
(중략) 제가 분석하기로 정보원 대부분은 그 일을 강요받았고, 정부의 보복이 두려워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 P66

만약 중국공산당이 어떤 일을 하고자 맘먹는다면 자금 따위는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불가사의한 일도 그들은 아무 제약 없이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대적인 안전이 아니라 절대적인 안전을 원하기 때문이죠. - P73

가장 중요한 것은 총체적인 위기가 도래했다는 겁니다. 일단 총체적 위기를맞으면 아무리 좋은 예방 시스템이 있대도 소용없습니다. 조직에 속한 사람들, 정치 엘리트, 감시를 실행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이가 제도에 믿음을 잃기 때문입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경찰 시스템 내부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가족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수많은 억울한 일과 모욕적인 일을 겪으면, 제도에 엄청난 실망, 더 나아가 반감을 갖게 됩니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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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로 코로나‘ 정책이 14억 인구의 중국에서 전면적으로 실행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국가 감시 체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이 체계는 과거 수십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현대 기술 통제 프로젝트를 포함하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대하고 노동 집약적인 스파이 네트워크가 시행되었다는 것이다. - P44

현재 중국의 정권은 겉보기에는 1959년 당시 정권과 아주 다르지만, 실제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무한 권력의 정부이고 사회는 이에 어떠한 제약도 가할 수 없습니다. 제약을 가할 유일한 방법은 정권 내부의 권력 분배뿐입니다.
(중략) 최고 결정권자가 다른 의견을 들어줄 수 있다면 그래도 그 정권은 어느 정도 교정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할 수있죠. 그러나 만약 최고 결정권자가 이견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강력한 대응을 동원해 한술 더 뜨는 방식으로 받아칠 겁니다. - P46

제가 따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중국의 정치 체제에서는 상부에서 좋은 정책을 내려보내면, 밑으로 갈수록 제대로 이행되지 않습니다. 왜냐? 이해관계자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죠. 위에서 내린 좋은정책이 밑에서는 5퍼센트만 실행되어도 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체제에는 몹시 나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만일 상부에서 나쁜 일을 저지르면, 밑으로 갈수록 폐단이 확대됩니다. 예를 들어 상부에서 어떤 안 좋은 정책을 내리려는데 이게 하부 관리에게도 유리하다면, 그는 차라리 좌로 갈지언정 우로는 가지 않죠(영좌물우). 즉 나쁜 일을 더 확대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고위층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이 밑으로 내려왔을 때는 최악의 정책이 되어버립니다. - P47

중국에서는 관리들이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건 괜찮아요. 나쁜 일을 저질러도 피해자가 일반 국민이라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부의 의지에 반하는 일이 벌어지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이 체제는 매우 도구화되어 있어서, 당신이 어떤 일을 처리하더라도 상부와 대가를 논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라는 말이 중국 관료들 사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그럼 그 말의 함의는 뭘까요? 이건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를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관리 자신더러 대가를 치르라고 한다면, 그는 아예 일을 안 할 테고요. 따라서 이런 ‘작악수권‘의 체제가 갖춰지면, 일반 국민만 괴롭습니다. - P48

수많은 나쁜 점이 증폭되어 나쁜 제도가 됩니다. 이 제도 아래에서는 첫째, 좋은 일을 할 수 없어요. 둘째, 나쁜 일을 해도벌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는 ‘악의 평범성‘이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게 합니다. - P49

이번 ‘제로 코로나‘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째, ‘제로 코로나‘는 일종의 대중운동으로, 동원된 인력 자원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기술에만 의지해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죠. 둘째, 가장 효과적인 감시 체제를 위해 촘촘한 조직 시스템에 첨단 과학기술을 더한 것이죠.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됩니다. - P51

 저는 현재 중국의 감시 시스템이 세계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가장 선진적이고 어떤 나라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경지에 달했다고 생각해요. - P52

수십 년 동안 중국공산당과 인민이 맺은 사회 계약은 경제 발전을 이룸으로써 정권의 합법성을 획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공산당이 나나 내 아이를 편히 살게 해주면, 개인의 권리를 탄압하는 것을 용인할 수 있고, 우리는 그저 조용히 돈이나 벌면서 살겠다는 거죠. 그런데 이번 ‘제로 코로나‘로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까. - P52

중국공산당과 중국 인민의 사회 계약에는 경제적인 면 외에 다른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 정치적 권리는 원하지 않을지언정, 어느 정도 개인의 자유는 있어야 한다는 거죠. 내가 무엇을하든, 어떤 옷을 입든, 어디를 가든, 정치와 무관한 일을 할 때는 당이 관여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번 ‘제로 코로나‘는 순식간에 수많은 인민이 이제까지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던 개인의 자유마저 빼앗겼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했습니다. 중국이 민주국가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개인의자유만 주어진다면 민주국가인지 여부는 상관없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없다면 개인의 자유도 없고 그 무엇도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 여실히 느꼈죠. 이러한 측면에서 말한다면, 아마 ‘제로 코로나가 공산당의 위신에 끼친 부정적인 충격은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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