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재밌는데... 의존명사 ‘데‘의 띄어쓰기를 계~~~~~속 틀리는 게 너무 거슬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존 더글라스는 그들(끔찍한 범죄를연이어 저지르는 자들)에 대해 분명한 의견을 말해준다. ‘우리는 어떤 유형의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면담했던 범죄자들 모두의 동기를 특징짓는 세 단어가 있었다. 그것은 조종, 지배, 통제였다.‘ 이 말을 꼭 기억하자. 주변의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거나 지배하거나 통제하려 한다면, 당장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 P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러한 숙청들을 통해 정부가 노린 것은 실재하거나 상상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적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기보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행동과 발언을 잠재적인 범죄로 규정함으로써 다루기 쉬운 인민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 P3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다자이의 사례는 주석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들 중 하나, 즉인간이 자연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자력갱생을 의미했다. 천융구이는 정부의 곡물 지원과 재정 지원, 구호 물품을 거부하는 이른바 <삼불> 원칙을 고수했다.
(중략)
자력갱생 개념은 시민들을 알아서 해나가도록 방치하는 데 대한 편리한 핑계가 되었다. 시민들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라는 말을 들었고 또다시 풍부한 노동력으로 부족한 자본을 대신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주민들이 국가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불모지를 비옥한 땅으로 바꿔 놓았다는 점에서 다자이 마을은 타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했다. - P348

다자이 모델은 사실상 대약진 운동으로 회귀를 의미했다. 다자이에서는 모든 것이 집산화되었다. 1964년 2월에는 인민일보가 <다자이의 길>을 따르라고 촉구하면서 대약진 운동 당시의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잘, 더 경제적으로>라는 표어를 부활시켰다. 대약진 운동이 수반했던 광기가 다자이 모델에서 재현됨에 따라 다자이 주민들은 기대에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밤낮으로 일해야 했다. - P349

기후나 지형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자이를 본받고자 하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몽골의 광활한 초원부터 만주의 늪지대까지 호수는 메우고, 숲은 밀어 버리고, 사막은 개간하면 그만이었다. 전국에 맹목적이고 획일적인 잣대가 적용되었다. 모방 경쟁에 따른 한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지역 당 간부들이 멀쩡한 평야에 산을 만들기로한 경우도 있었는데 그 엄청난 일을 벌인 이유가 단지 다자이처럼 계단식 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 P361

대약진 운동과 마찬가지로 다자이를 본받는 운동은 거대한 기만행위였다. 다자이 자체가 가짜였으며 모범적인 다자이 마을 주민들도 주석이 쓴 희곡에 마지못해 출연한 배우에 불과했다. 기적 같은 수확량도 수치를 부풀렸을 뿐 아니라 다른 마을의 양곡을 빌려서 만든 가짜였다. 관개 시설은 대부분 인민 해방군이 건설한 터였다. 다자이 마을은 자력갱생은 고사하고 국가로부터 엄청난 보조금을 비롯해서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받았다. 다자이 마을에서 일어난 일은 전국에서 그대로 모방되었다. - P3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주석은 관할권이 중복되고 이해가 상충하는 방만한 조직으로 일당 독재 국가가 운영되는 것을 싫어했다. 자신의 명령이 두말없이 즉시 시행될 수 있는, 보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지휘 체계를 열망했다. 결론은 혁명 위원회였다. 군이 장악한 혁명위원회는 소수의 몇몇 인물에게 전례 없는 권력을 집중시켰다. 각각의 성에서 전체 혁명 위원회 중 대략 절반 정도가 군사령관의 지휘를 받았다. 1968년 여름에 이르러서는 인민 공화국이 부쩍 군사 독재 정권을 닮아 있었다. - P297

사회주의 국가에서 출신 계급이 매우 중요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밥벌이를 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낙인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가난한 사회 구성원들은 부랑자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경제가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주어진 자원을 고갈시키기만 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줄이고 싶어 했다. 그 결과 전국 곳곳에서 가장 취약한 범주에 속한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유배되었다. - P321

 결과적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토끼 굴 같은 지하 시설은 완성과 동시에 빠르게 사람들에게서 잊혀 갔으며 곰팡이와 해충에게 점령당했다. 머지않아서 많은 땅굴이 폐쇄되었다. 지하 연결망은 군사 기밀로 간주되었고 맨손으로 그처럼 엄청난 일을 해낸 당사자들에게도 출입이 금지되었다. - P3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